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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cavekkhati 反省 reflection
D22 大念處經
(서른두 가지 양상에 대한 혐오)
seyyathā pi, bhikkhave, ubhato-mukhā muto'ī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ṃ: sālīnaṃ vīhīnaṃ muggānaṃ māsānaṃ tilānaṃ taṇḍulānaṃ,
tam enaṃ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 ti
— evam 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 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 taṃ pūran-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294] nahāru-atthī aṭṭhi-miñjā
vakkaṃ hadayam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taṃ sema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o siŋghāṇikā lasikā muttan,' ti.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양쪽 입구로 육도, 적미, 강낭콩, 완두콩, 기장, 백미와 같은
여러 종류의 곡식으로 가득 채운 푸대 자루가 있는데 그것을 열어서 사람이 눈으로
‘이것은 육도, 이것은 적미, 이것은 강낭콩, 이것은 완두콩, 이것은 기장, 이것은 백미라고 관찰하듯,
수행승은 이 몸을 이와 같이
‘이 몸속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톱, 이빨, 피부, 살, 근육, 뼈, 골수, 신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폐,
창자, 장간막, 위장, 똥, 뇌수,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임파액, 침, 점액, 관절액,
오줌이 있다.’라고 발가락 위에서부터 머리카락 아래에 이르고 피부의 표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오물로 가득한 것으로 개별적으로 관찰한다.
Iti ajjhattaṃ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ajjhatta-bahiddhā vā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몸에 대해 몸을 안으로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몸을 밖으로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몸을 안팎으로 관찰한다.
Samud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vaya-dhammānupassī vā kāyasmiṃ viharati,
samudaya-vaya-dhammānupasī vā kāyasmiṃ viharati.
또는 몸에 대해 생성의 현상을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소멸의 현상을 관찰하거나,
몸에 대해 생성과 소멸의 현상을 관찰한다.
'Atthi kāyo,' ti vā pan'assa sati paccupaṭṭhitā hoti yāvad-eva ñāṇa-mattāya patissati-mattāya.
Anissito ca viharati na ca kiñci loke upād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단지 그에게 순수한 앎과 순수한 새김이 있는 정도만큼 ‘몸이 있다.’라는 새김이 이루어진다.
그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와 같이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한다.”
M118 身至念經
(4) 32가지 몸의 부위에 대한 관찰
7. 또한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 몸을 이와 같이
‘‘이 몸속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톱, 피부, 살, 근육, 뼈, 골수, 신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폐, 창자,
장간막, 위장, 배설물, 뇌수,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임파액, 침, 점액, 관절액, 오줌이 있다.’
라고 발가락 위에서부터 머리카락 아래에 이르고 피부의 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오물로 가득한 것으로 관찰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nahāru (sī. syā. kaṃ. pī.)]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7.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 ‧ 살갗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염통 ‧ 간 ‧ 근막 ‧
지라 ‧ 허파 ‧ 창자 ‧ 장간막 ‧ 위 속의 음식 ‧ 똥 ‧ 쓸개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굳기름 ‧ 눈물 ‧
[피부의] 기름기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라고.
예를 들어 수행승들이여, 양쪽 입구로 육도, 적미, 강낭콩, 완두콩, 기장, 백미와 같은
여러 종류의 곡식으로 가득 채운 푸대 자루가 있는데,
그것을 열어서 사람이 눈으로
‘이것은 육도, 이것은 적미, 이것은 강낭콩, 이것은 완두콩, 이것은 기장, 이것은 백미라고 관찰하듯
‘‘Seyyathāpi, bhikkhave, ubhatomukhā putoḷi [mūtoḷī (sī. syā. kaṃ. pī.)] pūrā nānāvihitassa dhaññassa,
seyyathidaṃ – sālīnaṃ vīhīnaṃ muggānaṃ māsānaṃ tilānaṃ taṇḍulānaṃ,
tamenaṃ cakkhumā puriso muñcitvā paccavekkheyya –
‘ime sālī ime vīhī ime muggā ime māsā ime tilā ime taṇḍulā’ti;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가마니에 여러 가지 곡물,
즉 밭벼, 보리, 녹두, 완두, 참깨, 논벼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 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반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다.'라고.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Tassa ev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ye gehasitā sarasaṅkappā te pahīyanti.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Evampi, bhikkhave, bhikkhu kāyagatāsatiṃ bhāveti.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재빠르게 일어나는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생각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고 고요해지고 하나에 고정되어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paccavekkhati : [pati + ava + ikkh + a] considers; reviews; contemplates.
Paccavekkhati [paṭi+avekkhati] to look upon, consider, review, realise, contemplate,
see M i.415; S iii.103; 151 sq., iv.111, 236 sq.; J v.302; Vbh 193, 194 (cp. Aiii.323);
Miln 16; PvA 62, 277; VvA 6, 48.
解釋: paccavekkhati([paṭi對]+[avekkhati觀察]): 對...觀察
S51:20
‘‘Kathañca, bhikkhave, bhikkhu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viharati?
비구들아, 또 어떤 것이 비구가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무는 것인가?
<S35:127>
Idha,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viharati.
비구들아, 여기 비구는 ‘이 몸에는 머리카락 몸털 손발톱 이빨 피부, 살점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대장 소장 위 똥,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비게,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고
이 몸을 발바닥부터 위로, 머리카락부터 아래로 피부에 둘러싸여
여러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다고 반조한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비구는 ‘아래처럼 위로, 위처럼 아래로’ 머문다.
A10:60
‘‘Katamā cānanda, asubhasaññā?
Idhānanda,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ā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Iti imasmiṃ kāye asubhānupassī viharati.
Ayaṃ vuccatānanda, asubhasaññā.
6. "아난다여, 그러면 어떤 것이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인식인가?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늑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
똥·쓸개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이처럼 이 몸에 대해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아난다여, 이를 일러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인식이라 한다."
隨念 우다이 경(A6:29) 初/2/3禪. 光明想. 不淨. 死體. 제4禪. 念行(正念正知-행,주,좌,와..)
Kati nu kho, ānanda, anussatiṭṭhānānī’’ti?
‘‘Pañca, bhante, anussatiṭṭhānāni. Katamāni pañca?
아난다여,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는가?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습니다. 무엇이 다섯 인가요?
1.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제2선을, ...제3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지으면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됩니다.
2. ...광명상(光明想)을 마음에 잡도리 합니다.
'낮이다.'라는 인식에 adhiṭṭhāti집중합니다.
낮에 [광명을 본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보고],
밤에 [광명을 본 것]처럼 낮에도 [광명을 보는] 인식에 집중합니다.
