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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인의 세계 분포 실태
1995년 현재 세계 전체 유대인의 수는 약 1,500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해외의 유대인들이 자신이 유대인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않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정확한 인구통계는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통계는 유대인 커뮤니티가 작성한 인구 통계 자료를 토대로 그들의 세계분포 실태를 분류하였다.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이스라엘 거주 유대인 460만명(95기준)보다도 120만명이나 더 많다. 미국과이스라엘은 유대인 생활의 양거점 역할울 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유대인 독립국가로서 주권을 행사하명 전통을 보존해나가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해외에 서 이스라엘과 전세계 유대인을 지원하고있다. 반세기 이전에 약 1,000만명이 살고 있던 구소련권과 유럽 대륙에는 전세계 유대인의 17%만이 거주할 뿐이다. 그나마 1980연대 말부터 구소련권 유대인들이 계속 이스라엘로 귀환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2차대전 직전에
45만명이 살고 있던 이스라엘의 유대인 인구는 반세기만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 유대인들이 지속적인 귀환에 크게 힘입어 이스라엘의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유대인 150명의 통계는 서울에 파견나온 이스라엘인들과 그가족 그리고 주한미군 소속의
유대인과 비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 체류자들이다. 이들 유대인은 디아스포라의 중심인 미국과 조상의 땅인 이스라엘을 축으로 세계무대의 각분야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위력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어떠한 분야에서든지 국제무대의 정상에 이르려면 유대인과의 직간접적인 접촉이 불가피하다는 말까지 있다.
이는 그들이 국제금융, 언론, 정보, 정치, 학계, 부동산,등의 다방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유대인으로서 인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사들을 보더라도 그들의 영향력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즉, 아인쉬타인,프로이드, 칼 막스, 스피노자, 유럽의 재벌 로스차일드, 미국의 재벌 록펠러, 트로츠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와 사무엘슨, 헨리 키신저, 영화감독 스필버그,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코미디언 채플린 등이
바로 유대인이다.
2. 死後 세계에 대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면, 죽어서도 하나님처럼 영원성을 가지게 될까?
랍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이 세상의 육체가 생을 마치자마자 그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어사후 세계의 영적인 왕국으로 들어간다.
둘째, 죽은 자는 메시아 출현과 함께 소생한다.
반면, 개혁파 유대인들은 죽은 자의 소생은 믿지 않지만, 영혼의 하나님왕국 진입은 믿는다. 이것조차도 일부만이
강하게 믿을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은 불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3.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종교적인 관계
팔레스타인은 유대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예루살렘의 성전은 그들의 심장과도 같다.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관계는 일년 세 차례의 성전순례와 성전에 바치는 제물을 가져오는 것에서 알
수있다. 제1 성전시대와 제2 성전시대 초기만 해도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성전순례와 반 세켈의 성전세에 대한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초의 증거는 로마시대 초기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성전이 파괴되기 전 그리고 파괴된 후
얼마동안도 이집트에는 오니아스가 세운 성전이 있었으나 오니아스의 성전은 주변의 지역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고 이집트 전체 유대인을 위한 종교 중심지의 역할조차 하지 못하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회당이 있었지만 모든 희생 제사는 예루살렘에서만 드릴 수 있었다. 아켈라오 통치시에 이스라엘 밖에서 많은 유대인이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였다고 요세푸스는 말하고 있다(고대사 17.214). 이러한 종교 절기에
많은 유대인이 모이면 자연히 헤롯 가문이나 로마 통치자에 대한 반감 때문에 소요가 일어나곤 했다.
요세푸스는 많은 바벨론 유대인의 순례와 헌물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대사 18. 311-313). 바벨론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은 네아르다와 니시비스라고 하는 두 도시에서 헌물을 모은 다음 정해진 때에 예루살렘으로 가져온다. 노상 강도의 위험에서 이 헌물을 안전하게 예루살렘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력이 동원되었다.
안전하게 헌물을 예루살렘까지 운반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다. 헤롯 대왕은 골란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강도들
때문에 이 지역에 지키기 위해 그곳에 유대인 거주지를 만들었다(고대사 17.26-27). 바벨론의 유대인들은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을 뿐만 아니라 헤롯 대왕의 요청에 따라 이 지역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집과 생업을 지켜야 했는데 헤롯 대왕이 그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했기에 바벨론의 유대인은 안전하게 예루살렘으로 올 수가 있었다.
요세푸스는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유대인 공동체가 헌물을 예루살렘으로 가져 왔다고 증거하고 있다. 코스(Cos)에는 유대인 소유의 800 달란트가 있었으나,미트리다테스(Mithridathes)는 코스(Cos)로 사람을 보내어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모아 놓은 돈과 유대인 소유의 800 달란트를 빼앗았다. 이 돈은 미트리다테스를 두려워하여 아시아의 유대인이 코스로 옮긴 돈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강한 요새와 성전이 있는 유대의 유대인이 돈을 코스로 보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은 미트리다테스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보냈을 리도 없다(고대사 14.112-3). 이상은 요세푸스가 스트라보(Strabo)를 인용한 말로 소아시아에는 유대인이 성전에 보내기 위해 모은 거룩한 돈이 있었다. 주전 62 년 소아시아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는 돈을
탈취했다는 혐의로 로마의 총독 플라쿠스(Lucius Valerius Flaccus)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플라쿠스의 변호를
맡은 키케로(Cicero)의 '플라쿠스를 위하여'라는 그의 연설은 상당한 액수의 돈이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보내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아시아와 키레네에 있던 헬라인은 그 지역의 돈이 예루살렘에 유출되는 것을 반대했다(고대사 16.160). 그러나
유대인은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 황제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유대인의
편을 들어주어 예루살렘으로 돈이 운반되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라는 칙령을 내렸다(고대사 16.163).
말쿠스 아그립바는 에베소시의 행정관에게 편지를 보내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돈을 보낼수 있도록 안전하게 지켜 줄 것과 누구든지 이 돈을 훔친 후에 신전으로 도망하는 자는 잡아서 유대인에게 넘겨 줄 것을 분명하게 알렸다(고대사 16. 167-168).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팔레스타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헌물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로마의 중재가 필요했다(고대사 16.169-170). 이스라엘밖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싼 값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 주변의 이웃들과 냉담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수리아의 경건한 유대인은 이방인의 기름을 사용하기보다는 유대에서 생산되는 순결한 기름을 사용하고 싶어했다(전쟁사 2.591-2). 율법을 지키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열심은 이스라엘과 기름, 포도주 등의 무역 거래를 발전시켰다.
또 다른 관계성은 디아스포라 제사장을 통해 유지되었다. 제사장들은 그들의 가계(家系)가 정통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사장 부인의 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예루살렘에 알렸다(반박문 1.33). 이것은 제사장 가문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한 증거이다. 그러나 헤롯 대왕은 적격 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디아스포라의 보잘것없는 제사장 가문에서 대제사장을 임명하였다(고대사 15.22).
결혼을 통한 관계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개인적인 관계는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결혼은 상류층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 순례는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이 만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기회를 제공해 준다. 결혼을 목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도 한다. 톨레미 시대에 세금 징수원 요셉 벤 토비야의 이야기가 이에 해당한다. 요셉 벤 토비아의 형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귀족 청년과 자신의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요셉과 함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고대사 12.187-189). 연회석에서 미모의 무희에게 반한 요셉은 형에게 그녀를 취할 수 있는 길을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하고, 요셉의 형은 이방 여인 대신 자신의 딸을 들여보냄으로 결국 그 딸은 알렉산드리아 청년이 아닌 요셉과 결혼을 하게 된다.
헤롯가문과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의 결혼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헤롯 대왕 자신이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제사장 비투스의 딸 미리암과 결혼을 한다(고대사 15.320-322). 이 결혼 후에 헤롯은 비투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는데 인척 관계 때문에 그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다는 구실을 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제사장을 견제하기 위한 헤롯의 계략이었다. 헤롯 대왕은 또한 카프리스의 귀족 출신 유대인과도 관계를 발전시켰다. 헤롯의 형제인 파사엘의 딸 알렉산드라는 카프리스 유대인인 티마이우스에게 시집을 갔다(고대사 18.131). 헤롯 가문의 후손들은 좋은
가문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결혼을 했다. 아그립바 왕의 두 딸 베르니키(버니게)와 미리암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존경받는 유대인과 결혼을 했다(고대사 19.276). 베르니키는 알렉산드라의 유대인 행정관인 알렉산더의 아들인 말쿠스에게, 미리암은 가문으로 보다 재산으로 보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중에서 으뜸가는 데메트리우스(고대사 20.147)와 결혼을 했다. 요세푸스 자신도 디아스포라 출신의 두 여인과 결혼했는데, 한 여인은 알레산드리아 출신이며 다른 여인은 크레테출신이었다(자서전 75-76). 결혼을 통한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지속적인 것이다. 랍비 문헌을 통해 볼 때에 이러한 현상은 아주 널리 퍼져 있었다.
4.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적대감정의 기원?
현재 이스라엘 땅은 오래 전에는 가나안으로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대략 기원전 1750년경 아브라함이 현재의 쿠웨이트 북쪽 너머의 이라크지역(당시 지명: 우르)으로부터 식솔을 이끌고 하나님의 안내로 가나안으로 이동해왔다고 하죠. 이것이 유대인들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당시는 아랍인이나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사람들은 등장하지않습니다.
그후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막내아들 요셉이 이집트에서 재상으로 있을 때 다른 아들들을 데리고 들어갑니다.
여기서 약 400년간 노예생활을 했다고들 하지요. 모세가 나타나서 이들을 데리고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로 향하지만 도중에 사망하고 그 후계자 젊은이 여호수아가 민족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들어갑니다. 이들은 한동안의 세월을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가 기원전 1000년경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왕국을 세우고 그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여 국가를 더욱 발전시키죠. 그렇지만 그후 이스라엘왕국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되었다가 한동안 재건했으나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부숴지고 유대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6세기말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의 출현과 함께 이슬람세력이 이스라엘땅을 점령하지요. 그때 솔로몬왕이 처음으로 세웠던 웅대한 신전 자리에 신흥세력인 이슬람교도들이 차지하면서 모하메드가 죽을 때 그곳
신전 자리에서 승천했다고 하지요. 그것을 기리기 위해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사원을 지었습니다. 이는 이슬람 3대 명소가 되었습니다. 사우디의 메카, 메디나와 함께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재건되었습니다. 당시만해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이 그 땅에 다수로 살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재건과 함께 시작된 아랍과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스라엘 내부에 살고 있던 아랍인(팔레스타인인) 중 다수가 전쟁 중에 피난을 갔다가 되돌아오지못하는 신세가 되었지요. 그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요단강 서안 정착민 또는 가지지구 난민들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잠시 며칠만 피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가 30년, 40년을 밖에서 보내다가 죽어가고 있지요.
이번에 사건 발단은 대아랍 강경파인 샤론이 지난해 9월말 이슬람교도들의 성전인 예루살렘사원에 허락없이 불쑥 들이닥침으로서 신성모독 또는 종교모독 차원에서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인들의 감정이 폭발하여 충돌이
발생했고, 이에대한 이스라엘 경찰의 진압이 희생을 낳자 팔레스타인인들의 감정은 더욱 격해져 폭력과 대응의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매일같이 발생하는 살해와 보복으로 불안해진 이스라엘인들은 총리선거에서 자신들의 신변안전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강성 샤론을 총리로 선출한 것입니다.
5. 유대교
유대교를 뜻하는 유다이즘(Judaism)의 정의는 유대인 교육의 본체인 토라 즉, 모세5경의 교리와 가르침을 뜻한다. 근대 들어 유다이즘은 토라의 가르침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어지지 만, 대체로 유다이즘은 인간적인 뉘앙스가
강하고, 토라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토라는 영원불변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유다이즘은 시대와 환경에 영향받는 역사적 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유다이즘은 '그리스 유다이즘', '랍비 유다이즘', '중세 유다이즘', '정통 유다이즘', '보수적 유다이즘', 그리고 '개혁 유다이즘' 과 같이 시대적 환경에 따라 달리 구분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정통 유다이즘, 보수적 유다이즘 그리고 개혁 유다이즘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정통유대인들은 요즘도
종교생활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집단촌을 이루고 검정복장과 긴수염을 기르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율법 준수에 충실하다. 이들은 토라의 모든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모세에게 직접 전해진 것으로 믿으며 그들의 지도자인 랍비를 철저하게 따른다.
반면 개혁파 유대인들은 유다이즘을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으로 인식하고 종교생활도 시대적 환경변화에 적절하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개혁 유다이즘은 현대화된 유다이즘으로 보면 된다. 즉, 금요일 일몰에 서부터 토요일 일몰 시점까지 24시간 동안의 안식일에 율법에
따라 엄격한 안식을 취하는 정통파 유대인들과는 달리, 개혁파 유대인들은 시나고그에 갈 때 필요시 자동차로 이동할 정도이다. 미국 유대인들의 대부분이 개혁파 유대인들이다.
유대인사회에는 종교생활에 있어서 툭하면 정통파 유대인과 개혁파 유대인간의 충돌이 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엄격한 율법의 준수를 고집하고, 개혁파 유대인들은 그것을 수용하지않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후반에 있었던 유대인 자격 논쟁이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면 그 자녀는 별도의 유대교
개종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개혁파 유대인들은 부모 중 한 사람이 유대인이면 그 자녀도 유대인으로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으로 인정받지못한 아이나 이교도가 유대교로의 개종 절차에 있어서도 한쪽은 철저한 교육과 실천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쪽은 대충해준다는 것이었다.
