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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도초지 담장에 불감을 파 놓고 그 안에 부처상을 모셨다. 목에 앞치마를 둘렀는데 그전에 듣기로 턱받이를 한 지장보살은 갓난 아기나 어린이가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들었는데, 이 곳은 턱받이가 아닌 몸 전체를 가린 앞치마라 어떤 뜻이 있는지 질 알 수가 없다. 겨울이 오는 것을 대비한 것은 아닐테고 궁금하다. 이럴 때 일본어를 잘 한다면 종무소에 있던 거사에게 물어보았을 텐데)
마지막 날 대회 일정이 3시30분에 끝났다.
한국행 비행기는 8시 50분에 뜨니 많은 시간이 남았다.
공항까지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리니 공항도착 6시50분까지 한다고 해도 무려 두시간 이상이 빈다.
이 남는 시간을 어찌 할 것인가 분분하더니 각자 하고싶은대로 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서 시간을 보낼팀과 시내구경을 하다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하는 팀으로 나눠
남은 여비를 인원수대로 돌려받고 헤어진다.
나는 시내구경을 가기로 하고 동행인을 구하니 두분이서 같이 가겠다고 한다.
나머지 스무명 가까이 되는 일행은 바로 공항으로 가기로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후쿠오카 항내의
전망탑을 갔다가 공항으로 갔다.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는 것은 시간 낭비요
몸에 대한 결례다.
시내 관광시에 보고 싶었던 일본최초의 진언종 사찰인 도초지를 보러간다.
그사이에 수집된 정보로 기온역 바로 옆이니 찾기는 싶다. 걸어가도 되지만 시간을 아끼기로 하고
셋이서 택시를 탄다.
후쿠오카 국제회의장에서 기온역까지는 택시비 700엔이 나왔다. 시간은 10분정도......
동장사는 806년 당에서 귀국한 홍법대사 공해가 하카타 해변에 세운 밀교사원이라 전해지고 있다.
지마군에 일시 이전했다 지금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이지역의 이대번주 흑전충지가 시주한 이래
사역의 기초가 공고해졌다. 경내에서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이 있고
지방문화재인 육각당이 있다.
30여년전에 건립된 목조좌불이 일본최대의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후쿠오카 구로다 가문의 묘지로 서측의 이대 충지(1602~165)의 묘가 중앙에 3대광지( 1628~1707)동측에 8대 치만의 묘가 있다. (경내안내판에서)
기온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도초지가 있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조용하다는 것인데 평소 그러려니 하다가도 이렇게 길에 면한 절에 들어오면 확연히 느껴지는
조용함이 인상적이다.
담 하나로 소음이 차단된다기 보다는 담 안에 들어와서야 바깥의 조용함이 비로소 인지되는 것이다.
며칠전 성덕사에서도 그랬지만 이곳도 관람객 서넛 외에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한 산사의 조용함을 더더욱 느낄 수 있다.
이미 호텔에서 나온터라 끌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이 거추장스럽다.
종무소 같은 곳을 들여다보니 사무를 보고 있는 스님복장을 한 처사가 한분 계신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우리 가방을 맡아 줄 수 있냐고 하니 뜻이 통했는지 종무소 안으로 들여놓으란다.
가방을 맡기고 먼저 호텔에서 얻은 정보에 따라 미술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간다.
미술 전시회의 제목이 '하늘의 꿈'이었는데 작가가 스페인여행시 얻은 영감을 미술로 표현했다.
특이한 것은 미술 작품을 절이 소장한 문화재 사이사이에 전시한 것이다.
이곳이 우리네 절로 따지면 성보박물관 같은 곳인데 공간을 분리해서 전시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빈 자리를 찾아서 작품을 건 것이다. 미술작품도 보고 불상도 같이 보게 되어있다.
30년전쯤에 조성된 대불은 일본에서 가장 큰 목조좌상이라는데 부처님이 깔고 앉은 대좌 밑 공간을 활용하여
지옥과 극락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가장 큰 대불답게 대좌 밑도 사람이 걷기에 전혀 불편이 없는 높이였는데 미로를 꾸며놓아 그곳을 통과하면서
불교의 보살상과 지옥의 나찰들을 보게 만들었다.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무간지옥이다. 틈이 없는 지옥이라는 뜻의 무간지옥은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으로도 표현되는 데
얼마나 깊은 지 알 수없는 그 공간에는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앞이 캄캄하다고 할 때 느끼는 그 절망감은 미래와 앞길을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력감 그래서 오는 두려움때문에 지옥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지옥이다.
