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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처참한 신세 내장이 온통 뒤집히는 듯한 분노를 느끼면서 소대풍은 냉랭히 웃으며 말대꾸만 했다. “우리 형제는 무공의 고하에 있어서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소.” 그러자 남의소녀가 놀라운 말을 했다. “야월광명지신도 소대호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것 아니오?” 이 말에 월광검 소대풍을 비롯해서 장중 군호들의 얼굴빛이 일변하였다. 그리고 수십 개 예리하고 냉철한 눈길이 소대풍의 여우같은 얼굴을 노려보았다. 소대풍이 돌연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이 계집애야! 말을 좀 분별되게 하란 말이야!” 남의소녀의 분에 넘친 목소리가 울렸다. “이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감히 나에게 욕을 하다니… 그 볼떼기가 퉁퉁 부어오르지 않도록 조심하란 말이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한바탕 너털웃음소리가 울렸다. “허허허허… …” 장중의 여러 사람들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을 때 이미 월광검 소대풍이 누구에겐가 철썩철썩 따귀를 얻어맞고 있는 중이었다. 장중의 무림 고수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소대풍의 뒤에 체격이 큰 노인이 서 있었다. 그 노인은 백설같이 흰 머리에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으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옆구리에 쇠지팡이를 끼고 있었다. 백발노인은 다시 오른손을 소대풍의 등에 대고 왼손으로 소대풍의 따귀를 여섯 번이나 쳤다. 그러자 소대풍의 늙은 얼굴은 즉시 퉁퉁 부어올랐다. “호호호!” 남의소녀는 은방울 굴리는 듯한 소리로 크게 웃고 나서 말하였다. “늙은 여우! 내 말이 참으로 신기하게 맞지 않소? 호호호… …” 그런데 그녀가 소대풍이 당하는 고통을 통쾌히 여기며 웃는 소리를 그치지도 못했다. “아이고!”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이어서 남의소녀 역시 철썩철썩 따귀를 맞았다. 그리고 냉엄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야만스러운 여자! 너도 맛 좀 보아라, 어떤지… …” 너무나도 느닷없고 빠른 속도로 전개된 일이라 장중의 여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남의소녀를 때린 사람을 보았다. “앗!” 장중의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일제히 일어났다. 그것은 남의소녀의 따귀를 때린 사람이 바로 비류신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류신이 사경에 이르러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것으로 여겼던 차에 불쑥 튀어나와 남의소녀를 때리는 것을 보고 정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놀라는 한편으로 비류신의 재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색혈마도 매우 놀랐다. 비류신이 소생해서 거동을 하는 일도 그러려니와 사태가 급변하는 데 더욱 놀란 것이다. 남의소녀는 비명을 질러대며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분한 생각과 치욕스러운 생각에 견딜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당신이… 나를 때렸어요.… 이제 당신의 몸은 가루가 될 것이오!” 그녀가 악을 쓰는 소리는 장중의 여러 고수들의 귀를 따갑게 하였다. 백발노인은 그녀의 말을 듣자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느 놈이냐?” 그는 말소리와 함께 몸을 날려 비류신에게 덮쳤다. 쇠지팡이로 궐풍광소(厥風狂嘯)의 일 초를 발휘하였다. 이 일 초는 위세가 놀랍고 무서웠다. 장중의 고수들은 마치 자신들이 그 초식을 대하는 듯 움찔했다. 그러나 비류신은 백발노인의 공격에도 몸을 물리지 않고 오히려 번개처럼 마주 달려들었다. 동시에 손을 들어 백발노인의 왼쪽 어깨를 탁 쳤다. 날센 일격이었다. 신법이 번개처럼 빠르며 담력이 초인적인 반격이었다. 백발노인은 천만 뜻밖의 기습을 당한 셈이었다. 여러 고수들도 비류신의 그러한 기습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그저 경탄의 소리를 연발하였다. 백발노인은 비류신의 일격을 맞자 크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리고 커다란 체격은 대여섯 자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 광경을 본 월광검 소대풍은 백발노인에게 당한 분함이 되살아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치 욕스런 생각과 분노를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류신에게 일격을 맞기는 하였으나 백발노인은 굴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쇠지팡이를 휘둘러댔다. 그는 큰 소리를 지르며 마치 한 마리의 뱀을 취급하듯 쇠지팡이를 잇달아 휘두르고 있었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월광검 소대풍의 장검과 백발노인의 쇠지팡이가 맞부딪쳤다. 부딪치자마자 쇠지팡이에서 예리한 빛이 발산되자 소대풍은 몸을 움찔하였다. 그는 힘을 가다듬고 상대방의 쇠지팡이를 손에서 떨어뜨리도록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백발노인의 쇠지팡이에는 강대무비한 힘이 있어 소대풍은 그 힘에 눌려 오히려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때 남의소녀가 힘은 없으나 원한 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둘째 사형, 빨리 화골신공(化骨神功)으로 저 더러운 사내를 가루가 되도록 쳐 부셔주세요.” 화골신공이란 말이 남의소녀의 입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가슴이 뜨끔한 기색을 보였다. 