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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단장협(斷腸俠)의 정체 1 혈홍령. 한때 사도고수 일만의 생사를 좌우하던 신물이다. 혈홍문이 사라졌지만 혈홍령의 신위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불지가 얼떨떨해 할 때였다. "너는 혈홍문 사람임을 잊은 모양이구나." 단장협이 위엄을 나타내며 영부를 높이 쳐들었다. <혈홍문의 제자들은 혈홍령 아래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리고 혈홍령의 이름으로 내려진 명 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과거 혈홍문의 규율이 그것이었다. 혈홍령은 이검엽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알려져 있다. 이불지의 눈빛이 격랑을 만난 듯 뒤흔들렸다. 그녀가 무상마녀로 화해 천녀교의 제자가 된 것은 혈홍문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다. 이제까 지 그녀는 단 한순간이라도 복수를 잊어 본 적이 없다. 이불지의 앵두 입술이 잘근 씹힌다. "아아……!" 이불지는 애절한 숨소리를 내다가 두 무릎을 땅에 댔다. 천녀교보다는 혈홍문 사람임을 아 직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리라. 단장협의 표정은 너무도 엄숙했다. "혈홍령의 주인으로 명한다. 곧바로 천녀제가 있는 곳으로 가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녀 제 곁으로 접근해 그녀의 수급을 취해라. 그 다음, 천태산 혈홍문 자리로 오면 모든 것을 알 려 주겠다." "……." "어서 떠나라." 이불지는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한순간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녀의 몸이 머물러 있던 자리에 아주 은은한 난초향 (蘭草香)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단장협은 그녀가 사라져 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고꾸라지며 신음 소리를 토 해 냈다. "으으으……!" 그는 곧 죽을 듯 몸을 뒤틀며 피를 뿌렸다. 사실 그의 상세는 이미 견디기 힘들 정도에 이 르러 있었던 것이다. 오장육부가 자리를 바꾸었으며, 혈맥의 반 정도가 막혀 있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버텼으나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크으으……!" 단장협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할 때, 그를 향해 천천히 접근하는 흑의인 하나가 있었다.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청년, 바로 상관안이었다. 창졸간의 일격에 등판를 격중당했으나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 상관안은 바위 뒤에 숨어서 모든 것을 관찰한 후였다. "알 수 없는 사람이군." 상관안은 고개를 흔들다가 품안에서 목갑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 단약 하나를 꺼냈다. 구령단(九靈丹). 무림화타를 천하제일의로 만들게 한 비전영단이 꺼내지며 근처가 향기로 뒤덮였다. 상관안은 구령단을 꺼내 단장협의 입술 사이에 넣어 둔 후, 그의 혈도 십여 군데를 가볍게 두들겼다. "누… 누구요?" 단장협이 눈을 지그시 뜨며 상관안을 올려다보다가 한순간 입을 딱 벌리고 눈을 까뒤집었 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손 아래 멀리 날아가 버린 상관안이기 때문 이었다. "어… 어떻게 살았느냐? 나… 나의 일 장 아래 살 수는 없었을 텐데?" 단장협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 들었다. "귀하의 혈홍신장(血紅神掌)은 사문일절(邪門一絶)답게 지극히 강했소만, 나를 죽게 하기에 는 미약한 것이 많았소." 상관안의 신체는 이미 금강불괴지신에 이르렀다. 또한 그는 강호초출의 풋내기가 아니다. 그 는 어느 틈에 노련한 무사로 변모해 있었다. 상관안은 단장협이 땀을 뻘뻘 흘리자,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의 손에 두 자 길이 보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검자루에 장식이 아주 훌륭하고, 검신이 순금으로 된 천하의 명검이었다. "이것은 귀하의 품안에서 찾은 것이오. 귀하가 어떤 인물인가 하도 궁금해 실례를 저질렀던 것이오. 결과, 귀하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으으……!" 단장협의 얼굴이 검게 물들었다. "흠, 귀하는… 이검엽이라는 사람일 것이오. 혈홍신검(血紅神劍)이 그것을 증명하고, 귀하가 나를 칠 때 사용한 혈홍신장이 그것을 증명하오." 상관안은 말을 마치며 보검을 땅에 꽂았다. 