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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제물(자연)로 살아가는 길
21세기 자연(영성)수행은 종교적 틀이나 교리, 교조에 따라서 사는 사슬진 , 틀에 박힌 살림살이를 벗어버리자는 것입니다. 자연(제물)이 되어 제물(자연)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잘못됨과 불행은 제물(자연)의 품 안에서 품 밖으로 벗어나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인 것입니다.
불교의 고해=쓴바다 살림살이란 인간중심적 살림살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제물(자연)이란 한울=우주 살림살이의 꼴(모습)=틀(형식)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21세기 제물(자연)영성수행은 바로 내가 우주(한울)가 되자는 것입니다. 내가 부처(깨달은 사람)가 되어 살아가는 자연살림살이입니다. "내가 도령, 그리스도, 메시아, 구원자, 한울, 하나님이 된다, 내가 알라, 브라흐만, 와칸탕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연(제물)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침에는 아침으로, 저녁에는 저녁으로, 한밤에는 한밤으로, 내가 봄에는 봄으로, 여름에는 여름으로 가을에는 가을로 겨울에는 겨울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내가 새갈마노(東西南北)로, 한울(우주)로 살아간다는 믿음, 확신, 기도, 찬미, 예배, 예불이 다름 아닌 21세기 제물(자연)수행입니다.
내가 땅이 됨으로 내가 한울이 됨으로 바다, 가람, 비가 됨으로써 내가 사람다운 사람이 됨으로 우주 나=한울 나로 살아감=살림살이 함을 뜻합니다.
텅 빈 넉넉함으로의 '텅 빈=텅 비우다'는 "내가 한울이 된다. 한울 아닌 '나'를 비운다"는 뜻입니다. 한울 아닌 나는 허깨비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텅 비운다는 "허깨비=허새비인 나를 텅 비게 하고 " 한울로 넉넉한 나, '한울나'로 다시 태어나자는 것입니다. 바로 다뜻한 혁명, 녹이는 혁명, 사랑의 혁명이란 딱딱한 '나'를 녹여서 따뜻한 한울로, 따스한 사랑의 몸으로, 한울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자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아니 빼앗긴 나를 되찾아 '한울 나'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부처인 나로 다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나, 알라인 나, 와칸탕카인 나, 브라흐만인 나로 다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도령, 온달, 바보, 머슴인 나로 다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최제우인 나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제물 나=자연 나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21세기 자연(제물)영성수행은 바로 맨처음의 나를 찾아 살아가는 살림살이인 것입니다.
수행은 멈춤이 아닙니다. 가둠이 아닙니다. 사슬이 아닙니다. 수행은 열고 열어서 자라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야 할, 걸어가야 할 나의 길닦음이고, 나를 닦음=그 길이 되게 함입니다 크게 함입니다. 거대하게 함입니다. 가장 큰 일은 바로 한울이 됩니다. 자연수행은 바로 내가 나를 거대한, 한없이 큰, 한없이 없는, 막힘이 없는 한울(우주)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수행은 내가 나를 한울로 짓는 살림살이입니다. 그 거대한 일을 제물(자연)살림살이를 통해서 살아가는 일이 바로 제물(자연)영성수행입니다. 제물(자연)살립살이란 "씨, 싹(움,눈)가지, 잎-줄기,가지, 가지잎, 꽃, 알, 다시 씨알로 씨알이 됨이요. 그렇게 살림살이한다"를 뜻합니다. 내가 바로 한울(우주)인 씨알이 됨이요, 씨알 살림살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씨알로 살아감이 다름 아닌 21세기 제물(자연)수행 살림살이입니다. 씨알이 없는 살림살이=수행은 허깨비입니다. 만남이 그러하고, 사랑이 그러하며, 일함이 그러합니다. 21세기 제물(자연)영성수행은 다름 아닌 씨알수행, 씨알 살림살이입니다.
5)'온나를 산다'의 길
'나를 산다'는 나를 나로 살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일을 한다'가 '내 일을 한다'가 되어야 합니다. 월급 받는 일은 내가 일한 만큼 '나의 몫을 파는 행위입니다. 돈벌이 하는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일한 만큼의 시간과 장소에, 고용주에게 나의 몸을 돈을 받고 팔아 넘기는 짓거리가 됩니다. 나의 일은 내 목숨을 스스로 거는 일입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은 나의 몸을 담보로 잡혀 나의 몸을 거해하는 짓거리입니다.
참된 나의 일과 너의 일, 우리의 일은 저당잡힌 돈 받고 하는 일 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나를 한울=우주로 짓는 일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세기(21세기)에 나를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한울=우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신앙'입니다. 예수, 부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부처로 예수로 하나님으로 살아간다는 살림살이가 되어야 뜻합니다.
우리의 믿음=신앙은 "내가 한울이다"라는 한울살림살이로, "내가 우주다"라는 우주살림살이로,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하나님살림살이로, "내가 부처이다"라는 부처살림살이로 사는 것입니다.
'믿다'는 참으로 다(온)를 이룸입니다. 참(ㅁ)으로 다(온=하늘=우주)를 이룸은 온한울=온우주를 이룸입니자. 거대한 우주=한울 선언인 살림살이입니다.
'산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이며, '믿다'는 "희망=바람"이 있다, 살 만하다, 믿을 만하다, 바랄 만하다"를 뜻합니다.
