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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가족 여행기
2010년 11월 1일 우리 가족은 스페인으로 부부동반 여행을 떠났다.
칠남매지만 건강과 업무상 이유로 가지 못한 네 사람이 못가고 열 명이 떠났다.
집사람은 아이가 대입 수능시험이 며칠남지 않았는데 가느냐고 나를 붙잡았지만 몇 달 전부터 잡은 날이라 바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국외 여행하면 반가우면서도 떠나기 전 내가 비행기에서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항상 걱정이 앞선다.
아직 아이들이 덜 커서다. 인간이 만든 교통수단 중 제일 사고가 적은 것이 비행기라는 통계를 알고 있지만 말이다.
경비를 절약하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네덜란드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영국 여인이 옆자리에 앉았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자 UK 이라고만 거듭 대답했다.
내가 못 알아듣고 재차 묻자 잉글랜드라고 바꿔서 대답하였다.
유나이티드 킹덤(United Kingdom)의 약자만 이야기 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미국은 USA 하면 세계인이 알아들으니, 영국도 UK이라고만 해도 알아주라는 자존심 강한 여자같이 보였다.
내가 축구선수 박지성을 아느냐 물으니 모르고, 비틀즈의 노래 렛잍비( Let it be )를 부르며 아느냐고 물으니 안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님이 내게 해주신 말과, 그 노래의 뜻이 같았다고 이야기 하며, 어머님께서는 비틀tm 노래를 그 당시에 알지 못하셨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은 “전 세계 엄마들의 마음은 다 같은 것” 이라고 대답했다.
결혼했다 하기에 아기는 있느냐고 묻자, “아직 없다.” 해서 "왜 없느냐." 고 묻자 “운이 없었다.” 라고 하며 웃었다.
어찌 보면 조금 무례한 내 질문을 웃어가며 대답해주고, 도착해서는 선반위의 우리 짐을 내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다음날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인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을 구경하였다.
유럽 유명 건물들은 돈 걱정 하나도 하지 않고, 지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텔레비젼으로 볼 때는 악마의 성처럼 괴기스럽게 보인 건물이지만, 실물을 대하니,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다른 성당과 다르게, 나뭇가지를 모방해서 끝에서 나뭇가지처럼 분산해서 벌어져서 받치게 되어있는, 작품 이라고 설명을 들을 때의 느낌은 역시 경이롭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가우디는 평생을 성당건축 하는데 만 정열을 쏟아, 행색은 항상 공사장 작업복 차림으로 거지처럼 보여, 공원에서 신발 벗고 벤치에 누워 신문보다 얼굴 가리고 자면, 사람들이 거지인 줄 알고, 불쌍하게 생각하여 신발에 돈이 수북하게 쌓였다는 설이 있고, 교통사고로 죽었는데도 행색이 너무 초라하니, 누군 줄 모르고 며칠간 방치되었을 정도라는 해설을 듣고, 무언가에 미쳐 열중한 그의 삶이 존경스럽고,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덕택에 전 세계에서 건축하는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성당을 만들었으니, 우리나라에도 그런 인물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싶다.
나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제일 큰 구경거리는 가우디 성당보다 황영조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념 동상에서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반갑게도 우리한글로 비석이 서 있는데, 내용은 “역사와 예술의 나라 스페인 찬란한 고도 바르셀로나 이곳에 동방의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경기도 그 힘찬 빛이 같이 어리어 있나니 아 뜨거운 우정 만방에 영원 하여라” 라는 한글이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여서인지, 그 글씨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 동상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간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황영조 선수의 뛰는 조각상 앞에서 우리 가족들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영웅 앞에서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황선수의 발바닥 도장이 있어 신발을 벗고 내 발바닥을 넣어보니 발바닥 크기는 내 발바닥과 똑같았다.
일제하에 일장기를 달고 우승한 손 기정님이 노구를 이끌고 이역만리까지 친히 오셔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시고, 황영조 선수가 태극기를 달고 우승하자 “내가 우승한 것 보다 더 기뻤어요.”라고 인터뷰하시고, 1936년 일장기를 달고 우승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은메달 동메달을 걸고도 환호하는 다른 선수들 중앙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표정으로, 시상대에 서서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게 하셨던, 고 손기정옹께서 1936년도에 기뻐하지 못한 것 까지 합해서, 얼마나 마음껏 기뻐하시며, 어린아이처럼 뛰면서 기뻐하셨을까?