정통 유다이즘과 개혁 유다이즘 중간에 보수적 유다이즘이 존재한다.
이같은 유다이즘의 근원은 유대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데서 시작된다. 유대인들은 선조들이 하나님 말씀의 복종과 이행을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과 자손들도 그러한 권리와 의무를
떠안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히브리어와 율법을 가르치는 데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시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선민사상은 수 천년 동안의 방랑기간 중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유대민족과 유대종교를 지켜 준 근원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탈무드가 있어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여 유대교를 계속 지탱해 주었다
5.1 탈무드란?
성경이 유대교의 주춧돌이라면 탈무드는 유대교의 중심기둥이다. 모세가기록없이 말로 남겨 준 구전법(口傳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오면서유대현자들의 지혜가 수천년 동안 축적된 유대민족의 보물창고 탈무드. 유대인들은 오랜 방랑 세월 속에서 민족이 사라지지않고 지속적인 생존발전이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 탈무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탈무드는 구약성경 속에서 율법을 뽑아내어 정리한 미쉬나와 미쉬나를 보다 상세하게 해석한 그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미쉬나는 200년경 갈릴리지역에서 랍비 유다 하나시에 의해 다음과같은 여섯가지 질서를 63개의 논제로편집이 완료된다.
- 농업과 관련된 종자
- 유대축제 및 샤밧과 관련된 계절
- 가정생활과 관련된 여자
- 법과 관련된 손실
- 종교의식 관련 신성함
- 정결법
미쉬나는 3세기부터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학자들에 의해 그단어와 문구에 대한 세부 해석 작업이 개시된다. 400년경 그 작업이 종료되러 그마라가 나온다. 이를 예루살렘 탈무드라고 부른다. 미쉬나에 대한 연구와
해석 작업은 당시 디아스포라의 중심지 바빌론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500년경 예루살렘 탈무드보다 훨씬 더 방대한 바빌론 탈무드가 편집된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하면 아람어로 기록된 바빌론 탈무드를 의미한다.
탈무드원본은 후대에 넘어오면서 훌륭한 랍비들에 의해 해설이 추가된다.대표적인 인물이 11세기 유럽의 랍비
라쉬다. 바빌론이 쇠퇴하여 이미 디아스포라의 중심지가 유럽으로 이동된 시점에 등장하는 탈무드 대가다. 탈무드에 대한 라쉬의 해설은 원전에 해설서로 삽입된다.
탈무드 한 페이지의 구성은 중앙위치에 해당 주제의 미쉬나와 탈무드가자리잡고, 그 좌우 아래위로 라쉬를 비롯한 시대별로 훌륭한 랍비들의 해설이 제각기 별도로 삽입되어 있다. 복사용지(A4) 크기의 종이에는 페이지마다빈틈없이 깨알같은 글씨가 빽빽하게 신문의 토막기사 모음집처럼 인쇄되어있다. 탈무드의 이러한 글자는 모두
합쳐 250만자에 달한다. 합비나 초정통파 유대인 집을 방문하면 서가에 비치되어 있는 탈무드 전질이 눈에 들어온다. 7권의 대백과사전같은 탈무드를 하루 한 페이지씩 공부하면, 7년 이후에야 전질을 다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탈무드는 어떤 내용일까? 토라의 문구를 확대 해석하여 일상생활의 규율로 삼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참고할 수 있는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안식일에 일을 하지마라.
이는 모세의 십계명 중 하나로써 구약성경에 나온다. 그런데 일에 대한 구체적 정의가 없다. 성경에 안식일 금지된 노동으로 밭을 갈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 불을 켜는 일, 요리하고 빵 굽는 일을 기록해 놓고 있다. 하지만 안식에 대한 정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엄격한 생활의 규제로 변해간다. 현실적으로 안식을 하기 위해 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한적한 교외로 소풍가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멀리 떨어진 가족이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이두
경우 모두 유대 안식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에는 아예 대중교통의 운행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초정통파 유대인들은 샤밧 때 마을 외곽에 표시되어 있는 경계선 바깥으
로 나가지않을 정도다. 그들은 안식 시간에 펜으로 무엇을 기록하는 일, 전화를 걸고 받는 일, 엘리베이터를 가동하는 일을 모두 금지한다. 이는 안식일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 초대되어 갈 때, 이방인들이조심해야 할 기초 에티켓 중의 하나다.
둘째, 염소새끼를 그 어미 젖으로 삶지마라.이는 출애급기의 한 구절이다. 탈무드에서는 이를 근거로 식생활에서
고기와 우유제품이 뒤섞이지않고 분리시키도록 하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정통파 유대인들은 현재도 고기를
요리하고 보관하는 주방용품과 우유를 담는그릇을 따로 둔다.
이는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식당들은유대인의 엄격한 음식율법을 준수할 경우, 랍비청의 허가서를 얻어서 입구에히브리어로 「꼬셔르」라는 글씨를 부쳐놓는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시내에서식사하러 갈 때 바로 이 꼬셔르 식당만 찾아 가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꼬셔르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밀크 커피를 마실 경우, 그는 당장식당에서 쫓겨날 수 있다.
탈무드 내용은 토라에서만 인용된 것이 아니다. 유대인 현자들이 머리를짜낸 해학적 지혜도 많다. 『재산 상속의
시점은 아들이 바보가 될 때』라는교훈을 유대인들은 그 대표적인 예로 삼는다.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우리나라의 서당과같은 유대인 공부방에서 탈무드를 읽고 있던 몇명의 학생이 구절 하나에 걸려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것은 아들이바보가 되었을 때 재산을 물려 줄 시점이라는 문장이었다. 아무리 서로 머리를
맞대어도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선생님이 계신 집으로 찾아갔다.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랍비는 바닥에 기어다니고 그의 등위에는 어린 아들이 올라타고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어린 아들과 한창 즐겁게 보내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한쪽에서기다렸다. 잠시 후 랍비는 제자들의 방문 용건을 듣고서 대뜸 내뱉은 말이다.
『너희들이 방금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느냐? 그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자식을 가진 시점에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말뜻이야.』
탈무드의 내용은 대개 추상적이고, 독특한 논리로 전개된다. 한번 대충 읽고는 이해가 잘 안된다. 골똘히 생각해야 한다. 또 탈무드 교육방식 자체가주어진 명제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그 해답을 찾게 한다. 그래서어떤 때는 서너줄을 놓고 하루 종일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10년 이상 연구한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은 탈무드의 내용이 너무나도심오해서 치밀한 논리와 많은 사고가 필요한데,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혜가 번쩍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말을 했다. 유대인들도 탈무드가 그들의 지적
대인들의 두뇌가 선천적으로 특출하여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유대인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탈무드에 그 공을돌렸다.
탈무드는 500년경 바빌론에서 편집이 종료된 이후 인쇄기술이 개발되지않았기 때문에 사본 제작이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육필로 그 방대한 내용을베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비용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 탈무드 한 셋트를구비한다는 것은 대단한 자부심을 안겨다 주었다. 희소성의 가치를 가진 탈무드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용으로 사본을 제작하려 해도소지자들은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보급된 탈무드는 중세 유럽 각국에서 유대인이 추방당할 때 압수 당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많은 책자가 불
사라지는 시련을 겪는다. 그러던 중유대인들은 1470년경 처음으로 탈무드 인쇄에 성공한다.
5.2. 유대인들의 토라 읽기 운동
예루살렘 신전이 파괴되기 이전까지 종교생활은 신전에서 양이나 염소와 같은 동물을 죽여 그것을 번제한 상태로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 제사를 사제들이 집행했다.
유다왕국이 멸망할 무렵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은 기존의 종교생활에 대하나 관념을 크게 바꾸는 새로운 사상을 퍼뜨린다. 그것은 제사를모시는 의식 그 자체가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단순한제사보다는 인간애와 정의 그리고 도덕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동물을 잡아서 번제하여 제사 모시지 않았다고 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타락과 정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진짜 죄로 여긴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유대인 종교생활 성격을 사제들에 의한 신전 제사를 랍비들의 유다이즘 교육으로 대체시킨다. 이는 중세 기독교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에 비유되기도 한다.
선지자들의 새로운 사상에 영향을 받은 바빌론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생활을 개조한다. 그들은 신전 대신 종교행사를 위한 집회소인 시나고그를 세우고, 동물을 아 바치던 제사 대신에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이로써이국땅에서도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시나고그는 후에 나타나는 기독교 교와 이슬람 사원의 전신이
되고, 기도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보편적인 상징이 된다.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수는 페르시아의 고레스왕 칙령으로 50년만에 끝난다. 유다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대인은
되돌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맨먼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신전재건에 착수하고 새로운 생활의터전 마련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신전 재건에 온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어쨋든 바빌론으로부터 귀환한지 21년만에 신전공사가 끝났다. 그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솔로몬이 세웠던 신전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몇몇 생존 노인들은 옛날 솔로몬 신전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유대인 사회는 신전을 재건해놓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철저하게종교생활를 하지 않는다. 신전제사는 제사장 부족인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사람들에 의해 집행되고, 일반인들은 사제들을 존경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지원하지도 않았다. 유대인들은 인근의 이방인들과 혼인하여 민족 혈통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될 위기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부인들이 가지고 들어 온 그들의 가족신에 대한 경배와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러한 혼혈의자식들은 히브리어를 말할 줄도 몰랐다.
기원전 5세기 중반경 바빌론 유대인 사회에서 유다이즘을 가르치던 에즈라는 1600명의 추종자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 유대인들의 그러한실상을 보고 크게 놀란다. 그는 페르시아왕국의 예루살렘총독으로 파견되는느헤미아와 힘을 합쳐 유대인 사회의 내부 개혁에 앞장선다.
그 개혁의 핵심은 이방인과의 혼인금지, 모세 5경인 토로의 편집 완성, 모세율법 준수였다. 모세율법 준수를 위해서는 우선 안식일을 지켜야 했다.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성문을 닫고 상인들은 모든 영업을 중단하게
된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매주 안식일과 일요일 그리고 목요일에 토라를읽어야만 했다. 느헤미야의 유대인 사회개혁과 에즈라의 영적인 개혁으로 사라져가던 유대인 정체성과 종교가 생명력을 되찾고 대중이 토라를 읽으면서민족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에즈라는 토라 복원자 또는 제 2의 모세로 불러진다.
6.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
유대교는 유일신 종교의 시발점이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와 그 수제자들이 유대인이고, 그들이
모두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고, 유대인선생님으로부터 교육받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에 유대사상이 적지않게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 내용을 예수로부터 시작해 본다. 먼저 예수의히브리어 원명을 영어 발음으로 표기하면 「Yeshua」였는데, 마지막 「a」가 묵음되어 「예수(Yeshu)」로 불러졌다. 이는 그후 그리스어에서 「Jesous」로 표기되었고, 영어에서는 「Jesus」로 변한다.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의 유대인 가정에서 유대식 교육을 받아 사람들로부터 랍비로 불릴만큼 구약성경과 탈무드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당시 바리새인들을 대표하던 랍비 힐렐의 가르침을배운 것으로 본다. 힐렐은 유대교를 보존하기 위해 예루살렘성을 탈출하는랍비 벤자카이의 스승이었고, 유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랍비로 오늘까지 유대인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유대율법의 모체인 모세 5경,즉 토라가 무엇인지 한두마디로 짤막하게 대답해 달라는 한 이방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유명하다.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너의 이웃에게 하지 마라. 이것이 토라의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부연 설명이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반영된다. 유대인들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오래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강조점이 색다른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예수는 나이 30세에 집을 떠나 세례 요한을 만난다. 요단강에서 그로부터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침례의식을 받고,
얼마 동안 그의 무리와 같이 지낸다. 세례 요한의 무리와 함께 보내는 동안 예수가 에세네파의 교의에 영향받았을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하늘왕국이 임박함을 본 예수는 세례 요한을 떠난다. 그는 새로운종교 커뮤니티를 수립하여 하늘왕국이
실현되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미래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대변하게 될 12사도를 임명한다. 그후유월절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에 신전 붕괴 예방을 위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장소를 옮긴 예수는 신전을 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던 상인들을 호통치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독촉한다. 그 과정에 신전 지도부인 사두개파와 충돌하게 되어 결국은 당시 유다총독인 빌라도의 명에 따라 십자가에 못박힌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는 신약성경에서 예수의유대인적 요소를 발견한다. 이는 누가복음서의 이야기다. 한 로마장군이 유대인 장로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그가 총애하는 종의 병을 낫게 해달라는 간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유대인 장로들은 예수에게 가서 청을 부탁한 그 로마장군에 대해 소개할 때, 그가 유대인을
위해 시나고그를 지어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성주의를 반대하고 행동실천을 강조하는 것을 기독교와 유대교의 공통점이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통치 기간
중 유대교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에 죽음을 각오하고 맞서 싸운 독실한 신앙계층 하시딤은 종교생활에서 지성주의를 거부했다. 그들은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예수 또한
항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수칙에 따라 행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종종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 뜻에 따라 행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하나님에 대한「아버지」라는 호칭은 예수 생전 당시 하시딤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보고,그를 하시딤 중의 한 명으로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들하시딤은 기도를 통하여 비를 내리게 하고 병자를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는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에서
신비적인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하시딤의 틀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독교에서 가난을 종교적 가치로 표현한 점 또한 하시딤의 극좌파 에세네파의 종교 강령과 흡사하다. 집단 은둔
생활을 하고 있던 에세네파는 하늘왕국에 대한 사상을 가지고 가난과 정의를 중요하게 여겼다. 에세네파의 구원을 위한 희망과 메시아 출현에 대한 사고가 초기 기독교 사상에 스며든것으로 믿어진다.
