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일기 892: 틈의 섭리-103년차
2011.12.28(수)
총회 제 103년차 지방회장단 동기회 제7차 부산 컨퍼런스 2박 3일의 일정 중, 둘째 날 오찬 풍경은, 마치 지난 2009년 흐리고, 쌀쌀하며 추웠던 9월 23일, 프랑스 빠리 양지(陽地) 바른 현지 식당에서 달팽이 전식요리를 즐기던 감미를 재현하는 듯 했다.(헐∼ 내가 좀 감성적이지 ㅋ,ㅋ)
그랬다. 바비스데이의 오찬(午餐)은 더할 나위없는 행복감을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광안리 해변을 조망하며, 봄볕 같은 양광이 따사로운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정담을 나누며, 우린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다.
망중한(忙中閑)이란, 바쁜 가운데의 한가한 틈, 이라는 말이다. 그랬다. 다들 연말 사무총회도 끝내고, 올해는 주일날과 겹쳐 깔끔했던 성탄절 축하예배를 마친 후, 새해로 건너가기 위한 주막 같은 세밑, 그 마지막 주간에 우리는 ‘틈’내어 먼데 부산까지 내려왔다. 정말 ‘틈’낸 동기들도 있었다. 불난 ‘틈’에 집을 비웠다가, 구사일생했다며 ‘틈’의 섭리를 설파하러 온 김기환 동기는 불난 집수리가 이제 막 끝나 이삿짐 부려 놓다가, 정말 ‘틈’내어 내려왔다. 어디 그뿐인가? 감기로 힘든 몸을 이끌고 내려온 조영래 동기는 말없이 틈내는 지성(至誠)을 선보였다. 교회 행사로, 교회 이전의 격무에 힘들어 하면서도 틈을 낸 동기들하며, 불원천리하고 맘 열어 애틋한 동기애를 발한 친구들이 틈내어 함께 했다.
아니, 우리가 틈내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영남 동기들이 맘 활짝 열어 우리를 반긴 ‘틈’에,
우리가 틈입해 든 것이다.
시인 고(故) 임영조 선생은 그의 시 ‘틈’에서 「……금간 보도블록 사이로 촉을 내민 / 풀씨가 더 눈물겹고 환하듯 / 틈으로 엿본 생은 얼마나 인간적인가?……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열듯이 / 안으로 들이려면 틈을 내줄 일이다 」라고 읊었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내민 풀씨의 환한 촉처럼, 영남 동기들이 내민 손길을 우리가 맞잡고 기쁨과 감격에 겨워 함께 행복을 꿈꾸었던 순간순간들을, 마치 시편 기자의 고백에 비견하면 망령(?)된 언사가 될까?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126편1).”
적어도 바로 어제 그 둘째 날, 그 해변을 주름잡던 번데기들은 포로해방을 만끽하듯 마냥 즐거워, 즐거워 다들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맛에 맛을 더한 아이스크림 집을 나오면서, 제 호주머니 턴 것도 모른 듯, 최일만 목사는 만복감에 젖어 나에게 다가와 백삼년차가 아니라, ‘배∼삼년차’라면 배를 두드려댔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모처럼 허기를 메꾼 아이가 ×배를 두드리듯. 쥔장 황용득 목사의 말대로, “맛난 사람들과 함께한 만복감”은 우리들을 두둥실, 죄다 수소 풍선 되게 했다. 그 해변에 갈매기가 무리를 지어 훨∼,훨∼ 날았다.
풀 하우스에서 풀 죽은 솔로 설봉식 동지만 빼고, ‘잇빠이’ 망중한을 즐기던 동기들에게, 나는 달리는 차 중에서 “우리 고운 정(情)만 주고받는 동기회가 되자”고 역설했다. 그러기 위해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우리 너무 붙지도, 떨어지지도 말자. 정교분리(?)를 엄격히 지키자. 우리 서울중앙지방회로 넘어오지 마라. 서로 너무 붙어, 뭔가 알려고 하면 다친다, 다쳐−. 뭐 이랬다,
내가. 이를테면, 동족상잔의 음모가 득실대는 이 불행한 분단 강토에, 역설적으로 평화와 안전 지대된 비무장지대처럼, 우리 103년차는 상호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저 바라봄’만으로 화평을 누리자는 말이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 서로가 서로에게 매이지 않는, 여름 살갗에 모시 적삼 같은 관계되자는 말이었다.
다들 뭔 말인지 알아들기 힘들 거다. 왜냐면, 모든 언사에는 남모르는 배경이 있기에. 이번 부산컨퍼런스를 떠나면서, 나는 서울에 침을 뱉고 떠났었다. 작금 우리 서울중앙지방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러운 치정살인극이 나를 오욕질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명공동체같은 신앙공동체의 안녕과 화목을 깨뜨리는 불여우들 때문에 내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103년차는 불가근불가원하는 방식으로, 이 귀한 연대를 이어나갔으면 해서였다. 이젠 이해를 하실라나?
