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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車旅行 |
대화 중에 의미있던 내용을 소개하고자한다.“쩌츠 스리우 따비아오 따후이시 쉔추러 궈우위앤 종양정찌 쥐위앤 지우거런, 부꾸어 베이징따쉬에 비예더런 이디얼예 메이요우, 칭화따쉐에 비예더런 스 쫑수지 포궈 이공 쓰거런 니 쥬에더 쩐머양”(이번 16대 전국인민대표자 대회에서 국무원중앙국원 9명이 새로 선출되었는데 베이징대학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청화대학 출신은 총서기를 포함해서 모두 4명이다 너 어떻게 생각하니?)내 말을 들은 베이징 대 여학생은 웃으면서 “본라이 뻬아징 따쉬에 비예더 즈요우 이즈 쉐시 쉐시,, 딴시 칭화따쉐예 비예더런 후이슈어 페이창하오,,얼치예 징창왈왈,,수어이 베이징따쉬에 비예더 런 정찌 번링 비지하오 부꺼우”(본래 베이징대학 출신은 오직 공부밖에 모르고 공부만 한다. 그러나 청화대학출신은 말도 잘하고 놀기도 잘한다. 따라서 베이징대학 출신은 정치능력이 비교적 부족하다)이 말을 듣고 나는 북경대와 청화대가 바뀐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었다..청화대학은 이공계중심의 대학이기 때문에 공부나 연구를 한다면 오히려 청화대쪽이 생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내게 아이들이 몇이냐고 묻길래 3명이라고 했더니 남아선호 때문에 3명이 된게아니냐고 묻는다. 나는 무관치 않다고 했더니 경제학과 다니는 학생이 중국은 현재 정책적으로 한가정에 한 아이밖에 낳지 못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길래,, 일본이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서 심각한 노동력부족현상과 긱종연금재정의 부담이 국가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으며..(일본국가 평균연령 대략 55세)한국도 이미 노인화사회로 접어들어서 이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는중이다.. 머지 않아서 한국도 일본처럼 심각한 노동력부족 노령화 사회에 따른 여러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했더니 ,,경제학과 다니는 친구가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문제없지 않은가? 내가 바로 인구도 많으면 노인도 많지 않은가? 중국은 한아이만 낳게 하는 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혼자자라는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예의가 없다는 비평과..외에도 아이들의 사고가 자본주의화 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었을 것이다...또한 노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중국도 노동력문제를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정말 역전광장에 번호표를 붙인 소형버스가 연실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하고 있었다..그중에는 병마용(진시황 역사박물관)까지 가는 사람들만 태우고 가는 차가 있는가 하면 그 앞쪽길을 지나면서 병마용가는 사람들을 태우는 차고역시 있었는데 나는 그 차를 탔다. 가격은 5원이었다.(306번) 시안역에서 병마용까지는 거의 1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날씨가 추워서그런지 사람들은 많지않았다..오히려 사람이 많아서 이리저리밀리는 것 보다는 훨씬 좋지 않은가? 세계 문화유산이자 세계 8대기적중의 하나라는 <병마용> 책이나 그림으로 볼때는 상상이 않갔는데 병마용의 규모나 신비함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내린 결론 역시 저 먾은 명바용을 만들기 위해 또 엄청난 사람들이 희생되었겠지?,,, 역시 중국이니까 가능한 게다,,오늘 병마용 관람객중에는 일본인들이 특히 많은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사진 한 장’을 부탁할 때마다 일본인에게 부탁하게 되었다...좀 서둘러서 돌아가는 길에 ‘진시황릉’과 ‘화정지’,‘리산’를 보고자 버스에서 내려 진시황릉에 매표소에 가서 유학생이라고 활인을 요구하다가 않되서 바로 다시 버스를 타고 리산입구에서 내렸다. 소개 리후렛을 얼핏 보니 1936년 시안사변당시 장개석이 이 산(리산)으로 피신을 했는데 동베이군(마오쩌둥)이 장개석을 사로 잡았었다는 그야말로 공산당의 전투를 선전하기에는 더 좋은 산이니 어찌 않올라 가볼수 있으리요.. 산에는 당시 전투의 치열함이 그대로 남아 있듯이 바위 군데 군데에 총탄자국이 아직도 많고 군데 군데 동굴이 많은 게 당시 장 개석이 피신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가파르고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산위로는 케이블카도 연실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지만 나는 걸어서 좀 올라가보고 싶었다(중국,베이징에 와서 한번도 산을 가보지 못했게 때문에 산에 대한 동경과 등산을 하고픈 생각이 발동한 것이다)시간은 2시 반 매표소에서 역시 할인을 요구해서 기분좋게 50%를 할인받고 왕복하는게 대략 얼마정도 걸리냐고 하니까 한시간 정도면 될거라고 한다... 처음부터 정상까지 계단으로 되어있는 리산을 오르면서 꿈에서 조차도 본적이 없는 이 산을 오르다니... 참 이상하도다(버스를 타고 병마용으로 가면서 유심히 주변을 봐둔 덕분이기도 하지만,,또한 “리산” 에 오르면 화정지는 바로 발아래니까 훤히 들여다 볼 수도 있고. 리산정상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시안의 한구석을 오래 기억하고자 몇 장의 사진에 담았다..