거꾸로 신약성경이 유대인 생활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다. 그것은 유대인이 할례 때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는
관습이다. 이는 세례 요한이 생후 8일째 되던 날 유대율법에 따라 하나님과 유대민족의 결속 관계를 나타내는할례 이후,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은 데서 그 기원을 찾는다. 탈무드를포함한 유대인들의 기록에는 어디에도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시점은 언급되어 있지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7. 개혁파 유대인들의 선민사상
유대인의 선민사상은 하나님으로부터 토라(구약의 모세 5경)를 받도록선택된 것으로 이해되어진다.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것을 받도록 선택되어질수 있다. 가령,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선택한 여성이다. 내가 나의 아내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다. 내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여성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에게 토라를 주었다. 하나님은 아랍민족에게 코란을주었을 수도 있다.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선교의 종교가 아니다. 이방인의 개종을 받아들이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킬 필요성은 못느낀다. 하나님은 유대인 이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 수도 있다. 탈무드에도 의로운 이방인이 부정한 유대인 승려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8. 프리메이슨의 정체
프리메이슨(Freemason)은 초창기에는 자유석공(自由石工)이라는 의미로 팔세기부터 중세 11~14세기까지의 성과 신전을 건설하던 건축가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당시의 건축가들은 내부장식에도 조예가 깊었고 지위도 높은
처지였으나 영주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기술전승을 위해 길드라는 조합을 결성했었다. 이 [길드]가 프리메이슨 발생의 시초가 되었으며 정식명칭은 [고대 자유석공조합]이었다. 그들만의 계급성과 기술보존을 위해 철저히 비밀을 지켰는데 비밀보장을 위해 그들의 회의실을 외부인에게 절대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의실에는 기술전승에 필요한 콤파스와 직각자, 나무망치와 가위, 자와 지렛대, 지거선과 기포수준기, 흙손 등 아홉 가지의 연장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프리메이슨은 몇몇 가톨릭 단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서 그들은 실제의 석공기사가 아닌, 이론석공가 자격으로 입단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의 프리메이슨은 종교와 무관한 단체였으나 로마 카톨릭 내의 사탄숭배 비밀조직과 결합하여 마침내는 사탄에 의해 조종되는 사탄교의 전조로 변모해갔던 것이다. (올린이 주: 이는 기독교 근본주의측의 이분법적 해석이다. 말미에 해설을 붙인다.)
1717년 영국에서 근대적인 프리메이슨이 탄생하면서 고대의 프리메이슨처럼 순수한 석공들의 조합이 아니었다.
영국 전역에 퍼져있던 프리메이슨은 대표적인 네 개의 독립된 지부를 통일, 하나의 대지부를 조직했다. 16년 후인 1733년에는 126개 지부를 형성하게 된다. 프리메이슨은 박애정신 즉 [형제애를 그 근본구조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조직의 현실화]라는 목표제시 아래 공개되지 않고 있던 회의실을 개방했다. 이 회의실은 귀족, 사상가, 문인들에게 개방되어 이곳의 출입여부가 십팔세기 유럽사회의 명예와 관련되어질 만큼 사교계의 중심점으로 부상했다. 결국 […이상적인 사회조직의 현실화]라는 그들의 정신은 유럽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전분야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후 프리메이슨 비밀결사는 유럽대륙뿐만 아니라 아시아 등지까지 그 세력을 확장시켜 갔고 영국 황실가족, 지식인과 귀족들의 구성원의 핵심이 되었다.
프리메이슨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프리메이슨을 돕고 있는 비밀결사가 있는데 일루미나티(Illuminati)이다. 일루미나티는 [계몽한다](Enlight)는 뜻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빛을 준다, 빛으로부터
온 것]이다. 일루미나티의 빛은 루시퍼를 의미한다. 따라서 일루미나티란 루시퍼를 뜻하며 빛(루시퍼)으로부터
계몽된 사람들의 모임을 암시하고 있다.
일루미나티는 1776년 5월 1일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ft)에의해 창설되었다. 약관 27세의 나이에 잉고르수타트대학의 법학부장이었던 그는 남보다 뛰어난 재능과 극단적인 자유사상으로
인해 보수파들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았다. 그는 자기와 의견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비밀리에 집회를 열고 그들의 사상이나 세계관을 계몽했다. 인간을 신뢰하지 않은 그의 회합에서 절대적인 권력자가 되었고, 회원들은 그에 대해 완전 복종의 맹세를 했으며 회의내용은 일절 누성하지 못했다.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자유사상과 맞아떨어졌던 일루미나티는 짧은 기간동안에 회원수를 증가해 나갔다. 초창기 일루미나티 회원들은 노비스(미숙자), 미네발, 계몽된 미네발 등 세개 계급으로 나뉘었다. 계몽된 미네발의 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고대의 신비적인
비밀교리나 의식을 배워 익혀야 했고 [모든 개별 국가의 파괴], [모든 종교의 파괴], [세계정부의 수립]등 일곱가지 목표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아야 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폭력혁명조차도 용납했던 바이스하우프트는 당시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던 프리메이슨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프리메이슨 사상이 그의 생각과 공통점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서우리만치 치밀한 조직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뭔헨 프리메이슨인 [사려 깊은 데오돌 지부]에 입회, 단원들을 자기의 의도대로 끌어갈 계획을 세우고 공작을 개시하여 그 조직의 중심인물이 되는데 성공했다.
프리메이슨 본부측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고 했으나 지부내에 일루미나티 세력이 이미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1782년 7월 16일, 월헬스바트에서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간의 회담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바이스하우프트는 일루미나티를 프리메이슨안의 [피]로 여길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동맹체결에 성공했다. 양조직의 결합으로 당시 사백만명이 넘는 인원을 포용하고 있는 대조직이 되어 일루미나티정신이 프리메이슨 내에서 활발하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 내의 일단의 온건파들은 일루미나티의 활동성에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1780년 일루미나티가 당시의 정부와 가톨릭을 붕괴하기 위해 군사활동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안 프리메이슨의 온건파들은 1783년 바이스하우프트와 일루미나티를 정부에 밀고하여 바바리아 정부가 일루미나티 조사에 착수하게 했다. 결국 일루미나티의 구성원중 네명이 폭력혁명 계획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중요한 증거가 노출되어 바이스하우프트는 국외추방의 쓰라림을 겪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일루미나티는 소멸된 듯 보였으나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전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대감독이자 시의 의원이었던 루이 삐에르는 "프리메이슨은 인권표명, 교회와 국가의 분리, 사형금지, 서인도의 승인, 미국의 탄생, 프랑스 대혁명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또한 프리메이슨은 세계통일정부 수립의 모델케이스로 미합중국 탄생을 주도했다고 일본 연구가 오니쓰까 이소이찌는 주장한다.
"유럽 프리메이슨을 대표하는 유대인 거부 로스챠일드 가문이 미국 독립자금의 출처가 되었으며 조지 워싱톤,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아담스, 알렉산더 해밀턴, 헨리 노크스, 에드먼드 랜들 등 미합중국의 수뇌들이
모두 프리메이슨이었다. 특히 1793년 연방의회 의사당 기공식에 조지 워싱톤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의 의식용 예복을 착용했으며 가슴에는 프리메이슨 예복과 표장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일반인들은 생각되겠지만 [조지 워싱톤 프리메이슨 기념관]에 가면 사실 여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지 워싱톤이 프리메이슨이었던 것을 기념하여 1923년에 건설된 이 건물 안에는 그에 대한 기록이 보존되어 있고 프리메이슨이었던 역대 대통령의 이름도 열거되어 있다. 케네디, 닉슨을 비롯 수 명의 대통령만이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다. 미국
국쇄(나라의 도장)에 그려져 있는 독수리와 1달러짜리 지폐에 새겨진 피라미드 그리고 그 꼭대기의 [모든 것을
보는 신의 눈]은 일루미나티의 영향에 기인한다."
한편 프랑스대혁명이 세계사를 뒤바꿔 놓은 사건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이 사건의 핵심세력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던 루소는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었으며 혁명의 주요 지도자였던 미라보 역시 일루미나티의 일원이었다. 그 밖에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다. 혁명의 슬로건이었던 [자유, 평등, 박애]는 프리메이슨이 표방하는 신조였다.
희망의 S.O.S(S.O.S ESPOIR)의 한 담당자는 [프랑스혁명의 기치는 '백성에게 자유를'이었고 그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로 각 개인이 하나의 독립체로서 '완전',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서턴이 목적했던 바는
인간적인 최선을 통한 지상낙원의 가능성을 꿈꾸며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떼어놓아 개인의 복지와 완성이라는 우상을 통해 인본주의를 일으키려 했던 것이다. 이 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의 용어가 각 관공건물 위에 새겨졌고 통용되는 화폐 위에 새겨졌다.]
1790년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 및 평등의 권리를 가진다]라는 구절로 전문이 시작되며 인류 역사상 불후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새겨놓은 기념비를 보면, 당시 일루미나티를 중심으로한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알 수 있다. 비석의 왼편 위쪽에서 쇠사슬을 자르는 여신은 프랑스를 상징하며 우측의 천사는 법의
화신이라 불리는데 그 천사의 오른손 홀 끝에 빛나고 있는 것이 1달러 지폐에 인쇄된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 일루미나티의 상징이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보는 신의 눈]이라 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성의 눈]이라고 부름으로써 그 빛을 받으면 지금까지 있었던 오류의 암운과 미망이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사탄숭배교와 결합한 프리메이슨은 하나의 목적을 설정했다. 고대 프리메이슨들이 솔로몬 성전건축에 종사했다고 믿으며 다시
오는 솔로몬(적그리스도)을 기다리는 것과 솔로몬 성전 재건을 그들의 맡은 바 임무라고 믿고 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방안을 추진, 실행하고 있다. [솔로몬 성전 재건을 위해 점진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개혁하여 보편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세계 정부를 건설한다] 따라서 프리메이슨은 세가지 구성요소를
갖고 있다.
첫째, 힘의 상징(권력)을 나타내는 사면 삼각형, 즉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을 그들의 심벌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둘째, 선악의 개념을 혼돈케하며 선의 차이점을 인정치 않도록 하는 등 가치관 전복을 통해 각종 그럴듯한
단체들을 암암리에 구성했다. 미국의 그림자정부로 불리는 CFR(국제외교관계위원회), 유럽의 보이지 않는 정부(바젤클럽), 유럽의 빌터버거, 뉴에이지 운동 등, 셋째로 철저한 계급제를 만들어 프리메이슨 상호간의 차별을 두어 실질적인 핵심인물의 노출을 꺼리며 전 프리메이슨을 최고의 의식을 통해 지배하게 한다.
(중략)
모짜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인 [마적]은 그의 친구 엠마누엘 시카네더와 함께 가담한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에
대한 열렬한 헌신의 감정에서 작곡한 것으로 그 비밀결사의식을 교묘하게 비유하고 있다. 관용을 표방하면서 프리메이슨주의는 종교적 신념에 상관없이 남자면 모두를 받아들였으며 보편적인 형제애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다른 회원과 마찬가지로 모짜르트는 가톨릭신자인 동시에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의 회원이 되는 사실에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교회가 모짜르트와 프리메이슨주의를 몹시 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모짜르트는 교권반대주의자가 된다.
모짜르트가 이 단체에 처음 가담하게 된 것은 나이 28세인 1784년이었고 아버지 레오폴드도 설득해 삼개월 후에
가담하게 했다. 임종하는 아버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모짜르트는 그들의 형제애를 예찬했다.
[지난 몇년간 최상의 진실된 사람들과 친구라는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이미지는 이젠 더 이상
나를 두렵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매우 편하고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이 진정한 행복으로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배우는 기회를 허락하신 신께 감사합니다.]
이후 모짜르트의 친구이자 동료인 프란츠 요셉 하이든도 메이슨에 가담했고 프리메이슨이었던 괴테는 모짜르트의 [마적]을 격찬하기에 르렀다. "군중이 이 장관에서 즐거움을 맛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처음부는
사람도 이 극이 갖는 고도의 의미심장한 면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자 예찬자였던 모짜르트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프리메이슨의 무서운 음모를 알게 되자 그
집단에서 나오려고 했으며 그 비밀을 안 모짜르트는 프리메이슨에겐 암적 존재에 불과했다. 모짜르트의 짧은 인생 배후에는 프리메이슨에 의한 독살이라는 설이 강력하다.
(중략)
하나님은 인류를 분산시켜 각 국가 체제 속에서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구원사를 갖고 계신 반면 타락한 천사, 사탄은 인류를 하나로 묶어 하나님 대신 자신을 경배케 하려는 목적 아래 끊임없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의 주류는 18세기이후 세계적인 천재들에 의해 주창된 사상들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유대인이었던 칼 마르크스, 프로이드, 레닌, 히틀러, 트로츠키 외에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인권과 자유주의 사상의 루소, 낭만주의를 일으킨 괴테와 바이런, 모짜르트,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한 로베스 삐에르, 당통, 마라 등 많은 이들이 프리메이슨 조직의 일원이었고 사탄주의자였던 것은 충격적이다.
