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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 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 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 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 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 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 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 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 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로써, 동방박사 세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온 세상에 그 공적을 알린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 은 높은 학식과 지식, 그리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지위와 논리의 체계 를 모두 버리고, 진정한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보잘 것 없는 아기 예수님께 겸손하게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동방박사들이 보여준 믿음과 겸손함을 기억하며 우리의 사랑을 아기 예수님께 예물로 드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요한 1,43-51) |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 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 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은 지금 바로 여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언행은 물과 같이 색도 없고 맛도 없고 평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언행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하느님께 봉헌되는 특별한 봉헌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물이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벌이 마시면 꿀이 됩니다. 같은 나무지만 목수의 마음에 따라 의자로도 제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언행도 우리의 지향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믿음을 통해 우리의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삶도 하느님께 올리는 최고의 봉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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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마르 1,43-51) |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 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 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 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그때에 4,14 예수 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 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 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 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 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 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느님의 나라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선포의 말씀이 당신을 통해서 이루어졌음도 알려주십 니다. 이제 우리는 진리와 평화가 공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느님의 나라 에 대한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 해방과 정의, 진정한 평화와 진리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선포되 고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령께 도우심을 청하며,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 정의 와 진리를 실천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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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함께 지내게 하셨다.(마르 3,13-19) |
(루카 4, 21 - 30)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 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 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 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 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 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 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 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 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복음묵상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며 예수님의 복음 선포,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 귀 기울이기보
다 예수님의 출신 등 외적인 것에 집착하여 예언서의 본뜻과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화려한 외모나, 겉꾸민 모습
에 현혹되고, 달콤한 말 한마디에 넘어가 예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나약한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복음을 들려주시는 예수님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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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르10,1-9) |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렇고 그런 죄인이 아닌 주님 앞에서 회개하는 죄인일 때 우리 안에서 기적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구원의 기적이, 베드로와 같은 큰 기적이 오늘도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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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마르 2,22-40) |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 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 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 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 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 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 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십니다. 바로 당신으로 말 미암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참다운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며, 복된 삶,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택의 기준, 가치 판 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기준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끌어주시는 아 버지 하느님이어야 하며, 구원의 표징으로 오신 당신을 선택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야 말로 선택 받은 백성, 하느님 나라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로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 등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 끝없는 하늘에서의 행복 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진정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 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갈 때 우리를 위해 준비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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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마르 7,31-37) |
그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 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 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 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 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 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 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 로 서로 꾸어 준다.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 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 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 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 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 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이치를 가르쳐 주십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아주 간단한 이치를 설명해 주십니다. 하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을 보고 우 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내게 잘못한 원수를 미워할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남에게서 받기 원하는 것을 해주듯이 그렇게 용서를, 사 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부메랑이라는 원시적인 무기를 씁니다. 이 무기는 던 지면 반드시 던진 곳으로 되돌아옵니다. 사랑도, 미움도,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그 이치를 잘 알고 계셨기에 사랑하라고, 용서하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엇을 줄 것인가는 우 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랑을, 미움을, 용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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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4─9,1) |
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 에 시장하셨다.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 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그러 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 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 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 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 러갔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유혹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유혹을 물리치시는 모습 속에서 주 님께서는 유혹 자체보다 그 전제 조건에 큰 비중을 두고 계십니다. 돌이 빵이 되게 하라는 인간의 허 황된 욕심에 대해서, 하느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하느님의 나라를 거부하고 부정한 방법과 불의한 수단 등을 통한 권력에 대한 욕심에 대해서, 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유혹들을 주 님께서는 과감히 거부하십니다. 결국 인간의 허황된 욕심이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유혹이라는 점을 오늘 당신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자기완성이라는 미명아래 원리와 원칙을 무시하 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들, 인간의 허황된 욕심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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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을 빼앗길 그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르 9,14-15)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 지 못할 것이다.‘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 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 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 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 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 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 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 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 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복음묵상 :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이 장엄하고 거룩한 사건은 베 드로의 몰이해를 거쳐 하느님 아버지의 장엄한 계시로 끝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기억합니다. 또한 우리도 베드로처럼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베드로처럼 나 약하고 주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분의 뜻 에 거스르는 행동도 너무나 자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나약함과 주님 께 대한 몰이해, 그리고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그의 말을 들어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 니다. 