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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
뉴스마다 ‘가난’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주요 이슈가 되고,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대결의 기운이 사회 곳곳에서 꿈틀거린다. 이런 조짐의 배후에는 크든 작든 대부분 ‘돈’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세계 금융위기에도 오히려 국가 신용등급이 상승할 만큼 경제력이 튼튼한 국가이자, 단 3개월 만에 순이익 10조 원을 달성하는 세계적 기업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반면에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과 45.1%라는 높은 노인 빈곤율1을 보이고 있다. 이 수치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들어갈 직장을 찾지 못한 청년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학원가는 취업 재수생, 삼수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한국의 진짜 얼굴일까? 세계가 주목하는 그 놀라운 성장의 열매들은 어디로 가고 내 몫 내놓으라며 소리치는 아우성만 가득할까? |
32~33 |
50~60대처럼 자녀들이 성인이 된 것도 아니고 당장 은퇴를 앞둔 연령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20~30대처럼 운신이 가벼운 청춘도 아니어서 정부 정책의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 세대가 곧 40대다. 4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자가구도 많고 직장이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자녀들도 어리고 특히 전세자금이나 주택대출 등 떠안고 있는 부채도 많아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40대의 표심’이라는 말을 쓰면서 존재감을 환기시켜주는 선거철이 반갑게 느껴질 정도일까? 치고 올라오는 20~30대와 위에서 누르는 50~60대 사이에서 힘겹게 자리보전이나 하면서 막연한 기대만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40대가 많다. 대한민국 40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많으면서도 ‘당장’에 지쳐 ‘나중’을 준비할 만한 여유가 없는 그들이 어쩌면 100세 인생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도 있다. |
36~37 |
물론 따지고 들면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정부와 사회 그리고 기업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가 겪는 가난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진 않는다. 기껏해야 노령연금 10~20만 원을 주고 곳곳에 밥차를 세워 거리로 내쫓긴 사람에게 밥 한 끼를 먹일 뿐이다. 그저 입에 풀칠해주는 것을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그 같은 수준의 최저생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곧 복지라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고, 전세금 때문에 빚쟁이가 되지 않으면서 퇴직 후에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다 키운 자녀들에게서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받으며 편안한 노년을 즐기는 삶은 온전히 ‘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자, 여기 2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 길은 이렇게 된 원인이 ‘나’보다는 소위 1%의 탐욕 때문이며, 나는 그런 1%에 저항하면서 사회와 분배구조의 혁신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정부가 올바른 정책을 펼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77 |
가난경영은 단순히 근검절약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난을 ‘박멸’하거나 ‘퇴치’해야 할 적이 아니라, 내 삶에 동행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제안하는 동업자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곧 가난을 경영하는 것이다. 즉 가난을 우리 삶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필승必勝이 아닌 불패不敗의 전략을 세워 가난 때문에 내 삶이 스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가난경영이다. 가난이 우리를 망칠 것이라 생각하며 맞서면 먼저 두려움이 생긴다. 가난의 실체는 곧 ‘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거의 가난과 달리 현재와 미래의 가난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만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적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의 문제도 청년 개개인의 능력 탓이라기보다 전 세계가 직면한 시장경제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시간제?임시직 일자리마저 부모 세대인 50대 이상의 장년층 및 노인층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
85 |
“많이 당황하셨어요?”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크게 유행한 말이다. 사실 이 말은 언젠가부터 우리가 줄곧 들어온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구랄 것도 없이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면서 가난을 숨기는 데 기꺼이 돈을 쓴다. 뻔한 월급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유행하는 신상품을 구입하고, 높은 교육비를 탓하면서도 자녀에게 무리하게 사교육을 시킨다. 게다가 이웃의 시선을 핑계 삼아 적금을 깨서라도 해외여행을 갔다 오고 멀쩡한 자동차를 바꾸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의 가난은 소득이 적거나 지금 당장 직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열이 매겨지는 사회적 관계에서 당황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난을 숨기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 이상의 소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짧게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길게 보면 반드시 적자가 나고 만다. 가난을 숨긴다고 해서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난을 숨기는 데 드는 비용이 계속 누적되면서 점점 더 많은 소득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
