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 ‘남북 교류의 새봄’ 성과…교류 원칙·당면 과제 예시 < 남북 불교교류 비망록 < 연재 < 기획ㆍ연재 < 기사본문 - 불교저널 (buddhismjournal.com)
“같은 꿈, 다른 꿈을 꾸다”
2008년 7월 12일부터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대북 퍼주기론’으로 비난하며, 2010년의 남북교류에서도 심술을 부렸다.
그러나 한 사람은 예외였다. 이명박 정권의 통일부는 2009년 11월 5일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자승 총무원장의 평양 방문에 대해 전격적으로 허가했다. 2010년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평양 방문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약칭 민화협) 초청으로 이뤄졌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의 평양행은 2005년 6월 김법장 총무원장, 2007년 이지관 총무원장에 이어 세 번째로, 남측 조계종 총무원장 자격으로 방문한 기록이다. 그런데도 이때 평양 방문은 의외로 조용했다. 당시에 <연합뉴스>의 기사를 인용해 단신으로 보도한 <동아일보>, <서울경제>를 제외하곤 여타 일간지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종단 기관지 등 교계 언론에서는 예고 기사로 다뤘다. 이후 교계 언론에서는 방북 화보와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일행은 3박 4일간 조불련 청사 방문과 사찰을 참배하고, 평양시 사동구역의 덕동 돼지농장과 장천 남새(채소)농장, 낙랑구역의 정성제약종합공장 등을 견학했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의 평양 방문단이 조불련과 실무적으로 합의한 내용 등은 귀국 이튿날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다.
당시 조계종단과 조불련이 평양에서 논의한 과정에 대해 분석해보면 ‘조국 통일이라 같은 꿈을 말했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 동상이몽의 테이블’이었다. 그런데도 양측이 협의했던 사항들은 남북불교 교류의 기본적 원칙과 당면 과제를 예시한 전례라는 점에서 향후, 불교교류에 정책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이명박 정권 하에서 최초로 방북을 허가받은 불교계 수장의 평양 방문활동에 대해 다시 살펴본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평양에서의 꿈과 일들
“남북 민간교류와 불교교류의 전기를 마련하여 남과 북의 모든 구성원이 마음을 열고, 기쁘게 소통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경색되어 있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를 기원하며, 두 손 모아 부처님 전에 간절히 발원드립니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평양 방문에 앞서 2010년 1월 30일 오전 8시경 인천공항 법당 광제사에서 가진 출국법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발원문을 낭독했다.
‘긴장된 남북관계를 민간교류로부터 풀어야 한다.’는 취지를 설명하고 방북한 자승 총무원장과 함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인명진 목사 등 공동대표단 6명과 실무진이 동행했다.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같은 날 오후 3시 20분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북측 최성익 민화협 부위원장과 리규룡 부위원장 등 조불련 임원의 영접을 받은 남측 방문단은 평양 양각도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자승 총무원장을 비롯한 조계종 총무원의 영담 총무부장, 혜경 사회부장, 선각 해인사 주지로 구성된 4명의 방북단은 첫날 저녁의 환영만찬 등 남북 민간교류와 별도의 교류 일정을 진행했다.
방북 이튿날인 1월 31일 오전에는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 흥부동의 조불련 청사를 방문했다. 별동의 3층 청사 법당에서 공동 예경의식을 갖고, 청사 2층 접견실로 이동해 심상진 위원장 등 조불련 중앙상무위원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자승 총무원장과 심상진 위원장이 접견실에서 환담하는 사이, 영담 총무부장, 혜경 사회부장, 선각 해인사 주지는 청사 회의실에서 리규룡 부위원장, 차금철 서기장 등과 별도 실무협의를 했다. 이때 조불련 청사 접견실과 회의실에는 식음료가 없는 탁자가 놓였고, 벽면 중앙에는 2개의 초상 액자를 나란히 걸었다. 그간 재떨이가 놓였던 회의 테이블에는 대성산샘물공장의 생수 여러 병이 놓였다. 또 공식 회의 후에 갖는 오찬 등 식사는 조불련 청사에서 진행하지 않는 것이 북측의 관례이다.