단장협은 그 순간, 눈을 꾹 감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아주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상관안이 그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뿐이오." "……." "방금 여기를 떠난 이불지는… 귀하의 친딸이오. 한데, 왜 그녀에게 아버지임을 밝히지 않는 것이오? 그녀에게 천녀제를 암살하라 시킨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오? 정체를 숨기는 이유 가?"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단장협의 눈이 더 굳게 감겨졌다. "당신이 나를 왜 암산했는지도 알고 싶소. 하나, 그것은 굳이 알려 하지 않겠소. 능히 짐작 할 수 있으니까!" "무… 무슨 짐작을?" "흥!" 상관안이 차게 냉소 쳤다. 그리고 씹어 뱉듯 말했다. "당신은 내가 나이 어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겠으나, 천만의 말씀이오. 당신은 내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네… 네가 뭘 안단 말이냐?" "하하… 당신은 과거 나의 아버지를 가장 큰 적으로 생각했었소. 나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 던 일도 몇 번 있었고, 원래 나의 아버지의 정혼자였던 무림제일기녀 단방을 가로채기까지 했었소." "으으……!" "사실, 나는 그 덕에 세상에 나왔다 할 수 있소. 나는 당신이 단방을 아버지 곁에서 떼어 내 주었기 때문에 무림제일미녀 백화선자와 아버지 사이의 자식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오." "으으으……!" 단장협은 괴롭다는 듯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렇다. 그는 이검엽이었다.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혈홍문의 문주였고, 과거 사도제일고수 라 불리어지던 사람이었다. 그는 과거 혈홍문이 멸망할 때 한 팔을 잃고 전신이 상처 투성이가 되어 구사일생했던 것이 다. 이후, 그는 심산유곡으로 숨어 들어가 혈홍문의 최고 절기라 불려지고 있는 혈홍절천검(血 紅絶天劍)을 수련했었다. 기연인지, 한 뿌리 만년삼왕(萬年蔘王)이 그에게 발견되어 그를 내가의 최절정 고수로 만들 어 주었다. 그래서 그는 혈홍절천검을 십이 성 완벽히 익히고 강호로 나와 복수를 하고 다 녔던 것이다. 이검엽은 천하에서 가장 놀라운 비밀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상관안도 아직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넷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살았다 할 수 있는 처지가 되 지 못해 세 사람만이 알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단장협이란 화신해 나타난 이검엽은 상관안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괴로워하며 말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죽이는 길이다. 너는 나를 죽여야 한다. 나는 너에게 못된 짓을 많 이 했다. 나는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다. 어서 나를 죽여라!" "죽이지 않겠소!" "왜?" "당신이 속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당신이 굳이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 해도, 나 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오. 어차피… 내 스스로 모든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니까!" 상관안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 독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잘난 놈이다.' 이검엽의 눈에 눈물이 매달렸다. '나는 상관위를 항상 부러워했다. 결국 그는 나를 능가했다.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었으 니, 죽었다 해도 좋으리라." 이검엽은 상관안이 천하의 고수라는 데서 큰 기쁨을 느꼈다. '저 아이가 모든 것을 해결할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불지가 그 요사스런 계집을 죽여야 할 텐데…….' 이검엽은 지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상관안은 그 길로 백독곡을 빠져 나와 형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독곡 안에서의 일이 모두 꿈 속에서의 일인 것만 같았다. "이불지가 이검엽의 딸이었다니… 후후후… 천녀제는 나만을 속인 것이 아니라, 이불지도 속였군." 생각할수록 우스운 일이었다. 천녀제가 어떤 여인인지 알고 싶은 생각이 물밀듯 일어났다. 