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오문집 (藥塢文集)
| 도영하(都永夏) | 1655 | 1734 | 성주(星州) | 자화(子華) | 약오(藥塢) | 도처원(都處元) | |
| 任華世 (1675~1731) | 挽[判校都永夏] | 挽詞* | 都永夏 | | 是庵集 | |
조선 후기의 학자, 도영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8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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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도영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58년 도영하의 후손 도재규(都在騤)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용찬(金容璨)의 서문과 권말에 도재규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2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만사 127수, 부(賦) 2편, 소(疏) 4편, 주(奏) 3편, 서(書) 1편, 잡저 3편, 권3에 설(說) 4편, 서(序) 7편, 기(記) 10편, 상량문 1편, 축문 11편, 제문 10편, 권4에 부록으로 서(書) 49편, 만사 29수, 뇌문(誄文) 2편, 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사계선생종사소(沙溪先生從祀疏)」에서는 김장생이 국가와 학계에 남긴 공적을 조목별로 열거해 선현들의 업적에 비길 만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학통의 정당성이나 후학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문묘에 종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정유과사자명소(丁酉科事自明疏)」에서는 풍기군수로 있을 때 치른 향시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설에 대해, 부정이 없으며 지방의 유생들이 당파가 다른 것을 기화로 자기들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해 무함한 것이라고 무고함을 주장하였다.
「무벌대목설(毋伐大木說)」은 자기에게 필요 없거나 사소한 피해가 있더라도 베기 힘든 큰 나무는 베지 말라는 비유로, 비록 자기와 정책을 달리하는 반대당이라도 거목으로 자란 인재는 베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붕당설(朋黨說)」은 붕당은 편파적인 사리에 흐르기 쉽고 국익을 소홀히 할 소지가 있으므로, 국정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붕당을 없애고 그 폐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글이다. 유사 이래로 파당이 있는 나라가 잘 다스려진 일이 없음은 역사가 증명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밖에도 명산대찰을 유람한 뒤에 쓴 것으로
「유쌍계사기(遊雙溪寺記)」와 「유통도사기(遊通度寺記)」가 있다.
집필자
이원구(도산서원, 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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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헌집 제7권 / 서(序) / 《공암서당중수계첩》서〔孔巖書堂重修契帖序〕
공암(孔巖)에 서당이 있었던 것은 옛날의 일이다. 이 서당이 누구에 의해 지어졌으며 어느 때에 무너졌던가. 건물이 지어짐과 허물어짐은 진실로 상고할 길이 없다. 그러나 당시에 이 서당에 출입한 현자들로는 이학가(李學稼), 이귀암(李歸巖), 도죽헌(都竹軒), 도약오(都藥塢) 같은 여러 공들과 나의 6대조 소매당(訴梅堂)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서로 함께 도를 강론하여 빛난 문장을 이루어 명성과 지위가 모두 드러났다. 규성(奎星)이 모이는 것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며, 건물이 영구히 보존되리라는 것도 믿기 어렵다. 어느덧 백 년의 사이에 막연하게 한갓 높은 산과 흐르는 물만 보이고 빼어난 소나무와 늙은 은행나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채를 더하고 있다. 약오공의 주손 석귀(錫龜)가 장차 중수하는데 부지런히 애를 써서 네 성씨의 집안에게 수계(修契)를 도모하고 나에게 그 일에 대하여 서술해주기를 부탁하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기를 “모든 일에 흥하고 폐함이 있는 것은 운수이며, 폐하게 하고 흥하게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폐하였음에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어찌 유독 이 서당의 걱정에만 그치겠습니까. 지금 선비의 풍속이 날로 비루하여 세상의 후생(後生)들이 영화를 좇고 이익을 탐해 선조의 덕을 무너뜨리고 황폐하게 하지 않은 자가 거의 없습니다. 제군들은 이 서당을 일으키려는 성심을 미루어 스스로 세속에 물들지 않아, 선조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고 선조의 행실을 실행하여, 인효(仁孝)와 성경(誠敬)으로 입신의 근본으로 삼고 충신(忠信)과 염의(廉義)로 몸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워 당시 등용에 필요하고 후학을 인도하는 자질을 갖춘다면 그 선조의 뜻을 잇고 선조가 하던 일을 계속하여 가정을 잘 다스리는 아름다움이 비단 허물어진 이 서당의 중수뿐만 아닐 따름입니다. 이 점을 나는 제군들과 함께 면려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이 내용을 써서 공암서당중복계첩의 서문으로 삼는다.
