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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의 하나님 영접(receive God)과 성령님의 영접(receive the Holy Spirit)Views 1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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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의 하나님 영접(receive God)과 성령님의 영접(receive the Holy Spirit)
창 6:3의 번역논쟁
창 6:1-3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NIV KJV NKJ NIV 필자 | The LORD said, “My Spirit will not contend with man forever, for he is mortal.” * NIV footnote: “My spirit will not remain in man forever, for he is corrupt.”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strive with man forever, for he is indeed flesh.”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strive with man forever, because he also is flesh.” The LORD said, “My Spirit will not remain in man (unbeliever) forever, for he is corrupt.” |
위의 창 6:3에 대한 번역가운데 ‘My spirit’ 외에는 NIV의 각주가 가장 바른 번역이다. “My spirit’와 ‘My Spirit’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My Spirit’은 성령님을 의미하지만 ‘My spirit’은 ‘영혼육’의 영혼을 뜻하는 것으로 성령님이 절대로 아니다. “나의 신(성령님)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에 "나의 신 곧 하나님의 성령님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사사들과 선지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기록이 허다하다. 따라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라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또한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라는 것도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여기고 육체를 지니지 아니하는 천사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창 6:3의 기록은 그릇된 사본에서 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창 6:3을 번역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구절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구절들을 연구해야 한다.
창 6:1-3의 기록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첫째는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의 사람들과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를 밝혀내야 한다. 여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닌 불신자들로서 창 4:13-24에 나오는 가인 계통의 자손들이다. 한편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창 4:25-6과 창 5:1-32에 나오는 셋의 계통의 자손들로서 하나님을 잘 믿는 에녹을 위시하여 노아의 자손들로서 이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자들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결혼하여 하나님의 자녀들도 타락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됨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이 이들과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는 기록이다. 따라서 NIV의 각주에서 “나의 신(* My Spirit이어야 한다)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타락함이라”는 것이 바른 사본에서 온 것이다. 창 6:1-3의 번역과 해석을 위해서는 창 6:5-13을 같이 놓고 연구해야 한다.
창 6:5-13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 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 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3의 구체적인 설명은 창 6:5-13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창 6:5-13은 노아와 그 의 가족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타락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의하여 타락함으로 멸하시기로 작정하시었고 노아의 가족 이외는 하나님이 보내신 홍수를 통하여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창 6:3의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타락함이라”는 말씀이 노아시대의 불신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타락하여 부패한 불신자들을 의미한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 6:3의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타락함이라”의 바른 번역과 바른 해석은 “나의 신이 영원히 불신자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타락함이라”이어야 한다. 이 말씀은 노아시대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약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었다는 사실이 창 6:3의 기록이 증거한다.
사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 할찌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사 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렘 3:19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것이니라.
렘 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롬 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고전 12:3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 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하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고, 그 자녀들은 하나님을 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롬 8:15-16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하나님과 신약시대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이시며, 또한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구약시대의 자녀들과 신약시대의 자녀들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은 양자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시대의 “하나님을 믿고 영접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있다”(To receive God is to receive the Holy Spirit)는 결론에 이른다. 요 13:20에서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즉, 하나님 영접은 예수님 영접(To receive God is to receive Jesus)이며, 롬 8:15-16에서 예수님 영접은 곧 성령님 영접(To receive Jesus is to receive the Holy Spirit)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상의 성경기록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 영접 = 예수님 영접 = 성령님 영접(To receive God = to receive Jesus = to receive the Holy Spirit)]이라는 삼위일체의 공식이 정립된다. 예수님이 이 지상에 오신 후에는 이 공식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체의 예외 없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자녀들의 경우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지 아니하여 직접적으로 영접할 수 없었으나 그들은 오실 메시야를 고대하며 살았었다. 결론적으로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자녀들과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일체의 예외 없이 성령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있다는 성령론 교리가 정립된다.
오순절 날에 성령충만(성령의 권능충만)을 받은 12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들은 그들의 할아버지와 부모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오실 메시야를 믿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이미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다(They have already received the Holy Spirit before meeting John the Baptist and Jesus)고 해석해야 한다. 또한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잘 믿고 있던 구약시대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임으로 베드로의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듣기 전에 이미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영접한 구약시대의 모든 자녀들은 모두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신약시대의 모든 자녀들은 모두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이상의 성령론 교리는 오순절 전의 예수님의 제자들,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 기도를 통하여 성령충만을 받기 전에 빌립의 복음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마리아 신자들,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중에 성령충만 받기 전의 고낼료와 그의 가족들, 바울을 만나기전 세례 요한의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오실 메시야를 믿고 있던 에베소의 12명의 신자들에게 일체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 영접 = 성령님 영접]의 공식에 의하여 행 10:47은 번역해야 한다.