산 아래 있는 화정지에는 위앤단 지아르(신년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그래도 많은 것 같았다. 시간은 이미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4시 반 정도면 어둠이 깔리니까 케이블카를 타려다,, 내발이 더 낫겠하고 오른길을 다시 뛰듯이 내려왔다 (한국에서 매주 일요일 등산을 해둔 덕분에...)내려오자 마자 운좋게도 버스가 멎었다. 가는데 대략 50분 시안시내에 도착하면 깜깜한 밤이 나를 반겨주겠지.... 버스에 올라 얼마 있지 않아 나는 피곤에 못이기고 고개를 꺽었다...호텔근처에서 중국음식으로(3가지)저녁을 먹고 음식점옆 과일상에서 귤을 6개(1원)사는데 아주머니가 “니 스 나리런?”(당신 어디 사람인가요?) 나는 바로“워 스 베이징 런”(나는 베이징 사람이다“ 아주머니가 다시 ”니스 나궈런?“(어느 나라 사람인가?) ”워스 한 궈런“(나는 한국 사람이다)..나의 2003년의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다. 길가에 꼬마가 아빠의 손을 붙잡고 가는 걸 보니 고국에 있는 막내 녀석이 그립다....(그 녀석이 내가 베이징에 온지 얼마않되서.. 전화로 ”아빠 일 년 이상 있으면 알지?“--주먹쥐고 입가에 대는 모습) 내일은 본격적으로 시안을 관찰해보자...
火車旅行(5) | ♣ 中國 旅遊記♧ 2004.06.21 22:45
임흥선(iok_china)
火車旅行(6)
火車旅行(7)
밖에서 드르덕,드르덕 하는 소리에 잠이 깨어 창밖을 보니 아침에 눈이 제법내렸다. 어제 날씨가 종일 찌푸리더니 밤새 눈이 내린 것이다. 아침식사를 죽 한 그릇으로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산시성의 역사박물관을 가기위해서다. 밤새 내린 눈이 얼어서 길이 대단히 미끄러운데도 차는 체인을 감거나 한 차는 보이지 않았다(한국같으면 난리가 났겠지)그냥 천천히 달릴 뿐이다..이곳 산시성은 고대와 중세 중국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산시성의 역사가 곧 중국의 역사라고 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꼭 역사 박물관을 가보고 싶었다. 뿐만이나라 그 도시의 수준을 알고 싶으면 박물관을 가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난해 나는 이미 상해에 업무차 갔을 때 잠깐 짬을 내서 상해시 역사박물관을 가본적이 있었는데 소장품과 시설, 소개, 서비스 등이 대단히 수준 높음을 보고 신선하게 받아들였었다. 산시성 역사박물관은 서안의 남쪽에 우치하고 있었으며 버스로 40분정도가 소요되었다. 박물관내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중국 고대, 주나라, 진,위진남북조, 수, 당 ,한. 송,원,명,청의 역사,,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개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베이징 이전의 중국의 핵심은 당연히 이곳 산시성 그중에서도 핵심은 당연히 이곳 시안(옛이름 장안)이었음을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는 시내중심부를 발로 걸어서 다니면서 현대화되고 있는 시안의 각종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시안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백화점(개원백화점)도 들리고,, 재래시장(성황묘시장)도 들리고,,발길 닿는 대로 마음껏 구경하고 살펴보고 하면서 돌아다녔다. 백화점에서는 주로 한국상품과 외국상품의 가격 등을 비교해보았다.
