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
사부인이 타계한 지 달포 남짓 지났을 때, 사돈마저 뒤따르듯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아내,
“사돈이 사부인을 무척 사랑하셨나 봐요, 그토록 급히 뒤 따라 가신 걸 보면”
전기밥솥이 수명을 다했다. 중간에 패킹을 한번 교체했을 뿐, 지금까지 탈 없이 제 할일 다해오던 밥솥이다. 가계부를 들추어보던 아내는 구입한지 8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아쉬워한다.
“아직 2년은 더 사용해야하는데...”
우리 집에 들어온 전자제품에 대한 아내의 사용 연한은 최소 10년이다. 그러니 8년 만에 숨을 거둔 밥솥은 아쉬울 수밖에 없겠다. A/S센터에 문의했더니 수리비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하여,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쿠첸’으로 할까. 아니면 이참에 ‘쿠쿠’로 바꾸어볼까? 또 6인용으로 할까. 10인용이 나을까? 아내와 나 두 사람만 살고 있으니 6인용이면 적당하다싶었지만 아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아이들이 오면요?“
미국에 자리 잡은 딸네 가족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부부와 두 아들의 가족을 합하면 9명이다. 그러니 10인용이 정답이다.
들고 오기에는 버겁고 매고 올 수도 없는 밥솥의 무게. 승용차가 없으니 택시를 불러 싣고 와야 한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밥솥 사러가야 하니 차 좀 가져오라고... 아들은 쉬는 날 들어올 테니 그때 같이 보러가잔다.
토요일, 약속대로 아들이 왔다. 그런데 제 엄마와는 아무 의논도 없이 밥솥을 아예 사들고 왔다. 연한 검정색의 밥솥은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10인용이다. 짐작하건데, 쉬는 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놀다 가니 10인용쯤은 되어야겠다고 미루어 짐작한 모양이다.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있던 아내가, 사용방법을 전수하겠다며 계량컵을 들고 왔다.
“자 보세요. 쌀 한 컵이면 물도 한 컵, 쌀 두 컵이면 물도 두 컵, 쌀을 방금 씻었다면 추가로 물을 더...”
아내의 설명은 진지했지만 나는 관심이 없다.
“그걸 왜 배워야하지?”
“내가 아파 누우면 굶길 거예요?”
“마트에 가면 햇반도 있고 즉석국도 많다더라”
“나 홀로 여행을 떠나면? 그 것도 아주 먼 여행을 떠나면 당신 혼자 남아 어쩔래요?”
“쓸데없는 소리”
“사람 일은 알 수 없잖아요”
“내가 당신 혼자 보낼 것 같아?”
“사돈처럼?”
“그런 염려는 내려놓으세요. 자고로 여인들의 수명이 남자들 보다 10년쯤 더 긴 것이 우리 집안 내력이니까. 그러니 내가 떠난 뒤에도 당신은 10년은 더 살 거야”
“10년이라... 그 10년, 두 토막으로 나누어 절반은 당신에게 드릴게요. 그럼 같이 떠나겠죠?”
마치 대단한 해결책이라도 찾은 듯이 흡족해 한다.
애별리고(愛別離苦)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 겪는 여덟 가지 고통 중,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을 말한다. 그 아픔이 오죽했으면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표현했을까. 본디 자식을 잃은 슬픔을 뜻하지만 부부 사이도 다를 바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렇게 아프다. 그래도 남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야할까? 아니면...
베란다의 군자란이 활짝 피어 웃고 있다. 그 꽃 위에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눈부신 이른 가을날 오후 한 때, 아내와 나는 지금 작은 밥솥 하나가 불쑥 내민 사랑과 이별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 꿈이 화서지몽(華胥之夢)일까 백일몽(白日夢)일까.
생텍쥐베리가 말했다.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첫댓글 밥솥을 보면 식구 수를 안다는데 선생님은 아직까지 대 식구를 거느리고 계시는군요.
나이를 부부간에 서로 나누어 가져도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부의 금슬이 깊으면 비슷하게 따라가시나 봅니다. ^^
저도 아이들 다 밖으로 내보내고 나니 아내와 둘이라서 3인용 밥솥이면 대충 만족하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