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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이 꽃피던 시절 /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제공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공동으로 추진하다 중단한 제도 중 '일수벌금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일수벌금제도(日收罰金制度)'는 용어 의미 그대로, 교통 법규 위반자의 '1일 평균 순수입'인 '일수(日收)'에 따라 위반자들의 부과 벌금액에 차등을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운전 규정 속도를 똑같이 10km 초과한 경우라 할지라도 '1일 평균 순수입'이 1,000만원인 사람에게는 '1일 평균 순수입'이 10만원인 사람에 비해 100배의 벌금을 부과하는 식이다. 100억원을 가진 부자와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는 사람에게 동일한 금액의 교통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게 된 배경이었다.
'일수벌금제도' 검토 배경은
일수벌금제도는 자영업자들의 정확한 소득 자료 확보 한계로 제도 도입 시 유리 지갑인 급여 생활자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입장에 부딪쳐 결국 초기단계에서 입법 추진 자체가 중단되고 말았다.
불교 경전인 '현우경'의 빈녀난타품에 가난한 여인인 난타가 석가모니에게 등(燈)을 공양하는 내용이 나온다. 빈자일등 또는 빈녀일등이라는 교훈적 사례로 더 알려진 스토리이기도 하다.
석가모니가 사위국이라는 나라의 절에 머무르고 있을 때 사위국의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공양을 했는데, 난타라는 여인은 너무 가난해 공양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난타는 구걸을 해 마련한 돈으로 등(燈)을 사 불을 밝혀 석가모니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왕이 바친 호화로운 등을 비롯해 모든 등이 다 꺼졌는데 오직 하나, 가난한 여인인 난타가 바친 등만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물론 불교 바깥에서도 '물질'이 아닌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스토리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스토리가 있다. 바로 과부의 헌금 스토리다. 마르코 복음에 '그 때 부자들은 여럿이 와서 많은 돈을 넣었는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겨우 렙톤 두 개를 넣었다. 이것은 동전 한 닢 값어치의 돈이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 궤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마르코 12:41-44)라는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와 한나라당이 공동 입법 추진하다 중단한 일수벌금제도는 그 추진 근거를 현재 교통범칙금 제도의 불공정에서 찾았다. 교통법규 위반 시 지금처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동일한 벌금을 내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동일한 교통 법규 위반이라 할지라도 부자는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는 것이 공정하다는 논리이다.
공정사회라는 거창한 개념까지 가지 않더라도 개인 소득에 대한 누진세 제도와 같은 것을 생각해보면 일단 정부와 한나라당의 '공정' 논리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행의 '동일한 교통 법규 위반에 대한 동일한 벌금 부과'가 '불공정' 하다고는 볼 수 없다.
대립하는 관점의 '공정' 논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富)라는 것은 개인의 노력과 사회기여에 대한 반대급부의 축적으로, 국가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당연히 같은 사회구성원이 저지른 동일한 법규 위반에 대한 동일한 범칙금 부과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따라서 교통범칙금 제도 관련 논란에는 두 가지의 '공정'이 대립한다. 하나는 현행의 '현시적·객관적'인 '공정'이고, 다른 하나는 일수벌금제라는 새로 추진하다 중단된 '암묵적·주관적' '공정'이다. 이 두 가지 대립하는 관점의 '공정'을 하나의 일관된 개념 또는 논리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 - 기회비용에 대하여(1) 2018.02.22 |
http://jndn.com/article.php?aid=1519290451253366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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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녀일등 스토리는 논리 구조로 보면 앞의 교통 범칙금 관련 논란과 동일하다. 국왕을 비롯한 부자들은 기름을 듬뿍 넣은 비싸고 좋은 등을 바쳤고, 가난한 여인 난타는 싸고 보잘 것 없는 등을 바쳤다.
'물질' 적 차원에서 볼 때 난타의 등은 국왕이나 부자의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그러나 그 등을 준비하는 부담 측면인 '정성' 차원에서는 국왕과 부자들의 등이 난타의 등에 비교가 될 수 없다.
난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들여 등을 마련한 반면, 왕과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부의 극히 일부를 들여 별 부담 없이 편하게 마련한 등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시적·객관적'인 '물질' 차원에서는 당연히 왕과 부자들의 등의 가치가 크지만, '암묵적·주관적'인 '정성'(또는 부담) 차원에서는 난타가 바친 등의 가치가 더 크다.