(하략)
올린이 주: 자.. 이제 위글에 대해 회의주의의 칼날을 대어 사실과 주관을 가려내어보자. 마지막 폭로(?)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다. (사실 그보다 더 많다.)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을 때로 언급조차 회피하려 하거나 또는 위와 같이 적의를 가지고 대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단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크다. 먼저 프리메이슨의 특징적인 면들을 살펴보자. 사실 현대에 있어서 프리메이슨은 비록 개별조직들내에서는 우스꽝스러운(이 말은 필자는 표현 그대로의 느낌으로 쓴다.)
위계와 신비적 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각 조직간의 직접적 유대는 적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에 덧씌어진
과장의 상당부분을 들어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의 놀라운 특성상 어떤 방식으로든 작동하고 있는
것이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흐느적거리는 불가사리가 성게를 덮어씌어 포식하듯이 그것에 공포를 가지는 사람에게는 분명히 인지되는 확장적 행태를 가지며 여기에서 우리가 프리메이슨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서 제기된다. 일단, 프리메이슨리들은 어떠한 성향을 공유한다. 그런데 그것은 공식적인 교육에 의해 체득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배경들속에서 어떤 지점에 도달한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으로 수렴해가는 것이(지금도!) 구미 엘리트 계층에서 보여지는 재미있는 점이다.
프리메이슨에 대한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음모론에 대해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보기에는 "음모" 또는 "공모"가 실재한다고 보일것이 이해가 간다." 정도일 것이다. 사실 이는 객관적 관찰자(필자)의 입장에서 볼때 충분히 수긍이 간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프리메이슨을 두려워하는
한가지 이유는 이것이 그것에 적대적이었던 조직까지도 계속 규합해 왔다는 점이다. 다소 임팩트를 줄지도 모르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의 주장을 빌면 로마 카톨릭 역시 이미 프리메이슨에 포섭되었다. 그리고.. 과장된 표현을
배제한다면 이 역시 나는 옳은 관찰이라고 본다.
프리메이슨의 주축이었던 길드는 "고대 석공 조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북구 스칸디나비아 전통에 뿌리를
둔다. 이들의 성향은, 매우 실용적이고 검박하며 기술을 중시하는 한편 고귀한 경건함에 가치를 둔다. 알다시피
길드조직은 자본주의의 초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네덜란드의 프로방스는 현대 자본주의의 요람이 되었다. 직공들은 왜 조합을 결성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공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그들은 귀족에게 성직자에게 천대받는 존재였으며 오로지 그러한 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은 자기들만의 기술을 보유하고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가치판단에 무관심했으며 때로 성직자보다 더 높은 종교적 경건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중 한 사람이 스피노자이며 당시 타락했던
구교의 교리를 초월하는 신성이라는 판단하에 후에 루터의 종교개혁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길드의 성향에
대해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할 가치가 있으나 여기서는 일단 이에 그친다. 어쨌건 '조합'은 훗날 '형제애'로 이행한다.
이들에 관심을 둔 영국의 귀족이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논쟁을 위한 논쟁을 벌이는 스토아 철학자들에 깊은
회의를 품고 새로운 철학의 방향을 전문적 기술자 집단으로부터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러한 순환은 마침내 프리메이슨이 베이컨을 따르게 한 이유가 된다. 길드들의 언어는 매우 명확하고 간결하며 무엇보다 모호한 표현을 회피한다. 베이컨은 그 자신이 비록 아포리즘을 많이 썼지만 대체로 영어 산문문학의 대표자로 꼽듯 은유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은유'라는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키케로, 베이컨에 이르기까지 서구철학에서 중요한 논쟁의 주제였는데 재미있게도 한국에서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인문학도가 별로 없다. 이는 관리등용시험인 과거가 은유의 능란한 운용능력에 기준을 두었던 것에 기인함이 크다.
은유를 본격적으로 비판한 이가 홉스다. 그는 명철한 유비를 강조하며 은유 자체를 혐오했다. 이에 영향 받아 자연철학자들은 당시 상인들을 위한 저자거리의 언어로나 여겨지던 산술을 과학의 언어로 체택하는 데 선구가 된다. 즉 "은유"를 완전히 배제한 철학이 등장했으니 이것이 근대 수리과학이다.
프로방스의 그리고 영국의 길드와 클랜들은 상업과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당시의 사회질서가 자신들의 신분상승과 부의 축적에 장애가 됨을 인식했다. 그리고 서로 대립하는 제후들로 이루어진 봉건질서가 인간성을 억압하는
제약으로 작용함에 비판의식을 가지게 된다. 즉, 차라리 시민국가라는 형성이 자잘한 장벽을 없애주리라 희망했고 그 결과 왕권강화를 바라던 계몽군주들을 지원한다. (어느 면에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프로테스탄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특히 위그노와 칼뱅주의가 선호된다. 상당수의 이들이 어떻게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이주했는가는 알려진 바와 같다. 오늘날 꿈의 나라로 인식되는 스위스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적십자"가 있을 것이다. 이 적십자는 이러한 직공조합의 성향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여러분께 맡긴다.
한편, 과학철학자 아이언 해킹이 고급과학의 창시자라 부른 베이컨과 저급과학의 창시자라 부른 연금술사 파라켈수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파라켈수스는 그의 성명서에서 "오늘날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단순히 학식의 과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목적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 이를 정립한 이가 베이컨이다. 그리고 이 '목적'은 프리메이슨에게 또 일루미나티에게로 이어져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을 낳는다.
일루미나티를 좀더 살펴보자. 먼저 이에 관한 몇가지 과장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위의 자료에서 배제되었지만 석학 움베르토 에코조차 이 조직이 십수세기전 이슬람의 암살단(Assasin)의 영향을 받았으며 제수이트(예수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유럽인인 내가 보기에 이것은 시장의 우상에 의한 오류다. 먼저 무굴에
의해 멸망했다는 전설의 암살단을 일루미나티가 계승했다는 것은 어쩌면 창설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직접 천명했을지도 모르지만 별로 연관성이 없다. 즉 이것은 일루미나티의 과장된 환상에다 이들을 음해한 조직이 퍼뜨린 인식 그리고 후세의 과장이 결합된 무엇이다. 둘째 예수회의 처음 명칭이 일루미나티라 해서 이들과 관계있다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 전혀 연관성이 없다.
그러나 일루미나티가 주장한 "인류교"는 충분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필자는 바이스하우프트가 독일신학의 신비주의적인 면에서 상당히 영향을 받았으며 그 직접적 대상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였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이 모든것에 우선한다는 '인간목적론(Anthropology)'적 사상은 19세기에 들어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칸트와도 연관을 맺는다.(루돌프 슈타이너는 가장 모범적인 대안교육으로 알려진 발도로프 운동의 창시자이며 마담 블라바츠키의 신지학회 회원이었다. 진화론의 올더스 헉슬리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역시였다.) 칸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뉴튼의 기계론적 낙관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하고 있다. 한편
에크하르트로부터의 좀더 정제된 신비주의적 영향은 근세에 있어 비교언어학의 대가 막스 밀러에게까지 이어진다.('독일인의 사랑'의 저자) 계보를 좀더 파고들면 우리는 현대에 가장 코스모폴리턴적인 면을 보이는 비교언어학도, 비교문화학도들의 성향의 비밀을 캘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보편성의 아버지 비코조차 지적하지 못했던 이성의 큰 적인 언어사용에 있어서의 애니미즘을 비교언어학자 소쉬르가 혁파하고야 만다.
계몽가들은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애니미즘의 영향속에 있으며 그것이 끊임없는 자기계몽으로 극복되어야 하는지를 잘 안다. 왜 문명이 존재하는지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하튼 내가 보기에는 시니피에의 유기적 결합보다는 대가가 쏟아내는 시니피앙들의 나열에 현혹되어 단순,간결한 언어들로도 깊은 진리가 충분히 전달,계몽될 수 있음을 망각하는 학도들은 소쉬르가 남긴 업적의 실천적 의미를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인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상당한 혼란이 있을 것이다. 간단히 얘기해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유일신
근본주의자들만을 배제한 채 세계의 파워엘리트들은 프리메이슨으로 규합되어 가고 있는가? 결코, 과장도 위협도 아닌데 이것은 사실이다.
9. 카톨릭과 프리메이슨의 연계성
본 자료는 CuttingEdge 사이트의 자료를 참조로 하여 인용하여 재편집한 것이다.
참고서적(Cutting Edge에서의 참고서적)
"The Broken Cross" by Peris Compton, 1981
"The Occultic Conspiracy: Secret Societies -- Their Influence and Power
in World History", by Michael Howard, 1989
"Behold A Pale Horse", by Christain author Bill Cooper, 1991
먼저 "The Broken Cross"에서 인용한 것을 보도록 하겠다.
컴프턴(Compton)은 카톨릭 신문인 "유니버스(The Universe)"지의 외부기자이다.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일루미나티가 근거없는 침투성 주장을 하는 것을 추적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컴프턴은 근간의 로마 교회의 실수를 다음과 같이 몇가지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서 그가 보수적인 카톨릭 근본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 편집자 주 -)
1. 절대성에 대한 믿음의 퇴보(이것은 교황에 대한 신뢰도를 말할 것이다)
; 참고로 요한 바오로 2세는 낙태에 대한 것에 대해서도 프랑스의 대주교의
낙태찬성론에 대한 건의에 고심하였다고 한다. (편집자 주)
2. 투쟁에 있어서 '선'을 고수하기 보다는 세계의 사악한 세력들과 타협하는 것
3.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내세워 인본주의를 외치는 것
4. 강력한 적이었던 공산주의를 대화를 통해서 타협으로 이끌어 낸 것
(그는 이와 같은 것은 사회의 병폐라고 주장하였다.)
5. 하늘과 땅에 있는 많은 신들의 거짓 신경으로 하늘의 오직 한분 하나님의 신경을 굴복시킨 것
컴프턴은 매우 신각한 질문을 한다.
"교회(로마 교회)에서 무엇이 변화를 일으켰는가?"
컴프턴은 로마 교회안으로 침투한 모종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일루미나티와 같은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곧 이것은 카톨릭을 보수적으로 고수하려는 카톨릭 근본주의자들 입장에서 카톨릭이 가령 개신교들
과의 대화를 통해서 혹은 타종교(불교)와의 대화를 통해서 오염되었다는 것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지적하는 일루미나티 곧 프리메이슨의 일파들에 대한 강력한 경계심은 '허구'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매우 교활한 술책임이 드러난다.
컴프턴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아담 웨이샤우프트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부터 일종의 가능성(기회)을 엿보고 있었다.
그는 공격성향과 그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밀결사를 바탕으로 한 기습적인
공격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중략)....그는 한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중략)....
그는 인류를 하나의 체제에 몰아붙여서 전통을 없애고....교리를 억압하려고 하였다. 웨이샤우프트
는 범세계적 형제애의 이름으로 그의 동료들과 그 스스로를 구별하려 하였고 그러한 사고방식은
웨이샤우프트가 인간의 완전성이라는 불가능한 망상을 바탕으로 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그것은
1776년 5월 1일(프랑스 대혁명)을 통해서 일루미나티라는 비밀결사를 후세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끼치도록 만든것이다."
그의 책의 7-8페이지에서 또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일루미나티는 한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행동 강령에 있어서 매우 야심찬 선을 끄었 놓고 있었다.
형식과 통제에 있어서는 '민의(민주적인 의견)'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때까지 지켜왔던 믿음과 종교 의식
의 모든 차이점들을 해체하여서 종교를 뒤섞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교황제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베드로의 의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후일 1818년에 일루미나티의 회원이었던 누비우스(Nubius)는 일루미나티의 목표를 언급하게 되었다.
그것은 '카톨릭주의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계의 완전한 섬멸'이며, 만약 로마의 폐망 위에서 조차 기독교계가
살아남는다면 아마 조금 후에 부활하고 살아남을 것이다.
후에 우리는 'The Occultic Conspiracy' 라는 뉴에이지 책에서 동일한 그들의 목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컴프턴은 누비우스의 교황제를 전복하려는 일루미나티의 목표에 대한 설명을 인용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13페이지(The Broken Cross)에서 언급한다.
"교황제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동고동락한면서 1700년간 존속되어왔다.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없이는
움직일 수도 숨쉴 수도 없는 것이다...(중략)...(이에 대한) 구제책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바로 해결책은 여기에 있다. 교황은.....절대로 비밀결사에 가입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밀결사가 교황과 로마 교회를 둘다를 억압하게 될 것이다."
컴프턴은 웨이샤우프트의 재정기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웨이샤우프트)는 로스차일드 가문 휘하의 은행가를 통해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일루미나티가 구상하고 있는 광범위하고도 범세계적인 계획의 방향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컴프턴은 일루미나티의 이단적인 영적 본성을 신세계질서의 창출을 위한 것으로 확정지었다.
(이 정도라면 차라리 로마 카톨릭의 친구이며 신근본주의자인 팻 로버트슨의 '신세계질서'를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도 역시 그후의 글에서 피라미드 상징과 모든 것을 보는 눈(주시자의 눈, 제3의 눈)에 대한 의미
그리고 안톤 스잔돌 라베이의 사탄주의에 대한 경계심 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섭불리 카톨릭과 일루미나티의 커넥션을 판단한다면 오산이다.(편집자 주)
컴프턴은 그리고나서 다음의 언급을 통해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것(모든 것을 보는 눈, 제3의 눈)은 1976년 필라델피아의 성만찬식에서 모인 군중들앞에
내려다 보이게 되었다. 그것은 년감을 편집한 '예수회'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1978년 보도된 바티칸의 인장 시리즈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p.10-11)
(빌 쿠퍼(기독인 작가)는 내가(CuttingEdge 편집인) 이러한 충격적인 정보를 들었을 때
이것이 사실임을 확정지어 주었다.)
