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국제연극제(2024-08-05(월)>
1. <짐승의 시간>(극단 가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운영된 ‘선감원’에서의 폭력과 착취를 통해 왜곡된 시선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의 존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거리의 부랑아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수감하여 갱생하겠다는 목표로 운영되었던 선감원이었지만, 실상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인들을 강압적으로 가두는 장소에 불과했다.
이곳에서의 한 소년이 우연히 일본인 소장의 딸을 구하게 되었고 소장의 집에 살게 된다. 딸은 소년에 대한 감사와 호감을 통해 소년과 가까워졌고 특히 <데미안>을 통해 소년의 자유의지를 북돋아주었다. 하지만 소장이 소년을 집으로 데리고 온 이유는 소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 그를 훈육시켜 전쟁의 총받이로 삼으려는 의도였음이 밝혀졌고 소년은 새로운 변화를 위해 그리고 인간적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탈출한다.
‘선감원’에서 벌어졌던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참옥하게 파괴될 수 있는가가 보여지며, 그러한 일들을 어떤 양심적 회의도 없이 저지리는 야만적인 인간성을 고발한다. 분명 심각한 소재이지만 우리에게는 조금은 익숙한 소재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도 소년과 딸의 애정이 주축이 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묘한 결합이라는 익숙한 관계가 진행된다. 또한 ‘자유에 대한 열정’를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 ‘알을 깨는 새’에 비유함으로써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잔혹한 인간적 말살을 겪는 자의 탈출이 데미안의 비유와 연결되는 지점은 조금은 어색하다. ‘알을 깨는 투쟁’은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와 추상적인 인간의 변화를 상징하는데 비해, 선감원에서의 탈출은 인간에게 가해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분명 선감원에서의 탈출이 새로운 세계로의 이동을 뜻하지만, 그것은 변화를 위한 개인적 고민으로 해석되는 알에서의 탈출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참옥하게 파괴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