이곳에서 가장 좋은 백화점인 개원백화점에는 삼성물건이 타 제품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이었으나 제품진열의 위치는 좋은 곳에 있었다. 현재 삼성과 엘지는 버스외부에 광고도 하고 있었다.(사진 찍어놓음)이밖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보면 미국브랜드 남성정장이 3880원(한국돈 약 55만원),남성가죽잠바가 1080원(우리돈17.5만원정도),,여성 정장자켓이 388원(우리돈 58,000원), 어린이파카싼게 점퍼가 60원(우리돈 9600원) 결코 한국에 비해서 싼 물가가 아니었는데도 백화점은 많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오전에 이곳의 역사를 살펴보았다면 오후는 현대의 시안을 보면서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베이징과 비교해서 시안이 갖는 특징은 물건값이 비교적 저렴하다. 내가 시안으로 오면서 털실 모자를 베이징에서 35원주고 샀는데(시간이 없어 깍지를 못함)이곳 재래시장에서 유사한 제품이 8원이었다.(아! 베이징에서 틀림없이 바가지 썼구나) 음식값은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고, 버스비(기본 1원, 2층 버스는 2원,,버스비도 거리에 따라 다르다)도 베이징과 같다. 택시비는 1km당 1.2원. 1.3원,1.6원 세 종류가 있다. 각종 입장료도 별 차이가 없다.
천년중국의 수도, 실크로드의 출발지, 현재서부대개발의 중심지, 화북의 베이징, 화남의 상하이, 광동의 광조우, 서부의 시안이라는 말과 같이 시안은 중국의 6대 도시중의 하나다.
밤에는 서안의 중심부인 종로우를 중심으로 남대로부터 북대로 까지 4km 정도를 걸으면서 낯선 도시 거리의 풍경을 만끽하였다. 휘황찬 네온싸인, 서구형 스타일로 장식한 많은 상점들, 아직도 많이 남아 빛을 발하고 있는 크리스마스츄리 등 음식점과 패스트푸드점마다 가득차있는 손님들 ..적어도 시안역앞 골목길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문이 없는 화장실을 생각하지 않고,, 눈이 얼어서 도로가 빙판인데도 녹기만을 기다리는 시안시민(또는 시 정부)..한 닢을 구걸하는 초라한 노인들,,거리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서 시커먼 그릇에 밥을 먹는 사람...관광지마다 피곤할 정도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길을 물어도 외국인 인줄 알면서 무성의하게 알려주는 사람들. 한국인일 줄 알았으면 5원을 받아야 하는 건데(아침에 죽을 먹고 나서 2원을 계산하는데 사장인 듯한 여자하는 말) 이런 그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시안은 분명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지니고 선진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도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火車旅行(8)
3.짜이찌앤 시안
서부대아침에 짐을 꾸렸다(짐이래야 메는 가방 하나지만)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를 들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낯에 내륙으로 가는 기차를 타므로서 중국의 농촌풍경이 라든가 간접적으로 많이 볼수 도 있고,,기왕 길을 나선 김에 좀더 중국을 보고 싶은 욕심이 발동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9시에 호텔문을 나섰다. 중국지도에 화남성의 성도인 정주를 머릿속에 각인 시킨채로.......
4.학생표를 사는데 실패
평일인데도 시안역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다. 미리 차 시간을 알아놨기 때문에기차표를 먼저 산후에 다른 볼일을 보는게 안심이 되길래 줄을 섰다. 20여분이 지나서 내차례에 화남성의 정주가는 학생표를 달라고 하면서 100원짜리 인민폐와 학생증을 창구안으로디밀었다. 매표원은 나에게 기다리라고하고 잠시후에 오더니 3번창구로 가라고 예기를 한다. 3번창구에도 사람들의 줄이 꽤 길어서 족히 20분 이상 걸릴 듯싶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내차례가 되었다. 나는 좀전과 같이 학생증과 100원을 디밀면서 할인표를 달라고 했더니 매표원역시 좀 기다리라고 하고 오더니 “쩌거 쉐승쩡 따저 부커이”(이 학생증 할인이 안된다)나는 바로“ 왜이셤머 부커이아 워 총 베이징 라이더 시호우 이징 마이꾸어러 다저피아오”(왜 할인이 않되나요? 베이징서 올 때 이미 할인표를 샀었는데)하는데 매표원은 학생증과 인민폐100원을 창구밖으로 던지면서 “뿌싱”(안돼)하고 내 뒷사람을 처리하려고 한다. 시계는 이미 10시가 돼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일반표를 사야만 했다. 표사느냐고 거의 1시간을 허비했으니..안된다면 차라리 처음사람이 안되나고 하지 다른사람에게 돌리고 그사람이 안된다고 하는게 뭐람..거기에다가 극도로 불친절하고.. 얄미운 놈들(년 놈들) 얼른 가서 문 없는 화장실 사진이나 찍어가지고 승차를 서두르자.....