이처럼 열려있고 덮이지 않은 마음으로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빛을 가진 마음을 닦습니다.
...지와 견을 획득하게 됩니다.
3.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려싸여 있고 여러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paccavekkhati반조합니다.
즉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게 됩니다.
4.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프르게 되고 문들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upasaṃharati비추어 봅니다.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이 뿌리 뽑게 됩니다.
5.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에 들어 머뭅니다. ...
여러 가지 요소[*界]를 꿰뚫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다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가 있습니다.
‘‘Sādhu, sādhu, ānanda!
Tena hi tvaṃ, ānanda, idampi chaṭṭhaṃ anussatiṭṭhānaṃ dhārehi.
Idhānanda, bhikkhu satova abhikkamati satova paṭikkamati satova tiṭṭhati satova nisīdati
satova seyyaṃ kappeti satova kammaṃ adhiṭṭhāti.
Idaṃ, ānanda, anussatiṭṭhānaṃ evaṃ bhāvitaṃ evaṃ bahulīkataṃ satisampajaññāya saṃvattatī’’ti.
7.장하고 장하도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것을 여섯 번째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로 호지하라.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마음챙겨서 나아가고 마음챙겨서 물러나고 마음챙겨서 서고 마음챙겨서 앉고
마음챙겨서 눕고 마음챙겨서 업무를 처리한다.
아난다여, 이것이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이니,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공부]지으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게[正念正知] 된다."
M61
109. ‘‘Taṃ kiṃ maññasi, rāhula, kimatthiyo ādāso’’ti? ‘‘Paccavekkhaṇattho, bhante’’ti.
‘‘Evameva kho, rāhula, paccavekkhitvā paccavekkhitvā kāyena kammaṃ kattabbaṃ,
paccavekkhitvā paccavekkhitvā vācāya kammaṃ kattabbaṃ,
paccavekkhitvā paccavekkhitvā manasā kammaṃ kattabbaṃ.
8. "라훌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의 용도는 무엇인가?"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라훌라여, 그와 같이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몸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말의 행위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반조하면서 마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
[* 身業.口業.意業 X 前.中.後 <時制/返照> 반조 = 自利‧利他 ? 1. X → … 2. O → … ]
*몸
Yadeva tvaṃ, rāhula, kāyena kammaṃ kattukāmo ahosi, tadeva te kāyakammaṃ paccavekkhitabbaṃ –
‘yaṃ nu kho ahaṃ idaṃ kāyena kammaṃ kattukāmo
9. "라훌라여,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이제 몸으로 행위를 하려고 한다.
idaṃ me kāyakammaṃ attabyābādhāyapi saṃvatteyya,
parabyābādhāyapi saṃvatteyya, ubhayabyābādhāyapi saṃvatteyya –
akusalaṃ idaṃ kāyakammaṃ dukkhudrayaṃ [dukkhundrayaṃ, dukkhudayaṃ (ka.)] dukkhavipāka’nti?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Sace tvaṃ, rāhula, paccavekkhamāno evaṃ jāneyyāsi –
‘yaṃ kho ahaṃ idaṃ kāyena kammaṃ kattukāmo
idaṃ me kāyakammaṃ attabyābādhāyapi saṃvatteyya,
parabyābādhāyapi saṃvatteyya, ubhayabyābādhāyapi saṃvatteyya –
akusalaṃ idaṃ kāyakammaṃ dukkhudrayaṃ dukkhavipāka’nti,
evarūpaṃ te, rāhula, kāyena kammaṃ sasakkaṃ na karaṇīyaṃ [saṃsakkaṃ na ca karaṇīyaṃ (ka.)].
라훌라여, 만일 네가 그렇게 반조하여
'내가 이제 몸으로 행하고자 하는 이 몸의 행위는
나도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될 것이다.
이 몸의 행위는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알게 되면,
너는 그와 같은 몸의 행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M76
Seyyathāpi, sandaka, purisassa hatthapādā chinnā;
tassa carato ceva tiṭṭhato ca suttassa ca jāgarassa ca satataṃ samitaṃ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ti, udāhu paccavekkhamāno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ti?
‘‘Na kho, bho ānanda, so puriso satataṃ samitaṃ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 ti.)
[(chinnāva hatthapādā,) (sī. syā. kaṃ. pī.)]
Api ca kho pana naṃ paccavekkhamāno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ti.
"산다까여, 이에 대해서는 비유를 들겠습니다.
여기서 어떤 지자들은 비유를 통해 말의 뜻을 완전하게 알 것입니다.
산다까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팔과 다리가 끊어졌다고 합시다.
그의 팔과 다리는 걸어갈 때에도 서 있을때에도 잠잘 때에도 깰 때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끊어져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반조할 때 '나의 팔과 다리는 끊어졌다.'라고 압니다.
‘‘Evameva kho, sandaka, yo so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carato ceva tiṭṭhato ca suttassa ca jāgarassa ca satataṃ samitaṃ
(ñāṇadassanaṃ na paccupaṭṭhitaṃ – ‘khīṇā me āsavā’ti;) [(khīṇāva āsavā,)
(sī. syā. kaṃ. pī.)] api ca kho pana naṃ paccavekkhamāno jānāti – ‘khīṇā me āsavā’’’ti.
산다까여, 그와 같이 비구가 모든 번뇌를 부수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끊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이 되면
걸어 갈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깰 때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나의 번뇌는 멸했다.'라는 지와 견이 현전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반조할 때 '나의 번뇌는 멸했다.'라고 압니다."
M123
Seyyathāpi, ānanda,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Tatrāssa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Evameva kho, ānanda, yadā bodhisatto mātukucchiṃ okkanto hoti,
na bodhisattamātu kocideva ābādho uppajjati; sukhinī bodhisattamātā hoti akilantakāyā;
bodhisattañca bodhisattamātā tirokucchigataṃ passati sabbaṅgapaccaṅgaṃ ahīnindriya’nti.
Yampi, bhante…pe… idaṃpāhaṃ, bhante, bhagavato acchariyaṃ abbhutadhammaṃ dhāremi.
아난다여, 마치 아름답고 최상품이고 팔각형이고 아주 잘 절단되었고 맑고 투명하고 모든 구색을 다 갖춘
에메랄드가 있어, 거기에 푸른색이나 노란색이나 붉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 실이 꿰어져 있을 때,
그것을 눈있는 사람이 손에 올려놓고
'이 에메랄드는 아름답고 최상품이고 팔각형이고 아주 잘 절단되었고 맑고 투명하고 모든 구색을 다 갖추었구나.
