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Fear)
표현의 자유( Freedom of speech)
종교의 자유(Freedom to Worship)
욕구로 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
Rosie the Riveter, 1943
Southern Justice - Murder in Mississippi, 1965
Shuffleton's Barbershop, 1950
Let's Give Him Enough and On Time, 1942
Art Critic, 1955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1894~1978)은 평생 4,000점 이상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남겼다. 그의 그림과 드로잉 작품은 잡지의 커버와 상업광고, 그리고 책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사용된 것들이다. 그의 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고,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20세기의 미국사회와 미국인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대순으로 볼 때 그의 작품은 변화하는 세상을 말하였고, 즐겁게 놀고 있는 뉴욕의 아이들을 그렸고, 일을 하고 있는 여성, 그리고 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 한 세기 전 만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일을 해낸 인류의 모습 등을 그렸다. 노먼 록웰은 189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4세에 '뉴욕 예술 학교' 예술학부에 입학했고 1910년, 16세에는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곧 그는 토마스 포가티와 조지 브리그만과 공부했던 '예술 학생 연맹(The Art Students League)'으로 옮겼다. 일러스트레이션에 있어서 포가티의 가르침은 록웰로 하여금 상업적인 그림에 눈뜨게 했고, 브리그만으로부터는 그림의 테크닉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10대에 '보이스 라이프'사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그곳은 보이스카웃에 관한 도서를 출판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청소년 출판물에 들어가는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을 프리랜서 자격으로 그리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16년, 22살 되던 해, 그는 처음으로 유수한 잡지의 커버를 작업하게 되었다. 그 잡지는 바로 자신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쇼윈도우'라고 생각했던 'The Saturday Evening Post'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47년 동안, 그는 그 잡지 커버를 321점이나 그렸다. 그리고 194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국회 연설에 영감을 받아 네 개의 자유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그것들은 'The Saturday Evening Post'의 유명한 에세이와 함께 게재되었다. 그가 그린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그 작품들은 미국 전역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1973년, 록웰은 자신의 작품들을 스톡브릿지에 모아놓고 자신의 박물관을 만들어 갔다. 1976년 그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욱 박물관 건립에 신경을 썼고 1977년에는 '생동감있고 매력적인 인물'로 '자유매달'을 수상했다. 1978년 11월 8일, 84세의 나이로 스톡브릿지 자신의 집에서 평화롭게 삶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