火車旅行(9)
5. 2층칸 기차를 타다
학생표를 사지못한 데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내 자리는 2층에 창쪽이었다. 그런데 이미 한 야자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나는 자리를 잘 못 찾았나 하고 번호표를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는 내 자리였다. 그때까지도 여자는 태연하게 앉아있고..
맞은편의 아주머니인 듯한 여자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하지 않는다. 나는 표를 보여주면서 창쪽이 내자리라고 했더니 여자는 미을 안하다고 하면서 자리를 바꿔서 앉으면 안되겠냐고 하길래 괞찬다고 했다. 기차가 출발할 때 까지 마주보고 있는 4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내옆자리의 여자는 계속 얼굴이 죽상이고,,맞은편의 남자는 라디오를 꺼내키고 이어폰을 귀에 꼿더니 눈을 감는다.(이럴때는 신문이라도 있어야 하는건데.......
어째 오늘 기차여행은 분위기가 이상하다)기차는 출발했고 시안시내를 벗어나서부터는 그야말로 광할한 대지가 창밖에 펼쳐진다. 그늘에는 아직도 눈이 꽤 쌓여있었다.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순간 옆의 아가씨가 비닐봉지를 입에대고 오바이트를 하는게 아닌가.... 순간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일어나서 다른 자리로 옮겨앉았다.(어쩐지 얼굴이 계속 이상하더니만.. 끝내 일을 저지르는군.... 화장실이나 사람 없는 곳에 가서 토할것이지.....
미련한 중국사람)아가씨는 이내 의자앞의 탁상에 엎드리더니 약8시간을 오는 동안 일어나지를 못한다. 나는 승무원에게 신문 좀 갖다달라고 해서 줄 곧 중국의 시골 풍경과 신문을 번갈아 가면서 보았다. 베이징에서 시안 올 때와는 기차 안 분위기가 너무 차가 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앉아있거나,,컵라면이라든가 똥시를 먹거나,,신문을 보거나,,휴대폰으로 큰소리로 통화를 하거나,,,대부분의 시림들이 다른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자기 멋대로들의 그대로 모습뿐이다.
火車旅行(10) |
6.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는 중국
중국지도를 놓고 보면 내가 지금 가는 방향이 중국대륙의 정중앙을 동북쪽으로 횡단하고 있는 것이다. 시안 근교를 지나자 정말 중국의 농촌의 모습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온통 황토섹(옅은)때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도 많은 것처럼 보였다.
기차가 중국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농촌의 모습은 피폐한 것 같았다.(아 이게 TV로만 보던 중국의 농촌 현실이구나 하니,, 이기차를 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약 8시간을 오는 동안에 본 것은 황토빛이다. 마치 미국 서부영화에서처럼 사막과도 같은..
왜 그런지 산에도 나무가 없다. 척박한 땅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굴곡이 매우 심한 산 중하단부에 동굴집들이 보였다. 이따금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도 보였다.(혹시 원시인들의 생활이 아닐까,,,,,시안 역사박물관에서 본 원시인들의 생활)
그런 동굴 집들은 공통점이 아주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고 여럿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몰론 토담집들도 주변에 함께 있었고. 어느 책에선가 중국은 20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나라라고 읽은 적이 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원시와 현대의 공존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 까 싶다.