'암묵적'·'주관적' 가치
성경의 과부 헌금 스토리에서는 과부가 헌금 궤에 넣은 돈이 분명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적은 돈'인데, 예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현시적·객관적'으로 분명 가장 적은 돈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역설적이게도 그 돈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의 의미는 다름 아니다. 예수의 말씀 그대로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치는 이의 부담'(또는 정성) 측면에서 '가장 큰 것'이라는 이야기다. 즉 '현시적·객관적' 측면에서는 가장 적지만, '암묵적·주관적' 측면에서는 가장 큰 가치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는 누구나 한계가 있다. 어떤 거액을 가지고 있든 모두 '일정한 금액'을 가지고 있다. 부자라고 해서 무한대 금액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을 지출할 곳이 많다. 교통 범칙금을 내야 되고, 부처님 오신 날 등을 사야 되고, 교회·성당에 헌금을 내야 한다. 제한된 돈에서 범칙금을 내거나, 절에 달 등을 사거나, 헌금을 낼 경우 사람들은 이 용도에 돈을 쓰기 위해 다른 곳에 지출해야 할 것을 포기할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그 포기의 정도는 당사자 본인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교통 범칙금 10만원을 내는 경우 재산이 천억인 사람은 현실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거의 없을 터이고, 한 달 수입이 100만원 밖에 안되는 사람은 이를테면 사흘 동안 끼니를 걸러야 할 것이다. 절에 달 등을 사거나 교회·성당에 헌금을 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등 값이 또는 헌금액이 10만원이라고 할 때 이 돈이 부자에게는 거의 아무런 부담도 되지 않는 금액이 되겠지만, 월 100만원을 버는 이에게는 사흘 동안 꼬박 일한 노동의 대가일 것이다.
따라서 10만원을 범칙금이나 등 값으로 또는 헌금으로 지출할 경우, '지출 이면'(암묵적)에서 그 '지출한 사람 입장'(주관적)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부자 입장에서는 그 포기할 것이 미미하지만 가난한 이 입장에서는 당장 끼니를 걸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즉 '현시적·객관적' 입장에서는 부자·가난한 이 모두 동일한 가치의 10만원이지만, 그 10만원을 지출함으로써 포기해야 할 '암묵적·주관적' 입장에서는 그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포기 이익, 부의 크기따라 달라
한마디로 범칙금이나 등 구매비용, 헌금 등을 지출할 경우 그 돈을 '다른 곳'(다른 '기회')에 사용하였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결과적으로는 포기되는 이익 즉 '-이익'=비용)이 있는데, 이 이익은 부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다. 부자는 포기해야 할 이익이 거의 없지만 가난한 사람은 사흘간의 끼니를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부자와 가난한 이 '각자 입장에서의 총 부담 비용'을 따지기 위해서는, '현시적·객관적' 지출 금액에, 이 지출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각자의 '암묵적·주관적' 이익을 더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큰 부자는 '10만원+0'에 가까운 금액일 것이고, 가난한 이는 이를테면 '10만원+사흘간 굶기'가 될 것이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신동기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 -기회비용에 대하여(2) 2018.03.01 |
http://jndn.com/article.php?aid=1519892996253765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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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경제학 용어로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회비용'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F. V. 비저(1851-1926)가 도입한 개념으로 앞 세 가지 각 사례에 있어서의 '현시적·객관적' 비용과 '암묵적·주관적' 비용의 합계액을 말한다.
단서는 수천년 전부터
교통 범칙금 등 구입비용 및 헌금액이 모두 각각 10만원이라 할 때 그 10만원은 '현시적·객관적' 비용, 즉 명시적 또는 회계적 비용으로, 부자나 가난한 이 모두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이 10만원 지출로 포기해야 하는 '암묵적·주관적' 비용, 즉 암묵적 비용은 부자에게는 미미한 수준으로 거의 고려할 가치가 없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한 달 중 사흘간 끼니를 걸러야 하는 고통이다. 따라서 부자와 가난한 이 각각의 기회비용은 명시적 비용과 암묵적 비용을 합한, '10만원+0', '10만원+사흘 동안 굶기'가 된다.
교통 법규 위반에 대한 범칙금 부과는 그 위반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다. 동일한 교통 위반에 동일한 '고통'을 주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자와 가난한 이에게 범칙금을 차등 부과해야 한다. 한 달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의 10만원 범칙금 납부에 대한 '고통'을, 한 달에 18억원 버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가하기 위해서는 18억원의 10분의 1인 1억 8천만원을 범칙금으로 부과해야 한다.