이 말씀이 베드로를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까지 이끌어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 자 신 역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아나갈 때 우리도 부활 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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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마태오 7,7-12) |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 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 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 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 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 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그 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 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 서 거름을 주겠습니다.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 복음묵상 :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 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우리의 회개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기회를 주고,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포도원 주인에게 애원하며 무화과나무에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포도원 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회개 를 요청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회개는 먼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바라보고 그 모습을 인정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죄와 허물 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와 허물로 얼룩진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 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것을 인정할 때, 또 아무리 물을 채우려 해도 채울 수 없 는 밑 빠진 독과 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는 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 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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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마태오 21,33-43.45-46) |
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 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 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 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 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 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 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 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 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그 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 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 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 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 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 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 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 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 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 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 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복음묵상 :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잃은 아들을 다시 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아버지를 떠 나 인생의 쓴맛 단맛을 보고나서야 작은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먼 곳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아들이 올 때가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아들을 향해 달 려갑니다. 돌아올 것이란 희망으로 기도하며 기다린 아들이었기에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보고 그 자리에 서서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갔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포 기하지 않고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를 벌입니다. 아들의 죄를 추 궁하거나, 타지에서 고생한 내용 등을 물어 볼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묻지를 않습니다. 그 모든 것 을 포기합니다. 오직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그 기쁨에 가슴 벅차하며 잔치를 준비합니다. 예수 님께서는 잃었던 아들은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을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계십니다. 사람은 언제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된 선택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진다 하더라고 회개를 통해 언제든 하느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 다. 그리고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고 죄를 묻기보다 달려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잔치를 벌 이는 아버지와 같은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죄인의 회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 고 계시는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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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마르코 12,28ㄱㄷ-34) |
22,14 ─ 23,56<또는 23,1-49>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
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예수님께서 잔을 받아 감
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
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
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예수님께서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
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
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복음묵상 :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이 초래 하게 될 일들, 결과들, 그 밖에도 나에게 돌아오게 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계산을 합니다.
그래서 선뜻 친구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때 주저하고 회피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잘 알지도 못하는,
심지어 나와 원수지간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 하기도,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는 것도 힘든데, 자신을 조롱하고 업신여
기며, 원수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당신을 기꺼이
우리의 밥으로 내어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수난의 길을 시작하십니다. 당신
의 사랑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물론 우리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정말 목숨을
내어주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기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노력
할 수 있다면, 직장 동료를 존중하고, 부모님을 위해, 형제들을 위한 배려를 내가 미워하는 이를 위해
서 잠시라도 기도해 줄 수 있다면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수 있다
고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수난과 죽음이라는 고통이 따랐기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
면서, 주님께서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시듯, 우리도 우리의 사랑을 그렇게 내어줄 수 있도록 주님과
함께 삶의 자리에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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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셨다. (요한 10,31-42) |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 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 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 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복음묵상 : 『“그 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죽음을 이기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써 우리 안에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씨앗이 부려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인간에게 이 씨앗을 나누어 주셨습니 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희망해 왔던 이들에게 그 완전한 실현의 씨앗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마치 씨앗이 움터 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자양분을 공급 받아야 하듯, 우리의 신앙에 부활에 대한 믿음 과 희망을 주시고, 당신이 직접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의 자양분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을 기억해 야 합니다. 그 사랑의 자양분으로 우리는 부활을 희망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사랑으 로 이 생명의 씨앗을 키워나가야 합니다.‘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라는 진리가 우리에게 실현되도록 해야 합니다.이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으로써만 가능한 것입 니다. 이를 우리는 부활의 기쁨,사랑이 가져다주는 기쁨 속에서 이루어 가야하는 것입니다.그 부활의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과 함께 하는 부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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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요한 7,1-2.10.25-30) |
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 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 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 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 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 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 다.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 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 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 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눈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보는 눈이요, 다른 하나는 드 러나지 않는 것까지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라고 합니다. 외적인 눈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오감을 통해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기 때문에 정확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아 무리 설명한다고 해도 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호기심을 갖게 만듭니다. 마음의 눈 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마음의 눈은 그 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의 눈이 되는 것입니다. 이 눈은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는 원동력이요 온갖 유혹 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의 역할까지 해줍니다. 또한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 에게 신뢰심을 심어줄 수도 있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게도 해줍니다. 