행 10: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많은 신학자들은 불신자였던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듣고서야 신자가 되었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오순절교단이나 비 오순절교단을 불문하고 모든 신학자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 것이다”라는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행 10:44-47의 구절만을 가지고 해석하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으나 사도행전 10장을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그릇된 주장이다. 행 10:1-5과 행 10:22에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잘 믿는 신자였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사까지 보내시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말 3:16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하였다. 고넬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곧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였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 곧 천국의 생명록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다. 따라서 고넬료는 하나님을 잘 믿고 구원 받은 성도였음이 확실하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이 고넬료는 불신자였었고, 불신자였던 그가 베드로의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듣고서야 신자가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을 수용할 경우에 하나님을 믿고 있던 구약시대의 신자들의 구원은 없었다는 황당한 주장이 되고 만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의 전환 기에 살았던 하나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며 하나님의 자녀였다. 앞에서 연구한 대로 창 6:3과 롬 8:15-16에 근거하여 [하나님 영접 = 성령님 영접]의 공식에 따라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이미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다(Cornelius have already received the Holy Spirit before meeting the apostle Peter)고 해석해야 한다.
행 10:44-47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에 관한 설교를 듣던 중에 성령을 받았다(Cornelius has received the Holy Spirit through the preaching of the apostle Peter)고 기록하고 있다. 영어권에서 ‘receive the Holy Spirit’는 “성령을 받는다”로 읽지 않고 “성령을 영접한다”로 이해한다. 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성령님을 이미 영접했다는 말과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중에 성령님을 영접했는다는 말은 분명히 서로 모순된다. 이와 같이 모순이 생긴 이유는 행 10:47에 나오는 헬라어 ‘lambano’의 그릇된 번역을 바른 번역으로 믿는 착각한 데서 온 것이다. 이 구절에 나오는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는 오역이다. 바른 번역은 반드시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충만(성령의 권능충만)을 받았으니”이어야 한다.
[하나님 영접 = 성령님 영접]의 공식에 의하여 행 19:2은 번역해야 한다.
12명의 에베소의 신자들은 언제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는가?(When did they receive the Holy Spirit?).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아니하면 행 19:2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의 번역이 맞는 번역인가, 그릇된 번역인가를 알 수 없고, 나아가서 행 19:2의 바른 번역이 없이는 성령론 정립은 불가능하다. 이 구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만난 에베소의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베푸는 물세례를 받은 것이다. 눅 3:3에 의하면 “요한은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고, 눅 3:16 에 의하면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 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는 것과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세례 요한은 천국복음과 오실 예수님을 전하였다. 에베소의 교인들도 이러한 복음을 듣고 즉, 그들은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영접하였다면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같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된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면 그들은 창 6:3, 롬 8:15-16에 근거하여 사도 바울을 만나기 전에 이미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다(The Ephesian believers have already received the Holy Spirit before meeting Paul)고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에베소의 세례 요한의 12제자들이 이미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그들을 만나자 마자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since you believed)고 질문을 했던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Did you receive(lambano) the Holy Spirit’를 “너희는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이해하지 않고 “너희는 성령을 영접했느냐”로 이해한다. 따라서 “너희는 성령을 받았느냐”의 한글성경의 번역은 전혀 그릇된 번역이다. 이미 성령님을 영접하고 있는 그들에게 성령님을 영접했느냐고 질문한 것은 전혀 모순된 질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이러한 모순된 질문을 했을리 만무하다. 이와 같이 바울이 모순된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행 19:2의 ‘Did you receive(lambano) the Holy Spirit’의 그릇된 번역을 맞는 번역으로 믿고 착각한 데서 온 것이다.
여기의 행 19:2에 나오는 헬라어 동사 ‘lambano’는 ‘to receive’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고 ‘to be filled with’의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즉 “너희가 믿은 후 성령충만(성령의 권능충만)을 받았느냐”(Were you filled wit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since you believed)라고 질문을 한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말한 이 질문은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행 19:2을 이와 같이 번역하고 해석하면 성령론은 모순이 일체 없이 논리정연하게 정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