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상홍리 공소 (순례지/성지)
간략설명: 병인년 해미 생매장 순교자들의 첫 안식처를 품은 곳
도로주소: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2길 122
상홍리 공소의 설립: 서산은 내포(內浦)의 한 지역으로 충청남도 서북단 태안반도에 위치해 있다. 잘 알려졌듯이, 내포는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 1759-1801)에 의해 신앙이 전파된 후 ‘한국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가 되었던 지역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 지역에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본당과 공소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볼 서산 상홍리(上紅里) 공소도 그러한 곳 가운데 하나다.
상홍리 공소는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에 있으며 과거에는 ‘가재 공소’라고 불렸다. 가재는 갈재 밑에 있는 마을로, 가래나무가 많았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이 마을에 공소가 세워진 것은 적어도 1884년 이전의 일이었다. 1880년대 초, 충청도의 중앙과 서부 지역을 담당하던 두세(C.-E. Doucet, 丁加彌, 1853-1917) 신부의 1883-1884년도 교세 통계표에서 가재 공소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공소 이름만 있을 뿐, 신자 수 등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신자 수는 1884-1885년도 교세 통계표에 처음 나오는데, 당시 81명이었다. 그 이듬해에는 102명으로, 서산에서 가장 큰 공소였다. 그러나 1886-1887년도에는 신자 수가 52명으로 급감하였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1890년대에는 30명 대에 머물렀다.
가재 공소는 1890년까지 두세 신부의 사목 하에 있다가 1890년 양촌 본당이 설립되면서 그 관할 공소가 되었다. 양촌 본당의 초대 주임 퀴틀리에(J. J. L. Curlier, 南一良, 1863-1935) 신부는 1899년에 양촌이 본당의 중심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본당을 합덕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가재 공소는 1908년 수곡 본당이 설립되어 그 관할 공소가 될 때까지 18년 동안 양촌(1899년 이후 합덕) 본당 신부의 사목 하에 있었다.
2011년 보수공사를 마친 구 사제관. 바로 오른쪽에 상홍리 공소 성당이 있다.
공소 앞마당의 성모상.서산으로의 본당 이전 1917년 4월 19일 서울 대목구장 대리이자 약현 본당 주임인 두세 신부가 선종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 대목구는 인사 이동을 단행하였는데, 라리보 신부가 교구의 당가(경리)로 임명되었다.
이로 인해 합덕과 수곡 본당을 맡을 신부가 공석이 되었지만, 신부들의 수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임명을 그해 9월에 있을 서품식 이후로 미루기로 하였다. 9월 22일 서품식이 거행되어 4명이 사제품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박우철(朴遇哲, 바오로, 1884-1956) 신부는 합덕 본당, 안학만(安學滿, 루카, 1889-1944) 신부는 수곡 본당의 신부로 각각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