나는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난다.
나는 황영조 선수의 결승선 앞에서의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표정을 떠올리며, 누나들에게 그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으라 하였지만, 모두들 웃으면서 찍기에, 내가 직접 고통스러운 표정을 시범으로 지으면서 사진 찍는 연출을 하였다.
황영조가 직접 뛰어들어 왔던, 바르셀로나 메인 스타디움에서도 똑같은 연출을 하며, 우리가족은 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다.
그곳을 떠나 콜럼버스 동상이 높다란 기둥 위에 서서, 손끝은 대서양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대륙을 발견하여 스페인에 부를 가져다준 콜럼버스를 스페인에서는 성인(聖人) 대우를 한다.
당시 이사벨여왕이 콜럼버스 항해 자금을 대주고, 알함브라 궁전도, 빼앗았으니 스페인의 부의 일등공신은 이사벨라 여왕이다.
영국과 스페인 두 나라 다 여왕들이 국부(國富)의 기틀을 만들었다.
지평선이 자주 보일 만큼 복 받은 나라스페인, 포르투갈, 풍족한 땅과, 농산물, 더운 기후가 삼박자가 맞아 낙천적이고 식사 시간에 대화를 주로 하느라 세 시간 걸린다니 직접 확인 하려면 세 시간을 할애해야 하니, 직접 확인을 못한 여행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차량 번호 앞에 영어로 E가 쓰여 있으면 에스파니아 차(車)고 P면 포르투갈, F면 프랑스 등으로 표시하기로 EU가 협약 했다.
타레가의 ‘알함브라의 추억’ 기타음악을 들으며, 준수한 외모만큼이나 깔끔한 매너와, 운전 솜씨로 잔잔한 미소 지으며 운전하는 포르투갈 출신 ‘에르나’기사 오늘도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라시아스 무쵸 ) 하고 내가 스페인어로 말하면 재치 있게 한국어로 대답하며 나를 즐겁게 한다.
방송에 알함브라 궁전이 나오면, 열심히 봤었다.
전기모터 없던 육백 년 전에 물의 수압을 이용해 저 많은 분수를 만들었다니 그 기술력에 감탄할 뿐이다.
나무들 전지를 어찌나 잘 했는지 무슨 어깨동무한 성벽처럼 보였다.
알함브라 ‘붉은 궁전’이라는 뜻으로 13세기에 백년간 지어, 인도의 타지마할에 영향을 준 성, 표를 사고도 8,200명 입장 후면 성 보호차원에서 그냥 돌아가야 한다는 성, 다행히 우리는 절정기가 아니어서 무난히 들어간 모양이다.
1492년 이사벨여왕의 스페인 기독교 군대가 성을 포위하자, 마지막 이슬람 왕 술탄이 성이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냥 고이 넘겨주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워 몇 번을 되돌아보며 갔다.
2차대전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라는 영화에서 히틀러가 “파리의 주요 유적지를 전부 폭파해라”는 명령을 다이너마이트는 다 설치하고도, 파리 점령 독일사령관 콜티츠가, 끝내 폭파명령을 하지 않자, 그 첩보를 접한 연합군들이 파리 점령 후, 그 콜티츠에게 적군 장군이지만 깍듯이 감사 경례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콜티츠는 후에 히틀러의 명령이라도 “파리의 문화유산을 파괴한자로 역사에 남기 싫었다.” 라는 말을 남겼다.
두 시간 동안 여행코스인데 제일 나이 든 큰누나가, 제일 먼저 너무 앞서 가시니까 큰 매형이 누나 일행에서 떨어질까 봐, 따라가시기에 내가 달려가 “큰 누님 왜 그렇게 빨리 가세요?” 하니까 “저 앞에 가는 사람이 꼭 동생 옷하고 똑같아서 동생 놓칠까 봐” 정신없이 가셨다 한다.
큰 매형이 따라와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미안하신지 애교스런 미소를 지으신다.
셋째 형수 씨는 “파리의 유적들보다, 고풍스러운 알함브라 성이 더 났다.” 고하신다.