거기에 푸른색이나 노란색이나 붉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 실이 꿰어져있구나.'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보살이 어머니의 태에 들었을 때에
보살의 어머니는 어떤 고통도 없었고 몸도 피로하지 않았고 편안했다.
또한 보살이 어머니의 태속에서 사지와 감각기관을 구족해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들었고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도 세존께 있었던 경이롭고 놀라운 일이라고 여깁니다."
M77
40. 우다인이여, 또한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길을 설했습니다.
그 길을 실천하는 대로 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252.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evaṃ pajānanti –
⑫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
29. "다시 우다이여, 나는 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이 꿰뚫어 알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닦음을 설했다.
‘이 나의 몸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이루어지고, 부모에 의해 생겨나고,
밥과 죽으로 키워지고, 무상하고, 떨어져 나가고, 닳아 없어지고, 부수어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식에 의존하고 그것에 묶인 것이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ṃ’.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분리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여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우다인이여, 예를 들어
에메랄드가 아름답고 품질이 좋고 팔면으로 잘 깎이고 투명하고 청정하고 일체의 모습을 갖추어,
거기에 푸른 색이나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 색이나 갈색의 실로 꿰뚫어져 있어,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손에 올려놓고
‘에메랄드가 아름답고 품질이 좋고 팔면으로 잘 깍이고 투명하고 청정하고 일체의 모습을 갖추어,
거기에 푸른 색이나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 색이나 갈색의 실로 꿰뚫어져 있다.’라고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Seyyathāpi, udāyi,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우다이여, 예를 들면 아름답고 최상품이고
팔각형이고 아주 잘 절단되었고 맑고 투명하고 모든 구색을 다 갖춘 에메랄드가 있는데,
거기에 푸른색이나 노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 실이 꿰어져 있다 하자.
그것을 눈 있는 사람이 손에 올려놓고
'이 에메랄드는 아름답고 최상품이고 아주 잘 절단되었고 맑고 투명하고 모든 구색을 다 갖추었구나.
거기에 푸른색이나 노란색이나 붉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 실이 꿰어져있구나.'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우다인이여,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길을 설했습니다.
그 길을 실천하는 대로 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이 나의 몸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이루어지고, 부모로부터 생겨나고,
밥과 죽으로 키워지고, 무상하고, 떨어져 나가고, 닳아 없어지고, 부수어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식에 의존하고 그것에 묶인 것이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evaṃ pajānanti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우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이 꿰뚫어 알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닦음을 설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분리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여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그렇게 해서 나의 많은 제자들은 곧바른 앎의 완성과 그 구경에 도달했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하여 많은 나의 제자들은 최상의 지혜의 완결과 완성을 성취하여 머문다."
.......
Seyyathāpi, udāyi,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k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k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kaṇikaṃ vā
‘sakaṇika’nti [sakaṇikaṅgaṃ vā sakaṇikaṅganti (sī.)] jāneyya,
akaṇikaṃ vā ‘akaṇika’nti [akaṇikaṅgaṃ vā akaṇikaṅganti (sī.)] jāneyya;
우다이여, 예를 들면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물에 비친
자신을 영상을 살펴보면서, 점이 있으면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으면 점이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anti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anti, vītarāgaṃ vā cittaṃ…pe… s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vā cittaṃ… s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vā cittaṃ… saṅ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anti.
우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도닦음을 설했다.
그들은 그렇게 행하여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대하여 꿰뚫어 안다.
즉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하여 많은 나의 제자들은 최상의 지혜의 완결과 완성을 성취하여 머문다."
M122
ime kho, ānanda, pañca kāmaguṇā yattha bhikkhunā abhikkhaṇaṃ sakaṃ cittaṃ paccavekkhitabbaṃ –
‘atthi nu kho me imesu pañcasu kāmaguṇesu aññatarasmiṃ vā aññatarasmiṃ vā āyatane uppajjati
cetaso samudācāro’ti?
15. "여기 비구는 매순간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라고 자신의 마음을 반조해야 한다.
Sace, ānanda,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ṃ pajānāti –
‘atthi kho me imesu pañcasu kāmaguṇesu aññatarasmiṃ vā aññatarasmiṃ vā āyatane uppajjati
cetaso samudācāro’ti,
evaṃ santametaṃ [evaṃ santaṃ (aṭṭha.)], ānanda, bhikkhu evaṃ pajānāti –
‘yo kho imesu pañcasu kāmaguṇesu chandarāgo so me nappahīno’ti. Itiha tattha sampajāno hoti.
아난다여, 만일 비구가 반조하는 도중에 '나에게 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 가운데
어떤 것에 대해 마음속에 흥분이 일어난다.'라고 꿰뚫어 알면,
그는 '나에게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탐이 제거되지 않았다.'라고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다.
M119
(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의 관찰
8. 또한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은 이 몸을 이와 같이
‘이 몸속에는 땅의 세계, 물의 세계, 불의 세계, 바람의 세계가 있다.’고 세계로서,
놓여있고 구성된 대로 관찰한다.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yathāṭhitaṃ yathāpaṇihitaṃ dhātuso paccavekkhati –
‘atthi imasmiṃ kāye pat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ū’ti.
8.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이 처해진 대로 놓인 대로 요소[界]별로 반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라고.
대중공사 경(A2:2:5) Adhikaraṇa-sutta
15. ‘‘Yasmiṃ, bhikkhave, adhikaraṇe āpanno [āpattāpanno (ka.)] ca bhikkhu codako ca bhikkhu
na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tasmetaṃ, bhikkhave, adhikaraṇe pāṭikaṅkhaṃ dīghattāya kharattāya vāḷattāya saṃvattissati,
bhikkhū ca na phāsuṃ [na phāsu (ka.)] viharissantīti [viharissanti (sī. syā. kaṃ. ka.)].
1. “비구들이여, 어떤 대중공사[諍事]에서건
계를 범한[犯戒] 비구와 훈계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반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래 끌게 되고 험악하게 되고 투쟁적으로 되어 비구들이 편안히 지낼 수 없을 것이다.
Yasmiñca kho, bhikkhave, adhikaraṇe āpanno ca bhikkhu codako ca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tasmetaṃ, bhikkhave, adhikaraṇe pāṭikaṅkhaṃ na dīghattāya kharattāya vāḷattāya saṃvattissati,
bhikkhū ca phāsuṃ viharissantīti.
비구들이여, 어떤 분쟁에서건 계를 범한 비구와 훈계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반조한다면
그것을 오래 끌지 않고 험악하지 않고 투쟁적이지 않아서 비구들이 편안히 지낼 것이다.”