여러 고수들은 어디선지 그런 공부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으나 생각을 해내지 못하던 차였다. 백발노인은 남의소녀의 말을 듣자 위맹한 기세로 왼손을 들어 비류신을 향해 후려쳤다. 그러자 청색혈마가 소리쳤다. “비류신! 빨리 물러나라!” 그녀는 소리를 지르는 한편 재빨리 오른손을 들어 한 가닥 거대한 한풍(寒風)을 내쳤다. 그 힘은 부드러우면서 뼈에 스미는 힘이었다. 그런데 고집이 센 비류신은 벌써 앞으로 두 걸음 나와 두 손을 앞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비류신의 비명이 크게 울렸다. 그 찰나, 그는 전신을 크게 떨다가 땅에 쓰러졌다. 그는 가슴의 온 피가 뭉쳐 도는 것 같았고, 귀에선 윙윙하는 굉음이 울리자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것이다. 청색혈마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류신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신… 비류신! 비류신!” 하고 부르짖는 그녀의 음성은 처절하기조차 하였다. 한편 월광검 소대풍은 백발노인의 쇠지팡이에 맞아 장검을 번쩍이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뒤이어 청색혈마의 장력에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백발노인의 머리 위에 이르렀다. 그를 본 백발노인은 왼팔을 들어 거대한 장력으로 맹렬히 그를 뿌리쳤다. 월광검 소대풍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일장이 산도 흔들어 놓을 수 있을 만큼 지독한 신공임을 알기 때문에 얼른 장검을 거두고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때 한쪽에서 이런 광경을 보던 흑도삼괴와 마곡인 마대부가 차가운 웃음을 띠고 백발노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각기 병기와 장풍으로 사면에서 맹렬히 백발노인을 공격하였다. 백발노인은 소대풍을 뿌리치고 난 뒤라 그대로 몸을 돌려 네 사람의 공격을 맞이하였다. 위풍이 비길 데 없는 백발노인은 오른손으로 쇠지팡이를 휘두르며 횡소천군(橫掃千軍)의 초식을 전개하여 예리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 사람은 머릿수를 믿고 일시에 달려들다가 백발노인이 흉맹한 기세로 반격하자 뒤로 쫓긴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장중의 여러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흑룡강 일파 세 사람의 남자와 네 사람의 여자가 무공이 절고하고 기세가 웅위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 일곱 명의 남녀가 중원 무림을 뒤집어 놓겠다고 할 만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가 없어지자 백발노인은 위세도 당당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크게 소리쳤다. “어느 사람이든 자신 있으면 이리 나와 보시오.” 그의 말이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릴 때 무림칠절 중 여섯 번째 고수인 신독괴살수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귀하의 무공은 가히 고수라 할 수 있겠는데 노부와 몇 초 겨루어 봅시다.” 백발노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신독괴살수를 한 번 훑어보고 나서 냉랭하게 말하였다. “지금 장중에 있는 사람들 중 당신의 무공이 제일 높은 거요?” 신독괴살수는 소리 없이 차가운 웃음을 짓고 응답했다. “천만에요. 별로 차이가 있는 사람이 몇 안 되오.” 백발노인이 고개를 끄덕일 때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몹시 불만스러운 투로 신독괴살수에게 욕을 했다. “늙은 괴물아, 남을 얕잡아 보지 마라.” 신독괴살수가 고개를 홱 돌리며 응수하였다. “소대가리 같은 작자야! 불만이라면 다음날 다시 한 번 싸우면 되지 않겠느냐?” 순천진인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흥! 말 잘한다. 우리 무림칠절이 십팔 년 후 오늘에는 거의 죽고 몇 사람 안남을 것이지만 그래도 다시 한바탕 싸워야 할 걸!”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을 때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백발노인이 신독괴살수에게 다가가며 쇠지팡이를 휘둘러 연달아 공격했다. 매 초마다 신독괴살수의 요혈을 찔러갔다. 백발노인이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강맹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신독괴살수는 어쩔 수 없이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났다. 오른손으로 검은 쇠지팡이를 돌리는 백발노인은 서서히 몸을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검은 쇠지팡이의 그림자가 익공관주 순천진인의 머리 위에 덮쳤다. 순천진인도 기겁하고 뒤로 물러났다. 무림칠절 중 두 사람을 물리친 백발노인은 조금로 피로한 기색 없이 쇠지팡이를 짚고 서서 통쾌하다는 듯 웃어 제겼다. “아핫핫핫… …” 그의 웃음소리는 마치 수만 마리의 말이 일시에 내닫는 듯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의 귀를 멍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의 웃음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신독괴살수가 호통을 쳤다. “이 무슨 건방진 거동이냐!” 호통소리와 함께 몸을 날려 백발노인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쇠지팡이를 확 잡았다. 그 빠른 동작은 실로 번개같았다. 백발노인의 오른손이 흔들렸다. 그러나 쇠지팡이를 신독괴살수에게 빼앗기지는 않았다.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노기가 떠올랐다. “우웃!” 그는 날카로운 고함에 이어 승풍파랑(乘風破浪)의 초식을 전개하여 왼손으로 신독괴살수를 쳤다. 