지옥나찰들이 최대한 겁을 주고 있는 화탕지옥이나 발설지옥등을 지날 때 까지만 해도
웃고 까불었는데 순식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들어서니 이곳이 무간지옥이라는 것조차 까먹고
두려움에 한발을 내딛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선다.
겁없는 척 대범한 척 행동했던 것들이 이 어두움 앞에서 순식간에 허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들켰는데도
그 쪽팔림 조차 느끼지 못하고 앞으로 한걸음 떼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다.
내 뒤를 따르던 두 사람도 덩달아 물러섰다.
그대로 돌아가자는 사람 둘에 그냥 가보자는 사람 하나. 하나에 떠밀려 둘이 앞으로 나간다.
그런데 왜 가자는 사람이 앞에 안서고 또 내가 섰지 남자라서 그랬나
무간지옥에 길잡이가 있다면 지옥이 아닌 것처럼 이곳도 길잡이가 있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한 것인데 뒤로 물러나 설왕설래하는 중에 발견했다. 전혀 안보이는 캄캄한 곳에서 벽을
따라 손잡이가 레일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속이지만 그래도 손잡이가 있으니 눈이 아닌 몸으로 밀고 나간다.
무간지옥의 끝에는 빛이 있고 그 빛의 한가운데 부처님이 서계신다.
이곳이 극락인 것이다.
극락을 지나서 하늘의 꿈을 보러간다.
밀교의 본산답게 명왕상들이 서 있는 사이 사이로 하늘의 꿈 연작이 걸려 있다.
관세음보살상이 균형잡힌 몸매로 눈길을 잡아끌고 유리진열장 안에 편액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진열되어 있는데
그 안에도 하늘의 꿈 작품은 걸려 있다.
문화재와 함께 걸린 작품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미술품이었던 불상과 글씨들과 현재의 미술품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치 앞을 볼 수 없었던 무간지옥에서 손에 잡혔던 가드레일처럼 저기에 전시된 저 그림들도 과거의 꿈속에 갖힌
미래의 꿈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케 하는 일본의 절과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당당히
서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미술품이자 문화재와 함께 전시된 현대의 미술은 일본속에서 새롭게 느끼는 문화적충격이었다.
팜플렛에 들어 있는 국보로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유리장에 갇혀있던 그 보살이 아님은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기에
그곳에서 일을 보는 처녀보살에게 손짓을 하니 일년에 3개월만 개방하는 보살이며 지금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담징 벽화로 유명한 법륭사(호류지)의 몽전에 있는 관음상도 일년에 딱 하루 개방하는 비불(秘佛)이라 구경하기가 정말
어렵다는데, 이 곳은 그나마 3개월씩이나 개방한다지만 시절인연이 닿지 않아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 후쿠오카 지정문화재인 육각당이다.
1842년 하카타에서 약과 기름을 취급하는 상인 풍후옥영장가 각지 상인에게 좋은 재료를 구하고, 나고야의 명장 이등평좌위문을
초빙하여 완성하여 도초지에 기증하였다.
육각의 정면을 넓게 하여 예배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여섯분의 불상을 모시고 있다 (안내판에서 발췌))
마당에 내려오니 육각당이 보이고 담장에는 수많은 불상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종무소 옆으로 현대식 건물의 대웅전이 있는데 건너뛰고 묘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를 닮은 처마가 인상적인 건물이다. 이곳에도 관세음보살을 모셨다고 써 있고 그 앞에는 진언종답게
관세음보살에 맞는 진언을 적어 놓았다.
옴 마니 반메흠과 같은 진언은 그 나름대로 필요에 따라 불상에 따라 제각각이다. 암송하는 것만으로도 해탈할 수 있으며
극락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진언은 불교 밀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현상태나 필요에 의해 읊는 진언도 다양하지만 그 다양함은 바로 부처나 부처의 심부름꾼인 명왕의 다양함과 관계가 된다
그래서 이들 절에는 사천왕과 같은 부류의 명왕들이 많이 모셔져 있고 자신의 소원을 가장 잘 들어줄 관세음보살상을 많이 모신다.
관세음보살도 바쁘실터이니 그냥 관세음보살보다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셔서 혹시라도 자신의 소원이 누락되지 않도록
세세하게 신경을 쓴다.