도시의 초고층 빌딩과 휘황찬란한 외형의 화려함 뒤에는 원시인들처럼 생활하고 있는 농촌이 있는 나라 이곳이 바로 중국인 것이다. 언제 시간을 내서 그 농촌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火車旅行(11) 7.하남성의 성도 쩡조우에 도착하다. 저녁 7시 50분 시안에서 오늘 11시5분에 출발했으니 정확히 7시간 55분이 소요되면서 ‘위난-화산-링바오-싼먼산시-루워양(소림사가 있는 곳)등 내륙을 거쳐서 온 것이다. 허난셩의 성도(성의 수도)인 이곳 정주에 대해 나는 사전에 알고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허난셩의 성도라는 것 외에는 허난셩의 날씨는 의외로 추웠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저녁도 먹을 겸, 쩡조우의 사정도 살필 겸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다. 버스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이 맘 때 쯤이면 한 창 번화해야 할 거리가 것이다. 고층 건물들도 많이 불이 꺼져있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서 “지아오즈”(한국의 만두와 비슷)와 맥주 한 병을 시키고 점원에게 정조우의 인구가 대략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한 참후에 오더니 3..400백만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시안과 100만명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않는데 거리의 풍경은 완전 반대였다.(분명 경제에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몇 곳을 사진을 찍는데 왠 남자가 오더니 사진 찍지 말라고 하면서 공안이 오면 벌금을 200원 내야 한다고 예기를 한다. 기온도 계속 떨어지는 것 같고,,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거리를 거는 것도 불안도 하고 해서 호텔로 들어오면서 우유하나를 사 마시면서 아주머니에게 “씨 앤짜이 쩡조우 찡지 징쾅 쩐머양,,워 쥐에더 하오샹 부타이 하오”(현재 정주경제 상황 어때요? 내 생각으로는 매우 좋지 않은것 같은데)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처다보더니 “니스 총 라이더 런”(당신어디서 온 사람인가?)나는 “워 총 총 뻬이징 라이더”(나는 베이징에서 왔다)아주머니는 바로 “니 슈어더 뚜이 씨엔짜이 찡지 부타이 하오”(당신말이 맞다.현재 경제는 매우 좋지 않다) 더 이야기를 하려는데 공안 2명이 들어오길래 그냥 나왔다. 기차안에서 내가 본 신문 쩡조우 완바오의 내용 중에 지난해 시 재정수입이 전년대비 17%가 증가했다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내일 좀더 알아보자..... 8시간 기차에 시달렸으니 좀 일찍 잠을 청할까,,...두 번째 낯선 도시 쩡조우의 밤이 깊어 간다...
火車旅行(12) 8.쩡조우의 풍경 7시에 일어나서 CCTV뉴스를 보고 있는데 창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내 방은 8층이었음) 건너편 건물의 상점에서 개장행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8명이 2줄로서서 상점입구에서 북과 쾡과리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복무원에게 주변의 가볼만한 데를 지도와 함께 물어보니 모두 하루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럼 일단 기차표를 먼저사고 “꽝제에”(거리를 돌아다님)“꽝 상디엔”(상점내를 돌아다님)나 하면서 도시 풍경이나 감상하자는 생각을 잡고 일단 기차역으로 22시18분발 베이징서역 표를 샀다.(여기서도 학생표를 사는데 실패)기차표를 산후에 10원으로 뷰페식(상시식당이 아니고 호텔에서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것 같음) 으로 배를 단단히 불렸다 종일 돌아다닐려면 배가 든든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당을 나서 노점의 남자에게 길을 묻는데 “니스 한궈런 마?” “부찌다오” 부찌다오“(당신 한국인이지? 몰라,몰라,) 어감도 아주 기분 나쁘게 들린다. 나는 물끄러미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또 할 것 같았는데, 내가 먼저 ”왜이 셤머 부찌다오 니스 저 번런 뚜이바?(왜 몰라, 너 이지역 사람 맞잖아) 상대는 다시 “워 뚜이 한궈런 메이까오스”(나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않 알려줘) 이때 상대 옆에 다른 한 명의 남자가 온다. 중국인들은 외국인과 중국인이 다툼이 있으면 금방 벌떼처럼 몰려든다. 나는 “워 쯔다오”(알았어)하고 발길을 옮겼다. 자칫 골치아픈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리 풍경도 역시 시안(서안)과는 차이가 많았다. 보도블럭은 곳곳이 빠져 울퉁불퉁했고.. 거리에는 거지들이 한 푼을 구걸하는게 적지않다
