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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이곳 완도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해상왕 장보고의 활동무대다.
그는 신라의 호족출신으로 그에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무예에 자질이 있어 당나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어 828년 (신라흥덕왕3)에 귀국하여 왕의 허락을 받아 군사 1만을 소집하여 청해진을 (지금의 완도) 건설했다.
당시 신라는 여러곳에 군진을 설치 했지만 이곳 청해진은 독자적인 성격이 강한 곳으로 그의 직함도 대사(大使)로 신라의 정규 직함인 진두. 두상.과는 지위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청해진이 건설된 뒤 서남해안에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당.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로를 통한 무역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과 막대한 부를 축적함으로 신라의 중앙정치에도 깊숙히 관여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군사 5000을 이끌고 경주로 진격하여 민애왕을 살해하고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켰다.
뒤이어 문성왕이 즉위하고 왕은 장보고의 딸을 차비(次妃)로 들이려 했으나 진골귀족들은 그가 해도인이란 이유로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이듬해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고 중앙정부는 무력으로 그를 토벌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을 자객으로 보내 그를 살해하게 했다.
851년 신라는 청해진을 없애고 주민들을 벽골군 지금의 김제땅으로 이주 시킨 뒤 이곳 청해진은 그기능을 완전상실한채 500여년 동안 무인도로 비워두게 된다.
정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그를 끌어들였던 중앙정치가에 의해 결국 살해당한 비운의 해상상 왕 이었다.
그가 이룩했던 빛나는 전승과 해상질서는 그의 죽음과 함께 퇴색된채 그를 제거한 자들에 의해 변질되고 그의 기록들은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된 부분이 상당하다.
청해진이 설치된 곳은 완도 본도에서 170m.정도 떨어진 장도인데 옛 영화를 부분적으로 간직한 듯 성을 축적한 흔적과 목책을 설치했던 흔적들만이 남아있다.
현재 사적 제308호 장도청해유적 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행코스
불목리▶ 숙승봉▶ 업진봉▶ 백운봉▶ 상황봉▶ 쉰봉▶ 대구리
☞구간별 소요시간
08:40ː불목리 출발 (군외 초등학교 불목분교 앞에서 숙승봉 이정표 있음.)
08:50ː완도청소년 수련원 입구
08:52ː완도청소년 수련원 위 저수지 (상황봉 등산로 안내도 있음.)
08:56ː등산로 입구 (저수지 제방 끝부분, 등산로/경고문/입산통제 표지판 있음.)
09:00ː산행시작 (숙승봉 1.5k 노란 이정표 있는 지점.)
09:10ː로프지점 통과
09:30ː무명봉
09:35ː2번째 무명봉 (로프 설치 되어 있음.)
09:40ː숙승봉
10:18ː로프지점 통과
10:25ː임도 (백운봉 1.5k 노란 이정표 있음.)
10:30ː헬기장 통과
10:40ː업진봉
10:58ː갈림길 통과 (좌측: 대야리/ 직진: 백운봉)
11:00ː철계단 통과
11:04ː백운봉
12:00ː헬기장
12:05ː갈림길 (좌측: 대야리 임도)
12:14ː임도 (직진: 상황봉 1.4k/우측: 수목원 임도)
12:20ː철계단 통과
12:46ː갈림길 (좌측: 대야리 5.2k, 등산안내도 있음.)
12:47ː상황봉
13:12ː쉰봉
13:31ː갈림길 (우측: 청소년 수련원)
13:46ː3봉
13:58ː2봉
14:02ː1봉
14:22ː새동백슈퍼 (대구리 표지석,상황봉 3.5k 표지목 있음.)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고향 완도 아는데 신경을 써야지요
스텔론님 손바닦안에 있구요!! 감사합니다. 펑크내지 말고 안내부탁혀요~~
지보고 가이드해라고요 안가봤어도 눈에 선할 것 같습니다. 지가 선두를 유지해 보지요 섬이름 등 설명을 해 볼테니 저를 잘 따라와야 합니다요
위에서 두번째 사진 등산인들 보이는 쉼봉넘어 가운데 섬이 동화도 제고향입니다. 오른쪽으로 낮은 섬이 백일도, 그 뒤로 흑일도 (땅끝과 10분거리), 동화도 좌측으로 횡간도, 그 뒤로 노화도와 보길도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넙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