그런데 이 신 앙의 눈은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바로 믿는 이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다 운 신앙인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토마스 사도의 교훈을 기억하면서 진정 한 신앙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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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요한 21,1-14) |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베 드로에게만 하신 당부의 말씀만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당신의 자녀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의 삶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전해주기를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 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동안 결과만을 중요시하고 과정을 소홀히 함으로써,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서 살피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의 모습에서 느끼지 못해서 길을 잃고 헤매 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 사랑을 전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랑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 록 노력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힘겨움, 고통들이 사랑을 나누는 인 간 본연의 삶을 무시하고 부유함과 풍요로움만을 추구해온 결과임을 기억하면서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 과 함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사랑의 나눔이라는 사명을 수행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베 드로에게만 하신 당부의 말씀만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당신의 자녀들인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의 삶을 통해, 당신의 사랑을 전해주기를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예수님을 그리스도 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 동안 결과만을 중요시하고 과정을 소홀히 함으로써,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서 살피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의 모습에서 느끼지 못해서 길을 잃고 헤매 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 사랑을 전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랑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 록 노력하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힘겨움, 고통들이 사랑을 나누는 인 간 본연의 삶을 무시하고 부유함과 풍요로움만을 추구해온 결과임을 기억하면서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 과 함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사랑의 나눔이라는 사명을 수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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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요한 6,1-15) |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 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 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사람들에 대한 목자의 사명 완수하도록 하셨습 니다. 위에 계시며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로 내려오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을 인도하시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고 계시듯,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 고 그들을 목자가 양떼를 이끌어주듯 하느님께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또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께 맡기신 양 떼를 다른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하게 보호해주십니다. 결국에는 양 떼 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십니다. 양 떼에게 새로운 삶을, 영원한 생명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 당신 자신을 기꺼이 내놓으신 것입니다. 마치 목자가 양떼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듯이 말입니 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참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그분의 양떼입니다. 그렇다 면 우리들 자신은 그러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어떠한 “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목자로서의 예수님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이끎에 믿음으로 기꺼이 따라나서는 양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하느님 나라의 양의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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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요한 6,52-59) |
유다가 [방에서]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 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 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 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 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복음묵상 :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당신 가슴 속에 담고 계시는 가장 큰 열망을 제자들에 게 드러내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빛의 자녀들이 세상 속에서 당신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되기를 바 라는 열망, 바로 사랑의 열망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이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는 이 사랑에 대한 열망을 추상적으로 표현하시지 않으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에수님 당신 자신의 말씀과 업적, 다시 말해 서 삶 그 자체를 통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사랑을 실천하길 바라십니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과 삶과 이루신 업적들을 통한 가르침을 혼자만 알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 아닌‘너’, ‘우리’ 자신이 아닌 ‘타인’을 대상으로 실천하는, 사랑의 삶을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물론 예수님처럼 정말 목숨을 내어주는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기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지향을 갖고 살아 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사랑의 삶도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삶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 번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것을 이겨내시고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기꺼이 우리 곁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주님과 함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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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1-6)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 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 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 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 복음묵상 :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라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 람이고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설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삶 의 원칙과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의 원친과 선택의 기준이 되는 예수 님의 말씀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원칙이며 선 택의 기준이 되는 가르침이십니다.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이웃을 섬기는 것, 누구에게 자신이 바라고 싶은 것을 자기 자신이 먼저 주는것, 그리고 사심 없이 용서하는 것과 같이 우 리 삶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랑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려면 독단과 독선을 버려야 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언제나 바보 같고 어리것어 보이는 법입니 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교인들의 참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는 모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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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17)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 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 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 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원수들을 이기신 승리자로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오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것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얻게 된 것은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도록,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셨기에 얻게 된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서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사 람들을 온갖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 숨마저도 십자가 위에서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마저도 십자 가 위에서 바치셨습니다. 그 결과로 부활하셨고, 또 승천이라는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하느 님의 아들이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면, 부활과 승천이라는 사건은 없었 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고 또 하느님 아버지 곁으 로 가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증인”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고, 선포하고, 그리고 삶으로 드러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결단이 필요합니 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저 하늘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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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0-23ㄱ) |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 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 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 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 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협조자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심을 기념하는 날이며, 성령의 임하심을 세상에 드러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시작된 날, 즉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 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 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로를 용서해 주고 용서받음은 가장 확실한 일치의 방법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용서 속에서 ‘나’와‘너’ 사이의 대립의 장벽은 서로를 품어 안으며 용서한다면 우리는 모 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용서와 화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 되게 만드는 힘을 가지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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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 21,15-19) |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 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 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 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 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 였다.” ♣ 복음묵상 :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세 위격을 가지시는 하느님께서 본질로는 한 분이심을 믿고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 됩니다. 