컴프턴은 좀더 특별하게 모든 것을 보는 눈의 의미에 대해서 언급을 하였다.
"그 눈, 바빌론의 달 숭배자들 혹은 점성술사들에게 숭배받던, 은 이집트 비의 종교의 삼위일체
- 오시리스(태양), 이시스(달의 여신), 호루스(그들의 아들) - 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p.11-12)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 10월 4일 UN연설 이후 UN청사 내부의 명상실에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편집된 게시판에는 아마도 그 방(명상실)의 존립 목적과 의미를 다루고 있는
있는 듯 하였는데 그것은 루시스 출판사(Lucis Press)에서 출판한 것이었으며 UN의 현안들이
인쇄 개재되어 있었다."
UN의 명상실에는 과거 루시퍼 출판사(Lucifer Trust)였던 루시스 출판사가 제작한 게시판이 있었던
것이다 - 물론 특수한 용도로 제작되었겠지만!
참고로 루시스 출판사는 과거 루시퍼 출판사일 당시에 마담 블라바츠키를 제작하던 출판사로
'앨리스 베일리'라는 뉴에이저에 의해서 운영되었다. 그리고 앨리스 베일리의 남편은 프리메이슨 32도 였었다.
유감스럽게도 교황이 들어갔던 그 UN의 명상실은 일루미나티들이 조성한 센터였다는 것이다.
컴프턴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며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게 된다.
"그는(요한 바오로 6세)는 다시금 두개의 바티칸(교황청)이 존재하게 되었었던 16세기에
사탄주의자들이 사용하던 불길한 상징물을 사용하였다.
그것(상징물)은 그리스도의 냉정하고 뒤틀린 형상을 그린 형상을 표현한 꺽여진 십자가
조각이었다. 그것은 중세에 검은 마법사들과 마술사들이 '짐승의 표'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던
형상이었다. 또한 바오로 6세 뿐만아니라, 그의 계승자인 요한 바오로 2세(1999년 9월 현재의 교황)도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지한 청중들에 의해서 경의를 받을 때에 그 형상을 들고 답례한다."
56페이지에서 컴프턴은 현재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꺽인 십자가 형상을 들고 삽화를 개재하였다.
(이미 그들은 히틀러의 나찌즘을 이용하여서 구부러진 십자가(하이켄 크로이츠, 스와스티카)를 사용하였지
않은가?)
이제 이러한 일들은 그렇게 놀라운 일들이 아니다.(편집자 주)
이 즈음에서 우리는 계시록 13:12의 예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컴프턴의 보고서는 아직도 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바오로 6세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모습을 보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처형하도록
만든 카야바와 같은 고대의 에봇을 입고 등장하였다.
그리고 교황이 며칠후 로마 교황청에 도착한 후 쿠에르나바카 멘데스 아르세오 추기경은
"맑스주의(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왕국을 현세에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라고 언급하였다.
뉴에이지 작가 마이클 하워드의 'The Occult Conspiracy"에 따르면, 바티칸의 공직자들 중에서 많은
인원들이 프리메이슨들이었고(p.152) 그들 중에 최고위층도 있었다는 제보를 하게 된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1. 바오로 6세의 개인 비서
2. 바티칸 라디오 방송의 연출 감독
3. '플로렌스'의 대주교
4. '밀란'의 고위 성직자
5. 바티칸 지(신문)의 부편집장
6. 7명의 이탈리아 주교들
7. 성 베네딕트 대수도원장
1738년 교황 클레멘트이 금지하였던 프리메이슨에 125명의 고위성직자들이 그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교황청은 안그래도 반성경적인 이단이었는데 더 심각한 이단의 괴수가 되어 버린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인 작가 빌 쿠퍼는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로마 교황청이 신세계질서를 위해 동역하는
단체라고 규정하였다.
아담 웨이샤우프트가 로마 교황청의 오른팔 예수회(제수이트) 사제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로마 교황 바오로 6세의 암살과 그를 통한 매우 닮은 인물(남미의 사제)
를 바오로 6세로 비밀리에 등극시킴으로써 완전히 로마 교황청을 휘어잡은 강경파(아마도 프리메이슨으로 구성된
로마 카톨릭의 고위 성직자들)들의 득세는 그들이 신세계질서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세계질서(적그리스도의 통치 질서) 창출은 로마 교황청에서 시작하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은 그들에게서 나온 동역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 얼마나 고등적이고 교활한 전략인가?
10. 일루미나티(유대인 마피아)와 러시아의 비밀전쟁
세계는 전쟁의 열기로 뜨겁다. 그러나 엄격한 통제 가운데 보도되지 않은 전쟁
이 있으니, 바로 러시아에서 격렬하게 벌어졌던 유대인 마피아(일루미나티)와
러시아 민족주의자간의 비밀 전쟁이다.
유대인 마피아(일루미나티)는 미국에 의해 후원받고, 이스라엘에서 인도받으며,
신세계질서(NWO)를 지원하고 있는 막강한 부자인데, 그들이 지금 러시아 경제에
있어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은연중에 모스코바의 옐친과 크레믈린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부유한 유대인들은 금융 및 국제적 범죄와 밀착하여 연계되어 있는
국제 마피아 연합과 러시아 비밀경찰(구 KGB)로 구성되어 있다.
느슨하게 묶여 있는 군자금과 열정적으로 애국심이 강한 중산층의 증가, 이런 것들이
이 유대인 마피아(일루미나티)의 적대 세력이다.
바로 이전의 공산주의자들이다. 이러한 두 집단간의 충돌은 폭발할 가능성을 늘 내재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경제의 붕괴로 인해 적대적이고, 분노에 차 있으며, 좌절하고,
민감한 부류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강경한 공산주의로 되돌아가는 것도 원치
않지만, 현재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유대인 마피아(일루미나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혐오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와 일반 대중들에게 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는 이 두 집단은 항상 대치되고 있으며,
그 갈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1999년 중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하나의 화약고를 기대하라.
11. 세계 권력자들의 비밀결사체 프리메이슨 베일 벗나
세계 권력자들의 비밀결사체
프리메이슨 베일 벗나
「중앙일보」 2001년 6월 27일 수요일 기사
신비주의적 비밀결사로서 숨겨진 절대권력자들의 정부라고 불리는 프리메이슨이 정체를 드러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둘째로 큰 지부 GLDF(회원수 2만 7천여명)의 미셜 바라(53, 철학 교수) 회장은 지난 16일 전세계 동료들에게 자신이 프리메이슨 단원임을 당당히 밝힐 것을 촉구했다.
그는 "오늘날 자유주의 세계를 이룩한데 일조한 프리메이슨은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특히 사회 지도층들의 경우 자신이 프리메이슨 단원임을 숨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바라 회장의 이같은 선언에 대해 프리메이슨의 본거지인 영국과 미국의 프리메이슨
단체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피가로는 23일자에서 비밀 엄수를 신조로 삼았던 프리메이슨이
이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는 것은 "이 단체가 갈수록 이권을 향한 로비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데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중세시대 성당 건축에 참여한 석공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는 프리메이슨은 17세기 영국에서 인간과 사회의 개선을 추구하는 엘리트들의 사교클럽으로 발전했다.
세계시민주의/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이 단체는 이후 전 유럽과 미주로 확산됐으나 각종 신비주의적 의식 탓에 동유럽 공산주의와 서유럽 나치/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현재 회원수는 전세계에 약 5백 70만명 정도며 이 중 영국과 미국에만 5백만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백과사전 'QUID'에 따르면 프리메이슨 회원에는 미국의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전 대통령들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보들레르, 몽테스키외, 스탕달, 볼테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냉전시대에 정치 비밀결사체 성격을 띠었던 이 단체는 최근 사회지도층에 넓게
포진해 있는 인맥을 이용,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이익단체로 적락했다는 비난과 내부
반성에 직면해 왔다.
특히 각 지부 내에서 특정직업 또는 지역단위의 하부조직을 결성, 로비를 하는 데 이용하거나 지부의 세력을 불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횡원을 가입시키는 상황도 빚어졌다.
최근에는 프리메이슨 가입을 바라던 프랑스 니스 지방법원의 장 클로드 르나르 판사가 이 단체의 고결함을 뒷받침하는 범죄기록부의 기밀사항을 누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바라 회장은 프리메이슨의 본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세계 주요 지부간에 '윤리 헌장'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프리메이슨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영/미계 조직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3Deidlbleu@joongang.co.kr">http://go.daum.net/bin/go.cgi?relative=1&url=/Mail-bin/login_f.cgi%3Ferror%3Dlogin%26lu%3D/Mail-bin/send_mail.form.cgi%3FTO%3Deidlbleu@joongang.co.kr>
프리메이슨이란 오늘날의 노동조합과 비슷한 중세 석공들의 조직인 길드를 모체로 생겨난 단체다.
당초 석공들의 친목 도모와 교육을 목적으로 결성된 프리메이슨은 점차 직업에관련된
현실적인 문제 뿐 아니라 윤리, 도덕 등 철학적인 문제까지 토론하면서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비밀결사로 발전했다.
18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영국에서 유럽 각국과 미국에까지 퍼졌다. 계몽주의 사조에 호응해 세계시민주의와 세계 단일정부를 지향했다. 종교적으로는 간용을 중시한
까닭에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받게 돼 비밀 결사체가 됐다.
프랑스혁명, 제2차 세계대전,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등 세계의 모든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배후에 프리메이슨이 연루됐다는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조직은 지역, 모임의 성격, 지도자에 따라 다르게 구성돼 있고 회원은 정치, 경제, 언론, 군 및 사법부 등 각계각층의 중견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유권하 기자
<3Dkhyou@joongang.co.kr">http://go.daum.net/bin/go.cgi?relative=1&url=/Mail-bin/login_f.cgi%3Ferror%3Dlogin%26lu%3D/Mail-bin/send_mail.form.cgi%3FTO%3Dkh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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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시보는 영화 - 매트릭스
매트릭스(matrix)의 사전적 정의는 자궁, 모체란 뜻이다.
<매트릭스>는 고도의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고, 그러한 철학적 함의들을 끌어가는 복선과 암시가 상당히 치밀하게 짜여져 있으며, 한 부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상징들로 채워져 있다.
줄거리의 포맷은 신약시대를 그대로 본 딴 것 같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심어준다. 실제 현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큐베이터 속의 인간들. 그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나타나는 메시아 '네오'. 구약에서 예수를 예언하듯 '네오'는 예언이 지칭하는 '그'로 묘사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주목해 보면, 트리니티(trinity)는 바로 기독교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를 가르킨다. 사이퍼는 저항군을 배신해 매트릭스에서 안주하기를 바라는 데, 그의 배신행위는 성경에서 유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모피어스는 예수에게 세례를 하는 요한의 모습이고(모피어스는 그리스신화에서 꿈의 신이기도 하다.), 스미스요원은 예수에게 고통을 주는 본디오 빌라도의 모습이다.
AI에 맞선 저항 프로그램 시온의 이름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언덕을 의미한다. 2000년 동안 고국을 떠나 방황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의 영광을 다시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바로 이 것을 시온주의(zionism)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인류를 어떻게 구원할 것이냐는 문제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메시아를 탄생시킨다. 프로그램에 대항해서 싸울 새로운 신.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고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데려갈 '그'의 재림. 느부갓네살호를 배경으로 매트리스로부터 이탈한 사람들과 그나마 남은 인간의 땅인 시온(Zion)의 인간들과 저항군을 결성한
모르피스가 '그'를 찾고, '오라클'이 메시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며, 네오가 다시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건은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일어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전혀 차이가 없다.
또한 이 영화는 동양적인 정신 세계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네오의 훈련과정에서 무술이 도입되는 것도 그러하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내용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그렇다. 결국 '네오'는 죽음 뒤에 부활하여 완전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게 된다.
앞에 놓인 현실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진아(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오감을 믿지 말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반야심경으로 설명된다.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또 다른 영화 <트루먼 쇼>를 떠올렸을 것이다. 현재 내가 먹고, 자고, 일하고 숨쉬는 현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모든 철학적 물음의 시작이기도 하다. 의심할 수 없는 현세를 의심하고, 뛰어넘고자 하는 것은 불교적 세계관의 자세이기도 하다. <트루먼 쇼>가 현실을 조작하는 능력을 신이 아닌 인간에게
부여했다면, <매트릭스>는 그것을 기계에 부여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결국 하늘을 찢어버리고(트루먼
쇼), 프로그래밍된 가상의 총알을 멈출 수 있는 것(매트릭스)은 모두 인간의 마음 안에 있다는, 해골에 담긴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다. <매트릭스>에서 예언자를 방문하는 도중에 동자승이 등장해서 주인공에게 던진 "숟가락은 없다"라는 화두같은 말은 이런 깨달음을 얻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의 구절처럼 이 게임은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인생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진리를 갈구하는 자에게 기회는 오는 법이다.
13. [시온의 의정서]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요즘 젊은 세대의 사람들은 이 책의 존재, 아니 그 이름 조차 들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금세기의 첫머리에 그 러시아어 판이 세상에 나타난 이래, 독,불,영을 비롯하여 세계 각 국어 판이 차례 차례로 간행되고 그야말로 전세계에 공포와 불안에 가득 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괴문서가 바로 이 [시온의 의정서]였다.
