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빈 교수(서울사이버대학교)우리가 미국을 오갈 때 날짜변경선을 지나면서 날짜를 바꾸는 경험을 합니다만 남북한을 오갈 때는 경우에 따라 운명이 바뀝니다. 태평양상에는 날짜변경선(Date Line)이 남북으로 그어져있고 한반도상에는 운명변경선(Destiny Line)이 동서로 가로질러 있는 셈입니다.
최근 서해에서 표류 중 구조된 북한 어민의 귀환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되고 있습니다. 구조된 자중 일부가 남한으로 귀순한 것을 두고 북한은 남측이 공작을 벌였다고 비난하면서 전원송환을 요구하며 북으로 귀환하려는 자기측 주민의 인수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자유의사와 귀순공작”을 놓고 벌어지는 남북간 진실공방 속에 귀환희망자들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가족에게도 절체절명의 초초한 시간들입니다. 한반도에 그어진 운명변경선이 뚜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남북대치 현실에서 우리는 북한의 어떤 도발양상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특히 민감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어떤 어선도 위장침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사후 대공 용의점이 없으면 본인의사에 따라 귀환시키거나 귀순을 허용하는 것이 확립된 절차입니다. 이번 사건도 지난 60년간 확립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됐다고 봅니다. 다만 조사가 끝나기도 전인 사건초기 귀순희망자가 없다고 보도된 것이 북한에게 시비의 빌미를 주었고 우리 사회에도 논란거리를 제공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귀순의사가 조사종료 직전에 확인된 만큼 조사기간이 짧았다면 귀순자가 없었을 수도 있었고 기간이 더 길었다면 추가 귀순자가 나왔을 수 있습니다. 남한잔류는 북한가족과의 생이별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그 가족들을 전면에 내세워 전원송환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논란이 쉽고 간단하게 정리될 것 같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된 여러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북한 당국은 여기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우선 현재와 과거에 자기들이 억류하고 있는 남한주민들에 대한 처사부터 해명하고 남측에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요구를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첫째, 북한은 현재 남한주민 4명을 1년이 넘도록 억류하고 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작년 2월 26일 “불법 입국한 남조선 주민 4명을 단속하여 해당 기관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그들의 신원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북한은 과거 북한수역에 잘못 들어간 우리 어민 수백명을 아직 억류하고 있습니다. 1955년부터 1987년까지 나포된 3,716명의 남한 어부 중 3,269명만 돌려보내고 447명을 이런저런 구실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간첩행위를 했다고 억류하고 어떤 때는“풍랑에 휘말려 공화국 경내에 들어선 남조선 어민이 영주 의사를 피력했다”는 구실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어부를 귀환시키더라도 수개월 이상 억류하면서 공산주의 선전과 남한정세에 대한 왜곡된 내용으로 사상교육을 시키고 나서야 돌려보냈습니다.
북한은 우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해명하고 남측에 요구할 것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