101~102 |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가난은 부모 세대들이 겪었던 가난과는 정반대다. 저성장으로 일자리는 부족하고 경제적 불확실성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겨우 잡은 직장도 늘 아슬아슬하다. 그나마 매달 받는 월급은 세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을 떼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돈이라도 잘 불리면 좋겠지만 은행부터 증권?보험?부동산에 이르기까지 딱히 마땅하게 돈을 불릴 곳이 없다. 즉 ‘일’과 ‘직장’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 일이 즐겁지 않고 직장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곳이라면 어떨까? 일이 재미있어야 열정을 가질 수 있고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으며 가난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설령 돈이 없어도 견딜 수 있고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10년을 노력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여러 곳에서 불러줄 수도 있으며, 매력적인 제안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해 좋은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
105~106 |
세상이 부추기는 비교와 경쟁의 프레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유일하고 독특한 자신의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 나 자신만의 가치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소득을 집요할 만큼 생각해보고 발견하는 일은 가난경영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소득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내가 직접 버는 돈, 예를 들어 월급(근로소득)이나 사업을 통한 수입(사업소득)이다. 나머지 하나는 자산소득, 즉 돈을 잘 굴려서 생기는 수입이다. 자산소득에는 은행 이자, 주식이나 펀드 수익, 부동산 거래 차익, 임대료 등이 있다.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 99%의 경우는 내가 직접 버는 돈, 특히 월급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소득의 흐름을 크게 나누어보면 대체로 은퇴 전까지는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으로 가계를 꾸리고, 은퇴 후에는 자산소득에서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
161~162 |
리처드 코치Richard Koch가 쓴 책, <낯선 사람 효과Superconnect>에서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의 관계로 정의되는 돈독하고 깊은 인맥보다 SNS나 모임 등을 통해 가볍게 알게 된 사람과의 관계로 정의되는 얕은 인맥이 성공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얕은 인맥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당신의 100년을 끝까지 동행해줄 수는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의 40세는 앞으로 남은 수명의 15%를, 60세는 21%를 병상에서 지낼 것이라고 한다.1 이것은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노인 간병 문제는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앞으로 간병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면 그 힘든 길을 끝까지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아마 가족일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아야 할 때다. |
177~178 |
부부 리스크, 자녀 리스크, 가족 리스크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가족이라면 초장수 시대에 가족 모두에게 가장 매력적인 일자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른바 가족기업이다. 가족기업은 가족들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하는 기업을 말한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재벌기업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런 기업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기업 전문가인 김선화 박사의 <100년 기업을 위한 승계전략>에서는 가족기업의 현황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기업이 가족기업이며 미국 내 가족기업의 비중은 약 92%이고, ‘포춘 500대 기업’ 중에서도 가족기업 비중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의 경우에도 프랑스?영국?독일은 전체 기업의 60% 이상, 이탈리아는 90%가 가족기업이며, 우리나라 역시 코스닥을 비롯한 전체 상장기업의 70%가 가족기업이다. 중소기업과 비상장기업의 경우는 추측하건대 90% 이상이 가족기업일 것이다.” |
185~186 |
필자는 강의를 할 때마다 최고의 재테크를 자기계발, 즉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자녀 한 명을 양육하는 데 3억 원의 돈이 든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까지 3억 원 정도 소요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첫 직장에서 연봉 3천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투자된 금액 대비 연간 수익률은 10%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수익률 10%인 투자상품이 또 어디에 있을까? 자기 자신이야말로 수익률이 높은 투자상품 가운데 하나다. 수익률이 높은 상품일수록 관리를 잘해야 한다.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어느 순간 수익률이 떨어지다가 자칫 0%가 될 수 있다. 심지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머리를 써서 버는 돈, 즉 월급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재투자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자기계발이다. 자기계발을 열심히 한 결과 100세까지 매달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저축도 연금도 대출도 필요 없다. 내가 곧 지갑이며 통장이요 은행이기 때문이다. |
191 |
그동안 우리는 상대방과의 경쟁에 필요한 것들을 비싼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넘치도록 배웠다. 그로 인해 빚쟁이가 된 채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의 은퇴자금은 크게 구멍이 뚫렸다. 그럼에도 오히려 승자보다 패자가 훨씬 더 많아졌다면 분명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자본시장의 논리대로 표현하면 경쟁을 위한 기존의 교육은 효율성은 고사하고 생산성도 없으므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받기보다 먼저 주는 것’이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가 지은 책,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는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가난의 공포가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가난의 시대에는 모두를 승리자로 만드는 자기관리가 으뜸이 되어야 한다. |
198~199 |