밤엔, 거제도 최남단 다대리에서 감칠맛 난 자연산 돔, 우럭 회를 먹고 난 후, 포구에 자리한 황토 펜션에서 우리는 혼숙을 했다. 화명동 분봉왕 황용득 목사의 열정적 인도로 경건 집회를 가졌다. 조선 팔도를 돌며, 사돈네 팔촌(?)까지 들먹이며, 우리는 뜨겁게 합심기도를 했다.
이어진 토크 타임. 근데 사회자가 ‘틈’을 확, 열어젖힐려고 했다. 게다가 설봉식 운전기사도 빨리 재워야 하는데. 시간은 자정으로 달려가는 데, ♫ 아∼, 아∼ 그 사람 얄미운 사람, 신사동 그 사람 ♫ - 긍게 노래방이나 가자니까, 웬 심야토크.
난 그 틈을 얼른 막아버렸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썩지 않고, 삭힐려면 우리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뭐 이런 판단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그 누구를 무안하게 했고, 나는 우리 서로를 비집고 들어 올 ‘틈’을 봉쇄해 버렸다. 미안했다. 그냥 몰라도 돼. 모른 체 사는 게 도움이 돼. 우리는 그래야 돼. 나는 그랬다. 아임쏘리-내 이름이 쏘리다.
마지막 날 아침. 원명숙-김은숙 사모님께서 자연산 전복으로 밤새 끓인 전복죽은 사랑과 우애가 차고 넘친 별미중의 별미였다. 나는 폐회 설교를 했다. 전도서 4장, 삼겹살(?)은 끊어지지 않는다, 고 역설했다. 103년차가 전해 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위해, 우리 라마의 통곡을 마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돌아서서 나오다가, 오세현 마당쇠가 그네 금쪽같은 아씨 양금숙 님을 위해 온밤을 새며 달군 화덕에 불씨가 다 사그라졌는데도, 화덕 주변 틈새에서 연기가 시들지 않고 연신 피어오르고 있음을, 우리는 막판에 문 닫고 나오려다가 주시하게 됐다. 만능 가제트 오세현 동지가 화재를 직감하고, 즉시 119를 불렀다. 틈새로 피어오른 연기를 보고 속이 타들어 감을 감지한 그는, 과연 영적 내과 의사였다. 그래 구원은 밖에서 오는 법. 서로가 틈을 열어 희열을 나눈 103년차 동기들은, 틈을 주시하는 세심한 영감으로, 그 집을 구원했다. 할렐루야.
‘속내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끈,’
하여, 구원을 얻은 다대리 황토방처럼,
그 전지전능하신 당신께만은
내 속내, 니 속내를 다 드러내,
틈의 섭리를 깨달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제 103년차가 되길 소망한다.
p.s
황용득-김은숙, 조영제-원명숙
동기 부부들의 섬김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 섬김이 하늘과 땅에서 해같이 빛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보너스/ 시 한 편 감상하시길.
틈 - 임영조
그가 넌짓 말을 던진다
나도 조심조심 말을 섞는다
절대로 틈을 보이지 말자!
해도, 어느새 벌어지는 틈
그 틈을 비집고 그가 쳐들어온다
간질간질 눙치듯 쉬슬어놓고
내 속을 갉아먹고 어디론가 날아가
역한 소문만 퍼뜨리는 쉬파리!
그를 보려는 내 눈과
그를 들으려는 내 귀와
그를 맡으려는 내 코와
그를 삼키려는 내 입이 곧
그가 비집고 쳐들어올 구멍이라니!
그게 바로 내 생의 틈이었다니!
진도 앞 큰 바다도 절로 갈라져
틈을 보일 때가 있다지? 감춰둔
속내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끈다지?
금간 보도 블록 사이로 촉을 내민
풀씨가 더 눈물겹고 환하듯
틈으로 엿본 생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말의 틈은 흠이라지만
사람의 흠은 그의 생을 정독할
자상한 각주 같은 것이니
더러는 틈을 보이며 살 일이다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열듯이
안으로 들이려면 틈을 내줄 일이다
첫댓글 "불가원불가근" 이란 말을 어느 선배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너무 가까이 가지도 말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말아라. 너무 가까이 가면 물리고, 너무 떨어지면 짖어대니 시끄럽쟎은가..." 그래서 나도 기꺼이 찬성! 찬성! 찬성!
우씨... 진작 말해주지. 나는 다 까발려 버렸는디... 그래도 위로 받는다.
임윤빈목사와 안미옥사모님도 50%는 다 까발려 놨응께...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많은 대접들을 했는데 이번 103차 처럼 사랑과 정성과 기쁨과 은혜로 섬긴 적이 또 있었던가? 대접하고 나면 늘 허전함이 있었는데 금번은 그저 감사 만족 행복이로고...
역시 우리 회장님!! 103년차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마음이 글속에 묻어납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어쩔줄 모르시는 주님의 마음을 닮으신 탓일까요~~~103년차는 그래서 대단한 조직(?)인 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시간시간 하나하나 기억들을 더듬을 필요없이 컴 자판에 손을 대는 순간 신들린 것처럼 사랑의 시간들을 거침없이 쳐댔을 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사랑과 기쁨으로 섬겨주신 목사님 사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