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제가 진행하는 국악연수 강의안의 일부입니다. 다음 주 연수 진행을 구상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기록하고자 합니다. 수업 진행하기 전의 설레는 마음이 담겨지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1. 오프라인 연수의 퇴조는 교육청과 원격교육연수원간의 담합에 의한 불행한 사건이다. 교사들에게 의무적으로 60시간 이상 연수를 강요하는 교육청의 강요는 교사들의 연구 열의와 편안한 안식을 방해하여 교사의 수준을 더욱 떨어뜨리는 외부조건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똑같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에서 업체와 교육청의 눈치와 보호 아래 보이지 않게 권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花無十日紅. 용단을 내려야 한다. 교사들이 단결하여 의무시간 연수 폐지를 성취해야 한다. 우리들의 살과 뼈를 서로 뜯어먹으면서도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먼저 힘을 내려놓아야한다.
2. 교사들의 자발적인 연수는 무조건 강조되어야한다. 이곳에 교육청의 지원은 이루어져야할 듯 싶으나, 지원이 이루어지면 오히려 자발성이 퇴조된다.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다. 자발적인 에너지는 오히려 억누를 때 더욱 강해질 수 있기에 지원 체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3. 자발적인 연수의 조건은 참가자의 질문이다. 무슨 질문을 가지고 국악연수에 참여했는가? 참여자의 질문을 먼저 듣고 싶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의문사항이라도 있는가? 아니면 강사의 쇼를 보고 싶어서 왔는가?
4. 강사의 쇼를 보고 싶다면 참가한 당신이 가져갈 것은 없다.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미비하기에 서로 곁눈질하고 지나칠 뿐이다.
5. 이왕지사 직접 만났으니 서양음악에 대한 국악의 특성을 대금 연주로 시범하겠다. 장식음, 요성 표현을 통해 세계 음악으로서 국악의 특성을 이해하겠는가? 이러한 이해는 예술 체험(감상)과 함께 예술 이론의 체험일 것이다.
6. 국악 수업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아마 매우 다양할 것이다. 평가를 생각한다면 정간보 보는 법, 단소, 소금 연주, 국악 감상 포인트 등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체를 두고 장기 기억을 돕는 수업을 계획할 것이다. 하지만 특수한 예술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국악과 국악을 소재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국악교육을 통해서 함께 진행되는 메타교육을 고려한다면 국악교육을 둘러싸고 매우 흥미롭고 수준높은 교육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국악수업에서 국악교육으로의 체험 변화를 위해서 내가 강사로 참여했고,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참여하셨으리라 기대한다. 이것은 원격연수에서는 체험하기 어려운 영역 아닐까?
7. 나의 시범 연주에서 선생님들께서 느꼈던 예술 체험은 무엇인가? 그냥 휙~ 지나갈 수 있는 연주 한 도막을 좀더 천천히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통하여 감상에 있어서 차이를 보다 선명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예술 이론 체험은 부차적인 지식이다. 근데 학생들에게 예술 이론을 먼저 얘기하고 이를 확인하고자 예술 체험이 뒤따른다면 마차가 말을 끄는 형세처럼 체험을 증폭시키지 못한다. 학교 수업에서 이를 방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바로 교과서, 교사용 지도서다. 학문과 예술에 관해 2류도 안되는 엉터리 학자들이 써놓은 수준 낮은 지식에 갇혀서 학문과 예술을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학교 사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 싶다.
8. 예술 체험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과연 학생들에게 시범연주를 통하여 기맥힌 소리를 전해야만 예술 체험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굳이 시범 보일 필요가 없다. 만약 시범에 집착한다면 이 자리에 국립국악원의 최고 연주자가 와서 시범 연주해야 할 것 아닌가? 문제는 수준의 적정성에 있다. 학생들에게 적절한 수준에서 예술을 체험시키는 것이 바로 국악교육의 요체인 것이다. 아이들이 단소나 소금 소리를 낼 수 있고, 좀더 나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 국악교육의 요체인 것이다. 교사의 시범 연주는 오히려 국악교육을 방해할 소지마저 있다. 맥락 없이 최고 연주자가 연주하다면 그냥 쇼일 뿐이다. 이 문제를 극대화시킨 것이 온라인 원격연수의 사례다. 거기다 의무 연수에 의해 클릭하고 있다면 서로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교사들이 교수 정도의 자율성을 획득할 수 없단 말인가? 이미 우리는 자립할 수 없을 정도로 노예 근성에 쩔어 있는지도 모른다.
9. 예술 체험은 결국 학생들의 단소, 소금 소리내기와 연주 체험에 기반하고 거기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개별적인 지도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뭉퉁거려 학생 집단에 대해 접근한다면, 교육이 아닌 사회화, 조건화, 행동통제가 될 가능성만 높인다. 물론 행동통제로도 단소, 소금 기량은 나아질 수 있지만, 예술의 가치 체험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가설 차원이지만 예술 체험은 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하리라 짐작한다. 교육은 X계(수도계)적 성격이 풍부한 예술을 소재로 先進과 後進이 교육적 교섭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별화될 수밖에 없다.
10. 어떻게 교사 1인이 학생 20~30명과 개별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 학교 체제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면 교육적 관계는 훨씬 다양하고 풍성해진다. 단소, 소금의 소리내기와 연주에 있어서 선진과 후진의 품차(수준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교사보다 훨씬 소리가 좋은 학생이 있다면 교사가 그 학생에 대해 후진으로 역할을 변경하면 교육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교육적 관계가 지닌 특성은 선진과 후진간 상호 존중과 소재에 대한 자발성이다. 교사 1인이 다 가르치려 하지말고,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학생들 상호간의 교육을 촉진할 수 있다면 예술체험과 더불어 교육체험 또한 활발해질 것이다.
11. 교육 체험의 특이한 점은 교육을 위한 교육, 즉 메타교육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메타교육은 국악이 소재가 아니라 교육이 소재가 되어 교육을 가속시키는 교육 속의 보물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엔 친구들에게 단소를 부는 재미로 학교에 오던 학생이 교육을 체험하면서 친구들을 가르치는 재미로 학교에 온다고 생각해보라. 교직의 특수성이 갖는 전문성 중에서 교육의 전문성은 메타교육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메타교육을 바라볼 수 있는 교육관의 개선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12 오프라인 연수에서 국악교육에 관한 담론과 함께 국악교육을 해보기 바란다. 다음 주(1월 6일~1월 10일)부터 서울길동초(강동교육청 소속)에서 일주일 동안 우리가락연구회에서 주관하는 교사 직무연수(30시간)가 진행된다. 담당자(010-2717-0618 김진엽 교사). 예술과 교육 체험을 원한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특히 장구 교육은 우리나라 장고잽이 중에서 일가를 이룬 길석근 선생님에게 리듬놀이라는 매우 기발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