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고개]
여우목고개와 문경(聞慶)
여우목을 중심으로 한 문경(聞慶)의 인문학·1
오상수(吳尙洙, 길 위의 인문학)
일찍이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말하기를 “천하의 형세를 보면,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고,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나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天下之形勢 山主分而脈本同其間 水主合而源各異其間)” 하였다. 사실, 연면한 산맥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은, 한반도의 뼈대를 이루며 장엄한 백두대간(白頭大幹)으로 뻗어가고, 그 산곡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물줄기는 큰 강을 이루며 유역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젖줄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산의 정기를 타고 태어나고, 물의 정령을 마시고 생명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산과 강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동쪽의 황장산과 서쪽의 주흘산-조령산 사이에 위치한 대미산(黛眉山, 1,115m)은 백두대간 산봉 중에 문경시의 후덕한 모산(母山)이다. 이 대미산에서 문경의 지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우목은 대미산과 국사봉 사이의 안부로, 문경(읍)과 동로로 통하는 901번 지방도로의 고개이다. 여우목 고갯마루 육각정에는 ‘與佑亭’(여우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백두대간 대미산(黛眉山)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저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하여 개마고원—금강산—설악산(雪嶽山)—태백산—소백산—대미산(黛眉山)—조령산—속리산—황악산—덕유산(德裕山)을경유하여 지리산(智異山)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로, 한반도의 중추(中樞)를 이룬다.
백두대간 ‘문경구간’은 그 남한 구간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데, 그 영역이 아주 장대하다. 영주의 소백산-죽령을 지나 온 백두대간은, 문경시 동로의 [벌재](59번 국도)에서 시작하여 황장산(1,078m)-대미산(1,115m)-포암산(962m)-[하늘재]-탄항산-주흘산(1,106m)까지 서진해 오다가, 안부인 [새재]을 지나, 남으로 조령산(1,025m)-백화산(1,063m)을 경유하여, 서쪽으로 희양산(999m)-장성봉(915m)-대야산(931m)으로 이어진 후, 다시 남행하여 조항산-[밀재](문경시 농암)에 이르는 긴 구간으로, 수많은 고봉준령이 포진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청화산-[늘재](32번 국도)를 지나서 문장대(1,050m)-속리산 연봉에 이르는 산줄기는 백두대간 ‘상주 구간’이다.
☞ ‘대미산’은 옛 문헌에는 대개 ‘黛眉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 이름이 특이하다. ‘대(黛)’는 여자의 눈썹, ‘미(眉)’는 ‘눈썹’을 뜻한다. 연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미산’의 정상(頂上) 표지석에는 ‘白頭大幹 大美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黛眉山秀列崔嵬
山下長川曲曲回
대미산 높은 봉우리 줄줄이 빼어나고
산 아래 긴 물줄기 굽이굽이 돌아가네.
최근에 발견되어 번역 소개된 손와(巽窩) 이경중(李慶中)의 「관산구곡시(冠山九曲詩)」의 첫머리이다. 높은 산봉 대미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고산연봉과 그 큰 산 아래에서 발원하여 굽이굽이 흘러가는 영강과 금천의 물굽이를 요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이정록(향토사연구위원) 번역 ; 이경중의「관산구곡시」(문경문화, 2021년 겨울호 통권 126호) 118쪽
문경의 중추(中樞) ‘운달지맥’
‘운달지맥(雲達支脈)’은 백두대간 대미산(1,11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문경시 한 복판에서 뻗어가는 48.1km의 산줄기이다. 여우목은 대미산이 갑자기 고도를 낮춘 안부(鞍部, 620m)인데, 문경시 문경읍과 동로를 잇는 901번 도로의 고갯마루이다. 여우목을 지나 남으로 뻗는 운달지맥은 바로 국사봉(943m)을 밀어올리고, 산북의 거산 운달산(1,097m), 마성의 단산(956m), 호계와 산양의 경계 굴봉산(849m)과 월방산(360m)을 지나, 영순의 천마산(274m)의 끝자락 달봉산-비봉산이 낙동강과 영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 산세를 다한다. 운달지맥은 그 중 최고봉인 ‘운달산’에서 그 이름을 취했다. 운달산(1,097m)은 동쪽으로 동로의 공덕산-천주봉(841m)을, 서쪽에 문경읍 당포의 성주봉(912m)을 거느리고 있어 장엄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 땅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특히 문경의 지세(地勢)를 보면 운달지맥은 ‘문경시의 중추(中樞)’를 이루는 산줄기이다. 요컨대 대미산이 사람의 머리라면 여우목은 그 목덜미, 즉 경추(頸樞)이며 그 아래 운달지맥은 등뼈에 해당한다. 지맥의 중앙 배나무산에서 분기한 호계의 오정산은, 모든 기운이 모이는 단전(丹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운달산지맥의 좌우에 흐르는 영강과 금천은 문경의 혈관(血管)이요 생명의 젖줄이다.
