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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8.20.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창세기 44:1~17(구약70쪽)
설교제목/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 말씀은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이란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2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시험을 보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어떤 시험을 보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시험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는 시험이 있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 보는 시험이 있고, 회사나 직장에서 승진을 하기 위해서 보는 시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간단하지만, 중요한 시험을 볼 때가 있습니다.
혹시 이런 시험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일을 양심에 꺼려져서 할까 말까 할 때가 있는데, 이것도 시험의 일종입니다. 남의 물건을 슬쩍 가져갈까 말까 하는 것도 시험의 일종입니다. 교통법규를 지킬까 말까, 속도를 지킬까 말까 하는 것도 시험의 일종입니다. 누구를 사랑할까 말까 하는 것도 시험의 일종입니다.
시험은 크게 세 종류의 시험이 있는데, 지식이나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알아보고 평가하는 시험이 있고, 마음을 꾀어서 좋지 않은 길로 미혹받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가 시험과 미혹 시험을 받는 과정에서 시련이란 시험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세 종류의 시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평가하는 시험하셨는데,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이삭을 더 사랑하느냐를 묻는 시험을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유혹)을 받으셨으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에서는 성도들이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는데, 야고보가 말하는 시험은 시련을 가리킵니다. 시련은 평가 시험이나, 미혹 시험에 직면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평가 시험과 유혹 시험의 차이는 평가시험은 좋은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나 사람이 하는 것이고, 유혹 시험은 나쁜 의도나 죄에 빠지도록 마귀나 마귀의 영향력을 받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평가 시험입니다. 요셉은 애굽나라에 양식을 사러온 형들에게 아주 철저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을 통해서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시험이 무엇인지, 이런 시험을 어떻게 치를 수 있는지, 시험을 이기면 무엇이 주어지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본론/
1.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대한 시험
요셉이 형들을 시험한 내용은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1-9절을 보면, 요셉이 형들이 선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되도록 중요한 시험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온 형제들을 위해서 총리관저에서 만찬을 베푼 후에, 형들을 시험하기 위해 자기 청지기에게 명령을 하여,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도록 하고,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 아귀에 넣고 양식 값 돈도 넣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밝을 때에 10명의 형들과 동생 베냐민이 떠나가도록 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애굽 총리 요셉은 자신이 요셉인 것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성읍에서 멀리 가기전에, 청지기에게 명령을 하여 그들을 뒤따라가서 그들에게 할 말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요셉이 청지기를 통해서 형들에게 전하는 말이 4절 하반절과 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요셉의 청지기가 요셉의 형들을 뒤따라가서 이 말을 전하니까 그들은 펄쩍 뛰면서 청지기에 말합니다.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은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은 왜 형들을 시험하였을까요? 요셉이 형들에게 전하는 말과 형들의 대답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어찌하여 너희가 선을 악으로 갚느냐?고 물었고, 형들은 요셉의 청지기에게 우리가 어찌하여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요셉이 형들을 시험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시험한 이유는 형들을 골탕먹이기 위해서나 괴롭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학생들의 시험이나 취업시험이나 승진시험의 목적이 실력향상과 합격을 위한 선한 의도와 목적이듯이, 요셉이 형들을 시험한 것은 선하고 진실한 사람들로 변화되길 바래서 한 것입니다.
사실, 형들은 아직도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진실함과 거짓됨을 구분하지 못하고 얼마든지 상황과 여건이 된다면, 악을 행할 수 있고, 거짓되고 도둑질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형들을 진실로 사랑하는 길은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험을 통과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험을 잘 보지 못하고, 악에 넘어가기 쉽고 거짓에 넘어가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형들처럼 누군가가 시험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시험을 치러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험 앞에, 저는 결단코 악을 행하지 않고 거짓을 행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과 진실함에 속하지 않고 악과 거짓에 속하면, 죄악에 끌려다니게 되고 부끄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죄를 철저히 회개하도록 돕기 위한 시험
두번째로 요셉은 형들이 그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도록 시험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청지기가 주인의 은잔을 훔쳐갔다고 하자,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자신들의 결백을 맹세합니다. 9절을 다시 읽어봅니다. <당신의 종들 중에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다>.
