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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성고개-당성(구봉산)-이봉산-승학산-와룡산-전곡1교
- 산행거리 : 전체 30km (실제 지맥거리 27.4km, 접속 1.6km / 헛발품 1km)
- 산행일시 : 2026년 10월 19일(월) 09:00~18:00 (9시간)
- 교통편 : (갈 때) 조치원역-수원역<새마을호>, 수원역-남양사거리<시내버스>
(올 때) 전곡-수원역<시내버스>, 수원역-조치원역<새마을호>
- 소요비용 : 25,100원 / (새마을호) 17,000원, (버스) 8,100원
★ 흔적들
어제 2구간 산행을 하려고 했지만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57세 고종사촌 동생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부리나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들러 문상하고 세종 집에 들어오니 저녁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다음 날 배낭을 챙겨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수원역 환승센터에서 남양사거리 가는 버스를 탔다. 8시 40분경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에는 마을버스로 환승코자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걸어가기로 했다. 송진불가마를 지나 원천리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왼쪽 성주골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고개에서 샘실고개까지는 간벌지에 아카시아 군락지와 각종 가시덩굴이 도사리는 잡목지라서 도로 따라가는 것으로 정했다. 더욱이 전날 비가 내려 아직까지 잔뜩 물을 머금은 이파리들이 온몸을 적시게 만들게 될 것 같았다. 일단은 편하게 출발을 한 셈이 되었다. 샘실고개에 도착했다(09:09). 샘실고개는 아래에 있는 잔다리마을과 중곡마을 이름을 따와 잔다리고개 또는 중곡고개라고도 한다. 잔다리는 팔탄면 서근리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름길을 서두르자 106.8봉에 도착한다. 식별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다. 화성시 마도면 송정리와 만나는 지점으로 여기서부터 솔티고개 직전 98.6봉까지 마도면과 남양읍 남양동의 경계를 따른다. 음실고개 맞은편 절개지 사면 옆으로 올라서서 114.6과 117봉을 지나자 칡넝쿨과 가시잡목이 우거진 밀림과 같은 곳을 통과해야 했다. 칡넝쿨과 가시잡목을 밟아가며 진행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어느 순간 빼곡한 가시잡목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무조건 트랙만을 고집할 상황이 아니었다. 도로 따라가기로 마음먹고 되돌아가다가 주택가를 경계로 칡넝쿨이 있긴 해도 비교적 흔적이 뚜렷한 길이 보여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30여 분간 칡넝쿨에 갇혀 시간 낭비를 한 셈이 되었다.
석교리 마을의 은장교차로가 보이는 절개지에서 오른쪽 공사현장으로는 도저히 내려설 수 없었고 대산공업 철제펜스 옆으로 내려서야 했다. 322번 지방도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진행하자 쌍송리 갈림길이 있는 은장교차로에 이르렀다(10:30). 92.3봉에서 은장고개로 향하는 지맥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셈이 되었다.
화성시 남양읍 남양동과 마도면 쌍송리와 두곡리의 경계에 있는 은장고개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봉우리를 보며 쌍송리 방향으로 접어들면 화성장례식장을 지나 솔티고개에 닿았다. 오른쪽 장모님밥상 옆 길 따라 마도배수지 정문에서 철제펜스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106.7봉이다. 여기서 잡목을 헤치며 쌍송공단에 있는 다락고개로 내려섰다. 서해안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소로를 지난 후 공장지대를 거쳐 포장도로로 나오며 종이품 벼슬을 한 어른의 묘소를 넘어서자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길래 아무 곳에나 퍼질러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마도면 청원 4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도로 따라 가려다 헤찬코퍼레이션 입구를 보니 시그널이 보여 그쪽으로 가보지만 역시 나가는 길은 오리무중이다. 어렵사리 도로에 내려선 후 청원초등학교 뒷쪽 소로를 따라 돌아나온 후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바꿔 도로따라 올라갔다.
청원교회에 이어 엘림아이앰을 지나자 오른쪽 임도로 접어들었다. 폐기된 중장비가 있는 곳을 지나 마도면 송대마을을 보면서 철탑을 통과했다. 왼쪽으로 방향을 내려서는 곳에는 가족묘원이 자리하고 있고 포도농장을 지나야 했다. 공사장 절개지에서 옹벽이 낮은 곳으로 내려서자 금당정미소를 지났다(12:56). 그리고 엄나무농장 보호수를 지나 만난 갈림길에서는 왼쪽의 금당리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가면 되었다.
전주이씨 가족묘를 내려선 후 맞은편 숲길로 올라서는 길에 누군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뒤를 보니 강아지 두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떡 하나를 던져 주고 싶지만 가는 길이 바빠 못 본체하며 올라섰다. 안부에서 훤하게 열린 지맥길을 따라 올라가자 흉물스럽게 방치한 개인 골프 연습장에 이어 돌탑이 세워진 135.8봉에 이르렀다(13:25). 삼각점(대부 418)도 보인다. 누군가 바닥에 버린 산패를 나무 위에다 걸쳐 두고 자리를 떴다. 시그널도 모두 철거한 듯했다.오른쪽으로도 넓은 길이 있지만 지맥은 왼쪽 방향의 백곡리 향기실(香氣室) 마을로 내려서야 했다. 여기서부터 마도면 백곡리와 송산면 육일리의 면계를 따르게 된다.
