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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번째 금강경 18-2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恒河中所有沙를 佛說是沙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說是沙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一恒河中所有沙하야 有如是沙等恒河어든
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 如是寧爲多不아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爾所國土中所有衆生의 若干種心을
如來- 悉知하나니 何以故오 바닷물과 고기/ 비행기
如來說諸心이 皆爲非心일새 是名爲心이니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過去心도 不可得이며
現在心도 不可得이요 未來心도 不可得이니라
* 낱자 공부
爾너 이, 그 이, 저 이, 干방패 간, 얼마 간, 種씨 종, 寧편안할 녕, 어찌 녕
種씨 종, 종류 종, 如같을 여, 어찌 여, 어조사 여,
* 단어공부
· 衆生의 若干種心을 如來- 悉知하나니
중생들의 마음을 여래는 다 안다.
본래 마음은 생각하기 이전으로 사람마다 같고,
경계 따라 일어나는 마음은 읽는 연습을 많이 하면 알 수 있습니다.
중생들은 분별심을
부처들은 본래심을
· 三心不可得 ~ 過去心(과거심)은 지나 버려서 얻을 게 없고, 未來心(미래심)은 오지 않아서 얻을 수 없으며,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現在心(현재심)도
역시 말하는 순간 이미 지나버린 過去心(과거심)이 되어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예) 주금강 - 덕산스님이 용담스님 點心
* 해설
과거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지나간 경계에 일어난 마음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가지고 있다면 주착심입니다.
미래의 마음은 아직 있지 않기 때문에 얻을 수 없습니다.
가상해서 걱정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마음은 경계따라 일어난 마음입니다.
이 마음도 이 경계에 맞는 마음이지 경계가 바뀌면 맞지 않습니다.
어디에 점찍을 마음이 없습니다.
중생들은 순간의 마음에 집착을 하고 거기에 매달리고 울고불고 합니다.
일어난 마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품에서 나오고
그 성품을 알고 마음이 변하는 원리를 알면
모든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산스님과 용담스님
금강경의 대가로 불리던 덕산스님이 “남방에 스님들이 마음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고 한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만나서 불법의 요체를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등에는 자신이 지은 금강경 풀이서를 짊어지고, 용담스님이 사는 절 밑에 이르니 마침 점심때가 되어 만두를 파는 집에 들어갑니다. 노파가 “스님 등에 짊어진 것이 무엇인데 그리 무겁게 등짐을 하고 다니십니까?” 하고 물으니 “이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골수를 적은 것인데 ‘금강경소초’라 하지요. 그나저나 내가 먼 길 오다 보니 점심때라 배가 고프니 만두나 한 그릇 주시오” 하니 노파는 “예 스님 행색이 고단해 보이시는데 무거운 등짐부터 내려놓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두 맛 하면 저희가 이 근동에서 제일입니다. 참으로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떤 일로 오셨나요?” 하고 물으니 덕산스님은 “내가 듣자니 남방의 불자들이 경은 볼 줄 모르면서 마음을 깨쳐 부처를 이룬다고 하기에 용담스님을 만나보고, 문답을 하려고 합니다. 노파는 “그런 깊으신 뜻이 계셨는데 잘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저도 틈틈이 금강경을 읽고 있는 불자인데 스님께 제가 한 가지 여쭈어보고 싶은 말이 있으니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같은 촌로가 알아듣게 대답을 하시면, 만두를 그냥 드리는 게 어렵지 않지만, 만약 못하시면 그냥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하고 말하는 노파에게 “금강경이야 내가 최고인데…….” 하며 “그렇게 해 보시오” 하고 덕산스님이 답합니다. “금강경을 읽다 보니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 하여 삼세 심을 가히 얻을 수 없다 하신 부분이 있으니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 노파의 물음에 주덕산스님은 입이 막힙니다.
덕산스님은 노파의 떡을 얻어먹지 못하고, 용담스님이 계신 용담사로 갔습니다. 덕산과 용담, 두 스님은 밤늦게까지 법담을 주고받다가 덕산스님이 자러 가기 위해 방을 나와 보니, 바깥이 캄캄해서 용담스님에게 등불을 요청했습니다. 용담스님이 등불에 불을 밝혀 건네주었는데, 덕산스님이 받으려 하자 훅 불어서 등불을 꺼버렸다. 등불로 눈앞이 환하게 밝았다가 순식간에 다시 칠흑같이 캄캄해져 버렸다. 그 순간 덕산스님은 홀연히 크게 깨치고 절을 하였습니다.