반유태주의 측에서는 이것을 유태인의 [세계 정복 강령]이라 하여, 큰 소동을 벌였고, 유태인 측에서는 [금세기
최대의 위서]라고 하여 애써 부정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각국마다 계속 번역판이
거듭하여 날개라도 돋힌 듯 팔렸다. 스위스에서는 소송 사태에까지 번졌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1920년 [인터내셔널 쥬우(국제적 유태인)]이라는 책을 공간하고 국제적인 유태인 세력에 용감하게 도전을 했었으나, 결국 역부족으로 무릎을 끓고 만 일막도 있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 로젠버그의 [20세기의 신화]에 나타난, 나치스 독일의 극단적인 반유태주의의 바닥에도 이것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껏 이 [시온의 의정서]의 저자는 불명인 채, 짙은 수수께기에 감싸여 있다. 그 성립에서 유포의 경로, 파문과 논쟁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온의 의정서]가 眞 僞 어느 쪽이든 간에 근래 유태인 문제의 원점으로서의 의의를 지니는 데 대해서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고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파문, 영향이 거의 전세계적 규모로 퍼졌고,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에까지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음으로 주목되어야 할 것은 이 책에 숨겨진 저자의 놀라운 분석력, 예언력의 정확성이다. 이를테면 이 의정서의
제16의 의정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사색력을 예속화시키는 일은 이미 ‘시청각 교육’이라고 일컫는 방법에 의해서 시작되고 있다. 이 시청각 교육의 주된 목표는 비유태인 모두를 뇌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사물을 생각할 수 없고, 그림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유순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텔레비전에 의한 ‘총 백치화’라든가, 만화 붐에 들뜬 요즘에 쓰여진 것이 아니다. 아직 텔레비전의 그림자조차 생각될 수 없었던, 80년 전에 딱 떨어지게 예언한 것이다. 저자가 유태인이었건 비유태인이었건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다만 컴퓨터마저 질려 버릴 정도의 예언력에 혀를 찰 뿐이다. 제13의 의정에 있는 다음과 같은 귀절은 어떤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기에 더하여 매스 레저를 성행 시킨다. 이윽고 우리들의
신문에 예능, 스포츠 등이 크게 취급되고 퀴즈도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오락은 우리와 정치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될 인민의 관심을 완전히 방향 전환시키고 말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차츰 독립하여 스스로 사색하는 능력을 잃고,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하는 바 대로만 생각하게 되고 말 것이다.”
비록 일례를 들었을 뿐이지만, 이러한 기묘한 일치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를 앞질러 본 사회 풍자에 불과하다고 웃어 버릴 수만은 없다. 현재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과 대조하고 지나간 80년의 역사의 궤적을 뒤돌아보면서 읽어 나가면 너무나도 부합되는 데가 많아
저자의 비범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낡고도 새로운 것, 그것은 유덴 슈타트(유태국)뿐만이 아니다. 이 의정서도 또한 ‘낡고도 새로운 책’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즉 의정서는 유태인 문제의 하나의 ‘원점’, ‘고전’이면서도 ‘현대에의 예언서’로서 현대에 사는 젊은 세대가 한번은 반드시 읽어 두어야 할 책인 것이다.
------> 논설2
유태인은 지적이고 근면한 민족이지만 가나안에서 그들은 결코 화합하지 못 했다. 결국 계속된 내분에 어떻게 독립을 잃고 유랑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지역들에서 금융업, 상업등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으므로 언급을 피한다.
하지만 이방인이 주요 이권-특히 금권을 장악하게 될때 본토인들이 반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며 유럽에서의 이러한 반유태주의는 16세기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이미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조짐을 우리는 이전에 언급했던 르네상스기 헤르메스적 비학 체계의 형성에서 본다.
유태민족으로부터 비롯한 기독교는 전 유럽을 장악했는데 르네상스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를 보이게 되며 비학사회는 이스라엘을 정복했던 고대이집트에
자신들의 정통성을 두어 가공의 인물과 저작을 형성한다. 특히 이전까지 가장 존경받는 선지자였던 모세가 이집트 최고의 마법사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로부터 비학을 전수받았다는 설화는 이스라엘적 전통을 격하시키려는 의도를 엿보이게 한다. 대략 이 시기부터 로마 카톨릭은 유태교 및 유타인들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취하게
된다.
유럽에 있어서 유태인들은 권력다툼을 해소하는 희생양의 역할을 줄곧 맡아왔다. 그 첫 사건이 바로 1차 유태인
의정서(시오니스트 프로토콜이다.) 유태인들을 종교적으로 지배하는 장로들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이 문서는, 상권을 장악한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전세계를 장악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한마디로 배타적인 유럽의 반유대정서가 만들어낸 순전한 조작이다. 실작성자는 근대화의 후발주자이던 제정러시아의 장교 라코흐스키인데 그가 순전히 독자적으로 이런 일을 수행했는지 러시아 정부의 지령하에 그러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약 그가 러시아의 지령을 받았을 경우 자유주의적 사조를 저지하려는 왕실의지의 수행이라고 볼 개연성이 있으며 비중은 크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비난한 프리메이슨 조직이 당시 러시아에서 자생적으로 세력을 넓혀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가.
또한 그가 독자적 판단으로 그러했다고 볼때 이것은 꾸준히 지속되어 온 유럽의 반유대정서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으며 또한 음모론이 고개를 든 계기라 할 수 있다. 이는 직접적인 테러등의 위협을 유태인들에게 가하는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나 유태인들로 하여금 파워엘리트들과의 친교를 다급히 구축토록하는 또한 분산된 유태인들을 뭉치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이는 후에 프랑스 지식인들로 하여금 반유대주의에 제동을 걸고자 드레퓌스를 돕는 운동을 벌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이 이후 프랑스는 행동주의적 지식인의 전통(앙가주망)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의정서의 내용대로 유태계가 잉글랜드를 기원으로 하는 사해동포적 결사단체 프리메이슨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던 것은 사실이며 곧 독일-프랑스계인 일루미나티를 대체하는 리더십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의정서의 내용은 충분히 조작 가능한 수준이다. 자료적 가치로서 말미에 의정서를 올린다.) 이미 프랑스 혁명을 지원했던 유태계는 마침내 신대륙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게 되는데 만일 그들의 그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의 사제요 전위를 자처하는 미국의 국부들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준 힘은 보통 (앙샹레짐 시절인)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으로 알려져있으나 사실은 유럽의 금권을 쥐고 있던 은행가 로스차일드가가
제공했다고 보아야 한다. 프리메이슨 이상의 현현인 미합중국은 이때부터 유태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이러한 관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유태계는 서서히 프리메이슨 조직이 상층부를 차지해가던 영국등 서구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는데 그
결정적 계기는 바로 1,2차 세계대전이다. 특히 1차대전중 유태계 엘리트들은 일치하여 연합국을 지원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화학자 바이츠만이다. 열성적 시오니스트들의 배출지인 동구 벨로루시 출신(아슈케나지)인 바이츠만은 열성적인 민족주의자로서 연합군이 승리하게 되는 요인이었던 폭약원료 아세톤의 제조법을 개발하게 되고 그 댓가로 수상이 된 로이드 조지와 시나이 반도에 자신들의 조국을 건설하도록 하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약속은 벨푸어 선언으로 이행되어 바이츠만은 알려졌듯 이스라엘의 초대 건국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러한 장난같은 건국이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중동지방은 영국의 절대적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의였든 우연이든 그가 출생지를 등지고 영국의 편에 선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건국의 특성으로 이스라엘은 그후 인구당 이공계인력이 유별나게 많은 비율을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로스차일드의 영향력이 시간이 흘렀다고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다. 200년을 맞는 그들은 IFM 구제금융시기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의 주도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이 대재벌가는 사실 현재 세계 최고의 금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며 수에즈 운하 운영권의 장악등 스케일이 큰 거래등을 통해 단순히 금력뿐 아니라 정치적인 영향력도 넓혀왔다.
하지만 유태상의 특성상 대체로는 드러내놓고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으며 그 방향도 이상주의적인 면이 강하다. 음모론의 중요한 주제중 하나지만 이들은 과연 유형의 조직체를 가지고 움직이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들은 단지 소수민족으로서 이리저리 시달리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 민족의 사정과도 일치한다.
한편 이들 유태계들은 대공황의 조정자 모건재벌, 체이스 맨하탄 은행, 그리고 최근 영향력을 강화해가고 있는 골드만 삭스등 주요 지주회사, 투자은행을 장악한 부동의 파워이며 현재 세계를 이끌어가는 뉴욕 인구의 1/4(190만명)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유태인 앞에서 한민족이 잘났네하고 자랑하면 좀 우스운 일이다. ^^ 아직까지는?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 전체주의에 강한 적의를 보이는 동유럽 출신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의 프리메이슨 장악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에드워드 텔러, 브레진스키, 조지 소로스, 매들린 울브라이트등..
필자가 보기에 개인적으로, 지난 세기 더 이상의 전쟁을 막아준 요인은 크게 세가지다. 하나는 세계인들의 밥줄을
유태계 4대 곡물 메이저가 쥐고 있었다는 것. 둘째는 알프레드 마한의 제창으로 구축된 미국 세계함대의 분쟁 억지력, 셋째는 훗날 종속경제의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하는 유태계 경제학자 리카도의 비교우위 무역의 시행이다.
이중 상호간의 의존 시스템을 형성하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경제론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급진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나 미국은 이의 확산을 위해 오늘도 힘쓰고 있다.
결국 유태계는, 숱한 음모론과 (주로 그 금전적 냉혹함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마이너리티적 여건에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계 건설의 수단으로서 일찍이 프리메이슨의 가치에 눈떴다는 점 그리고 그 현현인 미국의 건국을 지원하고 일관되게 리더십의 형성을 위해 노력함으로서 그 자신의 안위를 떠나 세계가 발전의 관성을 분쟁으로부터 손상받지 않고 유지해오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2. 1 <칙훈서의 주요 내용>
제 1장
인간 본연의 심리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정치가는 교활해야 한다.
권리는 절대적인 힘이 있을 때만 과시할 수 있다.
강한자의 권리!
우리는 힘과 믿도록 만드는 일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 모든 정부들은 우리 지상 정부의 발 앞에 굴하게 될 것이다.
부패와 파벌을 이용하라.
대중 심리를 자극하고 이용하라.
제 2장
전쟁을 이용한 돈벌이!
유대인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근본
이름 뿐인 국가 원수와 보이지 않는 실세들
다윈의 진화론, 마르크시즘, 니체의 실존주의 등 파괴적 이론과 교육을 이용하여 멸망으로 유인하는 방법.
제 3장
권력 조직에 침투하여 혼란을 조성하고 권력남용을 유도하는 한편, 비권력 단체에 침투하여 권력층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하면 백발백중 전체가 멸망하게 된다.
빈민층을 이용하면 가장 강력한 무기를 획득할 수 있다.
깡패·폭력배 이용법
세계적인 경제 공황(유대 민족은 제외) 조성
'고이'의 생태와 그들을 꼭두각시로 다루는 법
*여기서 고이란..?
GOY로 유대인 측에서 본 이도교를 말한다고 하네여~
자세한 건 잘 몰라서...제 한계죠..--;
제 4장
전제 공화국을 세우는 단계
자유와 평등을 가르치는 신을 파괴하라.
모두 부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황금 만능주의가 횡행하고 인간미없는 차디찬 사회가 조성된면 우리가 칼을
빼어 세계를 통일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제 5장
절대군주주의 필연성
거짓말로 대중을 이끈다.
자본을 독점하라.
국민의 판단 능력을 조작하고 혼란스런 사회를 조성한다.
사회를 극단적 혼란상태에 빠뜨려 국민들이 강력한 전제 정부의 탄생을 갈망하도록 만든다.
제 6장
세상의 부를 독점한다.
각국의 자금자족 능력을 말살한다.
'고이'의 끝없는 물욕과 권력욕을 이용한다.
사치를 조장한다.
노동자들의 불복종·무질서 등을 이용해 생산의 원천을 봉쇄한다.
제 7장
군비 확장과 경찰력 증강을 꾀하라.
세계 각지에서 분규와 적대감을 조장하라.
몇몇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우리에게 반항할 때는 세계 전쟁을 도발시켜 굴복하게 한다.
제 8장
우리 조직원들은 정계·법조계·학계에 진출시켜 법 조항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과목은 경제학이며 우리의 정부를 경제학자들로 채운다.
충성하는 자는 요직을, 반항하는 본보기로 극형에 처한다.
제 9장
유대민족의 지상 국가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
행정당국의 깡패
젊은 기독교인들을 파멸시킨다
사법계의 주도권을 잡아 법조항을 우리 맘대로 해석한다.
저항 세력이 나타나면 그 인구 집중 지대를 폭발시켜 도시 자체가 사라지도록 할 수도 있다
제 10장
국민들에게 정치 허무주의를 심어주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데 전념하도록 만든다
무식한 국민에게도 선거권을 주는 의미
프리메이슨이 지도하는 천재적인 조직과 그 기능
자유주의 사상의 취약점
우리의 꼭두각시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여 내세운다.
언론인과 고위관료는 자신들의 부정 부패로 옭아매어 뒤에서 조종한다.
제 11장
우리는 양떼인 '고이'들에게 늑대가 되어 자유를 박탈한다.
우리는 비밀 조직 프리메이슨이며 고이를 앞잡이로 이용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세계 통치권을 주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했다.
제 12장
자유에 대한 프리 메이슨의 해석
언론을 장악하며 국민의 의식 구조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방법
언론을 지도하는 법
언론을 통하여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는 법
거짓말만 인쇄하라.
