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의 보석이랄까. 등잔 밑의 어둠이랄까. 경산 환성산(環城山·807.2m)은 숨은 보석 같은 산이다. 인근 팔공산의 명성 아래에 숨어 조용하게 산행을 즐기는 알짜배기 산꾼들만 찾던 산. 최근 유행이 된 종주산행 때문에 '가팔환초(가산산성~팔공산~환성산~초례봉)로 이어지는 40㎞ 종주 산행'의 주능선으로 부각되자 부쩍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구나 경산 어느 쪽에서 올라도 쉽게 능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주변 조망이 좋은 능선길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시야가 탁 트이는 겨울철 산행지로 제격이다. 이번에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에 있는 환성사를 기점과 종점으로 하는 원점회귀 산행을 다녀왔다.
대구·경산 어느 쪽서 올라도 쉽게 능선 도달
시야 탁 트인 조망 겨울 산행지로 제격
능선길 주변 진달래·철쭉… 봄에 와도 좋을 듯
네 개 돌기둥 위 환성사 일주문, 범어사와 흡사
■둥글게 팔 벌려 안을 듯한 산세
환성산은 대구와 경산에 걸쳐 펼쳐져 있다. 대구에서 보면 대구 환성산이지만, 경산에서 보면 경산 환성산이라 불러도 좋다. 이번 산행은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를 기점으로 했기 때문에 오롯이 경산 환성산으로 불러야겠다.
하양서 환성사까지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원점회귀 산행을 하면 편리하다. 환성산에 올라 북쪽 대구 도림사나 갓바위가 위치한 관봉 쪽 북릉으로 하산할 수도 있지만 짧은 겨울 산행으로 환성사 코스만 한 곳이 없다.
산행은 환성사 극락교에서 시작하여 일주문~환성사~성전암 입구~성전암~무학산 갈림길(능선 합류)~조망 바위~삼거리(가팔환초 종주길)~안부 삼거리~조망 바위~헬기장~환성산 정상~송림능선~조망바위~임도~극락교로 이어지는 7㎞ 코스다. 4시간이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다.
환성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10년(서기 835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한 스님은 심지(心地) 왕사. 심지 스님은 41대 헌덕왕의 아들이다. 왕의 아들이 세운 가람이니 자리도 아늑하거니와 규모도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환성사의 일주문은 독특하게 네 개의 돌기둥 위에 우뚝 세워져 있었다. 범어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환성사는 왕사가 세운 절답게 번창했던 모양이다. 조선 초 한 주지가 절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귀찮자 한 객승의 조언에 따라 연못 하나를 메웠다. 그러자 그 못 속에서 금송아지 한 마리가 나와 대구 동화사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어 원인 모를 화재로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고 모두 불타버렸다는 것. 안내판을 가만히 읽다 보니 '한때 우리 절이 대구 동화사보다 더 큰 절이었소'하는 것이었다.
수월관 앞의 아름드리 은행나무 아래엔 거두지 않은 은행 열매가 널려 있다. 여유가 보였다. 그런데 절 입구에서부터 주요 등산로는 산나물 채취를 막기 위해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유명한 송이버섯 산지. 송이가 나는 가을철에는 엄격하게 산행을 통제한다고 했다.
대웅전을 지나 성전암으로 가는 작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좁은 길은 차마고도처럼 갈지자로 능선을 향해 올라간다. 잠시 숨을 고르려고 하는 순간 잘 지은 성전암이 있다. 볕이 따뜻하다. 정남향을 향해 앉은 모양새가 명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행대장은 갑자기 투입된 초보 산행 기자를 자주 돌아보며 기다려주었다. 성전암부터는 오로지 산길이다. 갑자기 이마 쪽이 훤해지더니 능선에 올라섰다. 무학산으로 가는 이정표와 환성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뚜렷하다.
■가팔환초 능선~낙동정맥 조망
능선길은 솔잎과 마사토가 섞여 조금 미끄러웠다. 조심스레 걸음을 내딛는다. 능선길 주변엔 진달래와 철쭉이 번갈아 늘어서 있다. 혹독한 겨울바람에도 꽃봉오리를 조금씩 부풀리고 있었다. 꽃피는 봄철 다시 와도 이 길은 좋겠다.
겨울 산행의 장점은 조망이 좋다는 것. 벌써부터 시야는 광활하게 펼쳐져 팔공산군이 다 잘 보인다. 푸른 잎 다 털어내고 가지만 남은 나무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겨울 팔공산은 거룩하고도 아름다워 어떤 산꾼들은 '팔공산하'라고 부른다.
우뚝 솟은 바위가 있어 한참을 북쪽을 조망한다. 팔공산 갓바위는 수험생 부모들이 공을 들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조망 바위를 지나 한참을 가니 넒은 공터에 무덤 하나가 있다. '가팔환초' 종주길인 삼거리다.
바위 옆에는 통나무로 만든 긴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다.
환성산으로 가는 길은 살짝 내리막이다. 안부로 내려서자 환성사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반듸산장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등로로도 사용된다. 산장까지 임도가 돼 있으니 탈출로로 그만이겠다.
안부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니 오름길이다. 겨울인데도 잎을 떨구지 않은 나무가 하나 있다. 특이하니 또 아름답다. 응달이라서 그런지 눈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산길은 꽁꽁 얼어 퉁퉁 울린다.
도림사와 대구 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를 지나니 헬기장이다. 곧이어 정상. 무선 장치와 산불감시용 CCTV탑이 거대하다. 볼썽사납지만, 받아들인다. 정상석은 감투같이 생긴 바위 아래에 세워 놓았다.
감투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서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본다. 팔공산과 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대구 시내와 멀리 비슬산도 아련하게 보인다. 금호강과 하양 시내. 경주 단석산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정상에서 초례봉으로 더 가면 새미기재. 임도로 곧장 환성사까지 내려설 수 있으나 산길이 좋아 능선길을 택한다. 송림 능선으로 불리는 곳이다. 능선 조망터에서 바라보는 낙타봉도 별천지다.
능선은 외길이라 어렵지 않다. 임도를 만나면 산행은 사실상 끝이 난다. 아쉬운 마음은 모두 같을까. 임도를 50m쯤 걷다가 다시 숲으로 길이 나 있다. 그 숲길도 이내 임도와 다시 만나는데 여기서 종점인 극락교는 5분 거리다. 산행 문의: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위크앤조이팀 051-461-4095.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http://youtu.be/pLrrTbc9f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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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 환성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