원기 109년 5월 4일
경계 : 언니의 잔소리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좀 쉬고 싶어서 3일간 휴가를 받았다. 일하는 가게에 출근하지 않고 3일을 쉬었다. 잘 쉬고 잘 놀고 4일 날 출근을 하니 주인 언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신다. 네가 없으니 손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피곤도 하다면서 스트레스를 나한테 푼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몇 번을 미안하다고 하는데 잔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냥 쉰 것도 아니고 허락을 받고 쉬었는데 잔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감자를 까는데 엄지손가락이 아프고, 파채를 만드는데 눈이 맵고, 양파도 까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손님은 들어오고 미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속 잔소리를 해댄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대꾸도 안 했다. 짜증도 나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만 더하면 짜증 나서 그만둔다고 하고 싶었다. 에~휴 한숨을 쉬고 있으니 갑자기 언니가 조용하다. 그때 언니가 내 눈치를 본다. 그리고는 이러고저러고 해서 좀 힘들었다고 조용히 말씀하신다. 잔소리할 때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짜증만 올라왔었다. 그때는 경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언니의 잔소리가 싫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하던 일만 하였다. 조금 진정하고 생각해보니 언니 성격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짜증 나서 언니에게 그만둔다고 말하였다면 언니도 속상했겠구나!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하려 하니 힘들었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구나! 혼자 일하느라 고생하신 언니를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언니 오늘은 좀 쉬라고 하고. 내가 다 하겠다고 했더니만 그러라 하신다.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돌리니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잘 쉬는 동안 언니가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언니한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내 마음을 전하고 더욱 열심히 할게요 하였다. 그리고는 마주 보고 웃었다. 어찌 되었든 언니를 사랑한다.
교무의 의견
갑자기 경계를 당하면 경계인 줄 모르고 습관적으로 대응을 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취사를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요란한 마음이 좀 안정이 되면 경계도 알 수 있고 대처하는 법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3일 휴가를 보내다 출근을 했는데 보자마자 주인 언니가 잔소리하니 듣기 싫다 짜증 난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지요. 자기가 가라고 해놓고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주인 언니의 갑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한번 쏘아 부쳐볼까 그만둔다고 할까 여러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경계 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찾아보는 것이 마음공부입니다.
이런 경우에 나도 모르게 반응을 하는 것은 변명입니다. 나의 방어기제를 찾아내어 막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방패로 자기를 가리는 것처럼 숨게 되거나 같이 공격을 하기도 하지요. 그러면 벽이 생기고 악연이 싹트게 될 것 같습니다. 이때 말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자를 까는데 엄지손가락이 아프고, 파채를 만드는데 눈이 맵고, 양파도 까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손님은 들어오고 하는 말들은 혼자서 하려고 하니 엄청 힘들었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혜정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들게 일한 것을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둘이서 하던 일을 혼자 하려면 왔다 갔다 분주하고 잠깐도 쉬지 못하고 피곤함에 지쳐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애를 썼는데 누가 알아주는 이 없으면 아쉽지요. 그래서 만나자마자 하소연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을 읽지 못하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잔소리가 많다고 나 나가라는 뜻이냐고 이렇게 대답을 한다면 서로 거리감이 생길 것 같습니다.
한참 말을 하다가 어느 정도 하고 나니 그치게 되고 요란한 마음이 다소 누그러지니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잘못했다고 탓하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니 미소를 짓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한 형제자매라 하셨으니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소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5월 7일
경계 : 창피함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일과가 시작된다. 4시 30분 가게에 출근하여 일과를 시작한다. 먼저 식당을 열 준비를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어떤 때는 2시간도 걸린다. 오늘은 언니가 사오신 생선을 다듬어야 한다고 하셔서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있는 가위를 사용하였는데 갑자기 큰소리로 ‘야 그 가위 쓰면 어떻게 해’ 하시는데 창피하였다. 손님들이 두 테이블이나 있는데 큰소리로 화를 내니 손님들도 놀라는 눈치다. 한 손님이 사장님한테 화나셨나요 하고 물어보신다. 아니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오래 있었으면서 애가 아직도 나를 열받게 하네요’ 한다. 내가 이 가위 쓰지 말라 했는데 생각 없이 쓴다면서 화를 낸다. 정말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참 주인 언니 너무 한다는 생각에 뛰쳐나가고도 싶었다.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세 풀린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한다. 정아야 출출하지? 뭐 먹을까 이러신다. 순간 웃음이 나면서 네 언니 하고 대답을 하였다.
