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7월 31일(금) 요한일서 2:12-17 찬송 452장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개역 개정)
- 세상과의 교제에 대한 경계 -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주의 계명의 준수와 계명의 핵심인 형제 사랑의 실천을 권면한
어제 말씀(1-11절)에 이어 오늘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있어 경계해야 할 사항으로
세상에 대한 사랑 곧 세상과의 교제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갖기 위한 삶의 자세를
언급하고 있는 1:5-2:11과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훼방하는 적 그리스도를
경계할 것을 권면하는 18-29절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하여 만드신 것으로(요1:10)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자 구속의 대상이다.(요3:16-17)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세상의 빛이시며(요1:9; 8:12; 9;5)
구주시며(요4:42; 요일4:14), 세상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셨다.(2절; 롬2:25)
그러나 세상은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악한 자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있어서(요일5:19)
하나님을 반역하려고 애쓴다.(고전1:20; 2:6)
그래서 말씀이시며 빛이신 그 분이 세상에 왔을 때
세상은 그를 미워하고(요7:7; 15:18) 또한 그의 제자들을 미워했다.(요15:18; 17:14)
따라서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내밀한 교제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결국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듯이 성도들은 하나님과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마6:24)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다.(약4:4)
이에 요한은 세상에 있는 것의 특성과 허무성을 지적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사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진실되이 사랑하기를 권면하고 있다.(15-17절)
한편 여기서 요한은 본서의 수신자들을 삼중적으로 구분하는데(12-14절)
이는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의 세 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
즉 여기서 ‘자녀’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성도의 모습을,
‘청년’이란 성도의 영육간의 강건한 모습을,
그리고 ‘아비’란 영적 지식에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자신들은 이같은 바람직하고 성숙된 자세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지,
혹 여전히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뒤로 퇴보하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딤전6:7-10; 딤후4:10)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상반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곳에 살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또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들이 세상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경계해야 할 세상이란 어떤 곳인가?
우선 세상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구속의 대상이다.
이는 요한복음 3:16-17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한편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며(욥:9), 세상의 구주시며(요4:42)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시다.
그러나 세상은 또한 ‘악한 자’의 손아귀에 사로잡혀(요5:19)
하나님을 반역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렇기에 말씀이시며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왔을 때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요1:10) 미워하였고(요7:7)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이러한 세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엡2:2에 세상이란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 지배하고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로 창조된 선한 창조물이며,
하나님이 우리들로 하여금 누리도록 선물로 주셨다.
둘째, 세상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들의 다스림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역하고 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이 두 가지 관점을 적절히 적용하며 세상을 살아야 한다.
만약 우리들이 첫 번째 관점만을 견지하고 살아간다면
장미빛 에덴 동산의 환상에 싸여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달려드는
마귀와 세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세상에서 성도의 고난과 핍박의 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두 번째 관점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늘 세상을 악하다고만 보고 세상을 향하여 적대적인 태도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과 평안히 지낼 수 있는 문제들에서도
괜한 분란을 일으키게 되며, 세상에서 스스로 격리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님은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며 사셨다.
그리고 모든 환란 속에서 세상을 이기셨다.
우리들 역시 예수님처럼 세상을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죄악된 세상을 미워하면서도, 예수님 안에서 그런 세상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이해가 올바르게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