얼마나 뒤틀어진 여인이기에 천하를 다 속이고 살아간단 말인가? 그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원수의 딸에게 대통을 물려주려 하는 저의가 무 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검엽이 불쑥 나타나 이불지에게 천녀제를 암살하라는 명을 내린 것 또한 상상 밖의 일이 었다. 분명한 것 한 가지, 마성(魔性)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것뿐이었다. "흑의성인의 가르침이 이제야 이해되는군. 그분께서 천하의 악을 없애기 위해 일생을 수도 의 길에 든 까닭은 이런 일이 벌어지심을 우려한 까닭이었으리라." 상관안은 중얼거리며 걷다가 찬바람이 피부에 닿음을 느끼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으 로 거대한 강물이 보였다. 양자강(陽子江). 중원의 젖줄로 불려지는 장강이다. 강물은 천 년 전에도 저렇듯 도도히 흘렀고, 천 년 후에도 도도히 흐를 것이다. 무심히 흐르 는 거대한 물줄기. 대하는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으며, 모든 것을 받아들여 하나가 될 뿐이 다. "아, 제행무상(諸行無常)이구나." 상관안은 탄식해 하며 형주 쪽을 향해 걸음을 계속했다. 인간이 만든 강호가 혈겁에 휩싸여 있으나 자연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상관안은 유난히 어깨가 무겁다 여겨졌다. '모든 것은 나로 인해 비롯된 일이다. 결자해지다.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천하의 풍운아, 그의 겉모습은 유약한 백면서생으로 보일 뿐이다. 그는 태극동부를 나섰을 때보다 고강해졌다. 외공은 익힐수록 밖으로 드러나되, 내공이란 익힐수록 안으로 갈무리되는 것이다. 하현월이 구름에 가려졌다. 새벽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이 하루 중 가장 어두 운 시각이다. 상관안은 서서히 공력을 끌어올렸으며, 질풍처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강물이 휘어 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2 "잠깐!" 저 멀리 그를 부르며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옷자락을 떨치며 다가서는 사람은 검은 장포에 장검 하나를 비끄러맨 준수한 청년. 난 생 처음 보는 사람인데, 상관안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주 무서웠다. 휘리릭-! 그는 이십 장 거리를 단번에 주파해 상관안 바로 앞에 떨어져 내렸다. 먼 거리를 사뿐히 날 아 내리는데 먼지 하나 피어오르지 않는다. '일위도강(一韋渡江)!' 달마가 한 줄기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며 시전했다는 소림의 비전경신술이다. 소림의 직전제자가 아니라면 이렇듯 완벽하게 시전해 내지 못할 것이다. "하하…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군!" 흑의청년은 상관안과 구면인 듯했다. 상관안이 얼떨떨해 하자, 흑의청년은 자신이 달려온 쪽을 손가락질했다. "간담이 크다면 나와 함께 저곳으로 가지 않겠느냐?" "무슨 말이오? 심야에 나를 초청하는 까닭이 무엇이오?" 상관안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하하… 네 죄를 추궁하기 위함이다!" 청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듯한 눈빛이다. "죄라니?" 상관안이 눈을 부릅뜨며 신광을 폭사해 냈다. "하하… 홍의나찰을 구한 죄 말이다." 흑삼청년이 공격할 자세를 하고 씹어 뱉듯 말했다. 상관안은 그제서야 흑삼청년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과거 홍의나찰 요옥진을 공격했던 아홉 명의 흑의복면인 중 하나가 바로 눈앞의 준수한 청 년이었다. 그제서야 상관안의 눈빛이 풀어졌다. "그때 네놈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홍의나찰은 지금쯤 우리 손에 제압당했을 것이다. 그리 고 홍의나찰을 친동생같이 아끼고 있는 무상마녀가 우리 손에 잡혔을 것이다. 네놈이 방해 했기에 만사가 틀어지고 만 것이다." "으음……!" 상관안은 답답해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모든 것은 오해로 인해 빚어진 일이 아닌가? "용기가 있다면 나와 함께 가자!" 흑삼청년이 비위가 거슬린다는 식으로 말하자, 상관안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가 있다면 플어야 한다. 이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고, 그때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말 해 주리라. 그리고 지금 요옥진이 다시 잡혔음을 말해 주리라.'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 한다. 상관안은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소. 