신독괴살수는 백발노인의 쇠지팡이를 탈취하려다 실패하자 곧 손을 들어 내치려 하였으나 선수를 빼앗겼다. 백발노인의 일장을 받자 그는 석 자 밖으로 피했다. 백발노인의 강렬한 장풍이 세 차례 불자 땅의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신독괴살수는 빙긋이 웃으며 극히 기묘한 몸가짐을 한 채 거대한 장력을 내쳤다. 백발노인은 소리를 지르며 그 장세를 피했다. 신독괴살수의 장풍에 다시 땅에서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어떻소, 중원의 무공이… …” 백발노인은 그가 하는 말은 들은 체 하지 않고 그의 왼쪽을 공격했다. 신독괴살수는 웃는 낯으로 손을 들어 받아 넘겼다. 서로의 힘이 부딪치자 신독괴살수의 양 어깨가 흔들렸다. 다음 순간 그는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났다. 백발노인도 몸을 약간 흔들다가 역시 뒤로 두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이 장력의 접전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공력을 알게 되자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하였다. 서로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기만 하였다. 이즈음 청색혈마의 품에 안겼던 비류신은 청색혈마가 정성껏 문질러준 덕택으로 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눈을 뜬 비류신은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청색혈마을 보고 의아하면서도 감사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청색혈마의 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힘없이 말했다. “여협께서 누구신지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저를 도와주신 점에 깊이 감사하며… 그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이 비류신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건너편에 있던 남의소녀가 재빨리 받았다. “당신은 아까 나의 둘째 사형의 화골신공에 맞았으니 몇 시각만 지나면 뼈가 가루로 화해서 죽을 텐데 무슨 은혜를 갚는다는 거예요?” 청색혈마는 비류신의 말에 대답을 하려다가 남의소녀에게서 이런 소리를 먼저 듣게 되자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비류신이 남의소녀를 향해 원망스럽다는 투로 대꾸했다. “잘 기억해 두오. 이 비류신이 죽지만 않으면 반드시 당신들 흑룡강 사람들을 모조리 처치해 버릴 테요!” 남의소녀는 가소롭다는 듯 웃고 대답했다. “호호호. 기다리고 있겠어요.” “좋소! 두고 보면 알리다.” 비류신은 이렇게 말한 다음 청색혈마, 고화룡, 선우철을 두루 바라보았다. 연후에 돌연 아무런 말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청색혈마가 애처로운 음성으로 비류신에게 말을 건넸다. “비류신, 어디로 가는 거요?” 비류신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지금 나는 온몸의 피가 뒤집히는 것 같고,그래서 어디든지 가서 쉬어야겠습니다. 만약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된다면 당신의 은혜를 꼭 갚겠소이다.” 청색혈마는 눈물을 흘리며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말했다. “비류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비류신이 죽는다고 해도 나는 강호의 모든 고수들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입니다.” 비류신은 그녀의 말을 듣자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처참한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는 한편 청색혈마가 자기에게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가지는 점에 의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류신이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려고 할 때 선우철이 급히 다가갔다. “비형, 어디로 가려는 거요?” 비류신은 처량한 얼굴로 그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무엇인지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다 죽게 된 몸이오. 어디로 갈 것인지 나도 모르고 있소.” 이때 또 남의소녀가 끼어들었다. “풍수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서 자기의 시신을 묻으려는 거겠지요.” 비류신은 그녀의 말에 금세 노기를 띤 눈을 들었으나 곧 생각을 달리한 듯 선우철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선우형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들어주겠소?” “그야 내 힘이 닿는 데까지야 무슨 일인들 들어주지 못하겠소?” 비류신은 선선히 승낙하는 선우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만약 내가 죽거든 홍부용 아가씨에게 소식을 좀 전해 주시오.” “그런 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소. 조금도 걱정 마시오!” 선우철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죽으라는 말을 하려다가 간신히 삼키고 이렇게 말하였다. 비류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처량하게 웃었다. “선우형, 우리는 비록 평범하게 만났지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구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 짧게 끝날 줄이야… …” 3권으로 이어집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즣독 ㄳ
즐독 ㄳ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