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에는 후방기지로서, 전후에는 물류산업기지로서 큰 역할을 했던 1954년 부산항 제1·2부두 전경. 클리포드 스트로버스(Clifford L. Strovers) 촬영 두모산업 제공
- 미국 화물선 오고간 2부두 지칭
"우뚝 선 영도다리 갈매기들 놀이터/ 물에 뜬 네온 불도 부산항구다 // 메리켄부두가에서 내일 다시 만나주세요/ 파자마 입은 아가씨들의 인사가 좋다."
1956년 가수 방운아가 부른 '부산행진곡'의 2절 노랫말이다. 한국전 이후 부산항의 분위기를 경쾌한 리듬에 담아 알린 가요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노랫말 가운데 '메리켄부두'라는 생소한 명칭이 보인다. 과연 메리켄은 부산항의 어떤 부두를 가리키는 것일까?
일본의 고베항이나 요코하마항에 가면 '메리켄파크', '메리켄부두' 등 '메리켄(メリケン)'이라는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실 메리켄(Merican)이란 말은 아메리카(America)에서 비롯됐다. America를 발음할 때 me에 강세가 있다 보니 메리켄으로 들렸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리견(중국:彌利堅·美利堅, 일본:米利堅)', '며리계(한국: 旀里界)' 등 한·중·일의 음차표기에서도 드러난다.
19세기 중엽 이후 극동지역 내 서세동점(西勢東漸)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에서는 외래어를 지명에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고베항 개항 이후 미국영사관이 부두 인근에 자리를 잡자 해당 부두를 일컬어 메리켄부두라 했고, 미국 무역선이 드나드는 곳을 메리켄부두라 불렀다. 미국 화물선이 싣고 온 정제 밀가루를 가리켜 메리켄분(メリケン粉)이라 불렀던 것도 자연스러운 풍조였다. 마치 우리나라 개항 이후 외국산 박래품 앞에 양(洋)자를 붙여 양복, 양화점 같은 말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다. 일본에서 메리켄부두는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통로이자 항만이 성장하는 중심축이 됐던 셈이다. 그렇지만 일본에 의해 강제개항된 부산항은 일본 독점항로가 개설되는 등 '왜색화'에 급급했다. 그래서 '메리켄'이 우리나라에 접목된 것은 미국 화물선이 본격적으로 부산항을 드나들던 1950년대 이후가 된다. 부산항 제1·2부두는 정부수립 이후 우리나라에서 무역선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부두였다. 특히 전후 구호원조물자를 실은 미국화물선이 자주 접안돼 밀가루, 옥수수가루 등을 하역했다. 부두 주변에는 미국선원의 발길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경을 보고 1961년 가수 고봉산은 '아메리카 마도로스'라는 제목의 가요로 부산항을 노래했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항구 제2부두, 죄 많은 마도로스 이별이 야속더라." 노랫말 첫 소절부터 부산항 제2부두를 지칭하며 '메리켄부두'의 의미를 담았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