나는 두려움이 없소. 어서 나를 안내하시오!" "흐흐… 네놈은 네가 천하제일의 고수인 줄 오해하고 있구나.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마." 흑삼청년이 화난 표정으로 말하다가 위로 날아올랐다. 그가 단숨에 칠 장 날아갈 때, 상관안이 두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십여 장을 전진해 갔다. "엇!" 흑삼청년은 상관안이 자신을 가볍게 추월하자, 경악해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신법을 시전 했다. 휘휙-! 그의 몸이 상관안보다 훨씬 앞서 갔다. 비조천림(飛鳥穿林)에 이른 등공신행(騰公身行). 하나같이 백도명파의 절기들이다. 흑삼청년은 자신의 신법이 상관안을 능가하는 것이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절정의 경신술을 사용하여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렇게 삼 리를 달렸을까? 흑삼청년은 이제 상관안이 백여 장 밖으로 뒤처졌으리라 여기고 발걸음에 속도를 떨어뜨렸다. 상관안이 따라오기를 기다리겠다는 듯. 그때. "하하… 여기에는 인가도 없는데, 왜 멈추시오?" 그 앞쪽에서 상관안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상관안이 흑삼청년보다 오 장 앞에서 웃음을 짓 고 있었다. '귀신 같은 놈. 천녀교에 무서운 고수가 많다더니 사실이군.' 흑삼청년은 자신보다 서너 살 어린 상관안이 자신을 능가한다는 데 화를 내며 상관안이 천 녀교도라 생각했다. '이놈을 죽이리라.' 흑삼청년은 질시에 찬 눈빛을 흘리며 아무 말 없이 다시 길에 올랐다. 어둠을 가르는 두 개의 흑의인영. 얼핏 본다면 친한 친구 두 사람이 함께 달리는 듯한 모습 이나, 사실 두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도 판이했다. 이를 일컬어 동상이몽이라 할 것이다. 상관안은 어떻게 말을 해야 오해를 풀 수 있을까 궁리했고, 흑삼청년은 어떻게 해야 상관안 을 죽일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다시 오 리를 달렸다. 상관안은 흑삼청년 옆에 서서 달리다가 야산 중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사람이 살 곳은 되지 못하는 아주 황량한 곳이었다. 다시 이 리 갔을까? 상관안은 깎아지른 벼랑 아래 이르게 되었다. 흩어진 난석군, 듬성듬성 자라난 고목들. 기이한 안개가 일대를 감싸고 있기에 너무도 황량 해 보이는 곳이다. 일순 상관안의 눈에서 혜성의 빛이 스쳐 나갔다. '육합건곤진(六合乾坤陣)!' 역시 백도의 절진이다. 천녀교에 의해 썰물 빠지듯 사라진 백도의 힘, 그 힘이 아직도 면면 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관안은 안개를 뚫고 절진 안을 살폈다. 단애 아래 청석으로 지어진 석옥 하나가 있었다. 석옥 안에서 아홉 줄기의 호흡 소리가 들 려 왔다. 그가 석옥을 살피고 있을 때, 흑삼청년이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제부터 내가 디디는 곳만을 딛어라. 그렇지 않다가는 기문진에 빠져 고생을 하게 될 것 이다." 상관안은 아무런 내색도 않았다. 그가 일각 내에 육합건곤진을 세 배 능가하는 절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흑삼청년은 상상 초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흑삼청년은 앞서 나갔으며, 절진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호기롭게 장소성을 쳐냈다. "우……!" 장소성이 끝나는 순간, 안에서 걸쭉한 음성이 들렸다. "이제 오는가?" "하하하… 과거 요옥진을 구해 간 천녀교의 절정고수 하나를 벗삼아 데리고 왔다네. 무덤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게나." 흑삼청년의 말이 근처를 침묵시켰다. 갑자기 살기가 일어났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듯한 긴장감이 형성된 가운데 상관안은 흑삼 청년을 따라 석옥 앞에 이르게 되었다. 석옥의 방문이 활짝 열려 있고, 안에서 화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 흑삼에 복면을 한 사람 하나가 정좌(定座)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외 여덟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앞에 한 줄로 늘어서 상관안이 흑삼청년을 따라오는 것을 바라보며 눈빛을 폭사해 냈다. 하나같이 살기에 가득 찬 눈빛이다. 흑삼청년은 상관안을 일 장 밖으로 따돌리는 빠른 걸음으로 띠집 앞으로 가며 방안의 복면 인을 향해 장읍을 취했다. "영주(令主)!" 그가 목청을 길게 뽑자. "일검수(一劍手)! 늦었군." 안에 있던 사람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의 말소리가 긴장되어 약간 떨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상관안의 출현 때문이리라. "같이 온 사람이 누구라고?" 