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갑골문 해독’낸 양동숙 교수
“갑골문은 3천년 전 중국 왕들이 ‘뼈 점’을 칠 때 썼습니다. 거북이 배뼈(배딱지) 안쪽에 점복자() 모양의 두툼한 홈을 파고는 그곳을 뜨겁게 불로 지지면 홈을 따라 달궈진 뼈에 균열이 생기면서 배뼈 바깥에 점복자가 생깁니다. 예컨대 ‘열흘 뒤에 비가 오겠습니까’라고 물으며 불로 지질 때 점복자가 가지런한 모양으로 나타나면 ‘그렇다’고 풀이하고, 휘거나 처진 모양이면 ‘아니다’로 풀이하죠. 왕실은 소소한 일들을 이런 점을 쳐서 결정했어요.” 그러니까 갑골은 일종의 점판으로 활용됐고 거기에 청동칼로 새겨진 갑골문은 왕실의 소소한 일상 기록들이다.
중국 고대 문자이다보니 국내엔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은데, 최근 주로 갑골문 해독법을 다룬 1천여쪽 분량의 전문서 <갑골문 해독>(서예문인화 펴냄)이 국내 학자의 저술로 출간됐다. 지은이 양동숙 교수(61·숙명여대 문과대학장)는 13일 “1990년에 시작해 중간엔 ‘끝이 나지 않는 작업’에 대한 심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끝내 책 출간을 마쳐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흔치 않은 책이니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고고학, 역사학, 서예학, 중국문자학 등에 여러 모로 쓰임새가 클 것으로 그는 기대했다.
갑골문은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어깻죽지뼈()에다 기록한 고대 중국의 문자다. 3천년 전 중국 상나라 때 흥했던 문자였는데도 지금 한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자의 원형이다. 상하좌우로 삐죽삐죽 획이 뻗고 흩어질 듯하면서도 한데 어울리는 독특한 서체는 일찍이 서예가들의 관심대상이 됐다. 때때로 원형질 상형문자의 형상은 고대 예술작품처럼 감상되기도 한다. 고대인의 일상생활과 사유체계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점 친 내용의 기록은 후세인이 정리한 역사사료가 아니라 당시 점을 쳤던 왕실 사관들이 그때그때 현장에서 새겨넣은 것이란 점에서 생생한 생활기록이다. 이를 통해 중국 고대사회가 뼈 점에 매우 의존했음이 드러났다. “예컨대 오늘 대학에서 제사를 지낼텐데 아무개를 부를까요, 춤을 추는 행사에 아무개를 불러 음악을 배울까요, 왕비가 아들을 낳을까요, 아무개를 관직에 등용할까요 등등처럼 웬만한 일들의 결정을 점괘에 따라 결정했으니까요.” 이런 기록을 통해 당시 왕은 주로 30여 가지 질병을 앓았고, 15살 이상 자제들이 다닌 대학 같은 교육기관이 존재했으며 음악·무도 축제를 즐겼음이 드러난다.
양 교수는 “갑골문을 살피다보면 한자의 상형문자 원형을 보게 되는데 이를 통해 한자사전에 실린 어원 풀이가 상당부분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략 3분의 1 가량의 어원풀이가 잘못됐다고 한다. “예컨대 젖 유()는 흔히 손으로 아이를 잡는 형상에 제비 을() 자가 합쳐진 것으로 풀이되는데, 갑골문을 보면 어머니가 두 팔로 안은 아이가 입 벌린 모양임을 확연히 알 수 있죠.“
몰랐던 어원들도 갑골문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다. 그가 보여주는 할 위()의 갑골문자는 사람이 손으로 코끼리 코를 붙든 모습을 띠고 있다. “코끼리 코를 잡고 ‘일 하다’라는 뜻인데 당시 사람들이 코끼리를 가축처럼 부렸음을 보여주는 글자죠.” 빛 광(光)은 갑골문에서 사람이 꿇어 앉아 머리에 불을 이고 있는 형상이다. 역시 “노예가 불을 이고 빛을 밝히게 한 고대의 풍습이 담겨 있습니다.” 30여년째 갑골문 연구를 파고 있는 양 교수는 앞으로 갑골문을 바탕으로 한자사전에서 잘못 풀이되는 상형문자의 어원을 바로잡는 작업을 벌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