제 13장
전세계 국가들이 빚과 가난에 허덕이게 만들어 우리에게 공손한 하인 노릇을 하도록 만들라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그들이 오락·운동·음악등에 정신을 팔도록 만든다.
제 14장
유대인의 종교를 세계 유일의 종교로 만들어 세계인에게 유대인의 하느님을 신봉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금지시켜야 한다.
진보적이고 선진화된 나라에는 추잡하고 타락한 문화를 퍼뜨리고 조장한다.
제 15장
때가 되면 단 하루만에 세계 집권을 위한 혁명을 끝낸다
질서를 위해선 무자비한 처벌이 필요하다.
우리는 잔인해야 한다.
젠타일들은 멍청하므로 가축으로 취급하라.
*젠타일..?
유대인들이 말하는 이방인인뎁..특히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구 하네여~
제 16장
새로운 사조라는 미명하에 대학에서 우리의 지상 정부를 위해 교육시키고 절대 통치자에게 충성하도록 만든다.
출생 근본에 따라 개개인의 운명과 직업을 정한다.(정말 살 맛 안 난닷..--;)
역사를 조작하라.(불끈∼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닷!!)
제 17장
인간을 개조시켜 융통성 없고 기계적인 인간을 만든다.(이게 인간인가?)
성직자들을 없애고 교황청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유대민족의 왕이 우주의 참 교황이 되고 세계 교회의 교주가 되도록 만든다.
권력층을 농락하며 부패한 탐관오리가 되라.
제 18장
어용난동을 창출하는 한편 사이비 반정부 인사를 만들어 정부를 성토한다.
참 유대왕의 신병 보호 방법
대통령에 대한 비밀 호위 방법
범죄자들은 심증만 가지고도 구속한다.
제 19장
반정부 인사들을 제거하는 요령
역사 서적을 변조하여 순교자나 순국 선열들을 왜곡시킨다.
제 20장
누진 세금제도로 부자에게 과세를 많이 하여 자본을 없앤다.
젠타일은 외채로 인해 파산하도록 한다.
제 21장
부채와 세금 폭증의 이유
빚을 갚을 수 없는 이유
지상 정부 설립 후의 환전시장 운영 문제
제 22장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금이 있다
미래의 건전한 사회(지상 정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
제 23장
지상 정부 치하에서는 국민들에게 순종과 겸손의 미덕을 몸에 베개하기 위해 사치품의 생산을 감축한다.
소기업 생산 업체를 장려한다.
술먹고 추태 부리는 것을 엄금한다.
실업자 없는 사회를 만든다.
제 24장
유대왕의 근본
왕으로서의 훈련
왕족에 대한 대우 문제
왕과 3명의 후견인
왕의 숙명
유대왕은 도덕적으로 완전 무결해야 한다. ..
13. 이스라엘의 진짜 목적은 獨生이다...
이제까지의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정책은 과거 영국의 북아일랜드에서 취한 정책과 연관해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섬 자체는 원래 켈트족인 지금의 아일랜드공화국에 그 역사적 정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북 아일랜드(주도:벨파스트)는 아시다시피 영국의 영토로 거의 굳어져 버렸습니다.
영국은 과거에 아일랜드가 그들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지속적으로 자국민들을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한 북아일랜드에 이주시켰으며, 그후 아일랜드 공화국이 들어섰을땐 이미 북아일랜드주민의 과반수 이상을 영국계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줄곧 논의된 영국잔류를 묻는 국민투표자체가 문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결국 신페인당을 비롯하여 지금은
테러조직을 많이 이해되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저항이 촉발되었습니다. 투표결과는 당연히 영국계(신교계)가 다수를 점하고 있으니 해보나 마나였던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일랜드공화국도 어쩔 수 없이 서서히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로 바뀌고 있으니.......
이러한 예는 민족분규가 있었던 사건들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사라예보나 코소보로 잘 알려진 보스니아 인종청소, 루안다, 동티모르 등등. 다만 이런 곳에서는 그 행태가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나타났으며, 그 결과로 국제사회의 간섭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같은 경우 가자지구나 요단강 서안지역 등 팔레스타인 주 거주지역에 끊임없이 정착촌 건설을 시도해
왔고, 상당한 부분 성공해 왔습니다(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주거주지역을 조금씩 꾸준히 잠식해 왔음). 그 지역에
계속해서 자국 유대인들을 정착시켜 왔으며 이러한 정책은 끊임없이 마찰을 불러 일으켜 왔습니다(이러한 측면에서 중동사태의 원인은 거의 대부분 이스라엘측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음).
그러면서 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폭력으로 억압해 왔습니다.
아마 국제적인 관심이 없을 경우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과거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향을 떠나 아마도 이웃 아랍국가들에서 유랑생활을 해야 할 것이고 이미 그런 상태라고 합니다. 이 또한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자신들이 당했던 처지를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강요하는 꼴이니....
이런 상태가 계속 진행될 경우, 그 지역에서의 거주민 분포상 유대인의 우위가 확실해질 때, 이스라엘 정부는 생색내기식으로 잔류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책이 뭐가 있겠습니까?
돌과 화염병, 그걸로는 애초 상대가 되지 않겠죠...
바로 여성들의 출산율을 올리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를 많이 낳아서 종족을 유지하고 장래의 투사로 만드는 것 밖에 없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14. -Daum코리아닷컴동호회에 이글을 올립니다.-
프리메이슨, 세계최대의 비밀결사, 종교단체로 그 악마적 명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세계의 99%의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이란 단어에 대해 무척 생소해하고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에 대한 역사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이글을 쓰는 본인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음모는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드러내져 있습니다.
수많은 세계적 지도자들과 세계자본의 핵심가들, 세계적인 성자들은 모두 프리메이슨의 핵심적인 위치에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프리메이슨들은 고대부터 유럽을 본거지로 그들의 세력확장및 목표달성을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한때
그들의 세력이 위협받아 위태로운 풍전등화에 놓였던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마다 위기를 잘
넘겨왔고 오늘날에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암흑단체로 발전했습니다.
유럽을 본거지로 하던 프리메이슨은 신대륙의 발견 이후부터 미국이란 나라를 세워 그 미국을 자신들의 나라로
존속시키며 세계 강대국의 입지에 올려놓았고자본주의라는 프리메이슨의 작전으로 만들어진 세계경제, 정치의
유통구조로 자본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1차대전 이후 일본에 압력을 넣어 일본에 금본위제를 수락하게 하였고, 일본 경제는 파산하여 중일전쟁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중일전쟁은 2차대전의 전주곡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전해오는 고대의 수많은 기록들과 역사를
은폐하고 있으며 그를 밝히려고 하는 존재들은 가차없이 사회적으로 그 입지를 몰살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문명과 우리들이 모르는 미지의 세계, 지구 내부의 비밀등을 그들의 존립이 위협받기에 숨겨왔습니다.
실제로 지구는 수많은 문명의 멸망과 번영이 이미 현재의 역사가 쓰여지기 전에 존재해왔고 또 인간이 아닌 다른
지적 생명체들이 지구 내부에 존재해오면서 끊임없이 인간과 교류를 원하고 있지만 프리메이슨 조직은 미국이란
강대국과 그 강대국에 복종하는 수많은 나라들로 하여금 그들을 적대시하고 은폐하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문화의 단일화를 통해 인간의 개성과 창조적 능력을 제거시키고 있으며 동서양의 화합이라는 문화의 단결을
꾀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문화를 말살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세계문화의 단일화, 세계경제의 단일화, 더 나아가서는 세계정치의 단일화를 통해 세계단일정부를 구성하고
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세계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전락시키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다가올 우주문명으로 인한 자신들의 소멸을 막기위해 자신들이 장악한 지구로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자는 것에 있습니다.
우주의 수많은 문명은 지구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원하여 왔지만
번번히 프리메이슨에 조정당한 세계 강대국들의 은폐와 적대시하는 공격으로 그들의 요구를 묵살해 왔습니다.
우주문명의 존재가 조금이나마 그들의 실수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었을때 그들은 또 지구의 혼란을 막기위해 그러고 있다는 은어를 일반인들에게 퍼뜨림으로서 프리메이슨들의 음모를 철저히 은폐하고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의 세계 단일화 조짐의 예로는 수많은 것을 들수 있습니다.
유로연합의 탄생과 유로화의 등장은 유럽을 먼저 단일화시켜 그들의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프리메이슨의 음모이며 유로화는 곧 그들의 화폐인 달러화로 바뀔 것입니다.
또 끝까지 프리메이슨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에는
International Modentery Fund(IMF)의 경제혼란을 야기시켜 그들의 대통령으로 하여금 프리메이슨에 복종시켰습니다.
또 북한에서도 수많은 경제원조를 해주는 조건으로 프리메이슨에게 복종시켜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제의 업적인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들의 요구에 따른 대중에게 포상을 내린것 뿐이라는 것에
저는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미 동아시아는 일본과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까지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수많은 대국적 단체들이 이 지구상에는 무수히 존재하지만
이 프리메이슨은 그 이상의 단체로 세계장악을 꾀합니다.
전 인류는 이에 대해서 막아야 되지만 안타깝께도 세계의 문화, 경제, 정치, 언론, 군사등의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프리메이슨들은 우리의 이런 움직임을 예상하고 철저히 봉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으로 섞여있는 지구촌에 각 민족과의 전쟁으로 단합을 와해시키고 있으며 세계의 형태를 그들에게
대항못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고 그들이 하는대로만 따라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인류는 그들앞에서 빛을 잃은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의 상징, 삼각자와 컴퍼스 입니다. 미국 1달러의 화폐에는 G대신 눈이 들어가 있습니다. 호루스의 눈이라고 하는 눈 말입니다.
이 글을 다음동호회 코리아닷컴에 바칩니다. 인류가 다시 빛을 발해 그들에 대항하길 바라면서........
강석현(chkint@kornet.net)
13. 헤르메스와 장미십자가단
(내일 올리려 했는데 마침 들어오니 부탁이 있어 오늘 올립니다. 신비(?)하군요. 성당기사단은 다음에..)
"하늘이여 땅이여"라는 소설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장미십자가단(로젠크로이츠)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이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후예, 일루미나티, 장미십자가단, 연금술등 오컬트와 관련된 탐사에서
종국에 항상 만나고 마는 이름 바로 "헤르메스"다. 원래 이름은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트(또는 트리스메기스투스)인 이 전설상의 현인은 문자를 최초로 만들었으며 고대의 지혜를 기록했다 한다. 이 인물은 또한 이집트 신화의 토트라고 믿어지며 조금 더 현실적으로, 모세에게 가르침을 준 이집트 최고의 마법사라는 설도 있다. 하여튼
비학에서의 대사부는 단연 헤르메스다.
심지어 오늘날 대광명형제단(이집트에서 기원하며 인류의 갈길을 조정하는 초비밀결사로 알려진 '태백단'의 후예를 자처)이며 마담 블라바츠키의 신지학회도 자신들은 헤르메스의 정통성을 잇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건데 헤르메스(토트)는 완전히 후대에 날조된 가공의 인물이다. (물론 그의 후예들이 성전으로 떠받드는 "에메랄드 타블렛"이며 "피카트릭스" 역시) 이것이 그렇게 가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언론이 발달하지 않았었다는 점과, 극히 최근에 와서야 트릭들이 공개될 정도인 마술사 사회의 비밀주의적 성향때문이라고 할 수 있가. 하지만, 이 가공의 존재가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기에 그리고 근세사까지의 유럽을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하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초기 교부시대에서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의 비학 전통은 카톨릭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르네상스 시기 헤르메스가 받아들여진 여건은, 무언가 동떨어진 곳에다 신비적 적통을 두려는 문명 성장기의 일반적 성향(즉 유럽이 홀로서기를 하는 징조로 볼 수 있다.)과 당시 부활되던 신플라톤주의의 분위기때문이다. 이미 카톨릭의 삼위일체 사상이 그노시즘의 성인 발렌티누스가 헤르메스 비전으로부터 받아들인 신비주의적 트리니티 철학에서 비롯됨은 공공연한 비밀이다.(헤르메스의 뒷 이름 트리스메지스트는 또한 중동,북아프리카 지방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삼위일체 사상의 반영이다.)
또한 그노시즘(영지주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들은 예수를 고대의 비전을 터득한 수도자로 보며 기독교 교리를 신비주의에 입각해 해석하려 했다. (사해문서는 이들의 한 일파들이 남긴것이다.) 그노시즘은 그 당시 로마왕실로부터 공인된 초기 카톨릭(베드로파)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에는 안드레아와 요한의 후예를 자처하는 그노시즘에 대한 초기 기독교(베드로, 바울파)의 열등감의 소산으로 봄이 자연스럽겠다. 어쨌건 그노시즘은 그냥 사멸하지 않았는데 바로 동방정교에 뿌리를 내렸다. 또한 북아프리카 지방에서는 현지 토착 종교와 자연스레 융화하여 전 UN 총장 부트로스 갈리가 속했던 콥트파로 이행한다.(콥트교도는 이집트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박해를 받았던 공식적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비난하는 이른바 바빌론적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인성을 넓게 보아 신성과 같은 것으로 보며 지혜를 강조하고
수련에 있어 비교적 면을 띠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카톨릭은 피정, 묵상, 삼위일체, 로사리오등 당대에 배척했던 그노시스의 교리와 수행법을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수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점은 아일랜드 드루이드파와의 만남에서도 보이는데 오늘날 프리메이슨이 그들 의식의 형식을 차용하는 드루이드교들은 카톨릭의 전파에 드라마틱하게 개종하여 전유럽에 걸친 복음의 전파에 헌신했다. 현 아일랜드인들인 이들은 수도원과 선교사 활동의 전신이 되었으며 바티칸을 크게 고무시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황으로 손꼽히는 그레고리우스는 이들에 대한 로마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동기에서 선교사가 되었을 정도다. 그리고 이 드루이드 전통속에서 배출된 한 사람이 훗날 모든 교황을 구체적으로 예언했던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같은 예언자인 말라키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동방정교와 카톨릭이 갈라선 것은 성상숭배 문제때문이었다. 내면적 진리를 중시하고 맹목을
경계하여 베드로를 경계했던 안드레아와 요한의 후예를 자처하는 동방정교측은 어떤 대상물을 두고 선교를 하는
것이 교리의 원뜻에 어긋난다는데 강경한 입장을 내세웠고 이에 대해 서방카톨릭은 현실과의 타협을 주장하며
의지를 관철하려 했다. 결국 이 둘은 갈라서게 되는데 이때부터 동방정교는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뜻인 Orthodox라는 명칭을 내세운다.