영주라 불린 복면인의 음성은 너무도 차가웠다. 거칠고 낮은 음색, 변성술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음색이 나올 수 없다. "영주! 제가 생각하기에 천녀교의 비밀 고수인 듯합니다. 아주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입니 다. 행적이 신비하고, 귀신 같은 술책을 갖고 있는 위험한 자입니다. 요옥진을 구해 간 자이 기도 합니다." "흠……!" 영주는 그제서야 눈을 뜨고 방 앞으로 다가서 있는 상관안을 응시했다. 왜일까? 영주의 눈빛이 한순간 파르르 흔들리는 것은? 영주는 한성보다 차가워진 눈빛으로 상관안을 응시했다. 바늘 끝처럼 파고드는 눈빛. 무공이 약한 사람이라면 눈알을 찔리는 듯한 고통을 참지 못하 고 고개를 돌릴 것이다. 상관안은 무심한 표정으로 영주의 눈을 마주했다. '저자가 요옥진을 구한 장본인이었군. 알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천녀교 고수들을 죽이지 않았던가? 내가 본 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본 것이 맞는 것인가? 아, 둘 다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천녀교의 적이었다가, 천녀교의 유혹에 넘어가 천녀교의 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주라 불린 자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상관안을 향해 차게 말했다. "귀하는 어떤 사람인가?" "하하… 손님을 청하고 밖에 세워 놓고 말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데?" 상관안은 여전히 태연했다. 살기가 겹겹이 에워싸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내자불선(來者不善)이란 말인가?" 악의를 갖고 왔느냐 묻는 것이다. "하나, 나는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오. 같이 오자 해서 왔을 뿐이오." 상관안은 복면인들의 노기를 부채질했다. "영주! 이자는 필경 천녀교의 고수입니다. 이자를 제압하셔야 합니다." "이자는 장차 천녀교의 높은 지위에 오를 자입니다." 복년인들이 허리를 숙여 가며 목청껏 말하자. "잠깐!" 영주가 몸을 일으키며 두 손을 쳐들자, 중인이 모두 함구했다. 아홉 줄기 시선이 일제히 영주에게 향해졌다. 바늘이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적막한 가운데 영주의 거칠고 낮은 목소리가 근처에 메아리쳤다. "요옥진은 무상마녀의 시비로 무상마녀가 친동생같이 아끼고 있는 여인이다. 요옥진을 잡았 다면 무상마녀가 지금쯤 우리에게 잡혔을 것이고, 천녀제도 잡혔을지 모른다. 그 일은 천재 일우의 기회였는데, 여기 와 있는 자에 의해 망가졌다." 복면인들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영주는 오만한 눈빛을 던지고 말을 계속해 나갔다. "천녀교를 돕는 자는 무림의 공적이다. 의당 제거돼야 마땅하다." 그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하하… 인질을 이용해 천녀제를 잡으려 하다니, 수법의 치졸함이 천녀교 무리들을 무색케 하는구나!" 인질극은 녹림도상의 무리나 쓰는 수단이다. 백도의 무사라면 정당하게 승부를 겨뤄야 한다. 상관안이 비웃는 듯 말하자, 영주의 눈에서 살광이 일어났다. "네… 네가 그렇게 말하다니……." "하하… 너는 천녀제를 두려워할지 모르나, 나는 다르다. 나는 인질로 천녀제를 끌어내는 것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도 오만한 말에 영주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으음, 항마령(降魔令)이 이런 수모를 받기는 처음이군." 항마령. 중원무성이 사라진 후 백도제일인으로 자리잡은 이름이다. 항마령이 무너진 구파의 연맹이라는 소문이 은밀히 나 있지 않은가? "항… 항마령! 네… 네가 바로 항마령주란 말이냐?" 상관안이 얼떨떨해 하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봤다. - 항마령은 항마구검(降魔九劍)과 함께 움직인다. 백도인이라면 항마령에 복종해야 할 것이 다. 선인령이 나타나기 전, 백도의 희망으로 자리잡았던 항마령. 이들이 진정 항마령주 일행이라 면 상관안은 엄청난 결례를 범한 것이다.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상관안은 머릿속이 혼란되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청히 서 있었고, 항마령주는 그를 향해 아주 예리한 눈빛을 흘렸다. 상관안의 미간에 푸른 그늘이 만들어졌다. '항마령과는 싸울 수 없다. 이들이 나를 크게 오해하고 있는 듯하니, 대체 어떻게 오해를 풀 어야 한단 말인가?' 상관안이 할 말을 잃고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요옥진을 구한 이유가 무엇이었더냐?" 항마령주의 입에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요옥진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구한 것이었소." "믿기 힘들다. 