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톨릭(사할린)
동토에 뿌려진 믿음의 겨자씨, 나무로 자라나길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성야고보성당 공동체
- 사할린섬의 수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있는 성야고보성당. 새빨간 랴비나 나무 열매처럼 붉은 성당이 아름답다.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는 다소 무겁고 가슴 아프다. 살아 있는 역사와 대면하는 일이기에 조금은 경건한 마음을 갖게도 한다. 이곳 한인들이라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면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현실은 동토(凍土)의 땅 사할린에 발이 묶여버렸다.
그러나 지금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무겁지만은 않다. '식민지 민족'이라는 차별과 무시의 주홍글씨를 떼어내고, 러시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동토의 땅 사할린을 지금의 발전된 사할린으로 이끈 주인공으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이후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를 맺게 된다. 한국교회도 1990년대 들어 북방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러시아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 결과 1992년 대구대교구 신부님 다섯 분이 사할린섬의 수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로 오시게 된다. 지금은 수리 중에 있는 수녀님들 숙소가 그 당시에는 성당이었다. 이후 인천교구에서 사목하셨던 메리놀회 베네딕도 즈베버(한국명 최분도) 신부님이 부임해오셨고, 지금의 성야고보성당이 탄생했다.
현재 사할린 천주교회에는 폴란드 신부님 한 분과 수녀님 네 분이 계신다. 네 분 수녀님은 마더 데레사 수녀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 소속인데, 두 분은 한국분이다. 한국 국적을 가진 수녀님들에게는 이곳 선교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90일 비자밖에 없기 때문에 90일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다시 비자를 받은 후 이곳 사할린으로 와야 한다. 비자비와 항공료가 만만찮다.
평일에도 미사가 있으며, 주일에는 두 대의 미사가 있다. 주일 오전 10시 미사에는 러시아인들과 한인들이 대부분이라 러시아어로 미사를 드린다. 신자 수가 20~30명 정도 된다. 한인 회장이라는 자매님을 만났지만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우리 둘은 서로 인사만 나눌 수밖에 없었다.
- 화려하지 않지만 하느님 품에 폭 안긴 듯 포근한 성전. 러시아 신자들과 한인 신자들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한인들은 어떻게 가톨릭의 끈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사실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는 1세대 중에서도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는 사람은 없었다. 한인 가톨릭 신자 대부분은 선교를 통해서라기보다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을 물려받았다.
이곳 한인들은 1, 2세대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2세대 중에도 한국어를 못하는 한인들이 많다. 그러니 3, 4세대들은 특별히 배우지 않는 이상 한국말을 아예 할 줄 모른다. 러시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우선으로 배워야 하는 건 러시아어다. 이곳에 온 지 1개월과 4개월째인 수녀님도 러시아어를 배워야 한다며 웃는다. 능숙한 영어는 이곳 사할린 사람들에게는 그저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니까.
오전 10시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공소로 미사를 가신다. 그리고 오후 5시 30분에 다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이때는 파견 나온 외국 주재원 가족들이 참여하기에 영어로 미사가 진행된다. 주임신부님은 러시아어도 영어도 아주 유창하시다. 성가며, 복사며, 신자들의 기도며 미사 전례는 말레이시아 신자들이 주도적으로 맡고 있다. 한국 교민들은 아예 없다. 극소수의 한국 교민들은 대부분 개신교회에 다니고 있다. 사할린의 개신교회는 10여 개가 있는데, 거의 20년째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인들이 더 많은 교회도 있다고 한다. 개신교의 성장은 우리 가톨릭에서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할린에는 가을에 단풍이 든 듯 온통 붉은 나무가 있다. 랴비나 나무다. 랴비나 열매처럼 붉은 성당은 참 아름답다. 성당은 우리나라처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 정해진 시간 외에는 문이 닫혀 있다. 이곳 상황이 충분히 반영된 결정이었으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한 켠에 성화가 그려진 상본들이 마련돼 있다. 그 옆에 성물들이 놓여 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가지고 있던 성물을 내놓으셨다. 성물에는 가격이 붙어 있지 않아, 스스로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고 필요한 성물을 가져갈 수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성전은 우리네 성전과 별 다를 바 없다. 감실이 있고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라면 성화가 많다. 그런데 성전 입구에 우리와 전혀 다른 것이 하나 놓여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커다란 정사각형. 과연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바로 성수가 담겨 있다. 윗부분에 둥그렇게 홈이 파여 있는데, 여기에 성수가 그득 담겨 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성수를 찍을 수 있게 해놓았다.
사회주의 국가는 종교를 마뜩찮아 한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도 종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기호식품을 선택하는 것쯤으로 종교를 바라본다. 그동안 이들은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틀 속에 갇혀 하느님을 알 수 없었다. 가슴에 하느님 사랑을 품고 있던 한인들조차 그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여기에도 하느님 사랑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사할린에서의 선교는 분명 쉽지 않다. 사회주의라는 체제와 언어의 장벽, 혹독한 추위도 한몫을 하고 있다.
분명한 건 겨자씨는 이미 뿌려졌다는 것이다. 강제징용을 당한 조상들에게서 이어져온 믿음의 씨앗은 대구대교구 신부님들과 최분도 신부님이 물을 주었고, 사랑의 선교 수녀회 수녀님들이 거름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울창한 겨자나무로 성장할 것이다.
※ 장경선 명예기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3년 해외창작거점 예술가파견사업에 뽑혀 3개월간 러시아 사할린에서 지내다가 최근 귀국했다.
[평화신문, 2013년 10월 27일, 장경선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