그런데 정교는 이후 몇가지 실수 아닌 실수를 한다. 이들은 지방 토착 종교에 너무 관용적 태도를 보인 나머지 동구 산악지방의 애니미즘적 풍습을 근절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후에 빈번히 나타난 흡혈귀와 늑대인간 사건등의
불미스러운 사건의 단초가 된것이다. 애니미즘과 토착신앙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이와는 반대로 강력한 이교
억제정책을 편 카톨릭은 그러한 자잘한(?)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한 반면에 인류역사상 큰 오점이 될 일을 남기니
그것이 마녀사냥이다.
또한 동방정교는 예수의 교리중 박애보다 지혜와 진리에 중점을 두어 오늘날까지고 발칸반도에서 말썽이 되는
민족주의를 교화하지 못한다. 사실 이러한 성격이 군주들과 큰 마찰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마녀사냥은 오늘날도 일방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는 서구가 훗날 세계를 지배하는 한 원동력이 된 절대주의적 태도로의 이행을 도운것이 사실이다. 종교건 과학이건 인권이건 맹신을 하고 모든 것을 바치는 태도.. 어쨌건 이런 저런 이유로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의 전도지를 장악한 비잔틴에 대해 서방카톨릭이 멸시하고 우월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며 여기서 동방정교측의 서방에 대한 뿌리깊은 악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십자군 원정 이후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두 교파는 서로 화해하기 시작했는데 알다시피 카톨릭의 이러한 행보는 동방정교에만 그치지 않고 여타종교에도 시도되고 있다. 이를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라고 부르는데 기독교 근본주의측에서는 이것이 사탄적 뉴에이지 음모에 카톨릭이 가담한 것이라 비난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대부분의 음모론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어떤 연관을 상상해보는데 그것은 바로 파티마 예언과 교황청의 비밀문서이다. 사실 파티마의 예언은 후에 수녀가 된 여자아이들의 접신장면을 촬영한 필름이 너무 기묘하여 심리학자가 아닌한 합리적 설명은 힘들다. 하지만 이들이 전했다는 것 그리고 교황이 읽고 충격을 받았었다는 비밀문서의 내용을 추정해볼까 한다. 나는 이것이 종교간 통합에 대한 일종의 강한 협박의 내용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이는 직접적 연결을 맺으면 우습겠지만 프리메이슨의 이상과 일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현 교황이 카톨릭의 어느 시대보다 타종교에 대해 포괄적이고 반성적 태도를 보임은 주목할 만한다. 그리고 그가 현대 프리메이슨의 주도적 역할을 취하고 있는 폴란드계라는 점 역시 묘한 시사를 준다.
얘기가 잠시 샜는데, 헤르메스의 가공된 신화는 오늘날처럼 언론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사실로 굳어버린다. 이후 많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이국적인 고대의 비전 특히 이집트에 두기 시작한다. 이것이 좀
유별났던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농경민족적 특징때문인지 특히나 이집트에 강한 동질성을 느꼈는데 이는 꾸준히 이어져 내려와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벌과 오벨리스크와 로제타석의 탈취, 스핑크스에 대한 집착
그리고 수년전 지어진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모양 특별실등 프랑스의 이집트 선호는 이루 다 들 수 없을 정도다. 덧붙인다면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발표회를 갖기 좋아하는 디오르나 라반등 디자이너에서 장 미셀 자르등 컴퓨터 음악가까지..
하여튼 프랑스 대혁명의 규준을 "모든것을 넘어서 있는 존재"에 둔것은 바로 이집트의 비전을 가리킨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헤르메스적 전통의 계보에 나타나는 흥미로운 인물이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다. 그의 이름때문에 보통 장미십자가단이라고 번역되나(심지어 미국과 러시아에서도 각각 로지크로스 또는 로지크루시안등으로 소개되면서 이런 오해가 생겼다) 사실 그것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역사적 의의가 있는 그의 성명서는 당시 유럽에서 큰 충격을
일으켰는데 수많은 비밀결사가 조직되는 붐에 일조를 했다. 하지만 다소 맥 빠지게도 그 역시 완전한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성명서만은 중요한데 이것의 실작성자는 아마도 프랜시스 베이컨일거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설이나 이도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 진위야 어쨌건 간에 로젠크로이츠의 성명서는 오늘날까지도 여타 문명이 모방하기 힘들어하는 서구의 독특한 전통의 도화선이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학제간 협동'(Interdiciplenary
study)이다. 당시 막 전문화가 진행되던 때 이 성명서의 작성자는 두 분위기 즉 학문을 과시의 수단으로 삼아가던
신소피스트들과 저마다 전문화의 벽안에서 갖혀가던 길드조직 모두에게 목적성으로의 회귀를 촉구했다.
그는 학문은 "목적"을 가지며 그 목적을 위해 서로 협동해야 함을 유럽인들이 사족을 못 쓰는 신비적인 배경속에
역설한다. 이 이후 서구는 학제간 협동이라는 장점으로 각 학문 연구자들간의 끊임없는 대화와 정보교환, 인적교환을 통해 여타문명을 압도하는 지적생산성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헤르메스 전통의 직접적 계승자들은 역시 연금술사, 마법사들이다. 이들이 근대실험과학(특히 화학)의 형성에 기여한 것 역시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는데 첫째 이들은 사변에만 빠져있지 않았다. 비록 헛된 환상에 빠진
면이 있었지만 이들은 박쥐똥, 독수리 발톱등을 수집하던 최초의 매니악들이요 그것들을 직접 끓이고 말리고 하던 실험가들인 것이다. 지금의 용어로 하자면 오타쿠들인 셈이다. 또한 점성술 별자리등을 보던 것 또한 새로운
세대인 과학자 집단과 실재론적 태도에 있어서 유사성을 가진다. 근세에 있어서도 이들은 SFX의 선조("달세계 여행"을 제작한 멜리에르)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이들은 비합리의 극단에서 전혀 다른 것을 눈뜨곤 하는데, 즉 질적사고의 끝에서 양적사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질서에 대한 탐구에서 수학의 가치를 자각한것이다. 이들중 첫 세대이자 마지막 세대가 케플러와 뉴튼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 역시 수십년에 걸친 조사의 결과 뉴튼을 마지막 오컬티스트라 단언했을 정도이니.. 이러한 사정이
서구사가들이 비록 외형적으로는 도태되었지만 과학의 탄생에 있어서 오컬트의 공로를 인정하는 이유다.
동양이 좀 더 미쳤었다면 실험화학은 탄생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최무선도 그런 사람이었고
14. 영화 <진주만> 속에 숨은 ‘미국의 음모’
제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고립주의적 국민정서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영국이 독일 공습에
초토화되고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계속되자 루스벨트는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문 제는 개입 명분이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 참여의 명 분을 찾기 위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알면서도 기다렸고,
더 나아가 서 이를 유도했다는 것이 소위 ‘음모론’의 핵심이다.
피츠버그대 도널드 골드스타인(Donald Goldstein) 교수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재난이 필요했다”며 “그것도 작은 피해가 아니라 큰 피해가 필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의 대공습으로 2,433명의 미국인이 죽고 많은 군함 과 비행기가 박살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큰 피해라고
할 수 있다. 해군 출신 언론인 로버트 스틴네트(Robert Stinnet)는 많은 비공개 자 료와 인터뷰를 인용한 그의 저서 <거짓의 날(Day of Deceit)>에서 루 스벨트 대통령과 참모들이 공습 전 하와이 주변 해상 정찰을 중지시 켜
일본의 대규모 공격을 유도했다고 쓰고 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일 양국은 전쟁이 있은 지 60년이 지난 오늘 날 세계 1·2강대국이 되어 21세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진 주만과 관련 또다른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월트디 즈니가 만들어
지난 5월 25일 개봉한 영화 〈진주만〉이 흥행에 관계 없이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 런 음모론이 작용했는지 영화는 개봉 첫 주 흥행 실적 1위를 기록했 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패권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최근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 적으로 부터의 미사일에 대한 방어, 즉 MD체제이다. 그러나 여건이 호의적이 지만은 않다. 지난 5월 제퍼즈 상원의원의 공화당 탈당으로 상원의 통 제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갔고 우호적인 것으로 기대했던
NATO의 반 응 또한 신통치 않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국민의 반응이다. 탈냉전 시대의 미국인은 이제 적이 사라진 마당에 무슨 미사일 방어냐고 정부에 대해 반문하 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그 돈을 의료보험과 교육에 더 할당하라고 요 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봉된 〈진주만〉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어설프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으로 평가됐다. 주부가 빨래를 널고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한가한 일 요일의 공습 장면은 미국인의 감정을 한껏 자극했다. 일본계 시민연맹 (JACL)이 “반아시아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친MD 주창자인 안보정책연구센터(CSP)의 가프니 프랭크 소장이 “영화 상영 중 MD 배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쯤 에서 이미 ‘진주만 음모론’의 실체가 느껴질 만하다.
도덕적 기준에 치우치는 음모론으로 냉엄한 현실을 보는 것은 적합하 지 않다. 진주만 공격은 전쟁 종반을 맞이한
일본의 어쩔 수 없는 선 택이고, 영화 〈진주만〉은 ‘실리우드’(실리콘 밸리+할리우드)라는 미국의 문화적 패턴의 확산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다만 〈진주만〉을 보면서 당혹스러웠던 점은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인 식 문제였다. ‘미개한 아시아인들을 개조’하려던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여 미국 전함의 침몰에 환호를 보낼 수도 없고, ‘미개한 황인 종’에게 영토를
유린당하자 반격으로 일본을 대대적으로 공습하는 복수 장면에 박수를 보낼 수도 없었다.
진주만 공격이나 MD 배치는 음모이론을 넘어서 힘을 추구하고 힘이 부딪히는 국제정치의 현상이다. 우리는 국가
이익을 위하여 얼마나 단 합된 정신으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영화 〈진주만〉의 포성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그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김정열/조지 메이슨대 객원연구원 kimjy21@simmani.com〉">kimjy21@simmani.com〉
14. 아인슈타인과 시오니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원자폭탄을 탄생시키는데 일조를 한데 대해서 상당한 자책감을 느꼈다고 하며, 이차대전후에는 시온주의자들의 압력과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시온주의자들의 토론회에 참석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본의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시온주의자들은 매우 노골적이고 끊질기게 그를 이스라엘건국에 이용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심지어 그에게 대통령직을 건의할 정도로).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유대인만의 단독정부수립에는 반대하고 아랍(즉 팔레스타인)도 그 지역에 대해 당연히 권리가 있으므로 정권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Einstein, The Life and Times" Ronald W. Clark, 1971)
"Out of my later years"라는 말년의 자서전에서 아인슈타인은 이스라엘의 건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답니다.
"I should much rather see a reasonable agreement with the Arabs on the basis of living together, than the
creation of a Jewish state".
또한 그즈음에 이르러 아인슈타인은 Dr. Shahak(자신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죽음 및 고문 등에서 이스라엘내의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옹호하고 시온주의자로 이루어진 권위주의적 이스라엘정부 및 정치선동에 맞섰다고 함)처럼 행동하였다고도 한다.
*우연히 유즈넷뉴스그룹에 글을 올릴 일이 있어서 데자뉴스에 접속했는데, 마침 팔레스타인문제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 그런데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대한 글이 몇 개 올라와 있었구 내용은 대충 위와 같았습니다. 출처는 확실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5. 프리메이슨 조직들의 상징물
7. 프리메이슨 조직들의 상징물
왼쪽부터 명명하자면
청색랏지(Blue Lodge), 쉬리너(Shriner), 스카티쉬 의식(Scottish Rite), 템플기사단(Knight
of Templar), 카운슬(협의회, the Cryptic Council(Mason) ; The Council of Royal and
Select Masters), 로열 아치 지부(Royal Arch Chapter), 그로토(Grotto), 드몰레이(DeMolay), 동방별단(The Eastern Star), 욥의 딸들(The International Order of Job's
Daughter), 무지개소녀단(The International Order of Rainbow for Girls)
그외에도 '말타 기사단('카톨릭'과 연계된 메이슨 조직)', '나일의 딸들', '국민체류단(The
National Sojourners)', '모카나의 딸들', '적십자단', '레바논의 백향목들', '참된 친족(True
Kindred)', '여성 동방기사단', '세계사회단' 등을 비롯하여 언급하지 않은 소규모의 기타 종단들이 있다.
참고 사이트: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cafe.daum.net/hanfu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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