밀교에서 마트라만큼 중요한 것이 무드라라고 하는 수인이다. 수인의 다양함도 또한 만트라처럼 특정 용도에 대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밀교가 동쪽으로 온 최초의 신령한 도량이란 뜻을 돌기둥에 새겨놓았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밀교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잘 살피어 좋은 끝을 보기를 바란다.
후쿠오카의 번주인 구로다의 3대 광지의 묘. 스님의 부도처럼 생긴 저 탑이 오공탑이라고 하는 밀교의 전통 탑이다.
5대라고 하는 물불흙바람 공이라는 5대로써 인간이 구성되어 있는데 죽으면 다시 5대로 돌아간다는 불교의 뜻을
표현하고 있는 탑이다. 탑을 이루고 있는 각 형상에 따라 5대가 하나씩 대응하고 있다. 갸령 네모난 것은 흙이요
세모꼴을 불이다.
(이대 충지의 묘이다. 그 앞에 보이는 다섯개의 오공탑은 충지가 죽을 때 따라 죽은 다섯명의 신하의 묘이다. 이당시에도
따라 죽는 전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각각 도솔천에 있다고 하는 사십구층의 마니보전을 본따 49개의 화강암으로 만든 작은 탑으로 둘러싸여 있다.(이상 안내판에서)
충지의 묘 옆에 서 있는 고목이다.
5시에 가까와 졌는데 벌써 날은 어둑하다.
이곳의 관람시간이 10시에서 5시까지로 되어있는데 절에서 일하는 처사가 문단속을 하면서 5시에 나가라고 한다.
그냥 돌아나오려다 신식건물이지만 대웅전을 들여다 보고 가려는데 스님들이 모여 법회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스님보기가 참 힘들었는데 법회를 하는 장면을 보니 그냥 갈 수가 없다.
종무소에 맡겨놓은 가방을 찾아와 대웅전에 앉아 법회를 관람한다.
진행되는 것을 보니 매우 엄격하다. 순서나 법식을 알지 못하지만 스님들의 독경이 있고 모두 일어서 주지 스님이 앉아계신
법석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돈다. 우리네 탑돌이나 우요삼잡이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독경을 하면서 계속 돌다 한 구절이 끝나면 제자리에 멈춰선다.
독경을 끝내고 제자리에 멈춰서는 동작이 절도가 있다.
우리네 독경은 뒤끝을 길게 늘이면서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데 일본의 독경소리는 뒤끝이 칼로 자른듯 짧다.
잠시 멈춰선 사이에 주지스님인지 상좌스님이 법석에 앉은 채로 '오~~~~옴'하고 길면서 뒤 끝이 짧게 사자후를 내면
다시 스님들은 걸으면서 독경을 하고 멈춰서길 한동안 계속한다.
그 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한명씩 독경을 하는데 한 사람의 독경이 끝나면 나머지 스님들은 애기울음 소리로 기합을
넣는데 처음 듣는 그 소리에 웃음이 날뻔했다.
몸속에 있는 모든 공기를 다 내빼는 듯한 소리가 독경을 하는 대상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번 들으니 웃기면서도 뭔가가 있는 느낌이다.
아주 경건하게 진행되는 스님들의 예불과 독경은 마치 운문사 새벽예불을 보는 듯하다.
일본일정중에서 마지막에 이런 행운을 잡았다는 것에 모두 흡족해 한다.
가운데 불전에 국보인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화려한 외관때문에 더더욱 그 안에 계신 관음상에 대한 기대가
더 크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스님들의 예불을 본 것은 일본 불교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편견-세속적이며 수행생활을 하지 않는다-을 없애는 좋은 기회였다.
일본이 문화대국이 된 것이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저런 정신 바탕이 있었기에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
스님들의 예불에 대한 추억을 가진 것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첫댓글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요모조모 세세히 기억하고 계셨네요. 무간지옥에도 손잡이가 있었다는 말에 글을 읽으면서도 위안을 받았습니다. 암울한 우리 앞날에도 분명 희망의 길이 마련되 있을 것 같아서요.
두려움과 무력감이라...지옥중에 상지옥에 손잡이로 하늘의꿈을 표현하니 얄팍한 일반적인 정서라고 느꼈다가 ....헐, 진리는 자연 제일성이라구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