홍의나찰 요옥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그녀는 무상마녀란 요사한 계집의 후광을 입고 마치 선녀인 양 행세하고 있다. 무림인으로 홍의나찰 요옥진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항마령주의 눈에서 살광이 피어올랐다. 상관안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이렇게 핍박하다니, 이것은 강호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상관안의 얼굴 표정이 돌같이 굳어졌다. "하하… 항마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의를 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네놈은 협사를 가장 하는 사마외도(邪魔外道) 무리임에 틀림없다" 항마령주의 말이 상관안의 비위를 건드렸다. '사마외도의 무리라고?' 상관안의 이마 위로 굵은 핏줄이 일어났다. 그의 몸 속에는 두 종류의 상반된 내공지기가 흐르고 있다. 흑의선인의 태극선강, 삼마에게 유래된 마공지기(魔功之氣). 삼마의 마공은 이미 완숙할 대로 완숙해졌다. 그가 태극선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마성의 지 배를 받는 마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항마령주는 상관안의 눈에서 마광이 피어오름을 보았다. '지독한 마공을 익힌 자다. 이대로 놔 둔다면 백도의 해악이 될 자다.' 항마령주는 결심을 굳힌 듯 석옥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항마령으로 네놈을 제압하겠다." "나… 나를 제압하겠다고?" 상관안의 눈알에서 혁혁한 정광이 일어났다. "그렇다." 항마령주가 그림자같이 움직여 돌집 바로 앞으로 내려섰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일 장 정도였다. "오만무도한 자군!" 상관안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끊어 말하자, 항마령주 이하 모든 사람이 분기탱천해 마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혈기(血氣)를 막을 것이 그 무엇이겠는가? 두 패거리는 모두 정파인데,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싸움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놈!" 항마령주도 인내하기 힘든 상태가 된 듯 입술을 질끈 깨물다가 주위를 향해 외쳤다. "우리들의 싸움에 절대 끼여들어서는 안 된다!" "예에!" 아홉 명의 흑의복면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고 있던 곳에서 열 걸음씩 뒤쪽으로 물러났 다. 항마구검수(降魔九劍手). 이들은 백도의 구파에서 비밀리에 기린 정예들이다. 공포의 대명사 천녀교를 무서워하지 않는 극소수 무림인들이고, 하나같이 절정고수들이었다. 항마구검수는 항마령주의 무공이야말로 천하에서 으뜸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기에 싸움에 끼여들지 말라는 말에 반박하지 않고 그대로 뒤로 물러나 싸울 자리를 내주는 것이 었다. "어리석은 놈에게는 말로 하기보다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지." 항마령주의 눈에서 푸른 기운이 뻗쳐 나왔다. 한 가지 오묘한 신공을 끌어올리기 때문이었 다. '대단한 내력(內力)을 가진 자군.' 상관안은 삼살과 함께 일령(一令)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항마령주가 절세고수라는 것을 알며 운기하다가 불현듯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난공(李蘭公)이라 했던가? '그는 항마령주와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친구라면 내가 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피를 보지 않고 싸움을 멈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내가 항마령주를 능가하는 고수라는 것을 알린 다음,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상책 일 것이다.' 상관안은 이런 마음을 하고 천룡대승진기(天龍大乘眞氣)라 불리어지는 천룡비급 안의 진기 를 일으켰다. 그의 두 손바닥이 불에 데인 듯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두 눈에서 환한 빛이 뻗쳐 나오기 시 작했다. '놈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의 항마대천신공(降魔大天神功) 아래 뻣뻣이 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항마령주는 단 일(一) 초(招)로 승리하리라 작정했다. 항마령주는 오로지 천녀제만을 적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다. 