'나는 나를 산다'는 "나는 나의 일을 한다"를 뜻합니다. '너의 일'은 '너의 일'입니다. '돈 받고 하는 일'은 돈 받는 대신에 나의 몸을 얼마에 파는 짓거리입니다. 목숨을 거는 것은 돈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그 일에 목숨을 스스로 거는 숭고한 일입니다. 그 일이야말로 거룩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21세기에 참으로 '나를 산다'의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은 드문 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다 너의 일에 나를 맡기고 그 대신에 돈을 받는 거래를 합니다. 그것을 나의 일이라고 여기고, 착각하고 허새비 노릇을 합니다.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울을 살면 한울의 힘이 나옵니다. 하늘을 살면 하늘의 힘이 나옵니다. 따앙을 살면 따앙의 힘이 나옵니다. 사람다운 사람을 살면 사람다운 사람의 힘이 나옵니다.
고타마 싯타르타 석가모니는 부처를 사셨으니 부처의 힘을 얻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사셨으니 그리스도의 힘을 얻어 그 힘으로 사셨습니다. 최제우는 하늘을 사셨으니 하늘의 힘으로 세상을 능히 넘을 수 있었습니다. 땅을 살면 땅의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참 나를 살면 참 나의 힘=한울=우주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물(자연)을 살면 제물(자연)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온나를 산다는 것은 온한울을 산다는 뜻입니다.
6)살맛 나는 누리로 가는 길
살맛 나는 살림살이가 즐거움이고 기쁨입니다. 넉넉함으로 하루하루가 더욱 넉넉해지는 살림살이가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밥맛이 좋고, 국맛이 좋으며, 장맛이 좋아서 밥상 앞에서 넉넉해지는 살림살이가 즐거움이고 기쁨입니다. 쌀 맛이 좋고, '살맛'이 좋아서 살맛 나는 누리를 짓는 그 일이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될 때 넉넉해지겠습니다. 물맛이 좋고, 나물 맛이 좋아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맛좋은 만남이 살맛 나는 누리입니다. 말맛이 좋고 글맛이 나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살맛입니다. 맛이 좋은 만남, 만남의 맛을 더하는 어우러짐이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하루하루의 살림살이가 살맛을 잃어버리면 우리 몸은 약해지고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살맛은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실망입니다. 실망은 살맛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과학과 예술, 문명과 종교 따위가 살맛 나는 살림살이를 짓지 못할 때, 만들어 내지 못할 대, 우리네 살림살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림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살맛 나게 하는 힘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살맛 나게 하는 힘은 제물(자연)에 있습니다. 제물(자연)에는 맛 좋은 물이 있습니다. 맛 좋은 쌀이 있습니다. 맛난 열매, 맛깔진 소리가 있습니다. 멋과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풀꽃나무들이 많이 있습니다. 맛은 밥인 빛입니다. 빛밥을 먹어야 합니다.
넓고 넓은 땅이 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별들이, 해와 달이 있습니다. 산짐승, 들짐승, 풀벌레... 살아 숨 쉬면서 우리들에게 살맛 나게 하는 이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살맛 나는 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바벨탑 이야기보다 훨씬 앞에서부터 엔덴이란 자연에서, 마고대성에서 떠난 인간의 역사와 인간중심적인 문화와 문명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홍수 이야기나, 소금기둥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역사란 위대하고 거룩하며, 아름다운 고른 삶, 살림살이의 새암과 흐름이 아니라 죄악과 타락의 역사, 고해의 역사, 전쟁과 살해, 압박과 수탈의 흐름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제물(자연)로부터 멀어지는, 멀어져 버린, 도망쳐 버린 역사입니다.
부처나 예수, 이러한 훌륭하신 분들이 말하는 것이 바로 타락, 죄악, 고해의 세상에서 벗어나, 탈출해서 새하늘과 새땅으로 가자, 짓자, 만들자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제물(자연)로 돌아가야 산다'를 힘주어 말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제물(자연)로 돌아가자'가 에덴의 회복이고 하늘나라, 극락정토의 회복입니다.
새하늘과 새땅 짓기입니다. 나중에, 후대에 들어가 그분들이 하신 말씀 중에서 "제물=자연으로 돌아가자"를 빼버리고 추상적인, 환상적인, 있지도 않은 U-topos(있지 않은 땅, 나라)를 선정해서 유토피아(Utopia)로 극대화, 교리화한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살맛 나는 누리는 바로 제물(자연)이라고 봅니다. 제물(자연)과 함께하는 제물사람(自然人)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서 제물=자연살림살이를 하는 것이 구원이요, 행복한 살림살이입니다. 자연수행입니다. 인간중심적 문화와 문명은 이미 인간을 질식 상태로 내몰아 놓고 말았습니다. 나를 텅 비우고, 나를 제물(자연)로 되돌리고, 나를 텅 비게 해서 제물(자연)과 함께 하늘, 따앙, 사람과 더불어 넉넉함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류 문화, 문명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이 손 댄 자리, 그 곳, 그 일이야말로 제물(자연)을 무너뜨리는 파괴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이념, 그 이데올로기, 그 종교, 그 철학, 그 사상, 그 학문, 그 예술은 제물(자연)무너뜨림을 계속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기술, 제반 분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다 제자리로 돌아가자" 제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야말로 이 파괴와 질식, 붕괴, 절망, 파멸의 수렁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환생이란 제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 살림살이를 하자는 말로 바꿔야만 합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다 제자리로=제물로, 자연으로는 하늘도, 따앙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의 마음다짐을 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주의가 펼쳐 놓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문명, 과학, 기술, 종교, 교육은 이제 더는 지속될 수 없으며 자기 파멸을 벗어날 수 있는 자생능력, 정화능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 제자리=제물로 제물=자연살림살이를 해야 합니다. 제물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제물(자연) 그 자체로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태어남의 아픔=쓰라림을 톡톡하게 치러야 합니다. 그 길밖에 다른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사함 김명식의 따뜻한 혁명, 자연수행의 길 <텅 빈 넉넉함으로 > , 제5부 '자연수행의 길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중에서)
첫댓글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아픔=쓰라림을 톡톡하게 치러야 합니다.
그 길밖에 다른 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