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디어를 찾는 기법을 사용한다. 결국 창의력은 상상력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도 따지고 보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순간적 혹은 직관적으로 느낀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혹시 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땅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순간적인 창의적 발상이 씨앗이 된 것이다.
이런 창의적 발상이나 사고 활동은 의도적인 교육활동으로 그 기법을 터득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사고 기법들을 익혀 문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그 전략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법들이 활용되고 있다. 확산적 사고 질문 기법, 브레인스토밍 기법, SCAMPER 기법, 속성 열거법, 강제 결합법, 형태학적인 매트릭스, 체크리스트 기법 등의 창의적 발상을 촉진시키는 기법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브레인스토밍 기법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한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기법은 광고회사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집단회의 기법의 하나로 시작된 것이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모임에서 네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회의를 진행한 결과 평소에 해 오던 회의방식보다 월등히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된 것에 착안하여 새로운 회의진행 기법으로 정착되었다.
회의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네 가지 원칙이란 첫째, 참가자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내 놓은 아이디어에 대해서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아이디어를 낼 때,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들꺼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인력은 어떻게 충당하려고' 등등 남의 아이디어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도 안돼', '웃긴다' 등의 표정을 짓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행위도 평가에 해당되므로 삼가야 한다. 만약 이런 통제가 없다면 모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혹시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발표를 꺼리거나 아니면 스스로 미리 평가를 해 보고 '안되겠어' 하며 발표를 아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는 자기 아이디어든 남의 아이디어든 아무리 시시하고 웃기는 아이디어라도 절대로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 참가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라도 거리낌없이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윤리, 법규, 원칙 또는 시간, 돈, 인력 등의 모든 제약조건을 배제하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한다. 그래야만 자유분망한 상상력을 통해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참가자가 아이디어를 제출할 때, 질적으로 훌륭한 아이디어만을 제출토록 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가 있으므로 질보다는 양에 치중해야 한다. '닭이 천 마리면 봉이 한 마리'라는 속담도 있듯이 처음부터 봉을 찾으려면 어렵지만 닭을 천 마리 모으다 보면 그 속에 봉이 반드시 끼어 있게 마련이다. 즉 처음부터 좋은 아이디어를 찾는 데 집착하지 말고 무조건 많은 아이디어를 내 놓으면 그 속에는 반드시 쓸만한 아이디어가 끼어 있기 마련이다.
넷째, 참가자는 다른 사람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재구성하고 재결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내 아이디어, 네 아이디어를 따지지 말고 함께 내놓은 아이디어를 결합하거나 수정 보완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평가는 모든 아이디어가 다 나온 후에 해야 한다.
교육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 중, 그 기본 방향에 관한 것은 대부분 교육의 본질에 대한 견해, 즉 교육철학과 관계되어 있다.
교육철학에는 여러 가지의 흐름이 있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교육을 기성문화의 전수로 보느냐와 인간 성장 발달의 원조 역할로 보느냐? 하는 두 갈래의 생각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빠지면 교육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게 되는 것이지만, 이 두 갈래의 생각은 어느 것을 핵심으로 생각하느냐에 있어서 서로 대조적인 입장이 된다.
미국처럼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에 있어서도 이 논쟁은 거듭되면서, 펜덜럼처럼 어느 한쪽에 무게가 실려 국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쳐왔다.
여기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교육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쪽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없고, 열린교육 논의에 있어서도 자칫 흑백논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열린교육이 학습자 중심의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에 비판을 가하는 인사들의 비판은 대개 전통중심, 문화중심, 지식중심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열린교육은 학습자의 자율적 학습활동을 중시하는 나머지 꼭 몸에 익혀야 할 학력의 건실한 정착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있다. 이와 같은 비판은 작년 9월 ‘월간조선’에 재미 모 젊은 교수의 논설이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다. R교수는 한국의 재래식 교육이 최고라고 칭찬하며, 국제 고등학생 수학, 과학 경시에 있어서 한국 학생들의 우수성, 미국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한국학생들의 우수한 성적과 대학 진학률도 그만큼 좋다는 것 등도 들고 있다. 다른 아이들이 스포츠, 예능 등 특별활동, 봉사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과외지도를 위해 이 학관, 저 학관으로 몰아세워 아이들의 생기와 활력을 모두 희생시키는 재미 교포가 많다. 덕택에 내신 성적도 좋고 대학 진학률도 좋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체력, 사고력, 자주성에 있어서 크게 뒤떨어진 이들 가운데 대학 생활에서 뒤떨어져,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더 학업을 계속하여 발전하는 학생은 그리 많지가 않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고, 평생학습의 하나의 고리에 불과하다.
기초학력 경시라는 비판은 열린교육을 미국의 1900년대 초 성행했던 진보주의 교육과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수가 많다.
