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자: 2024.05. 26주일 낮 예배 - 말씀: 이사야 7:14-17 마 1:22~23 < 주님의 이름> - 제목: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라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말씀봉독; 이사야 7:14-17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 절: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2-23)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자 -
- 들어가는 말씀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부터 짓습니다. 그 이름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기를 원하는 징표를 달아 주는 영원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주님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https://cafe.daum.net/mannapray/t30L/42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맨 위 왼쪽부터 차례로 아람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로 적은 예수의 이름.헬라어 이름인 예수스는 히브리어 여호수아(히브리어: יהושוע, Jehoshua)의 축약형인 예슈아(히브리어: י cafe.daum.net
맨 위 왼쪽부터 차례로 아람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로 적은 예수의 이름. 헬라어 이름인 예수스는 히브리어 여호수아(히브리어: יהושוע, Jehoshua)의 축약형인 예슈아(히브리어: יושוע, Jes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말이다.[34] 여호수아(Jehoshua)의 어원은 접두어 여(Je-)(히브리어: יהוה, JHVH/YHWH:Jahveh 야훼)와 구원이라는 말의 호수아의 호세아의 이름이 합쳐진 의미를 놓쳐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 한 분은 예수님과 동격이시라는 것 그리고 성령님이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자신을 대리하여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을 간괴해서는 안된다.
(히브리어: הושע, hoshea, 구원, 구세를 의미)를 덧붙여 이루어진 이름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자렛(Nazareth) 예수"로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부모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요셉의 아들 예수"(루가 복음 2:21), 나사렛의 예수(요한 복음서 1:45) 또는 성모 마리아의 아들 예수(마가 복음 6:3, 마태복음 13:55) 성서에서 주님의 이름을 예표하는 글들은 신약이 나오기 전에 구약 성서 여기저기에 많이 나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 이사야 7:14-17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 22~23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현몽하여 네 아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서 천사를 통해 전달한 것입니다.
예수란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똑같이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광야에서 방황하는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인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모든 인류를 죄악의 광야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주님의 탄생 신화가 신약성서에 기록된 바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1장에 보시면 천사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꿈에 나타나 놀라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아내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라는 말과 함께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고 전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함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2~23).”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의 제자로서 주와 함께 거하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권능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요한 사도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우리에게 예수님은 사랑이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리라고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를 밝힌 이름입니다. 임마누엘이란 이름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독생자에게 붙여 준 이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예수로만 불리운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로도 불리어야 합니다. . 임마누엘의 예수가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나미스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한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은 끝이 없고 한량이 없습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이 풍성한 임마누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만나 가정과 자녀 그리고 오늘 말씀에 임하는 이 땅위의 모든 주님의 자녀에게 임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참모습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사람으로 오셔서 사랑을 실천하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한일서 4장 7∼12절 예배 시작하면서 우리 만나교회에서 매주 은혜찬양곡으로 봉헌드리는 곡이 방금 읽어드린 요한사도의 첫번째 서신 제 4장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의 죄와 더러움, 병, 저주, 죽음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앞사진에서는 아기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태어나셨는데 지금 이 사진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신이 죄지었습니까? 거짓 선동가였습니까 그래서 유대인에게 배척당하시고 로마군인들에게 이렇게 못을 박히셨습니까? 누구 떄문에 이렇게 되셨습니까? 누구 누구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들 죄인들이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지도 못하고 죄 가운데에서 발이 미끄러져 지옥에 빠져드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신32:35
신명기 32:35 KRV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신명기 기자는 32장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의 말씀입니다. 1 “하늘이여, 땅이여, 내 말을 들어라! 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이슬처럼 맺히며 연한 풀밭 위에 내리는 보슬비요 채소에 내리는 단비라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라! 4 그는 반석이시요 그의 일은 완전하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공정하니그는 진실하고 정직한 분이시다. 5 “이스라엘이 부패하여 악을 행하니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고집스럽고 비뚤어진 민족이구나. 6 어리석고 미련한 백성들아, 이것이 여호와께 보답하는 길이냐? 그는 너희 아버지요 창조주가 아니시냐? 그가 너희를 강한 민족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통해 나타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한없는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매달린 형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서 강물처럼 넘침을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탕감하시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보아야 합니다.
3. 주님의 이름은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의 참소망입니다. 찬양: 예수의 이름은 - 소중한 이름 Precious Name |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 끝까지 매달리게 한 사실이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함을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3장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고 말씁합니다.
톨스토이는 1885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관한 답은 바로 “사랑”이라고 대답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지식, 모든 믿음, 모든 구제와 헌신적인 삶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고전 13:1-3). 믿음, 소망, 사랑 중의 제일은 “사랑”이다(고전 13:13)라고 말씀하였습니다.
- 고린도전서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사도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요일 4:7).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요일 4:19).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인 삶의 원동력이다.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이를 분명하게 밝힌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 자녀로 사는 우리 만나인은 주안에서 우리의 삶과 신앙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원힙니다. 영생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고 그리스도인으로 힘 있게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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