평양 남북불교회의가 열리기 전,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은 2010년 1월 28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북측 조불련 등과 △ 금강산 신계사 활성화 및 운영 △ 평양 용화사 복원 및 불교문화재 공동발굴 복원 △ 평양시내 인도적 지원시설 건립 △ 남북 주요 사찰 간 교류협약 체결 △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북측 초청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해 1월 31일 평양의 조불련 청사 회의실에서 가진 실무회의에서는 6·15 공동선언과 10·4 남북 공동선언의 이행, 민족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기 위한 논의, 남북불교 공동사업에 관한 협의가 이뤄졌다.
이처럼 남북한 불교는 반세기 동안 서로 같은 꿈을 말하고, 각기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평양이란 무풍지대에 함께 섰다. 일명 모란봉이라 불리는 금수산의 남서록에 위치한 조불련 청사 2층 회의실에서 가진 실무회의를 통해 조정된 큰 틀에서의 합의와 협의한 사항은 곧바로 청사 접견실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심상진 조불련 위원장의 서명과 교환으로 마무리됐다.
그때 조계종과 조불련은 ① 양측은 우리 민족문화의 자주성과 우수성을 빛내기 위하여 북측지역의 불교문화재 복원 보수와 유지 관리에서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 ② 양측은 2011년 팔만대장경 목판 제작 천년을 맞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협력사업을 추진한다. ③ 양측은 국제무대에서 민족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협력한다는 세 가지 합의 사항을 체결했다.
또 ① 금강산 신계사를 활성화하기 위한 성지순례 등 공동사업을 추진한다. ② 평양시내에 불교회관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시설 건립을 추진한다. ③ 남측 사찰과 북측 주요 사찰 간의 결연을 통해 교류협력 사업을 시행한다. ④ 올해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평양 광법사 또는 묘향산 보현사에서 남북 화해와 단합을 위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하도록 노력한다. ⑤ 6·15 남북공동선언 10돌을 맞이하여 금강산에서 남북불교도 합동법회 또는 남측과 북측사찰에서 동시법회를 봉행하도록 노력한다. ⑥ 남측 불교단체와 조불련 간에 교류협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여섯 가지 사업안에 대해 협의했다.
위와 같이 2010년 1월 말, 평양에서 조인된 남북불교 교류사업안은 6·15 공동선언 등의 이행과 실천에 기반한 내용이다. 이때 북측 조불련은 우리민족끼리의 교류와 협력에 중점을 둔 반면에, 남측 조계종은 남북불교 간 공동사업을 통한 교류의 진전을 꾀했다. 이에 대해 남측의 대한불교도지키기총연합은 같은 해 2월 18일 오후 2시 조계사 앞과 오후 3시, 서울 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국가와 국민과 불교도를 저버린 친북 승려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의 방북 성과를 비난하는 규탄 집회를 여는 등 남북불교 교류에까지 흑백 색깔론을 주장했다.
이명박 정권 3년 시기에 자승 총무원장의 평양 방문은 내용은 종교교류 부문으로 볼 수 있지만, 남측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와 교류 채널을 가진 북측 민화협의 초청이므로 민간교류의 형식을 띠었다. 그래서 1월 31일 오후 일정으로 평양 광법사를 방북대표단과 함께 참배하고, 주체탑과 인민대학습당, 만경대소년학생궁전 등을 관람했다. 2월 1일에는 평양 만경대고향집을 방문하고, 평양직할시 사동구역의 덕동리 돼지농장과 장천리 남새(채소)농장, 낙랑구역 승리1동의 정성제약종합공장 등을 견학했다.
