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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10. 설교문
탁종 버려진 물건처럼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지라도~
신앙고백
찬송 188 만세 반석 열리니
대표기도 이정숙 전도사(정애자 권사)
성경말씀 디모데전서5:3~1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다시 사는 인생 (나의 목회 이야기)
헌금 88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니
광고 교회자리에 6층 주상복합 건축 계획 설계도 완료됨
생신축하합니다.(최병옥, 유정순 어르신, 신상숙, 정애자, 김행숙 선생님)
장학금 드립니다.( 왕현숙, 이민주,박윤지) 포상금드립니다.(브니엘팀)
이순희 집사 3남 결혼
찬송 539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축도 주님, 일생에 꼭 한번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살게 하소서
멀리서 전화벨 소리가 크게 두 번 울어댑니다.
전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서울서 김지향 시인입니다.
김지향시인도 남편과 사별하신지가 고삼년이고
박사아들은 이미 남이 되어 쓸쓸하게 삽니다.
교수님, 건강하신지요?
어찌 전화 하셨는지요?
보고 싶어서 전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그립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그러자 나무숲에서 퍼더덕 새 한 마리 하늘로 치 솟아 오릅니다.
칫솟아 오르는 새 꼬리를 쫓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늘님이 벌써 가을입니다.
아장아장 님따라 가다가 노랑 국화꽃 막 피어나는 모습에
꽁알꽁알 어린 아이처럼 즐거웠습니다.
또 팟죽색으로 피어나는 처녀 국화꽃을 보고 추억에 젖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밤 하늘에 둥근 달님의 마음이
풀섶에서도 홀로 잘 익어 가는 둥근 호박입니다.
아~ 가을입니다.
엊그제만도 양귀비처럼 당당했던 빨강 장미도
으스스 앙상한 가시만 남았습니다.
인생도 이렇게 성큼성큼 지나갑니다.
이제부터라도
바짝 정신 차리고 세상을 걸어야겠습니다.
우리 한 권사님께서 방구석에서 이리 딩굴고 저리 딩굴다
제 등에 엎혀 온지가 벌써 몇 달 입니까?
엊그제는 목사님 저를 일으켜 주세요?
이렇게 8년을 누워 살다만 죽을 수 없었는가 봅니다.
내 오른쪽 어깨가 삐그덕 거리는데도
우리 한 권사님 허리춤을 힘겹게 잡고 얼~샤~
일으켜 겨우 탁자를 잡으며 엉거주춤 섰습니다.
한 번 일어나 걷는 것이 소원이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질끔 흘리시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습니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폴짝 폴짝 토끼 뜀뛰듯 달아나는 세월을 어찌 잡을 수 있겠습니까?
벌써 가을입니다.
3절입니다.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
4절,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5절,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절,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절,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절,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절,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
10절,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11절,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 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13절,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름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절,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절,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
어제 우리 요양원도 새벽부터 바빴습니다.
남편을 교통 사고로 갑자기 잃고
어린 자녀들 먹여 살리느라 하림 닭 공장에서 일하며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신
우리 이순희 선생님 아들 결혼식 때문이었습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결혼식이 있는터라
제가 주일 예배 준비로 강원도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관광차 떠나는데까지만 배웅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과 병원 염 원장까지 협조해서
축의금 100만원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돈이 다가 아니겠지만 제 마음의 실천입니다.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이순희 선생님께서 홀로 자녀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
감개무량感慨無量하시겠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인색하게 살아서 천국 가겠습니까?
이렇게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사는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우리 이순희 선생님은 참과부였습니다.
이제 곧 60이되도록 세상에 남자를 모르고 살지 않았습니까?
존경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곤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딸이 어렵게 신원그룹 면접관 앞에서 엄청 긴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듯 저 역시 면접관 앞에 서서 시험을 치르는
긴장감과 초초함까지 있었습니다.
참과부로서 교회에서 직분을 맏을 선발 기준이 이렇듯 까다롭습니다.
가족이 없어야 하고(5절)
선행의 증거가 있어야 하며(10절)
적어도 60세 이상이 되어야 하고(9절)
남편이 오직 하나여야하고(9절)
재혼할 생각이 없어야 하고(11절)
하나님만을 믿어야하고
밤낮으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남편의 사후에 재혼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막12:24, 10:12)
어떻습니까?