잠시 뒤에 숨을 고르고 진정하며 생각해 본다. 경계로구나 언니는 아무 생각 없이 얘기했을 것이다. 가위의 용도가 있어서 그 가위는 생선 다듬는데 사용하면 안 되는 가위인가 보다. 내가 애도 아닌데 애들 나무라듯이 큰소리로 화를 내실 게 뭐람. 용도가 다르다고 말을 하면 알아듣고 다음에는 그리 안 할 것인데 그렇게 화를 내시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말을 하니 속상한 마음이 좀 수그러든다.
사람이 있건 없건 듣는 사람이야 무안하건 말건 고려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것은 습관이다. 특히 성질이 급한 사람은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말부터 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언니가 큰 소리로 말하더라도 내가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그냥 지나가는 일이다. 그 상황에서 언니의 마음을 읽고 가위의 용도가 있는데 내가 잘 몰랐군요. 이렇게 말하면 그러냐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호숫물에 돌을 던지면 한쪽에서 잔물결이 일지만 작은 동이 물에 돌을 던지면 물이 밖으로 나오고 동이도 깨지려는지 모른다. 내가 마음을 넓게 쓰면 언니의 말은 작은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고 나는 요란하지 않을 수 있다. 여유가 있게 부드러운 말로 잘 몰랐다고 했다면 손님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아마도 손님들은 나를 응원 할 것이리라.
주인이라도 점원에게 큰소리를 지르는 것은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언니도 좋은 습관을 지니려면 분위기 좋을 때 언니에게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전달법으로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언니를 비난하거나 비평하지 않으면 진심이 통하리라 생각한다.
나도 주의하여 가위를 아무거나 사용하지 않고 용도에 맞게 사용하리라. 나에게 일자리를 주고 급여를 주어 나를 살리는데 나도 언니를 위하여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교무의 의견
매일 매일 식당 일하시느라 애쓰십니다. 하고 싶어서 하거나 내 살림이라면 힘들어도 참을 수 있으나 남의 집에서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뜻대로 하지 못하고 또 내 생각에는 괜찮은 것도 주인의 생각이 다르면 못 하게 되고 누구를 좀 챙기고 싶어도 주인의 눈치를 보게 되지요?
오늘도 가위를 사용하다가 거기에 쓰는 가위가 아니라고 큰 소리를 들었네요. 내가 이 집 아니면 아르바이트할 데가 없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지요. 그리고 이 정도를 못 참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지요. 그리고 주인 언니가 원래 성질이 급하여 그렇지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도 들지요. 만일 나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알면 아무리 심한 말을 하여도 노엽지 않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번 습관이 되면 그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쳐야겠다는 굳은 마음이 있어야 하고 습관이 들기까지의 기간을 노력하여야 한답니다. 아마도 주인 언니는 큰소리치는 버릇이 들은 것 같습니다. 고치기 힘들 것입니다.
언니의 성격을 알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어떤 대는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소리치다 악업이 많이 쌓이면 두고두고 그 고액을 어찌 받을 것인가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언니의 성격을 알고 나를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언니를 위해서 그리고 뒤에 똑같은 경계를 당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나에게 들었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도 한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그때 그 경계에서 일어났던 마음을 전달하면 주인 언니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어쩌면 조심하려는 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 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피라는 대종사님 말씀을 되새기면서 내가 조심하고 내가 마음을 더 여유롭게 쓰
고 내가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것은 좋은 일 같습니다.
원기 109년 5월 7일
경계 : 작은딸이 오겠다는 말
작은딸이 토요일에 내려와서 토요일 저녁 다시 올라간다는 연락이 왔다.
난 처음에는 딸이 온다고 하니 기쁜 마음에 몇 시에 오냐고 연락하다가 작은딸의 피곤함이 보인다. 요즘 회사 현장이 바빠 토요일 하루 쉬는데 이모들도 오고 어버이날도 다가오니 하루 다녀오려고 하나 보다. 그런 딸의 마음을 보니 그것도 또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바쁜 상황에 온다고 하니 처음에는 본다는 마음에 너무 기뻤고 설렜는데, 그러면 네가 너무 힘들 것 같으니 그 마음 고이 접어서 편한 시간에 봐도 좋을것 같아~~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하루 쉬렴~~" 그랬더니 작은딸이 그래도 되냐면서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나야 고맙지라고 한다.
"우리 이제 편하게 살자~~, 무리 되면 서로 이야기하고 몸이 편해야 기쁘게 만날 수 있지~~" 이렇게 내 마음을 정확히 보고 전달하니 서운함도 당연함도 없어진다.