코스펠리 아파트로 진행한 후 원룸이 있는 곳에서 숲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진입로를 찾을 수 없다. 왼쪽의 공사장에 들머리가 있는 듯하지만 인부가 일을 하고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부득불 공사장과 원룸 모서리 부분을 넘어선 후 숲길로 들어섰다. 인부가 내 모습이 이상한지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 묘소가 있는 곳에서 내리막은 칡넝쿨이 우거졌지만 309번 지방도가 지나는 굴고개에는 당성 생태이동통로를 설치하여 위로 통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물론 잡목이 빼곡하게 우거져 통과하기 만만치 않았다. 굴고개는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와 송산면 육일리를 잇고 있으며, 당성터널에는 4차로의 309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마루금을 따라가다 잡목이 심해 당성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북문지 인근에서 당성 위로 올라서자 길은 편하게 이어졌다.
당성(黨城)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당항성(黨項城)로도 불린다. 1971년 사적 제217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에는 항구도시를 다스리던 관청이 있던 곳이다. 토성과 석성으로 연결된 산성의 총길이는 1차 성과 2차 성을 합쳐 1,500m가 넘는다. 테뫼형(山頂式, 산봉을 중심으로 산정 외곽부를 돌로 쌓은 형태)과 포곡형(包谷形, 봉우리와 계곡 주위를 둘러쌓은 형태)을 결합한 복합식 산성이다. 계곡을 둘러쌓은 산성으로 남북으로 기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경기도 해안지역 일대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성이고, 겹배수 통로가 깔린 동문지의 구조를 볼 때 탄탄하게 만들어진 성이다. 현재는 동문·남문·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 터가 남아있으며, 성의 내벽은 흙으로 쌓고, 외벽은 돌로 쌓았다.
태행지맥은 삼봉산, 태행산, 구봉산까지는 같이 가나 날머리는 세 군데로 갈라진다. 태행지맥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갈림길이며 분쟁의 소지가 있다. 오른쪽의 송산면으로 가서 승학산과 와룡산을 걸쳐 전곡항으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구봉산, 봉화산(烽火山, 164m), 함경산(咸鏡山, 137.2m)을 거쳐 서신면 송교리 살곶이에서 남양만을 만나는 방향이 맞다고 한다. 또 하나는 굴고개 직전 121봉(해운분맥 분기봉)에서 청명산, 해운산(海雲山, 43m)을 넘어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궁평항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있다. 이 세 곳 중 어느 쪽으로 날머리를 잡느냐에 따라 산행의 종착점이 달라지는데 선택은 순전히 지맥꾼들의 판단에 따르겠지만, 신 산경표의 '산줄기 세력의 법칙'에 따라 대세를 따르기로 한다. 즉, 지맥은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송산면 안으로 들어서며 전곡1교에 내려서기까지 계속하여 송산면 안을 휘젓게 된다.
서둘러 진행한다고 200m 떨어진 구봉산(158.6m)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구봉산은 화성시 마도면, 송산면, 서신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남양반도 중앙부에서 서남쪽의 바다 방향으로 비스듬하고 길게 늘어서 있는데, 구봉산이란 산 이름도 길게 늘어선 산줄기의 봉우리가 아홉 개 있는 데서 유래한다.
칠곡리 고개로 내려섰다. 송산면 육일리와 칠곡리를 잇는 고개로 칠곡리(옻골마을) 표지석이 있고 주변은 온통 공장지대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포도밭을 통과했다. 수확을 다 하고 가지에 달려있는 떨이 포도를 따먹어가며 진행했다. 86.9봉이 위치한 곳은 지맥의 왼쪽이 칠곡리에서 중송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오른쪽으로 꺾여 급하게 내려서야 하는데 가시범벅인 엄나무가 많아 위험하다. 컨테이너가 있는 농로에 닿고, 포도밭 뒤쪽 능선으로 지맥이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한다. 트랙이 안내하는 곳은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절개지라 칡넝쿨과 가시박이 어우러진 지대를 밟으며 두리번거리다 가시박의 가시가 바지에 박히고 만다. 부착식물로서 가장 악독한 놈이 가시박이다. 길이 4~5mm밖에 되지 않는 바늘처럼 생긴 가시가 촘촘히 옷에 박히며 옷을 통과하여 살갗을 찌르고 급기야 살에 박히기도 한다. 따끔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일단 도로로 내려섰지만 트랙과는 반대방향이다. 최대한 트랙에 붙어 아지미고개를 찾아가려고 해도 공사용 펜스로 막혀 갈 수가 없다. 칡넝쿨과 가시잡목을 헤치며 어렵사리 펜스 철판이 뜯긴 곳으로 나오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선답자들이 아지미고개로 무탈하게 내려선 것으로 봐서 분명 내려서는 길이 따로 있을 것이다. 아지미고개를 찾는다고 헤맨 시간이 20분을 넘겼다. 아지미고개는 송산면 사강리에서 고포리로 넘어가는 322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스위스 모텔이 있다.
