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날씨는 길가의 버드나무 가지를 축 느려 놓는다. 매미도 더위에 지쳤는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7월이 되니 그 시절의 여름방학이 나를 일으켜 깨운다. 낡은 풍금 소리에 따라 초등학교 때 불렀던 동요가 흥얼거려진다.
즐거운 방학이다 어디로 갈까~~ 솔바람 시원한 산으로 가자. 메아리 부르다가 숨이 차며는~~ 산딸기 따며 따며 노래 부르자.
지금 신세대 가족들은 여행지를 결정하고호텔을 예약하고 여름방학 휴가 준비에 부모가 먼저 부산을 떤다. 60여 년 전 나의 여름방학 때는 피서는커녕 더위와 맞싸워 부모님 아래 논·밭에서 일을 돕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비교의 대상도 없어 모두 다 그러려니 하면서 불평 없이 여름방학을 보냈다.
아버지는 농외소득 특용작물로 수박과 참외를 재배하여 읍내 시장에 도매로 넘기거나 우리 집 여름 야채 과일로 재배했다. 원두막 설치 재료도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재료는 모두 다 주위에서 자급자족한 것이었다.
원두막 기둥은 생소나무를 베어 거친 껍데기를 모두 벗겨서 기둥으로 세웠다. 지붕은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서 삿갓 모양으로 씌웠다. 바닥은 통대나무로 발을 엮어 시렁처럼 높이 만들었다. 그 위에 허름한 가마니때기를 뜯어서 깔았고 작은 사다리를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 해가 지나가는 방향에 보릿대로 엮어 만든 해가림 막을 설치하여 내리고 올리고 하여 더위를 피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프리카 어느 원주민의 가옥 같은 생각이 든다.
원두막 기둥은 불볕더위에 송진이 개 엿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어쩌다가 옷이나 손에 닿으면 전생에 나하고 무슨 척을 졌는지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안간힘을 다하여 떼어놓아도 끈적거리는 송진이 옷과 손에 남아서 여간 곤혹스러웠다. 멀쩡한 생나무를 베어서 우리한테 하소연하는 소나무의 눈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름방학 때 낮에 원두막 당번은 내가 전담했다. 나는 주전자에 사카린 물을 가득 채우고 통보리 튀밥을 바가지에 담아서 방학 책을 들고 원두막으로 간다. 그 당시 교과서는 흑백 인쇄물이었는데 여름방학 책은 이야기 한 토막이나 삽화가 천연색으로 인쇄되어 더없이 기다려지는 방학 선물이었다.
방학 책에는 교과별 간단한 문제 풀이가 있었고 방학 중 매일 쓰는 일기장에는 날씨와 그날 중요한 일을 간단히 적는 난이 있다. 그것을 채우기가 방학 책에서는 부담되는 곳이었다. 어느 친구는 간단히 적는 하루 일기 ‘공부’ 또는 ‘놀음’으로 쓰는 난에 맞춤법이 틀리게 ‘노름’으로 표기해서 개학 후 선생님이 아무개야 너는 방학 동안에 노름만 해서 돈을 얼마나 딴냐? 하셔서 반에서 폭소를 자아낸 일도 있었다.
원두막 당번이 아닌 날은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품앗이로 콩밭을 맨다. 나와 동생은 하지감자를 캐다가 우선 물로 흙과 모래를 씻어내고 큰 소쿠리에 넣고 문지르면 대강 껍질이 벗겨진다. 다음에는 달챙이 숟가락으로 나머지 껍질을 손질하여 맑은 물로 헹구어 내면 보기도 아까운 둥글고 납작한 예쁜 달걀 모양이 된다.
야외 화덕 큰 양은솥 가운데 감자가 타지 않고 잘 익게 양재기를 엎어놓고 그 위에 감자를 올려 넣는다. 그리고 사카린 물을 적당히 부어 익히면 꿀맛 같은 감자가 쪄진다. 나와 동생은 감자와 물 주전자를 들고 뒷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한테 새참을 드리면 맛보다는 어린것들이 만들어 온 새참에 아주머니들은 고마워하면서 맛있게 잡수신다.
몇 년 전 인가 고향을 떠난 90세의 아주머니가 고향에 찾아와서 내 손을 덥석 잡으면서 이 손으로 그 옛날 감자를 쪄와서 맛있게 먹었다며 칭찬과 추억을 회상하셨다. 나는 공연히 부끄러워 손을 빼려고 해도 놓아주질 않으시며 ‘연식이도 이젠 많이 늙었네!’ 하시면서 눈가에 질퍽한 추억을 보이면서 손을 놓고 내 어깨를 다독거리신다.
개학날에는 방학 중 숙제 물로 식물채집이나 곤충채집을 가져가야 했다, 그리고 1인당 지정된 건초(乾草)를 가지고 가서 국민운동으로 전개되는 퇴비증산(堆肥增産)에 참여했다. 식물채집은 작은 식물을 뿌리에서 꽃까지 채집하여 물로 헹구어 헌책 속에 끼워 넣고 그 위에 돌을 올려놓으면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납작하게 만들어진다.
곤충채집을 하기 위해서 읍내 상점에 가서 곤충채집용 핀을 사다가 최근에 잡은 매미 사슴벌레 방아깨비 그리고 잠자리 등에 핀을 꽂아서 제출한다. 생명력이 강한 사슴벌레는 그때도 꿈틀거려 불쌍함을 느끼게 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손자의 여름방학이 되어 식구들은 여행을 떠나고 집을 지키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 시절보다 물질도 풍요롭고 피서 기구도 넉넉한데 더 더운 것은 떨쳐 버리지 못한 마음의 더위를 달고 살아서 그런가 싶다. (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