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제가 유학을 떠나기 전 아버지와 저녁 산책을 할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하늘에 뜬 둥근 달을 가리키시면서 저 달은 네가 유학을 가더라도 그 곳에서 너도 보고 이 곳에서 아빠도 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순진하게 그렇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차를 생각하며 내가 달을 볼 때에는 아버지는 해를 보셨을텐데 왜 우리가 같은 달을 보고 있다고 하셨을까 생각하다가.
달은 햇빛을 반사해서 빛을 발하니까 결국 아버지와 나는 같은 빛을 보고 있는 것이었구나.
나 있는 곳에 달이 환하면 아버지는 환한 해를 보고 계시고 나 있는 곳에 해가 환하면 아버지는 환한 달을 보고 계셨겠구나.
해와 달은 빛으로 하나였다는 사실을 저는 부모님을 다 보내드리고 이제 제가 갈 길을 준비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뒤늦게 깨달은 것 중에 또 하나가 있으니.
어머니께서 항상 외출 후 돌아오시면 하시던 말씀이셨습니다.
Home sweet home!
출입문 옆의 작은 방을 쓰고 있던 제게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실감나지는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 편한한 마음에 그저 흘려듣곤 하였습니다.
사실 어머니나 저나 공간부족으로 힘들어 했지만 항상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는 비좁다는 말도 한 번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호주
저희 집 타이틀 제 1 호 입니다.
그 의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정말 가득 채우시는 분이었고 저는 채울 공간이 너무 작았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가시고 가득하던 어머니의 물건들이 이사 준비에 하나 둘 나가면서.
빈 공간들에 소리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빈 자리들이 남게 되었을 때.
이제는 엄마의 세상이 엄마랑 같이 떠나가버린거 같다는 깨달음에 하염없이 울기도 하고.
오피스텔 모드로 축소한 또는 확대한 나의 공간이 이 집에서의 남은 시간들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작은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이 들어.
반세기 넘게 살아 온 서초구 반포/잠원 지역이 제자리이자 제고향이라는 사실이 과분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제가 좋아하는 전시회를 가고.
제가 좋아하는 추억의 물건들을 사면서.
여전히 이 곳은 우리의 호주구나.
엄마와 함께 하던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이 이제는 내게도 소중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 가득히 감사함의 날개를 폈습니다.
그리고 제 방에서 거실의 Runway 를 바라보면서.
Runway 가 보이는 내 방이 좋다.
는 생각에 어렸을 때 잃었던 작은 서랍 하나의 기쁨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소중한 것은 많을 필요도 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여도 좋고.
아주 작은 것이어도 좋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에 기쁨이 차 올라오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세상은 넓다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는 소중한 보석같은 존재들이라.
그 색과 빛의 영롱함이 다르고 그 어우러짐이 다르니 깎아도 깎아도 다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의 세상일터.
낮의 화려함을 지우고 거룩함을 입은 밤하늘에서 무수히 빛나는 다 알 수 없는 별들의 세상같은걸까.
하여간.
내가 채우는 공간의 넓이에 관계없이.
Home sweet home!
이 집은 제게도 기쁨을 주는 집이 되었습니다.
짧게 남은 시간을 보내기에도 소중한 곳.
얻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려 놓기 위해서 떠나는 길이지만.
작은 서랍을 비우듯이.
소중한 자리를 남기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히브리서 5장 4절)
죄를 다스리는 가정의 회복.
무한한 축복의 Home Sweet Home 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