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처재사우
최근 들어 남녀관계의 변화를 희화하는 많은 농담을 우리는 흔히 접하고 산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성공한 노년의 삶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순서가 남자는 건(健)처(妻)재(財)사(事)우(友), 여자는 재(財)우(友)건(健)견(犬)부(夫)라고 한다.
나이 들어서는 여자들의 개대수명은 더 길고 오히려 사회활동이 증가하지만, 평생 사회활동의 주 무대이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상대적으로 상실감이 큰 남자들의 비애에 방점을 둔 농담들일 것이다.
젊은 시절 결혼하여 남자는 직장 여자는 가정으로 분업하여 3,40년을 살아온 가정의 가장에게 퇴직 후 2란운드 인생을ㄴ 새로운 구도의 사회생활 초년생인 셈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고전적인 말이 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해서 후회를 덜 하려면 60대 이후의 반려자의 관점에서도 상대를 고려해보라고 권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봉건주의 시대 이후에 굳게 자리매김되어 있던 결혼에 대한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매스컴에서 어느 유명 연예인이 졸혼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결혼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필자가 사춘기 시절 숨죽이며 봤던 영화 중(아마조네스)는 단연 성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1973년 테렌스영 감독의 작품으로 여자들만의 부족국가에서 1년에 한 번씩 번식을 위해 그리스군과 교배하는 절차를 갖는 내용인데, 당시 사춘기를 겪고 있던 필자에게는 많은 정신적·육체적 충격을 주었다.
미끈한 여체의 실루엣이 다 드러나는 원더우먼 같은 복장의 젊은 여전사들, 지금으로 말하면 도플리스 복장의 여자들이 뒤엉켜 싸우면서 보여주는 여체의 곡선, 그리스군의 교배를 하는 과정에서 은근히 보여주는 에로틱한 장면, 그리고 남자애를 낳으면 죽여야 하는 갈등의 문화가 만들어낸 드라마 등이 섞여있는 이 영화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충격적인 소재이다.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부모와 조상을 공경하며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배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거이야말로 최고의 선으로 여기며 살아가던 까까머리 사춘기 소년에게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다른 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찾아가다 보면 우리 인류의 조상이 처음부터 남녀가 가정을 이루어 살지 않았던 구석기 시절에 닿는다.
1908년 오스트리아에서 발견된 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는 구석기 시대의 조각품이 있다.
비너스라는 애칭을 붙여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미인을 대표하는 직품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는 계혼(季婚)의 풍습이 있었다는 학설이 있다.
남녀가 따로 살다가 때가 되면 1년에 한 번, 그것도 출산 무렵에 음식물이 풍족할 계절에 맞춰서 관계를 갖고 다시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인류가 가장 많이 사는 북만구를 중심으로 가정한다면 먹을 것이 풍족한 계절은 가을이고 계혼은 그전 겨울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이 풍속은 신석기 이후 한 해의 농사와 생식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 정착되어 수 천년을 이어져왔는지도 모른다.
굳이 꼽아보자면 우리나라의 정월대보름 풍속도 그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절 인류에게 적어도 생식과 출산은 가장 중요한 본능이었고 굳이 따지자면 모계사회이다.
결혼은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하는 제도하고 한다.
소위 부계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지만 경작을 할 수 있는 농경사회가 형성되면서 가능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농경사회는 잉여농산물의 축적이 가능해진 사회를 의미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물려주되,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고픈 본능이 부계 볼확실성의 해소를 추구하게 되어 부계 중심의 결혼의 풍속이 생겨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의 동쪽 끝 강동구 암사동은 빗살무늬토기로 농경과 함께 움막을 짓고 가족이 어울려 살았던 한반도의 결혼문화의 초기 유적을 가지고 있다.
결혼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어서 수천 년을 이어왔다.
부계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이제는 졸혼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남자들을 더 부담스러워하거나 불편해하면서 생겨나는 문화인 것 같다.
스기야마 유미코라는 일본의 한 자가가(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서구에서는 큰 문화적 이슈가 아직 안된 것으로 봐서는 한국과 일본과 같은 가부장적인 동양 문화권에서 시작된 미풍인 것 같다.
재(財)우(友)건(健)견(犬)부(夫)되기 전에 건(健)처(妻)재(財)사(事)우(友)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양대열 / 비뇨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