가이드의 말은 “한국 건물들이 요즘 지어서 제일 깨끗하고, 유럽은 전부 예날 건물이다”고 하였다.
전 세계의 올리브유 50% 생산하는 복 받은 땅이다.
크기는 10m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가뭄과 염분에 강하다.
올리브유 효과는 소화기암 피부에 좋고 머리카락이 안 빠진다.
나는 올리브유 담은 유리 구두 디자인의 병이 예뻐서 두 병 샀다.
오페라가 끝나면 여주인공의 유리 구두에 술을 부어 마신다는, 유럽 사람들의 풍류도 생각이 나서, 나도 저 유리 구두에 술을 부어 마셔야겠다.
유명한 화가 고야 동상에 가서 사진을 찍고, 곁에 아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사진을 두 장 같이 찍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올리브 나무가 주로 산에는 심어져있고, 풍력 발전기 바람개비가 간간이 돌고 있었다.
어느 호텔은 텔레비전 화면에 내 이름(eun)성을 써주고 환영한다는 영어 문구로 내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사람은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돈키호테형과 심사숙고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형, 두 가지로 나뉜다는데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돈키호테가 악마라고 싸운 풍차가 있는 라만차 마을 등을 구경하며 나도 풍차와 싸우는 자세로 사진을 한 컷 했다.
우리나라 최고신랑감이 돈키호테인데 그건 돈 많고, 키 크고, 호감 가고, 테크닉이 좋은 남자, 첫 글자 이라는 말이 생각나 미소가 나왔다.
가이드의 호텔마다 있는 비데기 설명이 재미있었다.
변기 옆에 대부분 비데기가 있는데 그 옆에 생리대 넣어서 버리라는 비닐봉지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비데기에 과일을 씻어서 생리대 넣는 봉투에 넣어서, 버스에서 나눠주며 먹더라는 소리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포르투갈에는 파두라는 음악이 유행인데, 항해하고 돌아오는 배에 죽은 자가 있으면 검은 돛을 달고 들어오는데, 부인들이 마중 나와서 해변에 서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죽은 선원이 자기 남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하는데, 두근거리는 마음을 표현하느라, 음악 처음시작 부분에 북소리로 쿵! 광! 하며 배음이 깔리고 여인의 애절한 목소리가 이색적인, ‘파두’라는 음악이 유럽을 감동시켰다는 해설을 들었다.
이 곡은 레스토랑 한구석에서 항상 검은 드레스를 입고 불러야 한다는 운명, 숙명, 우리 정서로는 한(恨), 이라는 뜻의 파두를 노동자의 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는 가수가 십구 세 때 발탁되어 프랑스에서 골든 디스크를 3년 연속 받아, 비틀스 이후 기록을 깨며 전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가 되었다 한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경계는 유럽 여러 나라가 대부분 그렇듯이, 아무 검문 없이 버스 통째로 들어갔다.
포르투갈 가게에는 닭 그림 기념품이 많은데 사연인즉, 어느 마을에 수도승이 쉬어 가는데 살인사건의 범인이 “수도승이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단다.
그 재판관에게 수도승이 찾아가 무죄를 아무리 증명해도 들어주지 않자, 마침 재판관이 닭요리를 먹고 있었는데, “내가 결백하다면 그 닭이 일어나서 꼬끼오하고 울 것이요.” 라고 말하자마자 그 닭이 일어나 “꼬끼오”하고 울어 그 수도승은 무죄를 입증하고, 포르투갈에서 닭은 행운의 상징이 되어 가게마다 닭을 주제로 한 기념품이 많았다.
포르투갈은 3F가 유명한데 파두, 파티마성당, 풋볼이라 한다.
파티마 성당은 양치기 소년 세 명에게 성모가 나타나서 예언을 한곳으로 유명한데, 일차대전이 곧 끝날 것이다, 그리고 또 이차대전이 일어난다, 등 예언 여러 사람 앞에 발현하여, 가톨릭 총본부 바티칸에서 성모 발현을 인정한 곳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그곳이 성지라 하여 묵주 등 성물을 사다 주면 아주 의미 있게 받는다 하여, 나도 묵주 등을 몇 개 사는데, 면세가격으로 싸게 팔고, 성스러운 곳이라 일부러 폭리를 못하게 감독하는 듯하여 품질도 괜찮아보였다.