핀란드에서 글로벌 기업 부회장의 과속 운전에 대해 1억 8천만원 범칙금을 물린 것은 바로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결과이다. 이렇게 될 때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징벌로서의 '고통'도 공정해지고, 나아가 향후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자기 억제력도 부자, 가난한 이 모두에게 동일한 정도로 작용하게 된다.
등 구입비용이나 헌금액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등 구입비용으로 사람의 육도윤회(六道輪廻)가 결정되고, 헌금액으로 천당·지옥이 결정된다면, 그 비용은 당연히 명시적 비용만이 아닌 이 명시적 비용에 암묵적 비용이 더해진 '기회비용'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승도 이승과 별 차이 없이 부(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야말로 황금만능의 또 하나의 이승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이었던 만큼, 하느님의 독생자였던 만큼 부처와 예수는 '현시적·객관적' 비용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와 예수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명시적 비용에 암묵적 비용을 추가한 '기회비용' 개념으로 빈녀 난타의 등 비용, 과부의 헌금액을 인식하였다. 빈녀일등이 가장 큰 가치의 등이고, 과부의 동전 한 닢 헌금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이라고.
'기회비용'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을 뿐, '기회비용' 개념에 대한 단서는 이미 2,500년 전, 2000년 전부터 마련되어 있었다. 불경에서 그리고 성경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이론 중 상당수는 무(無)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소풍날 사람 눈에 띠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보물찾기에서의 보물처럼, 그 단서는 수천년 전부터 '오래된 책' 어느 한 구석에서 자기를 알아볼 주인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신경을 보내고 난 뒤 어느 때, 자신을 알아보는 이를 만나 하나의 정리된 개념과 이론으로 세상에 태어나 빛을 본다.
오래된 책은 새 이론의 수원지
새로운 개념·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 많은 사람들은 '아, 이런 개념, 이런 이론이 나왔구나. 이것들을 이용하면 우리 주변을 더 잘 이해하고 또 더 손쉽게 설명할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무신경하게 스쳐 지났을 뿐이지만 이전 한번이라도 그 단서를 '오래된 책'에서 접했던 이들은 땅을 친다. '왜 이 개념/이론을 내가 먼저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하고. 오래된 책은 새로운 개념, 새로운 이론의 수원지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신동기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 -기회비용에 대하여(3) 2018.03.08 |
http://jndn.com/article.php?aid=1520497736254177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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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학자들은 객관화 가능성 여부에 따라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바로 '명시지 또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 두 가지다.
명시지는 이름 그대로 '언어나 문자를 통해 겉으로 표현된 지식으로 문서화 또는 데이터화 된 지식'을 말한다. 이에 반해 암묵지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두산백과 참조).
지식의 두가지 구분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M. 폴러니(1891-1976)에 의해 시작된 지식의 명시지·암묵지 구분 개념은, 일본의 경영학자인 노나카 이쿠지로(1935-현재)에 의해 기업경영 현장에 적용되면서 오늘날 정보사회에 있어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사실 지식의 명시지·암묵지 구분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것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 배울 때,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 모두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 타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는 말로 설명할 수 있고 또 그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은 배우는 사람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자전거가 기우는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리고 몸도 함께 기울이라는 말을 수십 번 들어도 한쪽으로 자전거가 기울 때 그 반대 방향으로 핸들과 몸을 튼다.
여러 번 넘어지고 무릎에 생채기가 난 뒤에야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 타는 방법을 터득한다. 자전거 타기를 어느 정도까지는 '명시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스스로의 학습과 경험을 통해 '암묵지'로 배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수영이나 골프와 같은 운동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까지는 코치의 설명과 교본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명시지'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한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에게 '언어나 문자를 통해 겉으로 표현'하는 데 언제나 한계가 있다. '명시지'와 구분되는 '암묵지'의 영역이 별도로 있을 수밖에 없다.