이때 요셉의 청지기는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할 것이다. 은잔이 누구에게서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을 것이다>. 이미 요셉과 짜고 한 말일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각각 급히 곡식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풀기 시작하였는데, 나이 많은 순서대로 시작하여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를 하니까, 요셉의 은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애굽의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자 요셉의 형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다시 애굽 총리 요셉에게로 돌아 간 것입니다. 당시 옷을 찢는다는 것은 자신의 극한 슬픔이나 결백을 나타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여 몹시 놀라며, 슬퍼하면서 자신들의 결백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들의 옷을 찢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옷을 찢는 경우가 있었는데, 분노나 극한 슬픔을 나타낼 때 가끔 볼 수 있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면서 왜 베냐민의 자루에다가 은잔을 넣었을까요? 요셉이 형들을 시험하면서, 동생 베냐민의 양식 자루에 은잔을 넣은 것은 형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여러 가지 죄악된 모습이 많았지만, 가장 분명하고 씻을 수 없는 죄악은 요셉을 은 20을 받고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같은 아버지에서 나온 동생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은 20에 팔아버렸던 죄를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서 은잔을 베냐민의 양식 자루에 넣은 것입니다. 아마 요셉의 형들은 은전을 보기만 해도, 자기 동생 요셉을 은20에 팔아버린 죄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을 은20에 팔았는데, 또 다시 동생 베냐민이 은잔에 의해서 팔리느냐 기로에 놓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베냐민을 버리고 자기 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애굽 총리 요셉에게로 돌아 간 것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을 포기하지 않고 전체가 다 애굽 총리 요셉에게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20여년 전에 지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형들의 못된 죄악을 철저하게 회개하도록 은잔 시험을 하였고, 그의 형들은 옷을 찢으며 회개하고, 베냐민을 포기하지 않고 베냐민을 지킨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인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올바른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끄럽고 추한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만큼 우리의 죄악이 심각하다는 것이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요, 십자가 없이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너무나 무감각합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자신은 양호하다고 변명합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뻔뻔스럽게 죄를 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우리들은 짓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잣대로, 양심의 잣대로 재보면, 죄 안 지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작은 죄라도 죄는 나쁜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해롭게 하는 병으로 여기고, 작은 죄라도 발견되면, 회개하고 옷을 찢을만큼 슬프게 여기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성도들이 죄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하는 말씀은 죄와 싸우되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죄와 싸울 때,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낮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죄는 우리를 죄짓게 하지만, 우리는 죄를 다스리고,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게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형들의 숨은 죄를 깨닫게 하려고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어서, 형들이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도록 시험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회개하고 새롭게 되는 길로 돌아간 것입니다.
회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와 기쁨과 평안을 되찾는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이웃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죄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3.베냐민에 대한 사랑과 형제애를 위한 시험
마지막으로 요셉이 베냐민에 대한 사랑과 형제애를 위해서 형들을 시험한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베냐민에게서 애굽총리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자, 옷을 찢고 요셉이 있는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서 기근으로 굶주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양식을 먹게 해주어야 하는데,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실 요셉의 청지기는 주인의 은잔이 발견된 사람만, 자신의 종이 될 것이고, 나머지는 죄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은잔이 발견된 베냐민을 놔두고 집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다같이 애굽 총리 요셉에게로 돌아간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도착하니까 요셉은 아직 그곳에 있었고, 그들은 요셉 앞에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14절에서 눈에 띄이는 것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요셉의 네째 유다가 형들의 대표으로 등장하여 형제들을 이끌고, 요셉의 집으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가 이렇게 앞장서서 책임감을 가지고 나선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전에 요셉을 은 20에 종으로 팔때 주동자 역할을 했던 죄책감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리고 가야 할 때, 아버지 야곱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책임지고 데리고 오겠다고 맹세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15절부터 17절은 요셉과 유다의 대화입니다.
