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월급쟁이가 그러하듯 회사원 김현구(28)씨는 주말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보낸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 토.일요일마다 그는 족구를 한다. 20대부터 50대까지 스무명이 넘는 동호인들과 함께 한 주의 스트레스를 족구공에 실어 코트에 꽂는다.
지난 9일 서울시연합회장기 족구대회에서 한 참가선수가 강력한 오른발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군대 시절 꽤 즐겼는데 사회에 나온 뒤엔 잊고 지냈어요.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리 동네(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삼학사족구단'이라는 동호회가 있다는 걸 알고 찾아갔지요."
삼학사팀에서는 그를 반겼고, 그는 매주말 동네공원 족구장에서 땀을 흘린다. 처음에는 일반부에서 '똑딱이 족구'를 했다. 공을 넘기는 데 급급한 수준을 똑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요즘은 최강부에서 '정석 족구'를 한다. 리시브-토스-스파이크의 역할을 분담해 제대로 하는 고급 수준이다.
족구(足球). 정식 스포츠 종목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처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운동도 드물다. 잽싼 몸놀림과 볼 감각을 겨루는 승부의 묘미도 여느 스포츠 종목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그래서 전국의 동호인 숫자도 700만명(국민생활체육 전국족구연합회 추산)이나 된다.
동호인 수가 많다 보니 대회도 많고, 꽤 이름난 스타들도 많다. 김씨는 "예를 들어 '금산족구단 김현우'라면 족구계에서는 간첩 빼고는 다 안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경기도 군포의 한세대학교는 족구 전국대회 입상자를 대상으로 특기자 입학전형도 하고 있다. 이만하면 '제2의 국기(國技)'라 할 만하다. 연합회에서는 '민족 구기(球技)'라고 부른다.
주부 윤승미(42)씨는 일주일에 세 번 서울 동대문 구민회관 옆 그림공원에 나가 족구를 한 지 1년이 됐다. "3년 전 동대문 여성축구단에 들어가 축구를 했는데 다치기 일쑤고 체력도 부쳤다. 우연히 남자들이 족구하는 걸 보고 동네 아줌마들과 재미로 시작했는데 이거야말로 여성운동이었다." 윤씨는 요즘엔 중학교 2년생 아들 친구들과 경기도 한다.
축구동호회인 FC커스 소속 여성 족구동호회 송은경(43.주부)씨는 우연히 입문했다. 남편 박병구(43)씨가 단장으로 있는 FC커스 야유회에 따라갔다가 등을 떠밀려 족구를 처음 해봤다. 지금은 동호회의 주전이다. 그는 "인터넷 검색창에 '족구'를 치면 집 근처 동호회가 수십개는 뜰 것"이라고 소개했다.
◆대회도 많다=족구대회는 겨울철을 제외하고 연중 열린다. 대부분 ▶최강부▶일반부▶장년부▶청소년부▶여성부로 나뉘어 열린다. 올해의 전국 규모대회는 ▶전국국민생활체육대축전(5월 29~30일.광주)▶문화부장관기 시도대항전(10월 9~10일.충주)▶전국연합회장기 족구대축제(11월 6~7일.안산) 등이 있다. 문화부장관기와 전국연합회장기는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며, 특히 문화부장관기는 전국체전에 맞춰 열린다.
이 밖에 지역연합회별로 작은 대회들이 연 4~5차례 열린다. 전국연합회는 동호회의 전년도 성적과 참여도 등을 종합해 전국순위를 매겨 전국대회 출전권을 준다.
장혜수 기자<hschang@joongang.co.kr">hscha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hyundong30@joongang.co.kr>
*** 1966년 공군 조종사들이 처음 시작
족구 관계자들은 족구를 가리켜 '민족 구기'라고 부른다. 족구가 구기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족구와 유사한 놀이가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족구가 시작된 것은 38년전이다.
역시 출발점은 군대다. 1966년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제101전투비행대대 조종사들이 비상대기 중 조종복을 입은 채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창안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배구코트에서 배구네트를 내려놓고 축구공 또는 배구공으로 했다. 그러다 68년 당시 이 부대 소속이던 정덕진 대위와 안택순 중위가 경기규칙을 만들어 국방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육.해.공군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나간 사람들이 족구를 퍼뜨리면서 대중화됐다는 게 족구연합회의 설명이다. 95년 연합회가 창설되면서 족구 규정들이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같은 해 제1회 공군참모총장기 대회부터 현재의 규정에 따라 경기를 치르게 됐다.
*** 목 위쪽이나 무릎 아래만 써야
동네에서 또는 아유회를 가면 바닥에 대강 금을 긋고 네트 대신 얼기설기 막대기를 치거나 중립지역을 만들고, 모인 사람을 절반으로 나눈다. 그러면서 말한다. "족구는 정하는 게 규칙이야." 하지만 아니다. 족구도 엄연히 족보가 있는 운동이다. 국민생활체육 전국족구연합회에 공식 규정돼 있다. 기왕이면 규칙을 알고 그에 맞춰 족구를 즐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규칙=경기장은 사이드라인이 14~16m, 엔드라인이 6~7m의 직사각형. 중간에 높이 1~1.1m의 네트를 놓는다. 한 팀은 주전 4명과 후보 3명 등 7명의 선수로 구성된다. '4인제'가 표준인 셈이다. 경기는 원칙적으로는 15점 3세트의 랠리포인트제를 적용한다. 서브는 경기 중 아무나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바닥에 한번 튀긴 뒤 차는 서브는 실제로는 위반이다. 규칙에는 노바운드로 넣도록 돼 있다. 서브득점은 2점이다.
바운드 되지 않은 상태로 직접공격을 해 성공했을 때도 2점을 준다. 리시브를 하는 쪽에는 3번의 바운드와 3번의 터치가 허용된다. 다만 목 위 또는 무릎 아래를 제외한 신체부위에 공이 닿으면 실점이다. 족구전용 공과 신발도 있다. 지름 200~205㎜, 무게 330~360g인 축구공과 배구공의 중간쯤 되는 공을 사용한다.
◆세팍타크로와 다르다=세팍타크로는 발로 찬다는 뜻의 말레이시아어 '세팍'과 공을 뜻하는 태국어 '타크로'의 합성어다.
국내에는 1987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도입됐다. 족구와 세팍타크로(양팀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레구경기에 한정)는 배구를 원형(原型)으로 삼아 발로 하는 경기라는 점만 같을 뿐 각론에선 전혀 다르다.
두 종목의 큰 차이는 공의 바운드 인정 여부다. 세팍타크로는 공이 바닥에 닿으면 실점이다. 또 세팍타크로는 3인제 경기이며, 사이드아웃제(서브권제)를 채택한다.
이 밖에 세팍타크로는 1, 2세트는 족구처럼 15점제지만 3세트는 6점제다. 두 종목의 경기장 규격, 공의 재질(세팍타크로는 등나무공)과 크기도 다르다.
장혜수 기자
2004.05.13 18:53 입력 / 2004.05.13 19: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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