그리고 성장해 어른이 되면 결혼을 하 고 누군가의 아내요 남편이 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각의 고유한 여러 역할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이해 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고유한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바 로 인류의 구원입니다. 구원역사를 계획하시는 하느님, 삶으로 보여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구원으로 이끌어주시고 돌보아주시는 하느님, 이렇게 성부·성자·성령께서는 고유한 역할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 을 이루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함께 활동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성부의 뜻에 다라, 성자께서 보여주신 복음의 삶을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의 삶 속에 구현하며 살아가 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다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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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하느님을 믿어라. (마르코 11,11-25) |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 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 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 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 고 말하였다.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 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 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오천명을 먹이신’의 기적을 이루시는 주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라는 결과에 너무나 집착합 니다. 사실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작지만 소중한 봉헌이, 나눔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오 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배고파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는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봉헌을 기쁘게 받 아 드시고 그것을 통해 오천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만일 작은 나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봉헌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 까요? 오늘도 우리는 미사를 통해서 빵의 나눔,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성체성사의 신비에 참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사를 통해 성체성사의 신비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주님께 무엇을 봉헌해야 할까요? 바로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작지만 소중한 사랑의 나눔, 사랑으로 나누려는 마음을 주님께 봉헌해야 할 것입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이루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봉헌을 통하여 더 큰 기적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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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마르코 12,35-37) |
그때에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 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 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 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 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 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 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 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 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 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 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 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 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 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 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 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 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 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 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 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를 받고 가십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죄 많은 여인을 만나시고 그녀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동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시몬에게 비유 를 들어 설명하십니다.죄인이건 의인이건,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건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든, 사람이 스 스로 갚을 수 없음은 똑같습니다. 죄를 용서 받고, 빚을 탕감 받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 은 결국 하느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믿음과 사랑과 신뢰의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죄 많은 여인은 바로 이러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주님이신 예수님 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전적인 신뢰,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자신을 낮추고 죄를 기꺼이 고백하는 겸손 과 용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죄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과 신뢰, 그리 고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함과 용기를 가지는 것이야 말로 참 신앙인의 삶의 자세임을 기억해야 하겠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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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루카 15,3-7)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 해야 한다.”
♣ 복음묵상 :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교회는 요한의 탄생일을 축일로 지냅니다. 성인들 중에 이렇게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없습니다.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두 분 뿐 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요한 세자입니다. 요한은 신약과 구약을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주님 친히 이것을 증언 하십니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끝난다고 말씀하심으로 써 요한을 구약을 대표하고 신약을 예고하는 예언자로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나이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요한은 태어나기 전 마리아 의 방문을 받았을 때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자로 선택되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시기 전부터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복음 선포하시는 창조이전부터 계셨던 주님을 세상에 알리고,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는 선구자로서 의 길을 가시고, 스스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신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 다. 우리도 주님 앞에서 세례자 요한과 같은 순명과 겸손의 자세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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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오 6,19-23) |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 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 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 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 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 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 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 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 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복음묵상 :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학기말 시험에 정신없던 신학생 시절, 방학을 앞두고 바쳤던 9일 기도가 생각납니다. 그 기도 중에 바로 오늘 복음의 끝에서 주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나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제가 되길 희망한다면 이것저것 세상의 것에 현혹 되지 말고 쟁기를 잡은 사람이 앞을 보고 나아가듯,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열심히 정진하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9일기도였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진리 의 말씀을 전해주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기 위한 투신의 삶을 살아야 한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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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마태오 16,13-19) |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 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 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 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께서는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당 신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회유와 유혹 속에서도 주님께 향한 사랑과 믿음의 마음만큼 은 변함 없으셨습니다. 수많은 고문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두려워하시지 않으시고 기꺼이 하느님을 증거 하시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랑스러운 신앙의 선조들을 있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 대한 믿음, 사랑,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 자신 을 맡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족한 것을 청하기보다 주님을 증거하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담대 한 신앙의 용기를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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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마태오 9,9-13) |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 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 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 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께서는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당 신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회유와 유혹 속에서도 주님께 향한 사랑과 믿음의 마음만큼 은 변함 없으셨습니다. 수많은 고문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두려워하시지 않으시고 기꺼이 하느님을 증거 하시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랑스러운 신앙의 선조들을 있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 대한 믿음, 사랑,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 자신 을 맡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족한 것을 청하기보다 주님을 증거하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담대 한 신앙의 용기를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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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마태오 9,9-13) |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 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 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 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대축일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께서는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당 신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회유와 유혹 속에서도 주님께 향한 사랑과 믿음의 마음만큼 은 변함 없으셨습니다. 수많은 고문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두려워하시지 않으시고 기꺼이 하느님을 증거 하시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랑스러운 신앙의 선조들을 있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께 대한 믿음, 사랑,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 자신 을 맡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부족한 것을 청하기보다 주님을 증거하고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담대 한 신앙의 용기를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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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마태오 9,9-13) |