먼저 요셉이 땅에 엎드린 형들을 꾸짖는 말을 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여기서 요셉 자신을 점을 잘 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세상의 미신을 의지해서 점을 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은잔 도난 사건을 점꽤에 의해 알게 된 것처럼 위장한 것입니다.
이때 유다가 대표로 말을 합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을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유다의 제안에 대하여 요셉은 은잔이 발견된 자만, 자신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가라고 함으로 마지막 시험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마지막 시험으로 막내 아우 베냐민을 종으로 삼는다고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형들이 정말 막내 베냐민을 사랑하는 가, 정말 형제애가 있는가를 시험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이 찾아내셨다고 하는그들의 죄악, 20여년 전에 요셉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은 20에 팔아버린 죄악에 대하여 정말 회개하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은잔 때문에 베냐민을 버리고 가는가? 은잔 때문에 베냐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지를 시험한 것입니다. 막내 베냐민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정말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였다는 증거가 되고, 정말 베냐민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그것을 더 넘어서 형제모두와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요셉은 베냐민을 제외하고 모두 풀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이러한 사랑의 시험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나에게는 어떤 사랑이 있고, 나의 가족들, 나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어떠한 수준이고 어떠한 상태라고 생각됩니까? 형제와 가족이기에 어느 정도로는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끈끈한 형제에 대한 사랑과 형제애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물보다 진한 형제우애, 형제의 정을 얼마나 나누고 있습니까 물어본다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늘가족들, 교회 식구들에 대한 형제 우애,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을 돌아보면, 심히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정말 위대하고 훌륭한 점은 무엇일까요? 그가 재능이 많고 성공을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고 왕처럼 된 것일까요? 저는 요셉이 정말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깨진 형제애, 잃어버린 형제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이토록 노력하고 힘썼다는데 있다고 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참으로 사랑으로 하나되기 어려운 가족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13명의 형제간은 어머니가 네 명이고, 두명은 여종출신이어서 서로 반목과 시기와 질투가 만연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헤를 입은 사람으로서 가족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데, 남다른 노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시험이 좋은 결과로 열매를 맺고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되게 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탄생시킨 인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형제들과 가족들은 어떤 사랑과 형제애, 가족애를 나누며 살고 있습니까? 또 하늘 가족들인 교회안에서는 어떤 사랑과 형제애, 가족애를 나누며 살고 있습니까?
부족한 점이 많이 있겠지만, 요셉을 통해서 배우는 바가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 사랑이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을 가지고 작은 것이라도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것이요, 하나됨을 위해서 내가 먼저 노력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전에 우리는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이란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험을 받을 때가 있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한 시험을 받을 때도 있고, 진정한 사랑과 형제애를 회복하기 위한 시험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시험을 받을 때 시험을 회피하거나 덮어버리면 안됩니다. 여러가지 시험 앞에서 정직히 하나님앞에서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시험이라면 선을 선택하고, 진실과 거짓에 대한 시험이라면 진실을 선택하고, 사랑과 사랑의 포기에 대한 시험이라면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평가 시험도 받을 수 있고, 미혹시험도 받을 수 있고, 시련 시험도 받을 수 있습니다. 평가 시험과 미혹 시험은 동그라미냐 가이표로 보는 시험이고, 시련 시험은 인내시험입니다. 평가시험은 우리에게 상을 주기 위한 시험이고, 미혹 시험은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이고, 시련 시험도 더 큰 상을 주기 위한 시험입니다.
우리는 어떤 시험이든지 이길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이든지 이기고 합격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잘 보고 이기고 합격하는 길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고, 둘째는 참 사랑이고, 둘째는 말씀과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은 시험을 잘 감당해서 형제와 가족을 구원하고, 하늘가족 공동체인 교회를 새롭게 하고, 이웃과 지역을 구원하는데 귀하게 쓰임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요셉처럼 가족과 이웃과 지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받도록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