이 시기에 전성을 누렸던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은 50년대 말부터의 주지주의 교육의 강한 바람 앞에 힘없이 시들었으나, 열린교육은 학습자 주도의 학습을 강조하면서도 고도의 기술 과학 시대에서 살고 학습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학습 기능을 특히 강조하는데 이 점에서는 현재 열린 교육에 열중하고 있는 교육자들에게도 오해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학력이라는 말을 쓰는데, 누적된 지식량, 정보량이 바로 학력이라는 입장이 강했고, 그와 같은 학력관에 의거하여 입학 시험 등 인간 선발이 행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특히 열린교육에서는 학력을 정보처리력, 지식조작능력, 탐구능력, 창조적 사고력과 표현력 등으로 생각하며 이런 능력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평생을 학습해야 하는 사회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생각한다.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해서 막대한 양의 정보를 기억하여 수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현실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어떤 것들이 교육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교육과정이라 한다. 현재의 각급 학교교육과정은 교과라는 형태로 요약된 인류 문화의 에센스를 망라해 놓은 것이 주축이 되어 있고, 이와 같은 패러다임은 문명 각국에 있어서 거의 공통적이다.
국민교육의 공통기반을 모든 학생에게 어김없이 정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소주의자들은 특히 이점을 강조하며 열린교육이 이를 경시한다고 비판한다. 통합학습 활동 등을 중시하다 보면 중요한 요소 중 결락되어 버리는 것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중앙집중적인 경향이 강하여 지나치게 세밀한 교육내용을 담은 교육부 고시 ‘각급학교 교육과정’이 전국의 학교교육을 통제하고 있어서 교사들은 주어진 교육과정을 꼬박꼬박 가르치는 기계적인 노작자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창의적, 상황 대응 활동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본인은 교육과정이 일선학교와 교실에 있고 나라에 있는 것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데, 교육과정이 계속적인 개편을 거듭하면서 차차 이와 같은 졍향을 나타내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교육요소가 결락될 수도 있다는 일부 학자의 비판과 충고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현재의 교육과정은 대부분 교과의 병렬로 이루어져 있다. 각 교과는 중요한 각 문화 형식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각 교과는 배경 문화(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체육, 사회 규범 등)의 특성에 따라 독특한 방법론을 가졌으며, 이의 실천이 누적되어 여러 교과 교육학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교과 교육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열린교육의 지도형태가 각 교과가 가진 특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치게 되기 쉽다. 각 교과의 특성을 무시한 채, 수학이건, 미술과건 한 두개의 학습지도 형태로 소화해 버리려 한다면 물론 안 되는 일이지만, 아직 열린교육을 실시하는 교원들의 경험의 누적이 적어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각 교과 전문가들의 비판을 정중히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이분들이 참여자의 입장에 서서 어린 열린교육의 성장에 많은 기여를 해 주기를 바란다.
서서히 발아되는 아이들의 개성의 싹에 대해 교사나 학부모가 지나친 속단으로 그 아이의 건전한 성장에 지장을 주는 사례에 대해 우려가 많다. 이와 같은 우려 내지 비판은 공교육의 입장에서 어린 단계의 아이에게는 개성 신장 이상으로 국민교육의 보편성에 입각한 조화로운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인사들로부터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 독특성의 존중, 개성 신장 중시는 물론 좋지만, 조화로운 인격으로 성장시킨다는 기본적 입장이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 학습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의 열린 교실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그 소란스러움에 놀라고, 금방 열린교육이 기본적 생활 습관 교육이나 질서 교육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내린다.
교사의 엄격한 자세, 호통 한마디면 될 일을 가지고 왜 이리도 혼란을 방치하는가 하고 의아해 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이들은 이와 같은 학습경험을 누적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생활 규칙을 설정하게 되며, ‘타인의 학습을 방해하지 않는다.’ ‘서로 도와가며 학습한다.’하는 생활 자세를 모든 아이가 체득하게 된다. 우리는 버릇은 꼭 강요와 지시 등을 통해야만 길러진다는 잠재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 학교 교육에서 그렇게도 생활습관교육, 예절교육, 질서교육을 강조했건만 이 교육을 받고 자란 현재의 성인 층이 과연, 예절 바르고 질서 의식이 강한 인간들이라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열린교육은 무책임한 방임교육이 아니며, 자율적인 협동생활을 통한 자각을 통해 아이들의 도덕성을 높이려 하는 교육이다.
본인은 운현초등학교의 졸업생들을 보고 어렸을 적부터 자유와 자율, 협동의 생활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들이 대부분 개방적이면서 예절바르고, 인정이 두터우며 질서 의식이 강한 사람들로 자라가고 있음을 증언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편 열린교육이 가치중립적이어서 애국심, 민족적 자부심 등을 기르는데 소홀하다는 비판도 듣는다. 열린교육은 인간 존엄성, 인류의 공동 번영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세계성을 띠는 교육이지만, 한국의 교육과정에 의거해 새 시대의 한국인을 길러 내는 교육이다.
애국심이나 민족적 자부는 배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강요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세계화 시대에서의 애국 애족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더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