무릎 꿇고 무릎걸음으로 걸어서 150m 즈음 가서 참배할 수 있도록 다듬은 포장도로가 있었고, 성당에서는 미사를 보고 있었고, 성수라고 샘을 파서 떠갈 수 있게 하여 놓기도 하고, 초를 사서 촛불을 켜놓는 곳은 판매자가 따로 없이 최젓값만 표기해 두고, 양심에 맡기는 장사를 하였다.
나도 열 개를 사서 일곱 개는(우리 가족 다섯과 장인어른과 장모님) 켜놓고, 세 개는 기념으로 가져왔다.
어릴 때 동경의 대상이고, 잘사는 나라를 영화 화면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나라들, 이제와 직접 보니 두 나라 다 키도 우리와 별 차이 없고 소득도 우리와 별 차이 없는, 나라들처럼 보였다.
6.25후 끼니를 걱정하던 세계 최빈국에서, OECD 의장국으로 세계 경제를 조율하는 지위로 나라의 격을 높여주신, 선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일찍이 인도의 노벨상수상자 인도시인 타고르가 일제치하에 있는 힘없는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 표현하고 “한번 켜지는 날에 동방의 등불이 되리라” 표현한 예지가 과연 노벨상 수상자다워 놀랍기만 하다.
동방의 등불이 아니라 “25시 저자 게오르규 신부가 ”물질문명에 오염된 서양사상에 동양의 심오한 철학을 지닌 한국이 세계의 빛이 될 것이다“는 예언을 그저 힘없어 소외당하는 한국을 예의상 칭찬하는 소리로 들었던 어릴 적 기억이 새롭다.
에스파냐에서 갈라진 두 나라 공통점은 성당마다 사설 예배당이 있어 왕족과 귀족들만 예배드리는 방이 각각 따로 있었다.
철창으로 막아서 남들은 못 들어오게 만들고 귀족 특권의식을 자랑하는 방들이 꼭 성당 안에 있는 감옥들같이 보여 이상했다.
중국에서 ‘채윤’이 종이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양피지에다 금박으로 그림을 세공한 성경책이 나왔는데, 이유인즉 게르만족이 무식하여(지금은 유식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림을 많이 그렸고, 종이와 쿠텐베르크의(우리나라 직지심경이 78년 더 오래되었지만 세계문화사에 영향을 끼친 게 더 크다 하여 세계최초로 인정은 구텐베르크가 받는다는 이해 못 할 소리를 들었다) 금속활자 인쇄술 발달로 성경이 값싸게 널리 보급되자,(그 이전에는 성경책이 너무 비싸 성직자와 귀족들만 보고 왜곡해석이 심했음) 독일에서 마틴 루터가 당시 가톨릭에서 당연시되던, 돈으로 면죄부를 사서 자기 죄를 사한다는 항목이 성경 어디에 있느냐?
하고 99개 조항으로 교황에 반기를 들자( 당시 교황에 대적하는 죽음을 각오한 결단) 칼뱅 등 다른 학자들도 동조 하고 대다수 신도도 동조하여 신교와 구교(가톨릭)로 나뉘어 싸웠다 한다.
그리하여 독일에 니체라는 철학자가 신께서 “내가 말한 것은 너히 서로 사랑하며 지내라했지, 누가 믿는 자들이 칼로 날마다 싸우랬느냐” 고 말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무리 싸우지 말라고 말려도 듣지 않는 인간을 보고 신께서 괴로워서 “신은 죽었다.” 고 표현한 것을 “신은 죽었다”는 그 소리만 들린 무신론자들은 “봐라! 기독교인들도 신은 죽었다고 없다고 하지 않느냐?”하는 촌극을 낳았다.
학자들도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에 전파되자, 그걸 보고 힌트를 얻어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해석도 한다 했다.
스페인의 풍습은 “신 앞에는 다 평등하다.” 하여 개인주의가 발달하여 축구 경기 외에는 테니스, 오토바이, F1 그랑프리 등 개인경기를 잘하고 즐긴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딸이 주로 부모를 봉양하며 노인돌보미를 주로 남미사람을 한달 팔백유로 정도에 쓴다했다.