‘‘Kathañca, bhikkhave, āpann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2. “비구들이여, 그럼 어떻게 계를 범한 비구가 자신을 잘 반조하는가?
Idha, bhikkhave, āpanno bhikkhu iti paṭisañcikkhati –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이렇게 자신을 잘 반조한다.
‘ahaṃ kho akusalaṃ āpanno kañcideva [kiñcideva (ka.)] desaṃ kāyena.
‘나에게 해로운 생각이 일어나서 어떤 점에 대해서 몸으로 잘못을 범했다.
Maṃ so [tasmā maṃ so (sī. syā.)] bhikkhu addasa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그런데 저 비구가 내가 해로운 생각이 생겨서 어떤 점에 대해서 몸으로 잘못을 범하는 것을 보았다.
No ce ahaṃ akusalaṃ āpajjeyy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na maṃ so bhikkhu passeyya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만일 내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저 비구가 보지 않았을 것이다.
Yasmā ca kho, ahaṃ akusalaṃ āpanno kiñcideva desaṃ kāyena,
tasmā maṃ so bhikkhu addasa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내가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저 비구가 본 것이다.
Disvā ca pana maṃ so bhikkhu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anattamano ahosi.
내가 잘못을 범한 것을 보고 저 비구는 마음으로 언짢아했다.
Anattamano samāno anattamanavacanaṃ [anattamanavācaṃ (ka.)] maṃ so bhikkhu avaca.
저 비구는 마음이 언짢아서 나에게 언짢은 말을 하였다.
Anattamanavacanāhaṃ [anattamanavācaṃ nāhaṃ (ka.)]
tena bhikkhunā vutto samāno anattamano [attamano (ka.)] ahosiṃ.
저 비구가 언짢은 말을 하자 나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Anattamano samāno paresaṃ ārocesiṃ.
그래서 언짢아하면서 나는 남들에게 그 사실을 드러내었다.
Iti mameva tattha accayo accagamā suṅkadāyakaṃva bhaṇḍasminti.
그러므로 마치 세금을 내어야 하는 사람이 죄를 범한 것처럼 내가 잘못을 범했다.’라고.
Evaṃ kho, bhikkhave, āpann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비구들이여, 계를 범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신을 잘 반조한다.”
‘‘Kathañca, bhikkhave, codak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3. “비구들이여, 그러면 훈계하는 비구는 어떻게 자신을 잘 반조하는가?
Idha, bhikkhave, codako bhikkhu iti paṭisañcikkhati –
비구들이여, 여기 훈계하는 비구는 이렇게 자신을 잘 반조한다.
‘ayaṃ kho bhikkhu akusalaṃ āpanno kiñcideva desaṃ kāyena.
Ahaṃ imaṃ bhikkhuṃ addasaṃ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No ce ayaṃ bhikkhu akusalaṃ āpajjeyya kiñcideva desaṃ kāyena,
nāhaṃ imaṃ bhikkhuṃ passeyyaṃ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Yasmā ca kho, ayaṃ bhikkhu akusalaṃ āpanno kiñcideva desaṃ kāyena,
tasmā ahaṃ imaṃ bhikkhuṃ addasaṃ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Disvā ca panāhaṃ imaṃ bhikkhuṃ akusalaṃ āpajjamānaṃ kiñcideva desaṃ kāyena anattamano ahosiṃ.
Anattamano samāno anattamanavacanāhaṃ imaṃ bhikkhuṃ avacaṃ.
Anattamanavacanāyaṃ bhikkhu mayā vutto samāno anattamano ahosi.
Anattamano samāno paresaṃ ārocesi.
Iti mameva tattha accayo accagamā suṅkadāyakaṃva bhaṇḍasminti.
Evaṃ kho, bhikkhave, codako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이 비구에게 해로운 생각이 일어나서 어떤 점에 대해서 몸으로 잘못을 범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보았다. 만일 이 비구가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내가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비구가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내가 본 것이다.
이 비구가 잘못을 범한 것을 보고 나는 마음으로 언짢아했다.
나는 마음이 언짢아서 이 비구에게 언짢은 말을 하였다.
내가 언짢은 말을 하지 이 비구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그래서 언짢아하면서 이 비구는 남들에게 그 사실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마치 세금을 내어야 하는 사람이 죄를 범한 것처럼 내가 잘못을 범했다.’라고.
비구들이여, 훈계하는 비구는 이와 같이 자신을 잘 반조한다.
‘‘Yasmiṃ, bhikkhave, adhikaraṇe āpanno ca bhikkhu codako ca bhikkhu
na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tasmetaṃ, bhikkhave, adhikaraṇe pāṭikaṅkhaṃ dīghattāya kharattāya vāḷattāya saṃvattissati,
bhikkhū ca na phāsuṃ viharissantīti.
Yasmiñca kho, bhikkhave, adhikaraṇe āpanno ca bhikkhu codako ca bhikkhu
sādhukaṃ attanāva attānaṃ paccavekkhati
tasmetaṃ, bhikkhave, adhikaraṇe pāṭikaṅkhaṃ na dīghattāya kharattāya vāḷattāya saṃvattissati,
bhikkhū ca phāsu viharissantī’’ti.
비구들이여, 어떤 분쟁에서건 계를 범한 비구와 훈계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반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래 끌게 되고 험악하게 되고 투쟁적이 되어 비구들이 편안히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분쟁에서건 계를 범한 비구와 훈계하는 비구 둘 모두 자신을 잘 반조한다면
그것은 오래 끌지 않고 험악하지 않고 투쟁적이지 않아서 비구들이 편안히 지낼 것이다.”
A10:44
Katame pañca dhammā ajjhattaṃ paccavekkhitabbā?
그러면 어떠한 다섯 가지 법을 안으로 반조해야 하는가?"
3. Codakena bhikkhave bhikkhunā paraṃ codetukāmena evaṃ paccavekkhitabbaṃ:
3. "비구들이여, 책망하는 비구가 남을 책망하고자 하면 이와 같이 반조하여야 한다.
"Parisuddha-kāya-samācāro nu kho'mhi,
parisuddhen'amhi kāya-samācārena samannāgato acchiddena appaṭimaṃsena,
saṃvijjati nu kho me eso dhammo, udāhu no" ti?
'나는 몸의 행실이 청정한가, 아닌가?
나는 훼손되지 않고 흠 없는 청정한 몸의 행실을 구족했는가, 아닌가?
이러한 법이 내게 있는가, 없는가?'라고.
A10:48
‘‘Dasayime, bhikkhave, dhammā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ā.
1.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열 가지 경우를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무엇이 열인가?"
2.