火車旅行(13) 물론 사람들도 많고, 이따금식 큰 옷꾸러미들을 가지고 나가는 걸 보면 이상가가 소매뿐만 아니라 주로 이 근방 도시에 물건을 공급하는 도매상인 것 같았다.(의복물류 중심) 이곳의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남자양복의 가격표를 보니 480원(우리돈76,800원)남성용 신발이 쓸만한 신발(광조우산)의 가격을 물어보니 200원(우리돈 32000원)달라고 한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아이들 옷은 심지어 10원(1500) 15원하는 옷도 많다. 이곳에 있는 맥도날드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지하까지 보고 다시 나와서 오던 오던길을 골목재래시장으로 거슬러올라가 이번에는 ”궈지요의상창“을 갔다 이곳은 1층부터 5층까지 전자제품매장이었다. 1층에 보니 LG에어컨이 위치도 좋고 상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중국전자제품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얼‘제품다음에 LG제품이 있었는데 가격대는 다른 제품들에 비해 좀 비싼 편이었다. 2층은 요즘 한창 인기를 모으는 DVD플레이어 매장이 가장 앞부분분에 있고 휴대폰, TV 기타 ...으로 있었는데 VDV플레이어는 같은 제품이 베이징보다 가격이 싼 편이었다. 휴대폰 매장에서는 삼성휴대폰이 않보이기에 물어봤더니 3층에 있다고 한다. 3층의 애니콜 매장은 여점원 3명이 있었는데 고객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삼성은2층의 TV매장도 폐장하려는 것 같았다. 이곳 국제요의상창은 간판에 어울리지 않게(중국의 대부분의 궈징의상창은 세련되고 첨단제품이 많음)여러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분명히 시영기업이 아니면 성정부나 시정부에서 운영하는게 틀림없을 것이다)화장실도 불편하고,,종업원들도 불친절하고..조명도 전체적으로 어둠침침하고... 火車旅幸(14) 전자상점을 나와 이번에는 ”진보따청“이라는 상점을 들어갔다. 이곳은 인테리어도 제법 괜찮고 상품의 질도 괜찮아 보였다. 이곳에서 내 특별히 괜찮아 보이는 제품은 가족제품이었다. 대부분 광조우제품으로 중국인들도 광조우제품에대해서는 신뢰가 깊다. 나는 가방파는 매장3곳을 둘러보고 순양피가죽 여행용가방850원짜리를 깍고 깍아서 350원에 샀다. 여행하면서 경비를 절약한 돈으로 괜찮은 가방을 하나 장만했으니 흐믓하다. 정주에서 쇼핑을 다하다니....나는 어깨 가방을 통째로 여행용 가방에 넣고 잠궜다. 점원은 물건을 팔고난 후 ”“니스 나리 런?”(당신 어디사람인가요?)나는 “니 차이차이(한 번 맞춰봐) 점원은 ”르 번런, 뚜이 부뚜이“(일본사람 맞아요 틀려요) 나는 ”부뚜이“(틀려)점원은 ”샹강런“(홍콩사람)” 부뚜이“(틀려)점원은 고개를 젖는다.. 이상하다는 표시 일 게다. 나는 ”워스 한궈런 니 쯔다오마,,한궈“(한국사람, 알아요? 한국)
9.쩡조우의 두 얼굴 도착하던 날 저녁의 첫인상 그대로 이 도시의 경제는 별로 좋지 않은 게 틀림없다.. 걸인도 많고,, 상점안에는 물건 사는 사람보다 떠도는 사람들이 많고...도시는 좀 지저분하고,, 건축하던 30여층 대형건물이 흉물스럽게 서있고..밤에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주변 의 농촌도 마찬가지로 특별한 소득원이 없을 것 같고,,,,공업이 발달할 여건도 아니고,, 관광산업이 발달 한 것도 아니고... 대형상가 몇 개로 주변도시의 소비재나 의류의 물류역할외에는 특별한 산업이 있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지도에 나와 있는 고신개발지구(첨단산업지구)에도 회사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백화점에는 고가의 모피옷을 사는 사람도 있고,, 고급승용차를 타고와서 아이들을 맥도날드에 들여보내고 부부는 쇼핑을 한다... 맥도날드에서는 안 팎으로 귀에 익숙한 팝송이 크게 울려 퍼지고 길 하나 건너 양지바른 담벼락 밑에는 수명의 거지들이 길에서 쓰러지듯 엎드려 있다. 아낙들이 1마오 꼬치를 구워놓고 추위에 떨고 있다...그렇다 저 많은 인민들을 굶어 죽게 하느니 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자.... 