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정경희
대구에 사는 옛 직장 동료들과 매월 한 번 등산을 한다.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근교의 낮은 산을 오른다. 주말이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험한 산 누비던 팀이었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이 변하였다. 등산은 우리네 인생사와 같다며 거친 숨 토해내며 높은 산 오르던 때가 엊그제 같다. 산 정상에서 점심 도시락 먹던 즐거움도 없어졌다. 내려오는 길 옆 식당에서 조촐한 점심에 막걸리 몇 잔 곁들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힘들었던 지난날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 더 좋다.
내 나이 40대 중반쯤에 어쩔 수 없이 등산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도 등산 인구는 많았지만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두 아들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취미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삶이 ‘흐르는 강물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연륜이 쌓이니 승진시험 칠 기회가 주어졌다.
평소 주말도 그렇지만 명절 연휴는 밀린 공부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한두 번 명절만 나한테 시간투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남편에게 양해 구하고 남자들만 시댁에 보내었다. “공부는 너 좋자고 하는 것이고 며느리 노릇은 해야지.” 평생 동안 가슴에서 걸러지지 않는 시어머니 말을 들었다. 힘든 세상 살아가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쉬엄쉬엄 가는 길을 나만 힘들게 가는 것 같았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는다. 엉덩이 쪽 신경이 눌려 혈액순환이 잘 안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40세를 생의 전환점으로 보고 여러 가지 건강검진을 권하고 있다. 그 시기에 무리했으니 그럴만하였다.
지금처럼 내리막에서 도착 지점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몸은 저절로 따라 주는 것이라 여겼다. 갑작스런 변화에 덜컥 겁이 났다. 한의원에만 기댈 수 없어 운동 삼아 등산을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한번은 산에 올랐다. 처음에는 운동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기에 산행은 노동과 같았다. 그나마 남편의 넓은 등을 보며 걸을 때는 마음이 편안하였다. 일행들이 날다람쥐처럼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도 급하지 않았다. 가끔 여러 갈래 길 만나 당황할 때도 있지만 표지판만 잘 보면 길은 보였다. 아니면 멀찌감치 들리는 사람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그도 아니면 지도 꺼내 방향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렇게 횟수를 거듭할수록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의무감이 아니라 등산이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
직장에도 멋진 이름의 등산 동호회가 있다. 수십 명이 가파른 오르막 줄지어 오르는 모습은 장관이다. 평소 치열하게 일하는 직원들이다. 주말에 빈둥거리며 쉴 만도 한데 힘들게 산을 오른다. 등산 경험 많은 이가 앞서면 우리 같은 초보 산꾼은 뒤에서 묵묵히 따른다.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워낙 등산하는 이들이 많은 탓에 산에는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어디로 가더라도 돌고 돌아 집으로 갈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고생 할 것이다. 힘든 일 있을 때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내가 인류 최초의 인간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삶에 길을 만들어준 앞서간 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승진시험도 잘 끝나고 후들거리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높은 산 오르며 주변 풍경에 마음 뺏길 줄도 알았다. 한번은 잘 모르는 이들과 팀이 되어 국립공원인 속리산으로 갔다. 국립공원은 통제된 구간은 절대 들어갈 수 없고, 임산물 채취 금지 등 여러 제약이 있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출입금지 표시가 있다. 앞서가는 이는 이곳을 통과하면 전망 좋고, 거리 가깝고 등 좋은 점을 말한다. 문제없다며 자기만 따르라고 하는데 귀가 솔깃해진다.
일행들이 우르르 금지구역을 넘어가는 바람에 판단 여지없이 그냥 따랐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한번쯤 일탈은 괜찮겠지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직원에게 딱 걸렸다. 목소리 큰 일행이 직원과 실랑이 하는 동안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돌고 돌아 도착지점에 내려왔다. 그날 등산을 망치게 한 이는 뒤늦게 우리와 합류하며 멋쩍게 웃었다. 죄 짓고는 못사는 법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진작 외쳤어야 하는데 그날 고생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가쁘다.
등산 출발할 때는 기대감으로 준비운동 한다. 오르막에서 몰아쉬는 거친 숨은 정상의 기쁨을 위해서는 당연한 과정이라 여겼다. 정상 찍는 잠깐의 기쁨을 뒤로 하고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40여년을 이어온 내 직장생활도 등산과 같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나는 등산과 달리 수십 년을 이어온 것이 다를 뿐이다.
퇴직과 동시 직장 사람들과 거리가 생겼다. 바쁘게 일하는 것 알기에 안부 전화조차 안 하게 되었다. 새로운 등산 동호회 가입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산에 올라야 하는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 어느 여류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리며 산골의 평화로운 생활을 꿈꾸기도 하였다.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얼마나 정겨운 모습일까?
옛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까이 사는 퇴직자끼리 등산 동호회를 만든다고 하였다. 산골의 평화로움은 잠시 접어두고 산 사랑하는 이들과 근교의 낮은 산을 오른다. 높은 산 오를 때보다 옷이며 가방이 홀가분하다. 발걸음 가벼우니 주변 경치가 한결 더 눈에 들어온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연에 감사하고 같은 길 걸어온 동료들에게 고마움이 솟아난다.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아름답게 추억한다. 같은 길 걸어온 동료들이 나의 수십 년을 같이 떠올려 주니 든든하다. 다음 달의 산행을 기다리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20241210)
첫댓글 수고 하셔ㅛㅆ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