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 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 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 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 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 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 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 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 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유대인의 율법에는 600여개가 넘는 계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 학자들 사이 이것이 혹은 저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물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인 사제도, 레위인도 모두 하느님을 핑계로 이웃의 불행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하느님을 위하는 일일까요? 잉크 없 는 만년필이 아무 쓸모없고 의미가 없듯이, 하느님 사랑 없는 이웃사랑도, 이웃사랑 없는 하느님 사랑 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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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마태오 10,16-23) |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 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 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 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 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모시기에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필요 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리고 그 말씀을 듣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말씀에 경청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경 청이 없이 다른 모든 것은 그리스도적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말씀의 경청만을 고집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말씀을 경청하고 그래서 말씀의 뜻을, 주님의 뜻을 알았다면 삶으로 옮겨가야 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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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오 12,1-8) |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 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 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 소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 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 데 내놓을 것이 없네.’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 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 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 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 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 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 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 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 나 더 잘 주시겠느냐?”
♣ 복음묵상 :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을 스승이신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는 제자들의 청에 아버지께 드리는 주님의 기도와 이어지는 비유를 통해서 기도만이 아닌, 무엇을 어떻 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이 기도 속에는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사랑의 계 명을 통해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로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과 기도를 드리는 청원자와의 관계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실현되느냐 안 되느냐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친밀한 대화를 하는 것이고, 또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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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마태오 13,18-23) |
그때에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 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들 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 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 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 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 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 복음묵상 :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비유의 어 리석은 부자는 오직 자신만을 아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신만이 잘나서 많은 곡식을 거두고, 재화 를 쌓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부자, 오늘에도 그 런 어리석고 이기적인 부자들을 봅니다. 그렇다고 부자로서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느 님께 받은 것을 나눌 줄 알아야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릴 줄 알 때 우리는 진정 몸도 마음도 부유한 사 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재화를 나누는 삶이야말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 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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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마태오 13,54-58)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 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 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 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는 허리에 띠 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 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 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 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베드로가, “주 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 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 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 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 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 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 복음묵상 : 『“깨어 있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충실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항상 깨어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피동적인 삶이 아닙니다. 주인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기까지 종이 자신 이 맡긴 일을 잘 맡아 행하고 기다려주길 기다립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당신의 말 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당신을 기다리는 삶을 살길 바라십니다. 우리 자신의 편안함과 이익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충실 하고 성실한 종으로서의 삶을 산다면 주님을 만나는 날 행복한 종이 될 수 있음을, 크나큰 상급을 받 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만나는 그 끝에 누리게 될 기쁨과 영화도 기억해 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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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요한 12,24-26)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 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 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 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 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 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시며,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고 말 씀하십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말씀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면이 숨어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세상과 타협하며 안주하셨다면 결코 십자가의 죽음을 겪지는 않으셨을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역시 살면서 참으로 세상에 속한, 세상에 안주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결단을 촉구하십니 다. 세상과 하느님 중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기억하길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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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마태오 19,3-12) |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그런 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 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 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 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 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 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 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 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 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 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복음묵상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모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은 행복한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한 삶이란 영원한 생 명을 얻는 것, 바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 은 또한 언제 닫힐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주인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면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문의 주인이신 주님을 잘 알 때에 가능 한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문에 도달하고, 그 문을 지나 주님의 나라에 들 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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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요한 1,45-51) |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 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 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 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 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 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 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 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 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 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 을 것이다.”