교무의 의견
서울에 있는 작은딸이 어버이날이라 토요일에 내려와서 인사라도 드리고 가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녀들을 늘 옆에 두고 싶고 멀리 있을 땐 언제오나 기다려지기도 하지요. 특히 어버이날인데 온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요.
회사일로 바빠서 이틀을 빼기는 어렵고 토요일 하루라도 부모님께 가서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그 마음은 고마운데 그 먼길을 잠깐 보고 또 올라가야 하는 걸 생각하면 딸이 많이 피곤할 것 같지요.
두 마음 중에 딸의 형편을 생각해서 오지 말라고 하셨네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취사를 하면 그것은 배려입니다. 배려를 받으면 아마도 고마움 마음이 일어나리라 봅니다.
우리는 예의를 생각하다 할 말을 못하고 속앓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 간에는 마음을 열고 소통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고 서로 배려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5월 7일
경계 : 남편과 같이 교당에 다니는 것
남편과 같이 교당에 다니는 것이 소원이었다. 올해부터 남편이 교당에 매주 다니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남자 5단에 편성되었다. 처음엔 소원이었던 교당 생활이 불편함으로 생각되어졌다. 허리 아파서 한 달 반쯤 교당 법회를 안 갔더니, 이제 또 안 가려는 이유를 생각해 내고, 나더러 아프니 그냥 유튜브 법회를 대신하라 한다. 그런 남편의 마음이 또 멀어질지 봐 아파도 교당 법회는 쉬지 않았다. 이 또한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본인의 신성도 중요하지만, 주위의 보살핌도 못지않게 중요함을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아프면서 교당에 나가지 않고 쉬었다면, 나 또한 교당을 멀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 때문에 나도 또한 교당을 쉴 수 있는 상황을 면하게 되었음이다. 내가 남편을 이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도 나를 이끌어 주었구나~~ 이렇게 서로가 서로서로 위해주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일어나는 순간순간을 잘 보아 나를 살피면 모든 것은 내 분별로 만들어 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그 분별을 인정해 주면 나도 편안하고 상대도 편안해지네~
교무의 의견
남편과 함께 교당다니는 것을 오랫동안 염원했는데 이루어지셨군요. 누구에게나 편하고 싶고 쉬고 생각은 있습니다. 그런데 도방이 있어 함께하면 내가 게을러질 때 손잡아 주고 남편이 쉬고 싶을 때 함께 가니 교당에 안 바지고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이생에 가까운 인연인 남편과 도반으로 공부하면 세세생생 좋은 인연으로 서로 도우며 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록
경허(鏡虛)선사의 임종게(臨終偈)입니다.
心月孤圓 (심월고원) 마음 달이 외로이 둥그니
光呑萬像 (광탄만상) 빛이 만상을 삼켰어라
光境俱忘 (광경구망) 빛과 경계를 모두 잊으니
復是何物 (부시하물)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반산보적(盤山寶積) 스님의 글을 경허스님이 인용하여
임종게를 하신 것입니다.
반산보적(盤山寶積) 스님의 글
心月孤圓 (심월고원) 마음달이 외로이 둥그니
光呑萬像 (광탄만상) 빛이 만상을 삼켰어라
光非照境 (광비조경) 광명이 경계를 비치지 않고
境亦非存 (경역비존) 경계 또한 있는 게 아니네.
光境俱亡 (광경구망) 빛과 경계가 모두 없어지니
復是何物 (부시하물)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마음 달이 외로이 둥글다는 말은
마음 달은 본래 마음(성푼을 뜻하는 것)이고
외롭다는 것은 짝한 것이 없기 때문에 즉 하나이기 때문이고
둥들다는 것은 원만구족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빛이 만상을 삼켰다는 말은
빛은 성품에 있는 영지를 뜻하고
만상은 드러난 모든 것을 의미하며
삼켰다는 것은 빛을 비추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즉 영지가 분별을 일으켰다는 말입니다.
광명이 경계를 비추지 않는다는 말은
영지가 경계를 비추지 않는 다는 말로
경계가 있어도 영지가 분별하지 않으면
경계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풍랑이 있어도 잠을 자고 있으면
풍랑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영지가 있어도 경계가 없으면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빛과 경계가 모두 없다는 말은
영지도 없고 경계도 없으면
성품 그 자체만 있는 것이요
성품 그 자체가 일원입니다.
그 일원을 굳이 표현하라면 일원상을 그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는 말은
한 생각 내기 이전에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으나
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참회게 懺悔偈
아석소조 제악업 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 탐진치 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 지소생 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 개참회 一切我今皆懺悔
죄무자성 종심기 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 죄역망 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 양구공 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 진참회 是卽名謂眞懺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