분수령(分水嶺) 여우목고개
여우목은 문경시의 2대 하천인 영강과 금천의 분수령(分水嶺)이다. 여우목을 정점으로 하여 동쪽에는 동로면 생달리 대미산에서 발원하는 금천(錦川)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문경읍 중평리 대미산 아래에서 발원하는 영강(穎江)의 상류인 신북천(身北川)이 흐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물이 흐른다. 높은 산 깊은 골, 수많은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려 작은 시내를 이루고 그 시내들이 모여 강(江)을 이루나니, 그 물줄기가 흐르는 곳마다 대지를 적시고, 그 물길이 닿는 곳마다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간다. 무엇보다 그 강 유역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생기고,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를 이루어 나간다. 이를 두고 시인 이육사는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고 노래했다. ‘강’은 시간과 공간을 포괄하는 ‘생명(生命)’을 상징하고, ‘길’은 강과 생명들이 만들어 가는 ‘인간의 역사(歷史)’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광야는 바로 역사의 광장이다. ☞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광야(曠野)」제3연. 『육사시집』(1946)
금천(錦川)은 백두대간의 맑은 물이 모여 아름다운 ‘경천호’를 이루고, 산북(면)을 지나면서 운달산에서 발원하는 대하리천을 품어 안고 산양면 현리와 불암리를 지난다. 그리고 영순(면) 달지에서 봉화와 영주의 소백산에 발원하여 예천을 경유하여 내려오는 내성천과 합류하여. 삼강에서 낙동강에 유입한다. 한편, 신북천(身北川)은 문경읍 중평리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갈평을 지나면서 문경댐 저수지를 이루고 당포를 지나 문경읍 하리에 이르러 새재[조령관] 아래에서 발원한 조령천과 합류하여 마성의 용연(龍淵, 진남교)에서 영강 본류에 유입한다.
영강(穎江)은 문경지역을 통과하는 백두대간의 여러 산곡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모여서 이루어진 강이다. 그 본류(本流)는 백두대간 상주의 청화산과 속리산 형제봉 산곡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모여, 문경시 농암의 ‘쌍곡계곡’과 ‘우복동천-용유계곡’을 지나 농암(면)에서 ‘궁기천’이, 가은(면)에서 ‘영산천’이 유입되어, 마성의 진남교반에서 ‘신북천’을 만나 하나의 영강을 이룬다.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진남교 주변은 그 울창한 송림과 절벽이 절경을 이루어 경북팔경 제1경으로 꼽힌다. 그리고 두 강이 만나는 진남교반 동쪽의 절벽 위에 역사유적지 ‘고모산성’-‘토끼비리’가 있고, 북쪽의 높은 절벽 위에는 ‘봉생정(鳳笙亭)’이 있다.
☞ 봉생정(鳳笙亭)은 마성면(麻城面) 신현리(新峴里)에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진남교반에서 조령천과 영강이 합류하여 휘돌아 나가고, 강안에는 노송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봉생정은 선조 16년(1583)에 서애 류성룡이 한양을 오갈 때 쉬어갔던 장리지소(杖履之所)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문인 우복 정경세와 유림들이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순조 4년(1804) 서애 선생의 8대손인 병조판서 류상조와 병산서원에서 힘을 모아 중수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헌종 10년(1844)에 여섯 문중에서 수계하여 옛 터에 복원하였다. ― 〈계 속〉 ☞ 여우목을 중심으로 한 문경(聞慶)의 인문학·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