"① '나는 저열한 상태에 이르렀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② '내 생명은 남에게 달려있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③ '내 행동은 [재가자들과] 달라야 한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④ '내 마음은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⑤ '지혜로운 동료수행자들이 나를 자세히 살핀 다음 계행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는 않는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⑥ '내가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모든 것은 변해버리고 없어져 버린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⑦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좋은 업이건 나쁜 업이건, 업을 지으면 나는 그것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⑧ '내가 무엇이 되어있건 낮과 밤은 지나가버린다.'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⑨ '빈 집에 거주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가, 아닌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⑩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증득했는가?
그래서 나는 죽을 때 동료 수행자들이 물으면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것인가?'라고
출가자는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출가자는 이러한 열 가지 경우를 끊임없이 반조해야 한다.
다섯 가지 구성요소 경(A5:28)
... <4종禪>...
‘‘Puna caparaṃ,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10.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반조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Seyyathāpi, bhikkhave, aññova aññaṃ
[añño vā aññaṃ vā (sī.), añño vā aññaṃ (syā. kaṃ.), añño aññaṃ (?)] paccavekkheyya,
ṭhito vā nisinnaṃ paccavekkheyya, nisinno vā nipannaṃ paccavekkheyya.
11.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살펴보는 것과 같다.
그는 서서 앉아 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하고, 앉아서 누워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한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Ariyassa, b23q1hikkhave, pañcaṅgikassa sammāsamādhissa ayaṃ pañcamā [pañcamī (sī.)] bhāvanā.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반조의 표상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삼매 수행 가운데 다섯 번째 수행이다."
A5:89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은 유학의 비구를 망가지게 한다.
Kammārāmatā, bhassārāmatā, niddārāmatā, saṅgaṇikārāmatā, yathāvimuttaṃ cittaṃ na paccavekkhati –
ime kho, bhikkhave, pañca dhammā sekhassa bhikkhuno parihānāya saṃvattanti.
[Ime kho, bhikkhave, pañca dhammā samayavimuttassa bhikkhuno parihānāya saṃvattanti.]
[A5:149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은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비구를 망가지게 한다.]
A5:96
Idha, bhikkhave, bhikkhu
atthapaṭisambhidāpatto hoti, dhammapaṭisambhidāpatto hoti, niruttipaṭisambhidāpatto hoti,
paṭibhānapaṭisambhidāpatto hoti, yathāvimuttaṃ cittaṃ paccavekkhati.
Imehi kho, bhikkhave, pañc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nacirasseva akuppaṃ paṭivijjhatī’’ti.
義無碍解, 法無碍解, 詞無碍解, 辯無碍解을 얻었고,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한다. -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부동을 꿰뚫는다.
A5:96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할 일이 적고 분주하지 않으며 검소하고 생활필수품에 대해서 잘 만족한다.
소식하고 위장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는다.
혼침이 적고 깨어있음에 몰두한다. 많이
배우고[多聞] 배운 것을 바르게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한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가르침들이 있으니,
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해지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다.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개발하면 오래지 않아 부동을 꿰뚫는다.”
A5:97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할 일이 적고 분주하지 않으며 검소하고 생활필수품에 대해서 잘 만족한다.
소식하고 위장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는다.
혼침이 적고 깨어있음에 몰두한다.
엄격한 번뇌의 말살과 마음을 맑히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즉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한거(閑居)에 대한 이야기, [재가자들과] 교제하지 않는 이야기, 불굴의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지견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고,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으면 오래지 않아 부동을 꿰뚫는다.”
A5:9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할 일이 적고 분주하지 않으며 검소하고 생활필수품에 대해서 잘 만족한다.
소식하고 위장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않는다.
혼침이 적고 깨어있음에 몰두한다.
숲속에 머물고 외딴 거주처를 의지한다.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많이 [공부]지으면 오래지 않아 부동을 꿰뚫는다.”
경우 경 (A5:57) 7. Abhiṇhapaccavekkhitabbaṭhānasuttaṃ
[*1.老 2.病 3.死 4.渴愛 5.業]
‘‘Kiñca, bhikkhave, atthavasaṃ paṭicca
‘kammassakomhi, kammadāyādo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ṭisaraṇo,
yaṃ kammaṃ karissāmi – kalyāṇaṃ vā pāpakaṃ vā – tassa dāyādo bhavissāmī’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7.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목적을 반연하여
'나의 업이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나의 권속이고,
업이 나의 의지처이다.
내가 선업을 짓건 악업을 짓건 나는 그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끊임 없이 반조해야 하는가?
Atthi, bhikkhave, sattānaṃ kāyaduccaritaṃ vacīduccaritaṃ manoduccaritaṃ.
Tassa taṃ ṭhānaṃ abhiṇhaṃ paccavekkhato sabbaso vā duccaritaṃ pahīyati tanu vā pana hoti.
Idaṃ kho, bhikkhave, atthavasaṃ paṭicca ‘kammassakomhi, kammadāyādo kammayoni kammabandhu
kammapaṭisaraṇo, yaṃ kammaṃ karissāmi – kalyāṇaṃ vā pāpakaṃ vā – tassa dāyādo bhavissāmī’ti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itthiyā vā purisena vā gahaṭṭhena vā pabbajitena vā.
비구들이여, 중생들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그가 이것을 끊임없이 반조할 때, 나쁜 행위는 모두 제거되거나 혹은 줄어든다.
........
A6:20
Tena, bhikkhave, bhikkhunā iti paṭisañcikkhitabbaṃ –
‘atthi nu kho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ṃ kālaṃ karontassa antarāyāyā’’’ti.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숙고해야 한다.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Sace, bhikkhave, bhikkhu paccavekkhamāno evaṃ jānāti –
‘atthi m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pahīnā, ye me assu rattiṃ kālaṃ karontassa antarāyāyā’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있다.‘라고 알게 되면
tena, bhikkhave, bhikkhunā tesaṃyeva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adhimatto chando ca vāyāmo ca ussāho ca ussoḷhī ca appaṭivānī ca sati ca sampajaññañca karaṇīyaṃ.
그는 그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사마타 경(A10:54)
54. ‘‘No ce, bhikkhave, bhikkhu paracittapariyāyakusalo hoti, atha ‘sacittapariyāyakusalo bhavissāmī’ti –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1.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남의 마음 길에 능숙하지 못하다면
'나는 나 자신의 마음 길에 능숙하게 되리라.'라고 공부지어야 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cittapariyāyakusalo ho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자신의 마음 길에 능숙하게 되는가?"
Seyyathāpi, bhikkhave,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k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asseva rajassa vā aṅgaṇassa vā pahānāya vāyamati.
