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련의 이 게송은 중국의 당나라 때의 스님인 선자화상(船子和尙)의 『선자화상발도가(船子和尚撥棹歌)』에 출처를 두고 있습니다.
선자화상(船子和尙, ?~?)은 선자덕성(船子德誠)이라고도 합니다. 스님은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의 제자로 오랫동안 스승을 시봉하다가 그의 법을 이었습니다.
후에 소주(蘇州 : 江蘇省) 화정현(華亭縣)의 강에 작은 배를 띄워 사람들을 건네주면서 교화를 펼쳤기 때문에 선자화상(船子和尙) 혹은 화정선자(華亭船子)라 불렸습니다. 스님은 협산선회(夾山善會)에게 법을 전한 후 할 일을 마쳤다고 그 자리에서 배를 뒤집어 물에 빠져 입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게송은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 나오는 오가(五家) 중의 한 분인 송나라 때의 야보(冶父) 스님의 게송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금강경》경문에 대한 적절한 평으로 선자화상의 선시를 야보 스님이 인용하여 다시 읊은 것이 야보 스님의 작으로 알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야보(冶父, ?~?) 스님은 중국 송(宋)나라 때 스님으로 남악회양(南岳懷讓)의 제15세인 정인계성(淨因繼成)의 제자입니다. 휘는 도천(道川), 별호는 천로(川老)ㆍ공천(○川 : 圓川), 속명은 적삼(狄三)이며, 법호인 '冶父'는 '야보'로 읽습니다.
본관은 곤산(崑山)이며, 고소(姑蘇 : 江蘇省) 옥봉(玉峰) 출신입니다. 초기에는 무술 연무소 군부(軍部)에 들어가 활 쏘는 무예를 익혀 궁급(弓級)이 되었습니다. 후에 동재(東齋) 도겸(道謙) 선사의 이름을 듣고 찾아가 참선에 몰두하던 중, 궁술에 결직(缺職)한 탓으로 끌려가 볼기를 맞는 순간 홀연히 크게 깨닫고는 궁직(弓職)을 사직하고 도겸 스님을 찾아가 행자생활을 하였습니다.
도겸 스님이 도천(道川)이라는 법명을 내리면서 "너의 지난 날 이름은 적삼(狄三)이었으나 지금부터는 도천(道川)이니, 천(川)은 곧 삼(三)이다. 앞으로 네가 척량골(脊梁骨)을 굳게 세우고 단정히 앉아 일대사를 판단하면 그 도가 마치 시냇물과 같이 증장할 것이지만 만일 해태방일(邂怠放逸)한다면 예전 그대로 드러누운 적삼(狄三)을 면치 못할 것이다." 라고 경책하자 스님은 마음 깊이 명심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습니다.
건염연간(1117~1130)에 제방(諸方)으로 행각하다가 천봉산(天峰山) 정인사(淨因寺) 만암(蹣庵)의 조실인 정인계성(淨因繼成) 선사(禪師)를 친견하고 인가를 받아 그 법을 이었습니다. 그후 동재(東齋)로 돌아와 주석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법문을 들었습니다. 《금강경》의 뜻을 문의하는 이들이 많아 게송을 지어 대답해 준 결과물이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중 하나인 《금강경야보송(金剛經冶父頌)》입니다.
본 주련의 게송은 《금강경(金剛經)》『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대해 송(頌)하신 것입니다.
「須菩提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一切法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응여시지 여시견 여시신해 불생법상
須菩提 所言法相者 如來說 卽非法相 是名法相
수보리 소언법상자 여래설 즉비법상 시명법상」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법에 대하여
응당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깨닫되 법상(法相)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말하는 바 법상(法相)이란 여래가 설하되, '곧 법상이 아니며,
이것을 법상이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느니라."
이 경문에 대하여 야보 스님은 "반래개구(飯來開口)하고 수래합안(睡來合眼)이로다." 하였는데 이는 곧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잠이 오면 눈을 감는다." 하였으니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인데 구태어 법상(法相)을 낼 일이겠는가 하고 다음의 주련의 게송을 읊은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척의 낚싯줄을 곧게 아래 드리우니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파도 하나 일어나자 일만 파도 따라 이네.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깊고 물은 차니 고기는 물지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달 밝은 밤 배에 가득 허공만 싣고 돌아가네.
달 밝은 가을밤에 배를 타고 강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입니다. 배에서 낚싯줄을 던지니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 조용한 수면 위에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갑니다. 밤은 깊어 사위는 고요한데 물이 차가워서 그런지 도무지 고기는 입질을 하지 않습니다. 고기의 입질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는데 휘영청 달이 밝습니다. 빈 배에 가득 허공만 싣고 돌아갑니다.
선시의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자구(字句) 너머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을 텐데... ^^
휘영청 밝은 가을밤 강물이 고요합니다. 어부가 배를 띄우고서 뱃전에 앉아 긴 낚싯줄을 던져 고기를 낚고자 합니다. 여기서 어부는 부처님이나 조사를 가리킬 수도 있고 작자인 선사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낚싯줄은 자비ㆍ교화(敎化)의 방편을 가리키고, 강물 속의 고기는 고해(苦海) 속을 헤매는 중생(衆生)이지요.
훌륭하고 수승한 법으로 자비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시고자 낚시를 드리우나 중생들은 이미 자재로이 노닙니다. 저마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는데 공연히 고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킨 격입니다.
밤이 깊어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졌습니다. 가만히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데 고기의 입질이 없습니다. 밤이 깊어서 그런지 물이 차가워서 그런지 고기가 물지 않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니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제도 받아야 할 중생이 없다는 것을... 중생 본래의 성품은 청정하여 큰 자비의 교화를 받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이 차가워서 고기가 안 무는 것이 아니라 고기는 이미 배불러 더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생은 본래로 청정한 법성(法性)의 갖추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어떤 법상(法相)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니 배는 비었지만 넉넉함이 충만합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 텅 빈 충만입니다. 그래서 집으로로 돌아가는 길은 기쁨이 넘칩니다. 텅 빈 배에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허공만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선시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시조가 하나 생각납니다.세조의 손자이자 성종의 형이었지만 비참한 생애를 살다 간 비운의 왕자 월산대군은 아마 이 선시를 읽고 시조 한 수를 읊은 것 같습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선시는 다양한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의 뜻으로만 국한하여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어떤 분은 제1구는 무심(無心)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고, 제2구는 만법일여(萬法一如)의 경지를, 제3구는 적멸(寂滅)의 경지를, 제4구는 공(空)의 경지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