노후 적적함을 달래려 개를 많이 기르는데, 싼 것이 육백유로 정도로 목줄에 칩으로 정부에서 관리한다 했다.
스페인 남부 휴양도시는 유럽인들이 퇴직 후 노후 연금으로 생활하러오는 선망의 도시라서, 우리나라 사람 가수 키메라 씨도 사는데 대문을 세 개 통과하는 저택에 살자, 딸 멜로디 양을 납치하여 유괴범들이 300 억원을 요구하자, 그 아버지는 그 범인을 잡거나 제보하는 사람에게 600 억을 주고 범인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하자, 범인들이 내분을 일으켜 도망 다니는데 실수로 흔적을 남겨, 잡혔다는 내용이 영화화 되었다는, 어린아이 납치범들에 대항하는 교과서적인 얘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한번 300억을 주면 다른 납치범들이 또 납치의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정확히 예견한 용단에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 올레 길의 표본이라는 아기자기한 동네도 구경하였다.
해안 절벽 틈새에 비둘기가 사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천연의 관광마을 이라 영국인 폴란드인 등을 만났다.
지브롤터(Gibraltar:스페인 식 발음 지브랄따) 비행장 만한 크기의 땅인데 영국령이다. 한때 스페인 왕과 유럽 형제간 왕국이 있어 전 유럽을 좌지우지할 것 같으므로, 힘의 균형 차원에서 점령 후 지금까지 있자, 한때 스페인이 봉쇄한 적이 있었으며, 출입할 때 비자 검색을 하고, 그 지역은 영어표기상점과 스페인 속 작은 영어권임 지중해 모든 나라가 대서양을 빠져나가는 군사적 요충지임, 모로코는 지브롤터해협을 배로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도착하는 나라인데 배 안에서 입국비자 도장도 다 찍지 못했는데 벌써 도착해있었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우리나라 1960년대 수준으로 못사는 아랍계가 주축인 나라다.
인사는 ‘살라 말리꿈’ 하면 답례는 ‘말리꿈 살라’ 앞뒤 말 순서를 서로 바꿔가며 인사하는데 뜻은 ‘당신의 어깨 위에 평화’를 이라는 뜻이다.
모로코호텔 첫날밤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복도에 불이 커져 있어 눈이 커서 예쁘게 생긴 글래머 백인(무어인: 아랍계처럼 보임)아가씨가 복도 불을 켜주었고, 방문을 열고도 어두워서 스위치를 찾지 못하자, 눈치 빠르게 내방 불까지 켜주는 친절을 베푸는데, 피곤하고 얼떨떨한 기분에 그 흔한 감사 인사 (댕큐)도 못했다.
관광버스는 100km 로 고정 해놓으면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100km로만 달리게 되어있고, 한두 시간 달린 후에는 의무적으로 달린 시간에 비례해서 이삼십 분씩 기사가 쉬는 게 블랙박스에 기록이 되어, 그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벌칙이 가해져, 승객과 운전기사와 관광버스 모두 보호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심지어 승객이 다 탔는데도 이분 남았다고 출발하지 않았다.
이 제도는 우리도 도입되어야 할 선진 제도 시스템으로 보였다.
모로코에서는 우리 교포 아줌마가 나왔다.
긴 생머리의 앳된 모습이 모두 처녀인 줄 알았다 한다.
생머리를 하고 모로코 미장원에 가서 파마해 주세요하면 “이렇게 좋은 머리를 왜 손대려하냐?”고 묻는 이유는, 그곳은 여자들 대부분이 자연 파마머리라 남다르게 보이려면, 스트레이트파마 즉 우리나라 자연 생머리로 미장원에서 하는 게 유행이라 하였다.
모르고 왔다 모르고 가는 나라 모로코, 인구 35백만 공식어는 아랍어 불어도 통용, 이슬람 99%, 1%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인 분포로 지중해의 아래 입술로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추워, 산에서는 스키도 탈 수 있다.
이슬람인 들은 화장실에 발 씻는(예배 보기 전 발 씻는 풍습이 있다.) 장소가 우리 30년 전 시골 남자 화장실 소변 누는 곳처럼 폭 30cm 길이 2-3m 정도 긴 타일로 홈이 파여 있어, 자칫 소변보는 곳으로 착각 할 뻔했다.