천녀교의 무사들과 무수한 접 전을 벌였으나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삼살일령 중 항마령이 가장 강하다. 삼살의 무공은 독랄할 뿐, 진실된 무공은 항마령이 최고 이다. 천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인정하고 있었다. 지피지면 백전불패라! 항마령주는 상관안이 매우 강한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절초를 사 용하려 하는 것이었다. 항마령주와 원한을 사기 싫어 살기가 덜한 천룡대승진기를 일으키는 상관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우둑둑-! 항마령주의 장포 속에서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 엇!" 상관안은 그런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럴 수가? 이것은 전설시 된 항마대천신공을 끌어 일으킬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상관안의 뇌리 속을 빛살같이 스치는 것이 있었다. 천하삼대신공 중 하나인 항마대천신공이 그것이었다. 음양무상신공의 주인공인 천녀제에 의해 쓰러진 과거의 천하제일고수 중원무성의 독문무공 이 바로 그것이었다. 항마령주가 그것을 사용하다니? 정체가 비밀이던 항마령주와 중원무성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단 말인가? 상관안이 불현듯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 몸을 휘청일 때, 항마령주는 그것을 호기로 여기며 쌍장을 앞으로 쳐냈다. 그의 두 손바닥이 어느 틈엔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가 상관안을 향해 금빛 기류를 일으켜 냈다. 꽈르르르릉-! 금빛 강기가 노도광란처럼 일어났다. "잠… 잠깐!" 상관안은 그가 중원무성의 전인이 아닐까 놀라워하며 맞받아 치기보다 위로 날아올라 피하 는 쪽을 택했다. 그가 삼 장 떠올랐을까? "어림없다. 피할 수 없다." 항마령주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상관안보다 다섯 자 위로 떠올랐다가 몸을 비틀며 금빛 기류를 더 강하게 펼쳐 냈다. 뇌성 벽력보다 큰소리가 일어났다. "지독하군." 사방에 강기막이 천라지망처럼 펼쳐졌다. 상관안은 몸을 빼낼 수 없다 여기며 입술을 질끈 물었다. '네가 나를 죽이려 하다니…….' 상관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천룡대승진기를 급히 거둬들이며 구유망혼장 공력을 일으키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항마대천신공이 그의 몸을 휘감으며 오장육부가 뒤흔들렸다. 펑-! 가죽 공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상관안이 아래로 퉁겨져 내렸다. 호신강기가 여지없이 무너지 며 오장육부가 뒤흔들렸다. 상관안은 급기야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게워 냈다. "지독하군!" 그가 금강불괴지신이 아니었다면 이번 일 장에 반년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중상을 입 었을 것이다. 상관안은 서둘러 진기를 일주천시켰다. 단해에서 무한한 힘이 솟구쳐 오르며 전신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상관안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직전, 운룡반등의 식으로 몸을 날아올렸다. 그의 장심은 어느 틈에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상관안이 날아오르자 항마령주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네… 네놈이 항마대천신공을 몸으로 받아 내다니……." 항마령주는 너무도 놀라 두 손을 축 내리뜨렸다. 그는 십 성의 공력으로 항마대천공력을 일으켰었다. 천녀제라 할지라도 맨몸뚱이로 그것을 받아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아연실색할 때, 녹색 장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상관안이 입가에 피를 매단 채 그 바로 곁으로 들이닥치며 구유망혼장을 끌어올린 손바닥으 로 그의 앞가슴을 강타했다. 항마령주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빠른 움직임이었다. "엇!" 항마령주는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끼며 눈을 꾹 눌러 감았다. 녹색의 강기가 그대로 앞가슴 으로 파고들었다. 펑-! "아악!" 항마령주는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내며 위로 날아올랐고, 상관안은 승리를 기뻐하기는커녕 망연자실해 하는 표정이 되어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 다. '이럴 수가……?' 