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29) - 내포문화숲길-백제부흥군로(추사고택-예산역)
추사고택에서 출발하는 ‘백제부흥군로’을 걸었다. 추사고택은 거대한 관광지로 변해있었다. 오래 전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고적하고 소박했던 분위기는 주변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힘들에 의해 사라지고 없었다. 하나의 장소나 인물이 관광지로 부각되면, 그 주변은 엄청난 변화를 동반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의 것이 가지고 있던 진정한 매력은 사라진 채, 익숙한 관광지의 한 장면으로 변모할 뿐이다. 오래된 유적과 유물의 가치는 장소와의 조화에서 빛난다. 하지만 장소와의 조화가 파괴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과거의 신비가 아닌 현대의 시선에 사로잡힌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추사고택, <추사기념관> 앞에서 출발하는 내포길은 낮으막한 산길로 접어들어 약 30분간 걷는다. 산은 험하지 않고 길도 편하지만 유독 길옆에 돌이 많다. 돌들은 보통 높은 지형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낮은 곳에 계곡물과 관계없이 모여 있는 돌들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중간에 서있는 제법 큰 돌에는 추사체 글자를 암각해 놓았다.
산에서 내려온 후에 길은 평지로 연결된 코스로 이어진다. 새벽까지 강하게 내리던 장마비는 그치고 뜨거운 태양이 대신하고 있다. 태양과 바람은 적당하게 어울리며 제법 상큼한 느낌을 만들고 있다. 하늘은 쾌청하고 바람은 선선하다. 하천 옆에 만들어진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모든 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비슷하게 만들어진 ‘표준적인 길’이다. 걷기에는 좋지만, 특별한 개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길이다. 특히 방죽 아래로 내려와 시선이 막혔을 때, 답사는 그저 앞만 보고 걷는 운동일 뿐이다.
하지만 느낌이 비슷할지라도, 그 지역에서만 감지되는 특별한 감각은 있다. 장소와 날씨 그리고 인위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특별한 공간의 정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텅 비어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푸른 논들의 연결들, 그 사이를 잇는 아스팔트길은 영화 속 사막 길과는 다른 풍요로움 속에서 만나게 되는 고독의 순간이다. 길을 걸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는 무관심하려 한다. 오로지 내면과 자연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려 하는 것이다. 그때 길 옆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가볍게 목례한다. 예상치 못한 인사는 어색하지만 기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 때로는 이렇게 따뜻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첫댓글 - 따라하기 바쁜 형태 베끼기의 씁쓸한 맛이 전국을 휘감는다.
- 따뜻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