아지미고개에서 도로를 따라 트랙을 벗어나 우회하다가 축대가 있는 곳에 올라섰다. 묘지옆 공사장으로 갔다가 70.5봉을 거쳐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민가로 내려서게 되었다. 노부부가 마당에서 일을 하다가 나를 보고도 무덤덤한 것을 보니 여럿이 마당을 통과하여 내려선 듯했다.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급하게 빠져나왔다. 중송리 마을 2차로 도로를 따라가다가 길 오른쪽 인애농원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이번에는 사유지가 막고 있어 57.7봉을 건너뛴다.
각골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 희미한 숲길에서 76.6봉을 다녀온 후 322번 지방도가 지나는 마산교차로에서 장문마을 소로를 따라 들어갔다. 삼현건설이 있는 곳은 오른쪽으로 야트막한 무명봉이 있지만 회사문이 닫혀있고 오름길이 불분명하다. 해가 지기 전에 지맥을 다 마치려면 들어서기 애매하다고 생각되는 봉우리는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황해농원 갈림길을 지나 이봉산 들머리에 섰다(16:46). 사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출입구를 막고 있지만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숲길에 들어섰다.
식별이 어려운 삼각점이 있는 이봉산(105.7m)에 도착했다. 화성시 송산면 마산리와 지화리 경계에 있다. 다음 지도와 몇몇 지도에는 삼봉산이라 표기하기도 했다. 정상에는 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고 왼쪽으로 꺾어 지화리고개로 내려선다. 지화리고개는 근처에 지화리 버스정류장이 있고 2차로 송산서로가 지난다. 포구가 있던 곳이었으나 시화방조제 준공으로 내륙지역이 되었고, 인근 마을 중 가장 먼저 부락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구한말 때는 거지동으로 불렸으며 화량은 화량진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거지와 화량의 이름을 따서 지화라는 명칭이 생겼다. 도로 건너편 승학산을 오르려면 오른쪽 서전(주)회사 직전의 울타리옆으로 가야한다.
승학산(乘鶴山, 109.7m)에서 잡목을 헤치고 산 아래로 내려서다 갈림길에서 왼쪽 지화리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오른쪽의 희미한 길로 방향을 바꿨다. 잠시 후 조망이 트이면서 지화리가 보이고 그 너머로 바다 가운데에 선감도가 보인다. 비문에 성도라 적힌 기독교인 묘지를 지나 2차로 차도로 내려선다. 화랑교회 버스정류장을 지나 화랑교회와 지화 2리 버스정류장을 차례로 지나고 시멘트포장도로로 길을 바꿔 직진하여 포도밭이 있는 능선에서 오른쪽 넓은 길로 올라간다.
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와룡산 (臥龍山, 107.8m)에 도착했다(17:40).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는 구봉산과 봉화산이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선감도와 전곡항이 잡힐 듯하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과의 뱃길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화성방조제 완공 전까지만 해도 구봉산의 당성(당항성)과 와룡산의 화량진성(花梁鎭城, 남경성, 남경두토성 등) 사이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와룡산에서 잡목의 능선길로 5분 정도 내려서면 작은 돌로 쌓여 있는 화량진성에 도착한다. 무너진 토성 흔적이 나오는 화량진성 갈림길에서 선감도와 전곡항의 모습이 바라다 보인다.
이곳에서 지맥은 뚜렷한 직진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 보이질 않는 오른쪽을 치고 들어간다. 남양반도의 지형은 굽이마다 곶이다. 땅의 생김새가 입을 내밀듯 바닷가로 삐죽이 뻗어 있기 때문이다.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와 건너편 전곡리까지 300m 거리는 해안과 맞닿아 있다. 입구는 좁지만 내륙으로 들어서면 칠곡리, 중송리까지 포함해 3km가 호리병처럼 드넓다. 전곡항과 제부도를 바라보면서 전곡 1교로 내려서며 태행지맥을 마무리한다(18:00).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1002번을 타고 남양사거리에서 환승하여 수원역에는 20시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에필로그
태행지맥은 공장지대를 숱하게 통과해야 하고, 칡넝쿨과 가시잡목이 어우러진 통과하기 난감한 곳이 꽤 많은 구간이다. 트랙이 종점으로 달리면서 지맥은 산이 낮아지고 야트막한 봉우리 사이로 고개와 고개가 숱하게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기억의 한계도 있고, 정확하게 서술하기도 어렵다. 부득불 선답자의 후기를 참고하여 사진과 대조하며 지명을 확인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태행지맥이 그랬다. 분명히 빼먹은 기록도 있고 잘못된 기록도 있다. 그냥 감상문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격이 그래서인지 꼼꼼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항상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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