No 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enev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
‘lābhā vata me, parisuddhaṃ vata me’ti.
3. "비구들이여,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기미나 반점을 보게 되면 그 기미나 반점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고,
기미나 반점을 찾지 못하면 '이것은 내게 이득이다. 나는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지고 그의 의도한 바가 성취되는 것과 같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 bahukārā hoti kusalesu dhammesu –
‘lābhī nu khomhi ajjhattaṃ cetosamathassa, na nu khomhi lābhī ajjhattaṃ cetosamathassa,
lābhī nu khomh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nu khomhi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ā’ti.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의 반조는 유익한 법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짓는다.
'나는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었는가? 아니면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지 못했는가?
나는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를 얻었는가? 아니면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를 얻지 못했는가?'라고."
A10:51
4.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
'나는 대체로 간탐하면서 머물고, 악의에 찬 마음으로 머물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되어 머물고,
들떠서 머물고, 의심하면서 머물고, 분노하면서 머물고, 오염된 마음으로 머물고, 몸이 불편한 채로 머물고,
게으름에 빠져 머물고, 삼매에 들지 않고 머문다.'라고 알게 되면,
비구는 이러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
아주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A8:7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attavipattiṃ paccavekkhitā hoti.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ravipattiṃ paccavekkhitā hoti.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attasampattiṃ paccavekkhitā hoti.
Sādhu, bhikkhave, bhikkhu kālena kālaṃ parasampattiṃ paccavekkhitā hoti.
Aṭṭhahi, bhikkhave, asaddhammehi abhibhūto pariyādinnacitto devadatto
āpāyiko nerayiko kappaṭṭho atekiccho’’.
2.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파멸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가 자주자주 자신의 번영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가 자주자주 남의 번영에 대해서 숙고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구들이여, 데와닷따는 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법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에 얼이 빠져서
악처에 떨어질 것이고 지옥에 떨어질 것이고 겁(劫)이 다하도록 [지옥에] 머물 것이고
[참회로] 용서받을 수가 없다. 무엇이 여덟인가?"
S36:31
‘‘Katamā ca, bhikkhave, nirāmisā upekkhā?
Idha, bhikkhave,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bhikkhave, nirāmisā upekkhā.
9. 수행승들이여, 자양을 여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이
행복과 고통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에 든다.
수행승들이여, 자양을 여의는 평정이란 이러한 것이다.
‘‘Katamā ca, bhikkhave, nirāmisā nirāmisatarā upekkhā?
Yā kho, bhikkhave, khīṇāsavassa bhikkhuno rāgā cittaṃ vimuttaṃ paccavekkhato,
dosā cittaṃ vimuttaṃ paccavekkhato, mohā cittaṃ vimuttaṃ paccavekkhato uppajjati upekkhā,
ayaṃ vuccati, bhikkhave, nirāmisā nirāmisatarā upekkhā.
10. 수행승들이여, 자양을 여의는 평정보다 더욱 자양을 여의는 평정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번뇌를 부숨으로써 마음이 탐욕에서 해탈된 것을 관찰하고,
마음이 성냄에서 해탈한 것을 관찰하고, 마음이 어리석음에서 해탈한 것을 관찰하여 평정이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자양을 여의는 평정보다 더욱 자양을 여의는 평정이란 이러한 것이다.
S46:55/A5:193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물이 가득 담긴 그릇에
붉은 랙이나 노란 심황이나 남색의 쪽이나 심홍색의 꼭두서니가 섞여 있으면
눈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 자신의 얼굴 영상을 비춰보더라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Seyyathāpi, brāhmaṇa, udapatto saṃsaṭṭho lākhāya vā haliddiyā vā nīliyā vā mañjiṭṭhāya vā.
Tattha cakkhumā puriso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yathābhūtaṃ na jāneyya na passeyya.
바라문이여, 마치 물그릇이 붉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새빨간 색으로 물들었다면
거기서 사람이 눈으로 자신의 얼굴 모습을 관찰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알거나 볼 수 없습니다.
A10:73
ālasyaṃ anuṭṭhānaṃ bhogānaṃ paripantho,
amaṇḍanā avibhūsanā vaṇṇassa paripantho,
asappāyakiriyā ārogyassa paripantho,
pāpamittatā sīlānaṃ paripantho,
indriyaasaṃvaro brahmacariyassa paripantho,
visaṃvādanā mittānaṃ paripantho,
4. “게으름과 빈둥거림은 재물을 가로막는다.
치장하지 않고 장식하지 않는 것은 미모를 가로막는다.
적절하지 못한 행동은 건강을 가로막는다.
나쁜 친구는 계행을 가로막는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않는 것은 청정범행을 가로막는다.
말다툼(표리부동함)은 친구를 가로막는다.
asajjhāyakiriyā bāhusaccassa paripantho,
암송하지 않는 것은 많이 배움을 가로막는다.
asussūsā aparipucchā paññāya paripantho,
듣고자 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것은 통찰지를 가로막는다.
ananuyogo apaccavekkhaṇā dhammānaṃ paripantho,
몰두하지 않고 반조하지 않는 것은 법을 가로막는다.
[↔ anuyogo paccavekkhaṇā dhammānaṃ āhāro]
micchāpaṭipatti saggānaṃ paripantho.
그릇된 도닦음은 천상을 가로막는다.
Imesaṃ kho, bhikkhave, dasannaṃ iṭṭhānaṃ kantānaṃ manāpānaṃ dullabhānaṃ lokasmiṃ
ime dasa dhammā paripanthā.
비구들이여,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열 가지 법을 가로막는 이러한 열 가지 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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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양이 좀 많지요?
자료를 모으다가 혹시 法은 이렇게 보여지게 되나?라는 착각이 생겼습니다.
아직 서울 근처도 가보지 못하면서 꿈만 야무집니다. ㅎㅎ
본문의 이 단어는 직접적인 봄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신지념이 몸의 안팎을 내장을 보고 겉모습을 보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요구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느낌을 안팎으로 본다는 건 느낌을 일으킨 소연을 보고 그로 인해 일어난 느낌을 보는 것 아닐가요? 더러운 걸 보면 불쾌한 느낌이 일어나고 아름다운 걸 보면 유쾌한 느낌이 일어나듯...그 연을 보고 연으로 인한 느낌을 보는 것이 안팎으로 보는 것이 아닐가요?...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것은? 느낌은 촉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통찰이 아닐까요?
봉행님덕분에 왼쪽 칸의 글들을 조금은 신경쓰면서 읽어 보았는데요.ㅋ
제가아는 바로는, 안을보고,밖을 보는 것은 높은 단계를 성취한 분들입니다. 결국은 그것은 담마로 볼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신체내부명상은 일종의 안의 눈, 내부의 눈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결국 무상,고,무아의 지견이 생기겠지요.
