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엄마가 내 사는 집에 오면서 무겁게 여러 개 화분을 가져왔다.
나는 관심이 안 갔다.
나는 벼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본 것도 학교 소풍 가서 지나가면서 처음 알았다.
그런 내가 꽃과는 상관도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몇 달이 지나서 엄마가 왔다가 빈 화분들을 보고 하는 말이
"지나가다 오다가 침을 뱉었어도 안 죽었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속상해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엄마는 시내 한복판 150평 되는 넓은 땅에 큰 이층 집에서 살며, 자식들이 다 자라서 독립하자, 빈 둥지 같은 집에 두 분만 계셨다.
그러자 그 빈자리에 이층까지 화단에 화분에 꽃을 가꿔 온 집안에 꽃으로 뒤덮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살림살이가 서툴러서, 또 아이들 돌보랴 내 대로는 바빠서 꽃에 전혀 신경을 안 갔다.
세월이 지나 내가 엄마의 상황이 되자, 나는 텃밥이 있는 1층 아파트에 앉아있었다.
그 속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다.
부추, 상추,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키운다.
해마다 모종을 사거나 자체 씨가 떨어져 조달한다.
남편은 촌놈 출신이라 좀 나을까 했는데 못한다.
지난해에 나무전지 한다고 하다가 다 죽일 뻔했다. ㆍ 이 집에 예전에 살던 사람이 꽃집을 하던 사람이라 좋은
후무사자두나무 대봉감나무 대추나무 등이 있다.
내가 꽃박람회에 갔다가 좋은 전지가위를 하나 사다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늦가을이 되자 그 전지가위로 전지를 했다.
아니 작은 줄기나 입이 하나도 아 남도록 다 잘랐다.
진짜로 맹세코 무슨 나무인지 모르게 나무둥치만 남아있다.
나는 이상했고 너무한 것 같았다.
하루는 가로수 전지하는 사람들을 한 시간 지켜봤다.
맡겼으니 어쩔 수 없지.
이미 잘려나간 가지를 다시 붙일 수도 없고, 말하면 기분 나쁠 거고...
찜 찜한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봄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역시나 했는데 뒤늦게 나뭇가지가 하나도 없는 나무덩어리에서 줄기가 하나 나왔다.
추이자두나무줄기가 6갈래 나오자 "휴! 살았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남편이 기다렸다는 전지가위를 휘둘러 이 까은 세 줄기를 잘라버렸다.
말릴 새도 없었다.
다시 붙이고 싶었다.
세 줄기만 둬야 된다는 논리다.
이러니 촌놈이 촌 놈이 아니다.
주변 알 만한 사람들에게 말해도 웃으면서 "촌에 살아서도 안 해보면 모르지!"
한다.
나도 부추하고 풀하고 구분해서 가꾸는데 3여 년이 걸렸다.
부추를 사서 전 부치고, 조개탕에 넣고, 부추김치 담으면서도
땅에 있는 부추로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주변에 다른 채소도 말해 무엇하랴!
꽃도 어렵기는 마차가지다.
때때로 '꽃 박람회'에 가보고 꽃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만 꽃은 만만치 않다.
이름조차 외워지지 않고 꽃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