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반쯤 가면 나오는 경기도 화성시 장덕동 남양연구소. 1999년 현대·기아차 통합연구개발본부로 발족한 이후 마북리 환경기술연구소, 미국·일본·유럽 연구소를 총괄하는 현대·기아차 연구개발의 총본산이다. 약 347만㎡(약 105만평) 면적에 설계 시험 전자개발 선행개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디자인 등 100여 개 건물들이 밀집해 있으며, 내부 연구원만 8000여 명에 달한다. 전 세계 어떤 자동차회사 연구소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규모와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핵심 노른자위 가운데서도 '노른자위'이다.
- ▲ 1현대·기아차가 수출하는 각국의 안전 조건에 맞는 차량을 만들기 위해 다양 한 충돌테스트를 시행한다. 2직경 8.4m의 초대형 프로펠러로 바람을 만들어내는 풍동시험장. 제네시스의 공기저항계수를 동급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데 큰 역할을 했다. 3자동차가 극한의 온도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콜드 테스팅(cold testing)’장면. /현대·기아차 제공
■"차에 관해서라면 못 만들게 없다"
남양연구소에는 1976년 국내 첫 고유모델 포니부터 시작된 국내 자동차 개발의 역사와 당시 자동차산업을 통해 국가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엔지니어들의 사명감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남양연구소의 한 부장급 엔지니어는 "자동차에 관한 한 남양에서 못 만드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남양연구소는 규모 면에서 국내의 다른 완성차 회사들을 압도한다. GM그룹의 경차 개발 센터인 GM대우 연구개발 인력은 2000여 명. 르노삼성은 800여 명, 쌍용차는 700여 명 정도다. 현대차는 엔진·변속기 등을 개발하는 파워트레인 센터 소속만 2000여 명에 달한다. 또 첨단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영상 품평장, 파워 트레인센터, 자동차의 공기저항을 줄이는데 필수적인 풍동시험장, 차량안전과 직결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는 충돌시험센터, 165만㎡에 달하는 넓은 들판을 가로지는 주행로, 4.5㎞ 길이의 고속주회로, 설계센터, 디자인연구소, 자동차에 앞으로 적용될 신기술을 연구하는 선행개발센터 등 자동차 연구개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집약돼 있다.
■엔진 개발 수준급… 변속기·섀시도 궤도 진입
자동차회사는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과 차체(섀시)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따라 일류 자동차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로 구분된다. 현대차는 1993년 스쿠프에 장착한 1.5L급 알파엔진을 시작으로 휘발유엔진의 기술자립을 이뤘고, 2004년 현행 쏘나타에 첫 장착된 2~2.4L급 쎄타엔진부터 가격대비 성능, 효율성에서 글로벌 톱클래스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현행 현대·기아차의 소형 및 준중형급에 얹히는 1.6L급 감마엔진이나, 1.1L급 카파엔진은 작고 가벼우면서도 출력·연비가 뛰어나 해외 자동차회사들도 구매·협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디젤엔진 역시 유럽 선진업체와 기술 차이를 급속도로 좁혀가고 있다. 1.6L급 U엔진은 디젤엔진의 개발 및 생산능력이 한국보다 월등한 유럽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대차 베라크루즈, 기아차 모하비에 얹히는 V형 6기통 3L급 S엔진은 정숙성·힘·연비 면에서 유럽의 선도업체인 벤츠·폴크스바겐·푸조의 동급엔진과 겨뤄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는 그 동안 주행성능·안전성을 좌우하는 차체, 동력전달 효율을 좌우하는 변속기에서는 글로벌 톱클래스에 약간 못 미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나 제네시스에 처음 적용된 현대차의 첫 후륜구동 플랫폼(자동차의 기본 뼈대)은 현대차의 30년 차체 설계기술이 집약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플랫폼은 제네시스 뿐 아니라 스포츠쿠페, 중·대형세단, SUV·픽업트럭 같은 '변종(變種)'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설계 유연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다른 완성차 업체의 차체 설계 담당은 "현대차가 제네시스 플랫폼을 통해, 쎄타엔진으로 엔진분야에서 도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차체설계 분야에서도 한단계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파워트레인 가운데 취약점으로 평가되던 변속기(transmission)도 최근 세계적인 주류로 떠오른 6단 자동변속기는 물론 하이브리드카와 소형차에 주로 얹히는 무단변속기(CVT)까지 자체 개발중이다. 현대차 고급세단은 현재 제네시스를 제외하면 전부 5단에 머물러 있지만, 조만간 그랜저를 시작으로 독자 개발한 전륜 6단 자동변속기가 차례로 얹힌다. 현재 4단에 머물러 있는 쏘나타·로체에도 5단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자체개발한 중형차용 전륜 6단 자동이 얹힐 예정이다.
- ▲ 남양연구소 내 디지털영상 품평장. 첨단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해 과거처럼 클레이 모델로 차의 모양을 제작하지 않고도, 색상을 바꾸고 각종 장치를 작동해 볼 수 있다.
■협력업체와의 장기협력 및 인력관리 개선이 숙제
현대차가 연구개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내 협력업체들과의 공생(共生)관계에 좀더 신경써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또 '이원화(해당 업체 대신 다른 업체에 주문을 하는 것)'를 무기로 협력업체를 쥐어짜기만 하기보다는 함께 밸류 엔지니어링(VE·설계개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품질·성능을 높이는 것)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차가 협력업체들과 함께 공동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는 'R&D 심포지엄'을 각 분야에서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게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