그것을(내부의 눈) 수행으로 계발이 된 사람은, 우리의 감각으로 볼수 없는 것을 볼수도 있다고 합니다.
소위 귀신,천사도 볼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ㅋ
또 그들과 대화도 할수 있다고도 합니다. 입의 언어가 아닌, 마음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도 합니다.ㅋ
일종의 텔레파시능력으로.......
그런것들이 아빈냐라는
@오며가며 신통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전에 지화자님 글에서 목갈라나존자가 아누룻다존자에게 나타난 것이, 니밋타였을때, 한쪽은 니밋타이고 다른 한쪽은 실제몸을 가진 사람인데, 서로 대화를 나눴다고 하면, 입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겠지요. ㅎ
마음의 언어로 아마도 소통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사마타수행을 혼자서 하면 위험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강력한 기의 계발을 통한 수련은 강력한 스승밑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일반인들이 할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은밀하게 스승과 제자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종의 밀교수행이나 외도들의 수행등이 아니겠습니까?.
은밀하게 전수한다........ㅋ
@오며가며 거기에는 분명히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인겁니다.
안과밖을 볼수 있는 것은 높은 성취자들이야기 일겁니다.
우리가 헛것으로 귀신을 보면, 공포에 떠는데, 그들은 오히려 대화를 합니다.ㅋ
경전에는 목신때문에,비구들에게 자애경을 하게 했다....
목신을 본 비구들이 대단한 것이지요. 그들은 어느단계를 넘은 성취자들이겠지요.
정신세계는 무한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합니다. 결코 자신이 통제할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띠와 지혜를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왼쪽칸의 글들을 보고, 여기서 논의 되는 개념들의 차이가 이해가 좀 되었는데요.
비평적으로 하면, 열심히 영어 단어, 영어 문법 배우고 있는데,
@오며가며 미국에 가면 단 한마디도 미국인과 기본적인 회화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화자님의 말이 일견 맞는 소리인데, 나중에 미국에 가서 생활하다보면, 그때 배운 영어단어와 문법이
미래에는 도움이 되겠구나라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런데 내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다르구나라는 생각도 솔직히 듭니다.
이곳은 이론적인 학자들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카페이니까요.
...
하나 이야기 해드리면, 안으로 밖으로 이런 것은 이론적인것이고요, 고도의 성취자들외에는.
다리의 통증이 좌선중에 생겼습니다.
다리가 아픕니까?. 다리에서 생겨난 통증이라는 느낌이 아픕니까?
@오며가며 아니면 다리의 통증이라는 감각을 보고 있는 의식이라는 것이 아픕니까?.
우리는 다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다리가 심하게 아프면, 나 죽어.....합니다......이것이 잘못된/왜곡시킨 상이라는것이고요....
실제로는 고통의 본질과 정체를 왜곡되어서 사실 잘 모르는 겁니다......
다리가 아플때, 다리의 통증이란 느낌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그런것들을 일종에 깊숙히 조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다리와 통증이라는 느낌이 같은 것이라면===> 나중에 통증이란 느낌이 사라졌을때, 다리도 느낌과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아픈 통증이란 느낌이 사라졌는데도, 다리가 안 사라진것은 느낌과 신체의 다리가 같은
@오며가며 것일리가 없다........느낌은 느낌이고, 다리는 다리이다.......다리는 혈관,뼈,근육...또 다리 전체가 아픈 것이 아니다. 다리에서 극심하게 통증을 느끼는 부분........거기를 깊숙히 보니, 통증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다른곳으로 움직이교, 다시 그자리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고...........할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다리가 아프다고 막연히 생각할까?.........결국 다리와 느낌은 다른 것인데....
느낌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지, 느낌자체가 아프다는 것은 아니다......
느낌을 아프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아픔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산냐(상)라는 넘이 만드는 것 아닌가?........
결국 다리는 다리이고, 느낌은 느
@오며가며 낌이고, 산냐는 산냐일뿐이다. 이것들이 서로 결합해서 다리 아퍼 하다가 나중에는 나 죽네........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구나.......그럼 아픔을 기억해내게 하는 산냐와 느낌의 결합을 끊어버리면 어떨까?
산냐는 산냐이고, 느낌은 느낌이고, 다리는 다리일뿐이다........
다리가 신체의 일부라면......몸이라는 것이 나인가?........몸은 다리 몸통,.........의 결합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몸을 나,자아라고 연상시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산냐인가? 의식인가?.....생각형성이라는 행인가?........
각각 분해해보면, 그 어디에도 자아란 것이 없다......그 무엇이 자아란 개념을 만든 것인가?.........
@오며가며 그런것이 높은 수준의 지혜의 단계에서 행해지는 위빠사나라는 것이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연히 깊은 사마디라는 것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요.
그럴때 안으로, 밖으로 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높은 성취자들의 지혜수준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안으로, 밖으로 본다라는 것은...
그 지혜를 왜곡 시켜서, 자아를 상정하는 것의 주범이 무명이라는 탐진치라는 것이 불교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강조하는 겁니다....
왜곡,착시가 결합된(오온) 상을 차단하는 것이 위빠사나라는 것이지요.....
결국은 무상,고,무아..........만물의 본성대로 보는 것일때, 집착과, 땅하를 버리고, 마지막 성취자는 무명을 제거한
@오며가며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라한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느낌의 안과 밖......호흡의 안과 밖........신체의 안과밖...........높은 수준을 얻은 자들이 알고 볼수 있는 것이지,
추론과 사색을 통한 연구로 알수 있는 이론적인 것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통을 통해서 지혜가 온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고요.
그것이 고를 알어야 하는 이유이다.................가 사성제인데, 우리는 왜곡,착시로, 고를 사실 모른다라는 이야기이지요.....
고를 알기위해서, 신체의 통증을 가지고,높은 성취자들은 지혜수행을 합니다.
신체32명상이나 해골관등은 부정관등을 위한 혐오, 아슈바의 수행을 삼으면서도, 선정의 주제로도
@오며가며 할수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자신의 성향에 안맞으면 위험하겠지요.....
나중에 성취자는 아슈바(부정관)을 통해서, 점차 성욕이 사라지겠지요?.
더 나아가, 혐오의 반대인 슈바와.......혐오,부정인 아슈바...........거기 양쪽 극단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가 되겠지요?...........