조선만년보건총회사 산하의 정성제약종합공장은 1995년 설립된 조선정성제약연구소를 모태로, 1999년 5월부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 남측 민간단체의 지원으로 2005년에 공장을 건설해 링거 등 의약품을 생산하는 정성의학종합쎈터를 말한다.
이때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취임 후 첫 국외 방문지로 평양을 선택했다.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과 종교교류마저 봉쇄시켜버린 이명박 정권에서의 평양 방문은 ‘남북교류의 새봄’을 맞이하는 성과를 냈다. 방문단의 방북 성과는 2010년 2월 2일 오전 9시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오후 2시 40분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2월 3일 원담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대변인)이 발표한 방북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다. 이에 교계 언론·방송은 자승 총무원장이 평양에 직접 들어가 남북 교류의 새 물꼬를 텄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2010년 1월 말, 평양에서 맺은 남북불교 간의 사업 합의서와 교류 의향서는 남측 조계종단에서 그저 참고용이라고 여길지라도, 북측 조불련에서는 만기일에 보유자에게 원금과 이표(利票, 쿠폰)를 지불해야 하는 일종의 ‘보증채권’이라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일에 권리와 책임이 따르듯이 그때 합의와 협의한 결과 발표에 따른 책무는 아직도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남북공동 발원문 채택과 미발표
북측의 4대 불교명절은 석탄일(釋誕日, 부처님오시날),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이다. 1990년대부터 평양 광법사와 묘향산 보현사, 내금강산 표훈사 등에서 4대 명절을 맞이해 기념의식을 개최한다고 《조선중앙방송》 등이 보도했다.
특히 1997년 5월부터 석탄일에는 남북 공동 발원문을 채택, 서울 조계사와 평양 광법사에서 열리는 법요식에서 동시 발표했다. 2009년도까지 진행한 남북공동 발원문의 동시 발표가 2010년에는 그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봉축 법요식장에서 생략됐다. 그해 3월 30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불교회의에서 협의하고 채택한 공동발원문은 2010년 3월 26일 서해 천안함 피격사건에 따른 이명박 정권의 5·24조치 발표 이전으로, 석탄일이 5월 21일이었음에도 조계종단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당일 조계사 법요식에서 발표하지 않았다. 북측 조불련은 평양 광법사 기념법회에서 동시 발표의 형식으로 낭독했다.
이때 미발표된 봉축 남북발원문은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실천’을 강조한 불교적 내용으로, 6·15공동선언의 이행, 평화체제의 정착, 신뢰의 통일민족공동체 구축이라는 다소 정치적 내용이 포함됐다. 남북공동 발원문은 내용적인 측면과 달리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가장 종교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불교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남북교류의 키워드가 담겨 있다. 그 후 2011년에는 남북발원문의 채택과 동시 발표되었으나, 2012년~14년까지 남측 불교계가 스스로 시대적인 상황 논리를 앞세워 거부함으로써 정례적인 교류 주제를 사라지게 했다. 이것은 향후, 남북불교 교류 테이블에서 의제 선정의 부담 요인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짙을 수 있다. 또 북측의 정치적 내용에 관한 명분과 실효적 절차를 잃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2010년도 남북발원문이 채택되기까지 그 이면에는 남북한 불교의 공조가 빛을 발했다. 그해 2월 2일 방북한 다음, 귀국 길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남북교류는 지속돼야 한다. 같은 민족으로 불가피한 일이며, 이유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남북교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남과 북이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평양에 가서 보니 여러 가지 현실적으로 남북교류를 재개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계종 민추본은 그해 5월 17일 동해선 육로를 통해 양초 200상자, 향 20상자 26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금강산으로 전달했다. 지원한 향과 초는 금강산 신계사를 비롯한 북측 사찰에 전달돼 사용했다.
오늘날 굳게 닫혀 있는 남북한의 민간교류는 민간차원에서 할 일도 있지만, 보다 큰 틀에서 해결해야 남북교류의 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다음, 남북대화와 불교 교류에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더 중요하다.
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장
출처 : 불교저널(http://www.buddhism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