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사람의 신체 부위가운데에서 중요도를 매긴다면 몇 번째나 될까?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아마 다섯 번째 안으로 매김 될 것 같다. 손을 가진 동물은 수많은 동물 가운데 영장류에만 있으니 귀한 것만은 틀림없다.
손에는 나쁜 손도 있고 착한 손도 있다. 성경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구절이 있다. 사실은 선행이나 악행을 손이 하는 것은 아니다. 손은 우리 마음의 심부름꾼 일 따름이다.
안동 하회 마을에 가면 흉년이나 가난으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담장 밖에서 손을 넣어 곡식을 줌으로 쥐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구휼미 구멍이 있다. 선인들의 자애로운 지혜가 가상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구휼미 구멍은 손이 많이 움켜 집으려고 욕심을 부리면 빈손이 되고 만다. 사랑을 받았으면 내 것으로 갚지는 못할 지라도 다음 사람을 위하여 사랑을 남겨두라는 지혜를 보게 된다.
어느 열대 지방에는 두 가지 고기만 먹는 풍습을 가진 부족이 살고있다. 그 중에 하나는 돼지고기 이다. 돼지고기는 우리나라처럼 직접 길러서 필요한 때에 잡아먹는다. 또 다른 고기는 원숭이 고기이다. 원숭이는 기르지 않아도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를 평지 다니듯 하는 원숭이를 잡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 날쌘 원숭이를 힘들이지 않고 잡아서 먹는다는 것이다. 잡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여 놀라움을 금지 못할 정도다. 잘 익은 야자열매를 따서 작은 구멍을 뚫는다. 작은 구멍으로 야자 알맹이를 모두 꺼낸 후에는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쌀을 불려 넣어 둔다.
덫을 놓듯이 쌀을 채운 야자열매를 길목에 놓아두고 가까이에서 지켜보다가 원숭이가 야자열매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는 순간 원숭이에게 달려간다. 사람들을 발견한 원숭이들은 놀라서 아자열매를 두고 도망을 간다. 그런 원숭이 가운데 몇 놈은 야자열매 구멍에 집어넣은 손이 빠지지 않는 놈들이 있다. 손이 찢어져라 가득 잡은 쌀을 놓지 않으려고 하니 손을 뺄 수가 없다. 끝까지 쌀을 놓지 못하는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잡히고 만다.
내가 지금 원숭이와 닮은 모습으로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난하게 살았다는 핑계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는 데에만 열중하던 지난날의 모습이 원숭이를 너무나 닮았음을 생각해 본다. 지금도 그 습성이 남아 있다. 식탐이 내려놓아야 할 원숭이 손 안의 쌀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어떨 땐 동료나 다른 사람이 한일도 내가 한 일로 가로챈 시간도 있었다. 그 또한 원숭이 주먹 속에 든 쌀임을 깨닫는다. 그것을 내려놓아야 내가 살 수 있다.
손은 많은 일을 한다. 그러다보니 다치는 일도 많고 탈이 날 때도 많다. 내 손이 무엇을 잡고 있어서 이렇게 망가졌을까? 손목터널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기까지 한의원 통증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를 두루 섭렵하며 갖은 고통과 불편을 다 겪었다. 원인을 찾아가며 응급치료를 받느라 무수한 시간을 보냈다.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갖은 노력에도 차도가 없었다. 수술을 받기로 하고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더 정확한 진단으로 수술을 집도하기 위함인지 기초적 검사부터 자기공명영상촬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를 다시 거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폐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공명영상 촬영이 쉽지 않다. 걱정을 했더니 나와 같은 환자들은 정신이 몽롱해 지는 수면제를 먹고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다.
완전한 수면 상태가 아니라서 페소의 공포만을 느끼지 못하도록 처방한 수면제도 소용이 없었다. 고가의 의료비가 소요되는 촬영이 중도에서 끝이 났다.
늘 걱정해 오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예방을 위한 스트레스와 고통과 병에 걸린 후 치료하는 고통 중 어느 것이 클까?
아무리 발달된 의학기술과 의료장비라 할지라도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예방의 고통과 치료의 고통을 비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달았다. 더구나 촬영기에서 내려와서도 몽유병 환자처럼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다.
지기공명영상촬영이라는 최신 의료 기술 대신 컴퓨터단층촬영의 기법으로 대체하고 수술을 받았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함 때문 이었는지 수술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주치의도 미안했음인지 시간을 두고 좋아지는 환자도 있으니 기다려 보자며 위로를 했다.
얼기설기 어설프게 깁은 수술자국을 보며 이 손이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죽는 줄도 모르고 움켜잡은 손안의 쌀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후회기 밀려왔다. 나에게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자격이 있는가? 이제 남은 삶속에는 쌀을 내려놓자고 다짐해 본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