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3월 22일(금) 잠언 10:1-12 찬송 259장
1.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6.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10.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
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개역 개정)
- 지혜로운 의인과 어리석은 악인의 삶을 대조하는 총 357개의 금언들의 개시(10:1-32) -
솔로몬의 잠언집 1:1-22:16의 후반부인 10:1-22:16 부분은
그 전반부인 제 1-9장이 신본주의적 지혜의 본질과 이의 필연성 및
이를 추구해야만 하는 당위성들을 일관되게 기술한 것과 달리
이러한 신본주의적 지혜 자체가 삶의 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었을 때의
다양한 양상을 상호 독립된 경구(警句)들로써 제시하고 있다.
즉 이 부분에는 각각의 다양한 측면에서
신본주의적 지혜를 가진 자의 지혜롭고도 의로운 삶의 모습과
그 반대되는 어리석고도 악한 삶의 모습을 대조하는
1쌍을 1단위로 하는 총 375개의 경구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각각 중요한 인생의 각 측면에서의 지혜의 적용을 다루는
이러한 경구들은 세부적으로는 별다른 통일성이나 연속성 없이
10:1-22:16까지의 전체에 걸쳐서 혼합, 산재,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이 부분은 그 전체가 신본주의적 지혜의 적용 사례를
지혜로운 의인의 삶의 모습과 어리석은 악인의 삶의 모습을 대조시켜
제시한다는 대전제 외에는 그 저자, 주제, 형식 등
어떤 측면에서도 특별한 구분이 없으므로 세부 단락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솔로몬 잠언집 후반부 기사인 10:1-22:16 기사는
일관된 주제를 논하는 것이 불가피하기에
이 부분의 영적 교훈만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행동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는 그 사람의 통합적(統合的) 가치관이 존재한다.
즉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사람들은 행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행위보다는
그 배후에 있는 가치관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모든 사고와 행동의 중심에 두는 신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신본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자는
자연스럽게 일상 행동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의 삶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난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된 것이다.(약2:20)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며
그러한 마음의 자세가 실제 행동 가운데 나타남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빛과 소금의 삶을 구현해야 한다.(마5:13-16)
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이 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말로 일반 사람들의 입에서도 흔히 회자된다.
솔로몬은 미움과 사랑을 서로 대조시키면서
그것이 각각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분명히 밝힌다.
즉 미움은 다툼을 가져오지만 사랑은 모든 허물조차 가려준다.
여기서 ‘허물’이라는 말은 ‘이탈하여 반발하다’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로
특별히 개인적·직접적 피해를 유발시키는 범죄를 가리킨다.
즉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
큰 곤란에 빠뜨린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고,
그들의 죄까지도 가려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어떤 싸움과 증오와 미움 속에서도 화합과 화평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미움은 어떤 평안과 화평 속에서도
싸움과 갈등을 초래하며 끊임없는 보복과 살륙(殺戮)을 일으킨다.
역사 속에서 모든 전쟁과 싸움은 바로 이 미움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양산해 내었다.
그렇다면 나(우리)는 어떠한가?
사랑과 용서의 정신으로 이웃의 허물을 가리우고 덮어서
화합과 하나됨의 기틀을 마련하였는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졌을 뿐 오히려 증오와 미움을 쏟아내는 자들의
대열 맨 앞에 서서 이웃을 향해 증오의 말, 악하고 저주스런 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는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끼친 잘못, 그들이 범한 실수와 허물을 들먹이며
그들이 마땅히 해를 당해야 하고 버림을 당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자세로는 결코 화합과 평화를 이룰 수 없고
이처럼 불협화음, 불화, 분쟁만을 조장해서는
우리의 그리스도인됨조차도 포기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만다.
모든 화합과 평화는 사랑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먼저 우리에게 입힌 아픔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참된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
미움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큰 해악이다.
그런즉 미움과 원망, 불평을 버려야 한다.
상대의 허물까지도 덮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 위에 당신을 못박고 조롱하고 침뱉는
이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올리신 그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 세상이 끝날 때 모든 것은 소멸되지만
사랑은 영원하다고 고백하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영원하다고 믿고 노래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아름답게 드러나야 한다.
그것으로 분쟁과 다툼, 분열과 갈등을 종식시키는 능력의 역사를 이루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