상관안이 기겁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항마령주의 앞가슴을 때릴 때 물컹 하는 촉감 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남정네들은 가질 수 없는 것, 여인 특유의 젖가슴을 때릴 때의 촉감이 방금 전 항마령주의 앞가슴을 때릴 때 손바닥에 전해졌던 것이다. '항마령주가 여인이었단 말인가?' 상관안이 얼떨떨해 할 때, 항마구검수들이 근처로 밀려들었다. 그들 모두 비분강개한 표정이 었다. "고약한 놈! 악독한 수법을 사용하다니… 죽음을 각오하고 네놈을 여기 파묻어 버리겠다." "네놈이 일 장을 그냥 받아 내 영주의 자비심을 일으킨 후, 악독한 수법으로 반격하다 니……." "더러운 놈! 네놈이 필경 몸을 보호하는 옷을 입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항마대 천신공 아래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네놈의 옷이 천잠사로 된 옷이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주 가 네게 속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원통해 치를 떨며 포위망을 좁혔다. 한순간 검진이 형성되며 일대가 살기로 뒤덮였다. 상관안은 난처한 표정으로 석상이 된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한순간의 노기를 참지 못하 고 마공을 일으킨 것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항마령주는 백도의 기둥이다. 그를 쓰러뜨렸다는 것은 백도의 공적으로 화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상관안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바닥으로 떨어진 항마령주는 고통에 찬 신음 성을 연신 토해 내고 있었다. 항마구검수 중 둘이 공력을 주입하고 있었으나, 그의 상세는 더욱 심해졌다. "아악!" 항마령주는 처절한 비명성을 토하며 몸을 비틀었다. 몸이 새우처럼 움츠려 들었으며, 복면인 이 게워 낸 피로 벌겋게 얼룩졌다. 왜 그리 괴로워하는지 자세한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상관안뿐이었다. 구유 망혼장에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큰일이다. 한순간의 분기를 참지 못하고 구유망혼장을 사용했으니… 내가 아니면 항마령주 를 구해 낼 수 없다.' 상관안은 어떤 결심을 한 듯 한 걸음 움직였다. 순간, 포위하고 있던 검진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폭풍을 능가하는 진풍이 일어났으며, 회오리를 이루며 다가왔다. 상관안은 조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백 명의 항마검수가 있다 해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상관안의 전면에 자리잡은 항마검수 둘은 상관안이 진세를 헤치며 다가오자, 불현듯 공포를 느꼈다. "으, 무공이 영주를 능가한단 말인가?" "지독한 놈!" 그들이 주춤거릴 때, 상관안이 일 장 앞으로 다가섰다. 상관안은 항마검수를 힐끗 바라보다 가 소매를 크게 흔들었다. "물러나시오!" 호통 소리와 함께 소매 안에서 흰 기류가 일어났다. 경미한 바람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에 실려 있는 힘은 항마령주가 상관안을 때릴 때 사용했던 항마대천신공의 힘에 비해 세 배가 되는 것이었다. 무형의 경력이 다가오자 검진이 출렁거렸다. "어… 엇!" "이놈이 사술(邪術)을 쓰다니……." 두 명의 항마검수가 바람에 휩쓸리는 가랑잎같이 되어 날아올랐으며, 상관안은 섬전보다 빠 르게 항마령주가 있는 쪽으로 신형을 폭사시켰다. 검은빛이 흐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항마령주를 호위하고 있던 항마검수 둘이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상관안의 조급한 말소리와 함께 두 명의 항마검수들이 좌우로 퉁겨 나갔다. 상관안은 그 순 간 항마령주를 오른팔과 허리 사이에 끼어 들고, 검은 솔개같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상관안은 한순간 중인의 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모든 것은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쫓아라!" 항마구검수들이 그제서야 추적을 시작했다. "놈은 기문진의 통과법을 모른다. 쫓아가면 놈을 잡을 수 있다." "영주를 구해야 한다!" 항마검수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조급히 서둘러 상관안이 사라져 간 방향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상관안은 항마령주를 낚아챈 후, 기문대진을 통과해 양자강 근처 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다. 항마검수들이 쫓지 못할 절세신법으로.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