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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뱀을 쳐다보라(민 21:4-9)
할렐루야! 우리의 소망되시는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라보고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아름다운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이 예배의 시간에, 풍성하게 내려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청춘 남녀가 자동차 안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차의 유리를 깨고, 두 사람을 끌어내어 인공호흡을 해서, 그들을 살려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기가 막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죽음에서 건져진 청년이 경찰서를 찾아와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구조대원들이 그들을 살리기 위해, 차 유리를 깨뜨린 것을 수리하고, 가져온 청구서였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사하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십니까? 감사하며 사십니까? 원망하며 사십니까?
올 한 해에는,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행을 할 때에는 정확한 지도가 필요하고, 때로는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그 곳의 길과 문화 그리고 언어에 익숙한 안내자(가이드)가 필요합니다. 물론, 혼자, 여기 저기, 물어 가면서, 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안내자가 없는 경우보다는, 있을 때, 우리는 훨씬 더 수월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중요한 안내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주어지는가?”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고 한다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때로는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안내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장 분명하고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이 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무엇인지, 가장 분명하고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7절을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신앙생활의 표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상식이 신앙생활의 기준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생활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여러분!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원하십니까?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건강하고, 은혜로우며, 활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건강하게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믿음의 정도를 걷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이 때, 정신 차리고, 근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 안에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 안에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을 읽으십시오.
“오직 성경” “성경으로 돌아가자”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 안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모든 해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할 때,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크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눕니다. 구약 성경은 39권, 신약성경은 27권, 합하여 66권입니다. 성경 66권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올 한 해 동안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매주 한 권ㅆ씩 차례대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할 책은 민수기입니다. 민수기는 모세 오경입니다.
모세 오경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을 말합니다.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이라 하여, 모세 오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모세 오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세 오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뼈대를 잡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민수기 21:4-9절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 “놋뱀을 쳐다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를 설교할 때에, 창세기 35장을 가지고 “야곱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출애굽기 때는, 19장을 본문으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레위기서는 25장을 본문으로, “희년, 가장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민수기 21장을 본문으로, “놋뱀을 쳐다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붙들고 살아갔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약속을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약속을 받은 인간은, 그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약속을 하시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약속을 받을만한 자격이나 조건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사랑하셨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셔서, 무한한 복을 인간에게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주셨고, 이삭에게는 샘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오게 하셨고,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칠 때에도,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돌아올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품 안에서 사랑을 받을 때에나, 보디발의 집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에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나, 애굽의 국무총리로 있을 때에나, 하나님은 늘 그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한결같은 사랑으로, 400년의 세월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셨고,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40년의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목이 마를 때에는,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훗날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해주시고, 그들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로 데리고 나온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약속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던 것처럼,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다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귀한 축복의 약속을 다시 한 번, 그들에게 확인해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사랑의 계약을 다시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금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식일, 안식년, 희년”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희년의 참된 의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과 안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아도, 농사짓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1-33절을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축복의 말씀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어디 가서, 그 무한한 은혜와 사랑, 축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경 안에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다른 데서 찾지 마십시오. 성경 안에서 해답을 찾으십시오.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 이제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물러나기 전, 1월 16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8년간의 백악관 생활에서 생존한 비밀은 독서”라고 말하면서, “일이 급하게 돌아가고, 숱한 정보가 난무할 때, 그 속도를 늦추고, 다른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는 능력을 준 것은 바로 독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잠들기 전, 한 시간 동안 반드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1시간 동안 책을 읽지 않고는 잠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지혜와 정치적 역량은 독서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중, 스캔들도 없고, 레임덕도 전혀 없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반 독서를 통해서도, 삶의 지혜를 얻고, 능력을 얻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는, 얼마나 많은 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민수기는 백성들의 숫자를 세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그들이 들어가서 살 땅은 가나안입니다. 광야가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광야에 있지만, 영원히 살 땅은 아닙니다. 광야는 그들이 잠시 잠깐 머물고 있는 땅입니다. 그들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전진하기에 앞서, 그들은 먼저 그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세어보았습니다. 민수기를 시작할 때에도, 인구조사를 하였고, 민수기를 마칠 때에도, 또 인구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민수기입니다.
민수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베푸심,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속되는 원망과 불평, 배은망덕한 사랑의 배반이 서로 교차를 이루면서 되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는데, 인간은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거절하고 배반합니다.
민수기에슨 인궂 조사를 하고 있는 앞과 뒷부분을 빼고나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으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11장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행진 후미에 큰 불이 떨어졌습니다.
12장은 미리암이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다가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13-14장에는 열 명의 정탐꾼의 원망이 나옵니다.
16장에서는 고라 일당의 원망과 반역 이야기가 나옵니다.
20장에는 마실 물이 모자란다고 불평합니다.
민수기 2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민수기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의 원망과 배신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한결 같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 그리고 사랑의 배반과 같은 불신앙적인 행동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여러 가지 질병과 죽음, 그리고 전쟁에서의 패배 등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원망하면 안됩니다. 원망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첫째, 원망하면 안됩니다.