서양사회를 기준으로 할 때, 근·현대 이성의 출발은 데카르트(1596-1650)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제1원리'로, 부정하려해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생각하는 주체인 나 자신의 명백한 현존' 이외 다른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객관적 지식을 추구한 '근대 철학의 아버지'가 바로 데카르트다. 그런 데카르트였던 만큼 합리주의 철학 전개에 있어 가장 기본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지식'에 대한 개념 설정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데카르트는 '지식이란 우리가 앞서 얻은 앎에 기초해 있는 확실한 판단과 다름 아니며, 그것 중에 어떤 지식은 공통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에서 도출되는 반면, 다른 지식은 희귀하고 숙련된 경험에서 도출된다'(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성찰, 2011, 문예출판사,132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지식의 두 구분과 그 각각인 '명시지'와 '암묵지'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단어'와 '문장'의 차이일 뿐, 지식의 구분 기준이나 두 가지 지식의 의미가 일치한다.
최초 제안자는 데카르트
용어가 아닌 개념 기준으로 본다면 명시지와 암묵지에 대한 최초 제안자 그리고 지적재산권자는 M. 폴러니가 아닌, 그보다 300년 앞서 살았던 데카르트인 셈이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20c를 살았던 철학자 M. 폴러니가 17c에 근대 철학의 출발을 알렸던 데카르트의 글을 읽고 그 내용 중 일부를 개념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명시지'와 '암묵지' 개념이 아닐까 하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 -형식지·암묵지에 대하여(1) 2018.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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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은 근대 이전까지 문화적으로 서양을 앞섰다. '지식'에 대한 객관적 인식 역시 서양보다 앞서 존재했다.
도가의 장자에서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책을 귀하게 여긴다. 책은 말을 글로 써놓은 것이고, 그 말에는 귀한 것이 있다. 말이 귀한 것은 바로 그 말에 뜻이 있기 때문이고 뜻에는 뒤따르는 바가 있다. 그런데 뜻에 뒤따르는 것은 말로 다 전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만을 귀중히 여겨 책을 전한다 -중략-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체와 색깔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이름과 소리뿐이다. 안타깝다. 세상 사람들이 형체와 색깔, 이름과 소리만으로 저 깨달음의 세계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형체와 색깔, 이름과 소리만으로는 저 깨달음의 세계를 충분히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는 자는 말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말로 설명을 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모르고 있을까?(장자외편, 2012, 홍신문화사, 188면)라고 말하고 있다.
말과 글에는 한계가 있어
바로 착륜지의(수레바퀴를 깎는 느낌)라는 고사성어의 연원이 되는 사례에서 나온 내용이다. 제나라 환공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옆에서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던 목수가 환공에게 그 책의 내용은 결국 '옛 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한 것'(앞책 188면)이라 하면서, 자신이 수레바퀴의 바퀴통을 깎을 때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적절한 크기로 깎아야 하는데 그것은 '손으로 터득하고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뿐 말로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내용의 사례다.
'명시지', 즉 '말'이나 '글'로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과 함께, 그 한계 너머는 '암묵지'가 채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장자와 비슷한 시기를 산 유가의 맹자 역시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재장과 윤여가 다른 사람에게 나무를 깎고 바퀴를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로 하여금 공교하게 할 수는 없다'(맹자2권, 2009, 학민문화사, 527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윤순이란 사람은 '규구는 방법이니 남에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익히는 것은 배우는 상대방 본인에게 달려 있으니 가르치는 이가 아무리 대단한 장인이라 할지라도 이는 어찌할 수 없다. 기본적인 배움은 말로 전할 수 있으나, 통달하는 것은 반드시 본인 스스로의 느낌으로 깨달아야 한다'(맹자2권, 2009, 학민문화사, 527면)라고 해설하고 있다.