모 방송국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여 나름의 경 지에 이른 사람들의 믿지 못할 솜씨들을 보여주곤 합니다. 그런데 달인이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우고 자랑 하기보다 겸손하게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달인은 다 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겸손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 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 통해서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 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보다는 겸손하게 주어진 능력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겸손한 삶의 자세 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우리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때 우리도 ‘신앙의 달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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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요한 25,1-13) |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 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 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 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 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 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 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 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 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 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 을 것이다.”
모 방송국의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여 나름의 경 지에 이른 사람들의 믿지 못할 솜씨들을 보여주곤 합니다. 그런데 달인이라고 하는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그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내세우고 자랑 하기보다 겸손하게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달인은 다 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겸손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 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 통해서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 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 보다는 겸손하게 주어진 능력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겸손한 삶의 자세 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우리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때 우리도 ‘신앙의 달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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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요한 25,1-13) |
그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누구든 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 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 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 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 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복음묵상 :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망대를 짓듯이, 그리고 왕이 전쟁에 임하 듯이 “신중함과 지혜로움”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부모나 처자나, 재산이나 명예나, 자기 자신이라도 희생하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라고 말씀하십 니다. 200여 년 전 바로 우리 신앙의 선조인 순교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을 지키 고 증거하며 전파하기 위해서,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가족도 희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이 볼 때 는, 어리석게 보였지만, 이것이 참 지혜요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는 길이라 믿고 선택했던 것입니 다.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값진 것인지 알았기에 목숨을 내던지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 리도 이제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투신했던 순교자들을 따라 두려움 없이 하느님만을 믿고, 사랑으로 뭉 쳐, 믿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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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루카 5,33-39) |
루카 9,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 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 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순교 성인들은 목숨을 보존할 수도 있었지만 포기하신 분들입니다. 온갖 유혹들과 혹독한 고문 속에 서도 배교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은 일 반적 인간의 기준에서 본다면 도저히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스스로 죽음의 올가미 속으로 걸 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말 씀처럼 주님 때문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기에 죽음이 죽음이 아님을 증거 하셨고, 또한 유한한 생명 을 기꺼이 버림으로써 하느님의 나라에서의 무한한 생명을 취할 수 있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또한 이것저것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려 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잊어버립니다. 비워야 채워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놓아야 주시는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채워주 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손에 쥔 것을 버려야 하고, 우리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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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루카 7,36-50) |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 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 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 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 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 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 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 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 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 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 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부자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저승 의 고통을 받아야 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부자의 잘못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라 자로보다 재산이 많았다는 것이 그의 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라자로를 멸시하고 모욕을 주는 잘못을 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죄를 지었을까요? 무관심, 바로 무관심 의 죄를 지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산과 그가 누린 멋진 삶으로 가난한 사람들, 즉 라자로에 대해 서 무관심했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에 대해서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무관심 했던 것입 니다. 그와 달리 라자로는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도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살았기에 하느님 나라에서 아브라함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어려움 속에서 관심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있음을 기억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자신에게만 쏟았던 관심과 걱정은 하느님께 맡기고 이웃에게 관 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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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루카 9,18-22) |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 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 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 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 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몇 해 전 겨울, 지하철 승강장에서 있었던 기적과 같은 일이 뉴스를 통해서 보도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발이 낀 사람을 돕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수십 톤에 달하는 열차를 밀어올린 사건입니다. 몇 사람이 도우려고 했지만,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 한 것을 알게 되었고, 한 평범한 직장인이 “우리 다함께 열차를 옆으로 밀어서 이 사람을 도웁시다!”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큰 열차를 맨 손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 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열차를 밀었지만 점점 많은 사람이 열차를 밀게 되었고, 결국 수십 톤에 달하는 객차가 밀리게 되었고, 사고를 당한 사람은 안전하게 발을 뽑아내고 응 급처치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지하철역 CCTV에 잡혔던 그 기적과 같은 모습이 생생합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누군가 먼저 시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입니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소중하게 간직하며 믿음을 키워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 나가 될 때 기적은 우리의 삶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로 기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그와 같이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믿음이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주 고, 구원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 안의 겨자씨와 같은 믿음이 자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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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루카 10,13-16)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 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 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 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 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복음묵상 :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렇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 앞 에 달려와 엎드려 찬양을 드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한 사람의 감사와 아홉 사람의 배은망덕을 보여주 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 자신들도 이와 같은 감사와 망덕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은 아닌 싶습니다. 