모로코는 기름진 땅이 지평선이 자주 보일정도로 넓은 복 받은 나라에, 국민들도 주로 흑인이 간간이 보일정도로, 아랍계 무어인 들이 많고 코가 크고, 눈이 커서인지 똑똑하게들 보였다.
너무 땅이 넓어서인지, 비가적어서인지 노는 땅이 많아 보였다.
우리 같으면 산비탈을 깍은 다랭이 논밭에 김장용 무, 배추며, 마늘 생강, 등이 논두렁 밭두렁까지 아까워서 심는데, 노는 땅들이 너무 아까워보였다.
전자제품은 비싸고, 농산물은 싸서 수지가 안 맞으니 농사할 의욕들이 없어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하라가 너무 더워 모기가 없는 나라, 한국인 가이드를 따라 시장 안에 있는 가죽제품 매장에 가는 동안, 우리를 알아보고 가끔 “코리아” “코리아”를 사람들이 연호하는데, 우리를 안다는 건지, 호감인지 반감인지 알지 못해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우리 국민에게 나쁜 감정은 없겠지 하고 맘을 놓기로 하였다.
버스에 탔다가 가이드가 잊어버리고 점심값을 안 주고 왔다고 뛰어나간다.
카사블랑카에 이슬람사원을 구경하였는데, 스페인에 있던 천주교 성당 못지않게 규모가 크고 웅장한데, 안에 의자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 특이했다.
카사(집) 블랑카(하얀), (그리스어: 카사비얀카 ) 란 뜻 말대로, 그게 영화와 팝송으로도 나와 큰 기대를 하고 그 도시를 찾았지만, 일사량이 많아 그 지역 집들이 대부분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그 집들이 전부 카사블랑카(하얀 집)라고 불렸다.
지브롤터해협은 많은 모로코 사람이 헤엄쳐서 부자나라 스페인에 건너가려다 빠져 죽는다 했다.
우리나라 신라에 처용이 아마 아랍인이라는 추측이 있고, 덕수장씨가 아랍인이 시조라, 장동건이 잘 생겼다나?
우리나라 차 기아 모닝이 작년 소형차 부문 1위를 기록했고, 신호위반 하면 3진 아웃 제를 실시한단다.
모하메드 5세 광장을 구경했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모스크는 핫싼 2세 때 지은 것으로 세계 삼대 모스크로, 이만오천 명 기도할 수 있는데 위층은 여자가, 남녀 구분하여 예배를 보는데, 광장까지 합하면 10만 명은 모이는, 모로코 유일의, 내진설계에 온돌과, 지붕 뚜껑이 열리는 건물 구조로 환기를 생각했으리라,
왕을 술탄(술탄 음식만 드셨나?)이라 부르는데, 창문은 항상 메카쪽을 바라보는 창을 제일먼저 만들고, 창문을 여러 개 만들어, 해가 비치는 창문을 등지고 앉아서, 사신을 영접하여, 자기는 사신의 표정을 자세히 보고, 사신은 왕을 눈이 부셔서 잘 보지 못하게 하는, 위엄을 자연조명을 이용했다.
전쟁을 많이 하니 미망인을 위한 제도로 일부다처제에, 형사취수제(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 우리나라 고대국 부여와 청나라, 고구려, 일본의 풍습) 나라다.
장금이 드라마가 여기에서도 인기를 끌었다니, 한류바람이 거세다.
우리 휴대전화 소지자는 가문에 영광이고, 우리 안마 의자가 많이 팔렸단다.
마호메트(영어식 폄하 발음) 무함마드가 사우디 메카에서 출생하여 여섯 살 때 부모 사망하여 무역상 작은아버지 따라다니다, 25세때 40살 과부와 결혼 후 종교에 심취하여 만든교가 이슬람이다.
교리는 다 같은 성경 비슷한 것을 코란이라 불러 나는 전혀 다른 종교인 줄 알았었다.
똑같은 하나님 믿는 종교도 파벌만 많이 만들어서 싸우고 있는 게 진정한 신의 뜻일까? 아니 평화롭게 지내라는 신의 뜻을 져버리고 서로 죽일 때 마다 그 죄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자신들의 신을 스스로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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