M. 폴러니 보다는 2,300년, 데카르트보다는 2,000년 앞서 '명시지'와 '암묵지'의 구분 그리고 그 각각에 대한 명백한 의미 정의가 동양에서는 이미 존재했었다.
높은 수준의 지식은 '암묵지'
한고조 유방의 손자 유안이 정리한 '회남자'에서는 '선왕이 쓴 책을 읽는 것은 그 말을 직접 듣는 것만 못하고, 그 말을 직접 듣는 것은 그 말의 원인을 깨닫는 것만 못하다. 또한 그 말의 원인을 깨달은 자가 그것을 말로 옮기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입으로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유안 편자, 회남자中, 2013, 명문당, 237면)라고 말했다. 명시지의 한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면서, 동시에 도는 말로 전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진정한 깨달음, 높은 수준의 지식은 명시지가 아닌 암묵지라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장자, 맹자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때 장자와 맹자 이상으로 암묵지의 절대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긴 명시지와 암묵지의 공식 창안자인 M. 폴러니도 지식을 둘로 구분하면서 암묵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암묵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간 행동의 기초가 되는 지식은 바로 암묵지이기 때문에 암묵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논리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신동기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 -형식지·암묵지에 대하여(2) 2018.0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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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지와 암묵지가 단순한 지식의 구분 및 정의 차원을 넘어, 현실에서 첨예한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다름 아닌 불교의 역사에서다. 그것도 자그마치 1,500년 동안이나.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교종이고 다른 하나는 선종이다. 교종은 '교리, 경전 등을 배우고 학습'함으로서 '단계적으로 깨달아'(漸悟)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선종은 '참선이나 공안(화두) 참구(집중 몰입)' 등을 통해 스스로 어느 때 '순간적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보편화 된 선종은 달마대사를 종조로 하는데, 그 선 수행법의 근거는 다름 아닌 부처의 영산 설법에서 찾고 있다.
바로 부처가 영산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아무 말 없이 '연꽃을 손에 들고 제자들에게 보여주자', 제자 중 가섭이 '손에 든 꽃을 보고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 때 '문자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말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이 전달되었으며',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가르침이 전달되었으며', 귀나 눈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켰으며', 부처의 말없는 가르침으로 가섭이 '자신의 내부의 불성을 본 순간 바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설법이다. 정확히 '암묵지'를 나타내고 있다.
불교에선 1,500년간 대결 구조
선종에 있어 '깨달음'이라는 것은 '말'로 전할 수 없고, '문자'로 전할 수 없고, 직접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달마대사가 6세기에 선 수행법을 시작하기 전 '깨달음', 즉 지식 중의 최고의 지식에 대한 앞선 고민이 있었다. 도생이라는 인물이 '깨달음'이라는 것이 과연 '논리적·언어적·단계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한 것이다. 명시지·암묵지 형식으로 말한다면, '깨달음'까지도 '명시화·형식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이다.
결과는 '아니다'였다. '깨달음'이란 '직관적·비언어적·즉각적'인 것으로, 진리를 조금씩 나누어 깨닫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결론이었다. 깨달음이란 '명시지'가 아닌 바로 '암묵지'라는 결론이었다. 도생 정도 깊은 회의까지 하지 않더라도 사실 일상에서의 경험을 통해 보통 사람들도 갖을 수 있는 통찰이다.
자전거가 한 쪽으로 기울 때 넘어지지 않고 금방 똑바로 달릴 수 있게 하는 그 몸짓 느낌, 수영할 때 물을 먹지 않고 부드럽게 호흡이 되는 그 편안한 느낌, 골프 칠 때 공이 정확한 방향으로 빨랫줄처럼 뻗어나갈 때의 그 간결한 타격 느낌. '작은 깨달음'이지만 그 느낌을 사람들이 스스로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당연히 누구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또 설명을 듣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종에 비해 교종은 당연히 '명시지'적 입장이다. '경전'을 학습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입장에서, 그 깨달음의 주요방법으로 삼는 학습의 대상이자 수단인 '경전' 자체가 바로 '명시지'이기 때문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시인 오위업(1609-1671)은 '황제가 글자를 만들어 놓고 근심을 한 나머지 밤새 울었다'고 읊고 있다(전창선·어윤형,음양오행으로 가는 길,2005,세기,280면 참조). 문자가 결국은 사람을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시인 자신의 통찰을 황제의 눈물을 빌려 드러내고 있다.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동양 지혜
성인 공자(BC551-BC479)는 일찍이 '문자는 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고, 말은 생각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주역,2012,명문당,518면)고 말했다. 오늘날 지식경영에 있어 핵심인 명시지·암묵지 개념은 동양에서는 지식 아닌 지혜로 이미 기원전부터 존재했었다. 다만 근대 이후 물질문명에 취해 정신문명에 있어서까지 서양 것만 좇다 보니 동양의 '오래된 책'들이 우리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을 뿐이다. '옛 것을 따져 봄으로써 새 것을 안다'의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의 '옛 것', 즉 '고(故)'는 '서양의 옛 것' 이전에 먼저 '동양의 옛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것이기에 그렇기도 하고 정신문명에 있어서는 분명 더 동양이 풍요롭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고전은 아이디어의 수원지다 -형식지·암묵지에 대하여(3) 2018.03.29 |
http://jndn.com/article.php?aid=1522312454255584083 |
*****(20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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