민수기 21:4-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아멘.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아가는 길에, 그들의 길을 막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과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회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고자,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회길로 인도하시는데, 그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라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들을 도와주시고, 함께 하여 하시고, 적들과의 싸움에서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가는 길이 멀고 힘들다고, 길이 평탄하지 않다고,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쏟아지도록 하셨는데,“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쓴물을 단물이 되게 하셨고,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칠십 주가 있는 엘림을 주셨고, 날마다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20:5절을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향해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원망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리고 40년간 매일 먹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원망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을 죽게 한다고 원망하던 그들은, 그들이 말한 그대로 죽게 되었습니다. 원망의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그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어느 병원에 한 임산부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었기 때문에 복도에도, 병실에도 예수님의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그 임산부는 액자를 보고 이유 없이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 간호사를 불러서 그 액자를 좀 떼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간호사는 “저는 그 액자를 떼어 낼 권한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자는 화가 나서 자기 남편이 누군 줄 아느냐며 원장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원장 역시 그 액자를 떼어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그 액자를 떼 낼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내가 직접 떼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임산부는 무거운 몸으로 의자에 올라가서 그 액자를 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는 절대로 저 사진을 보지 못하게 할겁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어, 그 여자는 출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말했던 대로, 그 여자의 아이는, 영원히,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한 대로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원망과 불평의 말보다는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망의 말은 재앙과 저주를 가져오지만, 감사의 말은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앙의 말을 버리고, 믿음의 말을 합시다. 저주의 말을 버리고, 축복의 말을 합시다.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긍정적인 말을 합시다. 절망의 말을 버리고, 소망의 말을 합시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합시다. 원망의 말을 하고 시을 때, 기도하십시오.
미국의 흑인들의 애환을 그린 유명한 작품이 있습니다. “뿌리”입니다. 그 작가의 이름은 알렉스 헤일리입니다. 그는, 사무실에, 거북이 한 마리가 높은 담장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그림을 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저런 이상한 그림을 사무실에 걸어 놓았습니까?”
그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쓴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잘 쓸 수가 있는가? 도대체 나는 어디서 이런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하며 마음 속으로, 스스로 기뻐하고, 스스로 자화자찬하고, 스스로 교만심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 담장 꼭대기에 올라간 거북이 그림을 보곤 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저 거북이가 제 힘으로 저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도움으로 꼭대기에 올라갔을 것이다. 저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이렇게 올라간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그 그림을 걸어놓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셨기에,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에 있는 것, 모두 다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호흡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과 불평 대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잠언 19:3절을 보면,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놋뱀을 쳐다보면 삽니다.
민수기 21:7-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아멘.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은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모세를 찾아와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가지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놋뱀을 쳐다보라. 불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모세의 말을 듣고,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놋뱀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왜 놋뱀을 쳐다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고 하셨기에, 살기 위해서는, 놋뱀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우리들이 살 길입니다.
“왜 놋뱀을 쳐다보면 삽니까?”
“왜 놋뱀을 쳐다보면, 사는지, 안 보면, 왜 죽는지, 다른 것을 쳐다보면 안되는지, 놋뱀보다 더 좋은 다른 것을 쳐다보는데, 왜 안 사는지, 왜 죽는지”, 그 이유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고 했기에, 놋뱀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것을 쳐다보라고 했으면, 다른 것을 쳐다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 보면 산다”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세상의 지식과 상식, 그리고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명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믿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고 하는 것을 보아야 삽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고,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는 이삭에게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복 주신다”고 하셔서, 이삭은 애굽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백 배의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훗날,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고, 야곱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시면, 내려가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시면, 내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합시다. 내 생각을 포기합시다. 내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내 계획을 앞세우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원망하고, 불평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입으로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원망 불평하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감사하며 사시겠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잘 되는 것은 없습니다. 원망하면, 스스로 불행해질 뿐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올 때, 잠시 잠간 멈추고, 감사의 말을 합시다. 기도합시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요한복음 3:14-1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여러분!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놋뱀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 놋뱀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 놋뱀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달리셔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했던 사람들,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 누구든지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다 살 수 있었습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쳐다 본 사람들은, 누구나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불순종 가운데 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 죄악과 허물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 죽음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 누구든지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다 삽니다. 새생명을 얻게 됩니다. 죄 사함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삽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바라보면 삽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오직 예수”,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부활이요 생명되시는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150장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애창하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을 작사하고 작곡한 분은 조지 버나드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이 십자가를 묵상하는데, 처음에는 험한 십자가만 생각났습니다. 계속해서 십자가를 묵상하는데, 어느 날,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의미가 바르게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표현을 빌면 “홍수처럼” 십자가의 은혜가 쏟아졌습니다.
즉시 펜을 들어 쓴 것이 이 찬송입니다. 3절 가사입니다.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여러분!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살아 계셔서, 약속하신 대로 말씀을 성취하시며, 우리가 믿은 대로 축복하시고, 감사한 대로, 우리에게 더 감사할 것들이 많아지게 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만 바라보며 살고자 새롭게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갑절로 축복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늘 주님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원망과 불평하지 않도록, 우리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고,
늘 감사와 기도 가운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끝까지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가족들이 주님 앞에 나와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도 주옵소서.
설 명절을 맞이하여,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