수 없이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어쩌다 한 번 생각나 감사드린 것을 대단하게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봐야 하겠습니다. 감사할 줄 모를 때나 잊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만 머무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작아지고 좁아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감사함은 우리를 더욱 넓히고, 더욱 높은 분께로 인도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감사는 우리를 진정한 만남으로, 새 로운 길로, 겸손으로, 그리고 주님께로 나아가게 해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겸손하 게 감사드릴 때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라고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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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루카 11,15-26) |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 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 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되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위선자라고 하며 ‘두 얼굴을 가진 사람’(a double-faced ma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선자들의 말과 행동을 우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참 인격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의 말과 행동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전교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은 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는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신은 하면서도 남들은 하지 못하게 막는다 면 누가 그의 말을 믿겠습니까?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를 말한다고 하면서 정작 당사자는 지키지 않는다면, 속 빈 강정이요, 공허한 메 아리일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그 믿는 것을 가르치고, 가 르치는 것들을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만이 주님의 선교 사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과 가르침들을 기억하고 단지 말만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당 신의 백성이 되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길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을 전함에 있어서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짚어보는 센스 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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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루카 12,1-7) |
그때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 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 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 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 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복음묵상 :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겸손함의 덕을 닦도록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주시면서 아울러 내 용(의식) 없는 형식에 대해서 질책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보여주기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 의 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께 하루를 봉헌하려는 지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하루는 하느님께 바치 는 아름다운 봉헌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금 보석을 바친다 해도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 기 자신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봉헌물이 아닌 한낱 쓸모없는 금속이나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은 우리의 의식과 지향, 그리고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 에 겸손한 마음가짐과 올바른 지향으로 참다운 봉헌을 드릴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하겠 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겸손 되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길 기도해야 하겠습 니다. 겸손은 바로 부족함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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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루카 12,54-59) |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 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 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 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 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 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케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셨을 뿐임에도 그가 진실로 회개하고 하느 님의 뜻에 맞게 살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읽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있으나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하느님으로 자신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을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을 향해 준비된 삶을 살아가려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자케오와 같이 하느님을 모실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영혼이 되고자 노력할 때 예수님께서는 이 마음의 준비만을 보시고도 구원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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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마태오 5,1-12ㄴ) |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 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 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 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 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 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20,38)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죽은 이들은 이미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희망을 잃 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만을 현실의 전부라고 맹목 적으로 믿고, 또한 육체의 죽음이 삶의 끝이며, 모든 것의 끝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결국 절망에 빠 질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절망에 빠진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 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한 고통이나 육체적인 죽음까지도 견디고 이겨서 희망으로 구원된 자 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산 이들의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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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2,13-22) |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 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 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 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 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 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 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 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 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 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종 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오히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써 당당하게 맞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자신이 주 예수님의 신앙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음 을 가르쳐 주십니다. 매일매일은 항상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날입니다. 다시말 해서 하루하루가 매번 종말 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주님께 대한 굳은 신뢰감과 그 신뢰감에서 비롯되는 신앙의 자신감인 것입니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상활들로 모든 것을 손 놓고 포기하기보다, 주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인내할 때 주님께서는 좋은 결실을 맺어주신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주님께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결국 우리는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영원한 생명 을.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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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루카 17,26-37) |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 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 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 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 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 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 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 을 것이다.”
전례력으로 일 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또한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두 죄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사람은 유대인들과 같 이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에게 기도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 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의 기도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낙원은 유대인들에게 의인들만이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그런 낙원에 죄인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낙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서 이루시기 위해서 당신이 보여주신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며 예수님 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의인이고 그리스도인이며, 바로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 리고 그런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새로운 지평에서 하느님의 질서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바로 그리스도인임을 늘 기억하며 생활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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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루카 19,45-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