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지 석탑
누가 있어
무너지지 말아라
일러 주었을까
그 목소리에 힘 얻어
천년을 버티고 서 있다 해도 될까
아무도 말 걸지 않은 까닭에
무너지지 않을 저 든든한 몸집
오래전을 넘어 그 이전부터
단단한 침묵처럼 서 있다 해도 될까
돌탑의 귀를 나는 오늘 볼 수 없었다
돌탑의 입 또한 오늘도 열리지 않았다
오래 묵어 곰삭은 그 진한 이야기들
그저 깊이 끌어안은 채
그 입은 아마도 천년쯤 전 어느 날
굳게 닫혔다 해도 되지 않을까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오후 어느 때
내 손 끝 그 여린 온기로 매만져 본다 해서
천년을 다문 그 입 열리진 안더라만
천 번쯤 아니면 또 천 번쯤
내 귀를 거기 두고 오는 속을
저 돌탑은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그렇게 천년에 천년을 더해
묵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더라
고소공포증
낮은 곳에 서서
높은 곳을 바라볼 때
목덜미 뻐근한 그 질긴 아픔을
차라리 슬픔이라 해 보자
높다란 자리에서
바닥을 내려다볼 때
사타구니 찌릿한 영판 낯선 그 불안함을
오히려 뿌듯함이라 할 수 있을까
마땅히 물어볼 사람도 없어
내가 나를 붙들고 몇 번을 되물어보지만
나도 모르는걸 내가 답할 수 없어
예순여섯 계단을 오르고
또 서른 세 계단을 걸어 올라서
까마득 저 뾰족한 끄트머리를 노려 보았다
차마 거기 오를 용기는 없어서
난간을 움켜 쥔 두 손에 힘 잔뜩 주고서
머리만 잠시 내밀었다 퍼뜩 움츠렸다
답은 어쩌면 공포 그 너머에 있는지도 몰라
계단을 되짚어 내려오며 중얼거리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