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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박물관 전경. |
1876년 2월 27일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조선은 일본의 의도대로 부산·원산·인천·목포·진남포·마산을 개항한 뒤, 1899년(고종 36년) 5월 1일 군산항도 개항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금강 일대의 상업지역과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에서 수탈한 미곡을 자국으로 반출하는 전진기지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군산시는 개항 100년을 맞아 수많은 일제잔재를 철거하지 않고, ‘근대역사관광지’로 지정하면서 이곳들을 둘러볼 수 있는 거리를 ‘근대문화유산거리’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군산시내의 일제의 유산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투어코스를 ‘탁류 길’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것은 군산 출신 소설가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장편소설 탁류(濁流)에서 딴 것이다. 1937년 10월 12일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 탁류는 1930년대 개항장 군산의 급변하는 사회현실과 가혹한 수탈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삶을 주인공 초봉이를 중심으로 한 ‘한국판 여자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로서 개항기 군산의 격동기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군산항을 중심으로 외국의 조계지역(租界地域)이던 서쪽에는 옛 군산세관(전북도기념물 제87호)과 근대역사박물관이, 동쪽에는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제 제372호)및 조선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제 제374호), 일본제18은행 건물 뒤 해안에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있는데, 탁류 길을 따라가면 국내 유일한 일본사찰 동국사(2014.11.05. 동국사 참조),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 히로스 가옥(2014.11.12. 히로스 가옥 참조)도 둘러볼 수 있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초원사진관과 국내 최초의 제과점 이성당 빵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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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길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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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군산세관 건물 |
군산세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옛 군산세관은 무료 입장이지만, 근대역사박물관부터 조선은행, 제18은행, 진포해양테마공원은 어른 2000원, 어린이 500원씩이다. 하지만,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인 통합입장권을 구입하면 네 군데를 모두 관람할 수 있다. 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인 군산에서의 근대문화유산거리는 약 3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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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장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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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박물관 내부. |
도선장과 군산 내항 사이에는 군산항이 개항되던 광무 3년(1899) 인천세관 군산지사로 출발한 군산세관건물이 있는데, 세관건물은 구리로 판금된 기와지붕 위에 3개의 뾰족한 침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으며 지붕에는 벽난로 굴뚝도 있다. 이 건물은 1908년 벨기에에서 수입한 붉은 벽돌로 지은 근대식 서양건물로서 코레일 서울역사· 명동의 한국은행본점 건물 등과 함께 현존하는 국내 3대 서양 고전주의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전북도지방기념물 제87호).
1993년 11월까지 사용하다가 신청사를 준공 후 철거하려다가 보존가치가 있다는 여론에 의하여 보존된 세관건물은 부속건물들은 모두 철거되고 현재 약 69평의 단층인 본관 건물만 있다. 원래는 목제였던 창문틀 겉에 알루미늄 창을 덧달아서 이중창이 달라진 점인데, 최근까지 도로에서 직접 출입하던 정문을 폐쇄하고 정문 옆의 세관장실 문을 통해서 출입하도록 했다. 서양식 건물인 외형과 달리 내부는 순일본식으로 세관장실에는 당시의 책상과 의자, 세관원들의 제복이 전시되어 있다. 경찰제복과 같은 세관원의 제복과 휘장, 칼 등은 일제강점기에 사법권을 가졌던 일본세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사무실로 사용하던 중앙 홀에는 당시 군산에서 생산된 물건들, 진품과 가짜물건 전시, 사진자료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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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의 소설 탁류 조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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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탁류 주인공들 동상 |