믿음이 이렇듯 윤리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목사인들 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과부여야 교회에서 직분을 맏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성도님들은 걱정을 안 해도 되겠습니다.
우리 이정숙 부원장님은 6박자 춤인지? 뭐신지?
흔들흔들 홀로 춤출지라도
자식농사는 믿음으로 잘 지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 부끄럽지 않게
나뿐 곳은 절대 가지 안했다니 무사히 통과하겠습니다.
우리 나 권사님은 어떻습니까?
고린도 전서 7장 8,9절에
처녀들과 과부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젊은 과부들은 육체적 욕망만 견딜 수 있으면
결혼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젊은 과부들은 교회 직분에서 제외 시켰습니다.
6절에, 일락을 좋아하는 과부 때문입니다.
대부분 젊은 과부들은 방종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젊은 과부들은 경계했던 것입니다.
탐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방종한 이들은 살았으나 죽었다는 것입니다.
과부(케라)는 버려진 자라는 말입니다.
홀아비는 케로스인데 과부신세라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과부는 불행한 여인, 불쌍한 여인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세상의 조롱거리였습니다.
과부들의 운명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과부 신세는 하나님의 벌로 취급받았습니다.
히브리어에서 과부란 말하지 말라의미입니다.
과부신세란 매우 수치스러우니 말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란 말입니다.
심지어 구별되게 웃을 입었고
창녀취급까지 받았습니다.
이렇듯 과부가 된 것이 매우 치욕스런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활개 치며 날아다니지 않습니까?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입니다.
이렇게 못된 여인들도 있겠지만 성경에 아름다운 여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4장 25절 이하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달을 당하여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으되
26절,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3년 6개월동안 흉년이 들었으니
얼마나 어려웠겟습니까?
특히 가장 가난했던 과부들의 굶주림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아무렇게나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열왕기상 17장 8절 이하에도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기적을 베푼 이야기가 소상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사르밧 과부는 정조와 기개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할지라도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고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8절입니다.
야훼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9절,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나라.
10절,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11절,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절,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절,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에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절,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16절,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저도 사르밧 과부와 같은 경험이 있습니다.
한 때 죽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죽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엘리야선지자가 찾아 왔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엘리야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다시 기도하였더니 장마비가 쏟아졌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린 것도 엘리야가 기도할 때였습니다.
제물을 태울 나무 모두가 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그리고 제물 주변에 도랑을 파고
그곳에 물이 찰랑찰랑하도록 부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늘로 부터 불이 떨어졌습니다.
성령의 불은 젖은 것일지라도
찰랑 찰랑 고인물일지라도 모두 불이 핥아버렸습니다.
어느 것 하나 타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이렇게 응답되었습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이 사르밧 과부의 집에 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사르밧 과부의 집은 달라졌습니다.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가루 통에 가루가 마르지를 않았습니다.
기름병에 기름도 매일 매일 떡을 만들어 먹어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기도의 사람을 나와 내 집에 머물게 해야 하는 것에 입니다.
저는 오늘 디모데 전서를 밤새 펼쳐 읽으면서
매우 곤혹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복음적인 내용보다는
윤리적, 비윤리적 내용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설교문으로 들기에는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괴롭게 고심하다가 새벽이 되면서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밀레의 이삭줍기 명화가 생각나십니까?
매우 아름다운 명화입니다.
가난한 여인들이 가을 들녘에서 이삭을 줍는 모습입니다.
성경에도 그러한 슬픈 기록들이 있습니다.
신명기 24장 19절입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믓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참 좋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어려운 과부들을 위하여 일부러 이삭을 남겨 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눈물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이었습니다.
과부는 가난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 자리에 아파트 건축을 설계중입니다.
이 일을 계획하신 분은 분명 주님이십니다.
저는 지금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 일을 마무리 지으면
1억을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내 놓을 계획입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부자만 부자인 세상에서
못사는 우리들도 행복해야할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날을 위해 우리 함께 기도 해야만 합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 선지자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가난이 없도록 생수의 강을 흘러 넘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목사가 된 이유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