그것이 일종의 중도라는 겁니다..........부정관을 통해서 익혀진 중도.........아슈바를 통해서 슈바까지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
그는 평온합니다.평정합니다.......모든 두카가 끝난 해탈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선의 평온의 단계는 위빠사나가 흘러나오는 지점이라고 보는 겁니다.
사선후에는 자나라는 선정이후 황홀에 사로잡힐 확률이
@오며가며 없거든요.......그만큼 자나라는 선정은 강력한 겁니다.
1선이 위빠사나에 가장 적당하다라는 글 전 안 믿습니다.
4선의 상태가 지혜를 억지로 강요안해도,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지점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거기에 정견을 갖춘 8정도 수행자는 당연히, 4선 이후에 높은 수준의 위빠사나를 하는 것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것들이 진짜 위빠사나라고 하는 것이지요....
길게 썼는데, 안과밖이라는 문제보다는 통증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극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작동방식을 점점 더 알게 되가지요...
미운정도 정인지라, 떡 하나 선사합니다........ㅋㅋㅋ
지혜의 획득은 무명의 제거에 의해서 나옵니다가 불교..
@오며가며 결국 불교는 번뇌의 제거에 있고, 불교의 명상은 결국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번뇌를 제거하는 효과적인 방법들입니다. 이름하여 사마타 위빠사나.......그 번뇌의 중심에 무명에 의해 조작된 자아라고 왜곡되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족쇄라는 것은 다 자아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단계적으로 부수어 가는 과정단계입니다..
그것은 깨달은 자의 법담과 자신의 실천만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위 자등명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세상에서 인정하기 힘든, 무아.........
그것때문에 같은 불교내에서도 싸우는 것이지요....
이해석, 저해석, 귀걸이 코걸이 사용하면서........각자의 주어진 위치에 서서......
@오며가며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고만을 봄을 통해서, 마음을 어느정도 고요하게 할수 있습니다.
마음의 고요라는 것은..........마음의 멈춤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멈춤이라는 것은.......번뇌인데........태반은 생각들입니다........즉 생각들의 멈춤이지요.
바보들도 생각은 없는데, 현자들은 쓰레기 생각은 없는데 자신에게 분명히 깨어 있지요.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고만을 볼때도, 쉼없이 흘러가는 마음의 움직임등이 잠시 멈춰질수 있습니다.
그 멈춤으로 인해 작은 고요를 맛보게 됩니다.
그 작은고요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에 성공한 것이 바로 자나라는 선정입니다.
삶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고만을 볼
@오며가며 수 있게 되면, 작은 고요를 통해서 라도 잠시 그 스트레스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때는 생각을 만들어 내기, 생각을 지어내기가 힘이 드는 겁니다....
이후 마음의 움직임으로, 쓸데없는 생각들이 스트레스들을 더 크게 만드는 구나를 알게 되면, 그는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고를 보는 시간들이 많아 지겠지요.
그러면서 여러가지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게 됩니다.
무엇이 적군이고, 무엇이 아군이지를..........
호흡관에서 호흡을 만들어서 하려는 미세한 의지가 늘 작동하는 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있는그대로의 호흡을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이구나를 알게됩니다.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고를 보는 것이 좋은것이라고 생각
인간의 몸- 검색하면 안팎을 훤하게 다 보여줍니다. 부처님재세시 뭐 중생들 몸뚱아리가 이렇게 생긴거다하고 가르쳐 줄려고 말씀 하신것은 아니겠지요. 애지중지하며 몸을 부등켜 안고 -나-야! -나-라니깐! 하며 집착을 떨고 있는 중생들에게 집착 할 만하게 없음을 무상 고 무아임을 알려 주려고 32 내장까지 동원해서 애타게 가르치는 걸로 보여집니다.
어느 법우님은 대승위빠사나를 하는데 정수리 부터 시작해서 감로수를 정수리에서 정수리 안으로 흘러들어가게 하여 (가상으로) 계속 물을 부으면 그 흐르는 물이 정수리통해 몸안의 이마 눈 코귀 입으로 식도로 심장으로 폐로 차례차례 흘러내려가면서 물이 몸 밖의 세포로 통해 빠져 나갈것은 빠져 나가게 하고 항문이나 발바닥으로 통해서 빠져 나갈 것은 빠져 나가도록 하는 느낌을 느끼는 훈련을 하는데 어느날 눈을 감고 계속 정수리부터 물을 붓기 시작하자, 몸안의 지저분한 이물질들이 둥둥 온몸을 떠다니가 쭈욱 빠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느낌은 그렇게도 몸이 새털처럼 가벼울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법우님은 열심히 몸을 관찰하는 삼매 연습중에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나고 토할 정도 였다고 합니다. 삼매 연습이 끝내고 일상의 생활에서도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날뿐만 아니라 배우자 몸에서도 악취가 나서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고 하며 사람들이 옆에 오면 사람들에게도 악취가 나서 한동안 괴롭고 괴로왔다고 하네요.
@nidana 그야말로 악취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참회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게 모르게 몸으로 입으로 생각으로 지은 모든 것을 참회하는 참회기도로 불수념으로 108배로 열심히 하자 자연스럽게 악취가 사라지고 성욕까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법우의 배우자는 그런 삼매연습을 하지도 않는 사람인데 그 배우자까지 신기하게도 성욕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는지 보살처럼 군다고 합니다. . 이런것이 나도 건지고 상대도 건지는 대승불교의 효력인가 하고 의하해 했다고 합니다. 그 법우 말에 의하면 ‘믿거나 말거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욕이 사라졌다고 탐진치가 사라진것 절대로 아니라고 합니다.
@nidana 제가 그 법우를 봐도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한번씩 하는 행동을 보면 아주 삼독심이 많아 정말 저 사람 수행자 맞아 하는 의혹이 보일때가 있습니다. 혹 여기 이 카페에 오신 법우들 중, 수행을 하면서 성욕이 사라졌다고 자신이 아나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있으면 그야말로 착각 속에 빠진 자신이 자아도취 수행자 인지 심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남이 하지 않은것을 했다고 절대로 도인(?) 아니라고 봅니다.
@nidana 몸으로 보이는신통은 무당도 합니다. 작두를 타거나 , 굿하러 온 사람에게 죽은 조상목소리를 내며 호통을 치거나 아님 애닯게 울기도 하는것을 . TV로 무속인의 한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신통을 부려도 무속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괴로와하며 울고 불고 하는 고통받는 인생살이의 애환을 TV로 보면서 계정혜가 없는 신통은 고통만 따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카페에 오시는 법우님들 중에 무속인의 신통을 보면서 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신통 너무 좋아들 하지 마세요.^^
신통중에 신통은 계정혜를 갖춘 사람이 진짜 신통자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_()_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