[주-D001] 이학가(李學稼) : 이주(李𦁖, 1599~1669)를 말한다. 본관은 경산(京山), 자는 신언(愼彦), 호는 학가 또는 학가재(學稼齋)이다.[주-D002] 이귀암(李歸巖) : 이원정(李元禎, 1622~1680)을 말한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징(士徵), 호는 귀암이다. 1680년(숙종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유배되어 장살되었다. 나중에 신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익(文翼)이다.[주-D003] 도죽헌(都竹軒) : 도신징(都慎徵, 1611~1678)을 말한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휴숙(休叔), 호는 죽헌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주-D004]
도약오(都藥塢) : 도영하(都永夏, 1655~1734)를 말한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화(子華), 호는 약오로 1687년(숙종13) 문과에 급제하였다.
[주-D005] 소매당(訴梅堂) : 장영(張𨥭, 1622~1705)을 말한다. 그의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이다.[주-D006] 규성(奎星) : 문운(文運)을 맡은 별자리이다. 하늘의 별자리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서방의 백호 칠수(白虎七宿)의 첫째 별자리인 규수(奎宿)가 문운을 맡고 있다.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다섯 별이 문운(文運)을 관장하는 별인 규성에 모인 것으로 문운이 크게 번창할 것임을 예시한다. 송태조(宋太祖) 건덕(乾德) 5년(965) 3월에 오성이 규성에 모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다. 《宋史 卷56 天文志》 그러므로 규성이 모임은 선비들이 모이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주희(朱熹)의 〈聚星亭畫屏賛并序〉참조.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송희준 (역)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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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하(都永夏)
[문과] 숙종(肅宗) 13년(1687) 정묘(丁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8위(28/39)
자(字) 자화(子華)
호(號) 약오(藥塢)【補】(주1)
생년 을미(乙未) 1655년 (효종 6)
졸년 갑인(甲寅)(주2)【補】 1734년 (영조 10)
향년 80세
합격연령 33세
본인본관 성주(星州)
거주지 성주(星州)【補】(주3)
선발인원 39명 [甲3・乙7・丙29]
전력 유학(幼學)
관직 판교(判校)
관직 첨지사(僉知事)
문과시제 책문(策問):시(時)
부모구존 엄시하(嚴侍下)(주4)【補】
[부(父)]
성명 : 도처원(都處元)[生]
과거 : 생원(生員)(주5)【補】
[조부(祖父)]
성명 : 도대수(都大遂)【補】(주6)
[증조부(曾祖父)]
성명 : 도성우(都聖遇)【補】(주7)
[외조부(外祖父)]
성명 : 박진창(朴震昌)【補】(주8)
본관 : 밀양(密陽)【補】
[처부(妻父)]
성명 : 이세미(李世美)
본관 : 연안(延安)【補】
[처부(妻父)2]
성명 : 김무(金{務/土})(주9)
본관 : 의성(義城)【補】
[안항(鴈行)]
제(弟) : 도영화(都永華)【補】
제(弟) : 도영한(都永漢)【補】(주10)
[가족과거]
6대조(六代祖) : 도형(都衡)[文]
숙부(叔父) : 도처형(都處亨)[文]
[주 1] 호 : 『약오문집(藥塢文集)』(국립중앙도서관[古3648-17-16-1]) 권4, 附錄, [묘비명(墓碑銘)](金容瓚)을 참고하여 호를 추가.
[주 2] 졸년 : 『약오문집(藥塢文集)』(국립중앙도서관[古3648-17-16-1]) 권4, 附錄, [묘비명(墓碑銘)](金容瓚)을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
[주 3] 거주지 : 『정묘식년용호방목(丁卯式年龍虎榜目)』(청주대학교 중앙도서관[350.48 정378])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거주지를 추가.
[주 4] 구존 : 『정묘식년용호방목(丁卯式年龍虎榜目)』(청주대학교 중앙도서관[350.48 정378])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부모 구존을 추가.
[주 5] 부관직 : 『정묘식년용호방목(丁卯式年龍虎榜目)』(청주대학교 중앙도서관[350.48 정378])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부 관직을 추가.
[주 6] 조부 : 『약오문집(藥塢文集)』(국립중앙도서관[古3648-17-16-1]) 권4, 附錄, [묘비명(墓碑銘)](金容瓚)을 참고하여 조부를 추가.
[주 7] 증조부 : 『약오문집(藥塢文集)』(국립중앙도서관[古3648-17-16-1]) 권4, 附錄, [묘비명(墓碑銘)](金容瓚)을 참고하여 증조부를 추가.
[주 8] 외조부 : 『약오문집(藥塢文集)』(국립중앙도서관[古3648-17-16-1]) 권4, 附錄, [묘비명(墓碑銘)](金容瓚)을 참고하여 외조부를 추가.
[주 9] 처부 : 『약오문집(藥塢文集)』(국립중앙도서관[古3648-17-16-1]) 권4, 附錄, [묘비명(墓碑銘)](金容瓚)을 참고하여 처부1・2를 추가.
[주 10] 안항 : 『정묘식년용호방목(丁卯式年龍虎榜目)』(청주대학교 중앙도서관[350.48 정378])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안항을 추가.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