팝송, 맥도날드, 코카콜라, 버거킹 이곳 대형 상가의 가장 좋은 위치는 모두 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어디 이 곳 뿐이겠는가? .............................. 火車旅行(16) 어느 요리사와의 한 시간 대화 저녁식사를 “니우로우 미앤”(소고기 국수)으로 해결한 감치 쩡조우 기차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방을 사서 비상금도 별로 여유가 없고 이곳 역의 사정도 정확히 모르고 괜히 혼자 어슬렁대다가.....무슨 일이라도 생기면....ㅎㅎㅎㅎㅎ 기차표시간은 10시 18분 차였지만 나는 8시에 대합실로 들어 갔다. 정광판에는 중국 각지역으로 떠나고 오는 기차상황이 수시로 바뀐다. 마치 공항처럼... 나는 앉아있는 사람들을 쭉 살펴 머리에 기름도 바르고 검정구두가 반짝반짝하는 남성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나도 신문을 펼쳤다. 10여분 정도가 지난 후에 가방에서 콜라와 생수를 꺼내서 권했더니 그도 가방에서 음료수를 한 병 꺼내면서 웃는다.나는 그에게 “니 취나알”(어디를 가는가?)그는 “안후이,허피”(안후이성의 성도 합비)이렇게 해서 그와 대화를 텄다 그는 보던 책의 책장을 접어 가방속으로 넣더니,,나에게도 어디까지 가냐고 “니 다오나알 취” 묻는다.. 나는 베이징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원래 이곳 사람이 맞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나는 오늘 산 가방을 가르키면서 정주가 물건값이 싸서 하나 샀다고 자랑하듯이 했더니 내 가방 비싼거라고 그가 말한다.(가방 장사꾼인가?)나는 그에게 허비는 무슨 일로 가냐고 했더니 간단히 “공쭈오”(업무) 나는 “추차이 마”(출장인가?)............ 그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시작했다. 나는 이곳 온천지방인 시런샨빈관의 주방쟝이다. 지금 월 700원의 월급을 받는데 허비에서는 1500원을 준다고 해서 그리로 간다고 한다. 결혼한지는 3년이 됐고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며 수첩에서 사진을 꺼내서 보여준다. 나는 부인은 일(직업)이 없냐고 하니 공런(공장직원)인데 그녀도 매월 700원을 받는단다. 그런데 부모가 3명(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이라서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돈을 벌러간다고 한다. 나는 안후휘에서 직汰?안정되면 가족들을 모두 오게해서 함께 살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연로해서 떠날 수 없다(효성이 지극한 것 같다)고 하면서 그곳에서 3년 정도 일하고 돌아올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여기 정주에서 6년 일 한 거와 같으니 돈이 생길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부모가 농민이고 그 부인의 부모는 고런이었는데 모두 가난해서 생활이 매우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동네 사람들은 생활이 매워 어려워 고생이 심하다고 한다. 중국의 농촌 현실이 정말 어려운게 틀림없구나.......... 얘기를 하다보니 10시 18분 발 베이징행 기차표 검표를 한다는 방송이 들린다. 나는 보던 신문 상단에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그가 보던 책 둘째 페이지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이루순펑(일로순풍), 쭈니 청궁”(편안하게 여행하라, 너의 성공을 빈다) 기차에 오르자 피로가 밀려왔다. 다음에는 침대칸 차에서 맥주를 한잔 즐기면서 멋진 여행을 해야지........ 내일 아침 7시면 내가 살고 있는 베이징에 도착 할 것이다. 5일동안 집에 전화통화를 못해서 집이 궁금하다.. 집 사람이랑 아이들 목소리도 듣고 싶고....차라리 이기차가 고국으로 간다면 얼마나 좋으련만,,,,....그래도 내집이 있는 북경까지...이 기차가 데려다 주겠지 기차에서 2박,시안에서 2박, 쩡조우에서 1박 5박 6일 동안의 2002년말,,2003년초의 겨울 중국여행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끝"
火車旅行(15)
첫댓글 임흥선(iok_china)팀장 님의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이분은 여행가군요. 여행기를 아주 실감나게 쓰는것 보니...정말 내가 기차타고 여행가는것 같네~~정일아우 부부는 글 쓰는, 옮기는 재주도 탁월하이~ 언제 한번 만나볼수 있겠나? 글쓴 이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