옛 군산세관 길 건너편에는 2011년 9월에 개관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2002년 4월 군산 앞바다의 비안도에서 발견된 해저유물의 발굴을 계기로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군산시가 지은 것인데, 항구도시 군산의 옛 모습을 유추할 수 있도록 건물 외형은 커다란 판옥선을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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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초원사진관 |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4248㎡로서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과 어린이체험관, 종합영상실, 2층에는 옥구농민항쟁기념실과 기증물품 전시실, 3층에는 근대생활관과 기획전시실로 만들었다. 1층 해양물류 역사관에는 군산이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 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역사를 자랑하듯 삼국 시대에서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조운·조창·객주제도와 그 자료, 그리고 비안도 인근에서 발굴된 해저유물 등을 볼 수 있고, 3층 근대생활관은 일제강점기에 가장 흥성하던 1930년대 군산의 모습을 재현하듯이 조선은행· 나가사키은행 등 근대문화유산의 사진자료와 해외자매도시 특별전 등을 위한 기획전시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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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동 철길 |
그러나 박물관 입구에는 근대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폐사된 고려 시대의 사찰 은석사의 3층 석탑을 옮겨왔고, 오른편 야외 전시장에는 청동기 돌무덤을 큼지막하게 만들어두었다. 전시실에도 삼국 시대부터의 자료를 보여주고 있어서 ‘근대 역사박물관’이란 명칭이 조금은 어색해서 차라리 군산 ‘역사박물관’이라고 하는 명칭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옛 군산세관과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지나 내항으로 통하는 골목길에는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이 있다. 1903년 전라북도 최초이자 군산 최초의 은행으로 제일은행 군산지점이 설립된데 이어서 1907년에 세워진 일본 제18은행은 일본으로 곡물 반출과 토지 강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 건물 중 하나로서 일제강점기 초기에 지은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전북도등록문화재 제372호). 본관과 2층 부속건물로 구성된 제18은행건물은 군산근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군산 출신 작가들의 그림과 글씨가 전시되고 있다.
일본 제18은행 지점건물 옆에는 조선총독부 직속은행인 옛 조선은행지점 건물도 있는데,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조선은행지점 건물은 본관 정면 출입구와 내부는 많이 개조된 상태이지만, 수직 창, 상부의 반원 아치형 창, 부속건물 2개 동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는 옛 군산세관건물, 옛 조선은행 건물 등 개항기 군산의 주요건축물 모형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작은 항구도시 군산항에 이처럼 금융기관이 밀접하게 설치된 것은 당시 활발했던 군산항의 유통 상황을 잘 말해주는데, 도로 건너편에는 당시 군산의 상업과 금융 중심지에 군산을 대표하던 중화요리 전문점인 빈해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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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옛 조선은행 건물 |
진포해양테마공원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군산시가 개발한 8개의 둘레길 중 가장 유명한 탁류 길로서 이곳에는 개항 100년을 상징하는 ‘백년광장’이 있다. 백년광장에는 군산이 낳은 근대소설가 채만식의 작품을 형상화한 책을 쌓아놓은 동상, 소설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를 비롯한 아버지 정 주사, 초봉이의 첫 남편 고태수, 두 번째 남편 박제호와 장형보 그리고 초봉이가 사랑했던 남승재 등 6명의 인물상을 만들어서 탐방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진포 해양테마공원은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최초로 화포를 만들어 왜구를 격퇴시킨 진포대첩을 기려서 2010년 8월 조성한 해양공원으로서 공원 안에는 일제강점기 군산항의 모습을 알려주는 부잔교(浮棧橋)를 비롯하여 수륙양용 장갑차, 전투기, 해경정, 자주포 등 육·해·공군의 퇴역장비 13종 16대를 전시하고 있다. 바다에는 4200톤급 폐군함 위봉함을 체험관으로 만들어서 4D영상관을 비롯하여 최무선 장군 활약상과 진포대첩 이야기 및 우리나라와 세계의 유명한 해전과 관련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유산을 관광자료로 삼은 아이디어는 개항의 물결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받은 인천 차이나타운과 함께 우리민족의 또 하나의 슬픈 유산이 아닐 수 없다(2014.04.12. 인천 차이나타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