우리나라 인구의 약 27%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재정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드웨어 리스크다. 부동산은 대표적인 하드웨어 리스크인데, 베이비부머 세대가 소유한 총자산의 80% 정도가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에 몰려 있다. 물론 과거에는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은퇴 후에는 결혼한 성인 자녀와 한집에서 살 수도 있었고, 넓은 집을 팔아 더 소박한 집으로 이사하면서 여윳돈을 은퇴자금으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한 성인 자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오히려 독립적인 생계유지가 곤란해진 성인 자녀가 부모에게 얹혀 살까 봐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군다나 점차 단독가구의 수가 늘어나면서 대형 주택보다는 소형 주택에 대한 수요가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넓은 집을 팔기가 쉽지 않아졌고 용케 팔더라도 제값을 받기가 힘들어졌다. 그 결과 목돈이라 할 만한 차액은 구경하기가 어렵다. |
239~240 |
즐거운 100세 인생을 위한 가난경영의 현실적인 목표는 나를 위한 이기적 통장을 온전히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타적 통장의 일부를 떼어 자신을 위한 이기적 통장을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결단하면서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불려도 그것보다 더 많은 돈이 자녀와 가족을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0세 인생을 위해서는 가난경영을 통해 저축과 소비를 관리해야만 한다. 어른이 된 자녀들을 떠나보낸 후 그때부터 나와 배우자를 위해 사용할 이기적 통장, 그것을 우리는 은퇴자금이라 부른다. 물론 그것은 사실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늙고 병들더라도 자녀에게 짐이 되고 싶어하는 부모들은 없기 때문에 은퇴자금은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다. 그렇다면 은퇴자금은 누가 만들어야 할까? 우선, 국가나 정부가 책임져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 이유는 여태껏 충분히 설명했다. |
248~249 |
그러나 저성장 시대에서는 원금도 꽤 중요한 가치가 있다. 경제성장이 더딜 때는 사람들의 여윳돈이 줄어들면서 소비지출 위축되며 그에 따라 물가가 안정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동산 가격도 오르지 않아 경제성장기에 비해 돈의 가치가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물론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처럼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1970년대의 석유파동처럼 모든 상품의 제조원가를 상승시키는 절대적인 원인이 있거나, 독과점 기업에 의해 상품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 등 흔하지 않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시대에 누렸던 고수익 상품의 유혹을 지속적인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에도 떨쳐내지 못한다면 자칫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100세 인생, 100년의 가난에서 원금의 가치는 더욱 높다. |
253 |
적금은 2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한 상품이다. 첫째로 원금을 손해 보지 않는 유일한 상품이다. 물론 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이자율이 원금에 대한 실질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1~2년 정도의 단기성 적금으로 원금의 실질가치 하락을 체감하기는 어렵다. 100세 시대, 100년의 가난에서 원금의 중요성은 앞에서도 언급했다. 따라서 필요한 목돈을 걱정 없이 모아나가는 데 적금만 한 것이 없다. 둘째로 적금은 바람직한 재테크 습관을 형성하기에 가장 좋은 상품이다. 어떤 일이든 습관이 중요하듯 재테크도 마찬가지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의 경우 지출에서 저축과 투자 등 돈을 소비하고 불리는 습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재정적인 미래가 좌우된다. 특히 저축과 투자의 경우 제대로 시작해서 정해진 기간 동안 끝까지 납입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꾸준히 납입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적금만큼 좋은 상품이 없다. |
우리의 자리 한 켠을 가난에 내준다는 것은 우리가 기꺼이 가난과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또한 가난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익숙하지 않아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가난이 원하는 것들을 같이 즐겨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가난은 나와 우리의 친구이기 때문이다.자, 그렇다면 친구인 가난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이 원하는 첫 번째는 우리가 가난에게 순응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가난한데도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친구인가난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는 적이 된 가난이 원하는 행동이다. 왜냐하면 가난에 대한 이중적인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당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벼운 통장이 구멍나는 것도 모자라마이너스 통장이나 카드 현금서비스, 혹은 고금리 대출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다. 친구는 우리를 그런 고통으로 내몰지않는다.-79쪽- |
도중에 이혼하지만 않는다면 평균적인 결혼생활 기간은 어느 한쪽이 사망할 때까지 최소 30년 이상 지속된다. 길게는 60~70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들도 있다. 결혼생활과는 반대로 결혼식은 기껏해야 1시간 정도 진행된다. 그런데 1시간을 위한 결혼식은 엄청난 돈을 들여 요란하게 준비하면서 정작 수십 년 동안을 지속해야 하는 결혼을 진지하게 준비하는 커플은 보기 드물다.-164쪽- |
셀프 리스크는 곧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개인의 성장이 필요하다. 월급은 자기계발이 아닌 곳에 소비해서는 안 된다. 공부를 하고 생산적인 여행을 하며 저축을 통해 미래의 자기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 그럴 때 저축의 의미는 월급과 분명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자기계발과 관계없는 지출은 월급이 아니라 저축을 통해 만들어지는 수익, 즉 자산소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중략) 셀프 리스크에서 중시하는 성장이란 언젠가 떠날 직장에서는 물론 끝까지 머물러야 할 세상에서의 동시 성장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언제든 대화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186~18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