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
박진영 키운 윤임자씨의
'자연 교육법'
해마다 선정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대중예술 부문에 연예계 최고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박진영의 어머니 윤임자씨가 선정됐다. 어릴 때부터 ‘남다르던’ 괴짜 아들을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예술인으로 키운 윤임자씨의 남다른 교육철학을 들어봤다.
어머니의 잠재된 ‘끼’ 물려받은 박진영
원더걸스, 2PM, 2AM, 미쓰에이 등 수많은 한류 아이돌 스타를 키워낸 명실상부 가요계 최고 실력자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영. 이처럼 세계 속에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박진영을 키운 모친 윤임자(68세)씨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했다. 해마다 문학, 미술, 국악, 음악, 연극, 무용, 대중예술 등 7개 분야에서 활약한 명사의 어머니 중 본보기가 될 만한 이를 기리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은 예술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친 어머니에게 수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가수 겸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기획자로서도 탁월한 재능을 뽐내고 있는 박진영의 어머니 윤임자씨가 아들의 예술성을 키워낸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식 날은 마침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이었다. 최고가 된 지금도 늘 대중의 냉정한 평가와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아들이 늘 불안했을 어머니. 어머니의 노심초사를 아들 박진영도 모르지 않을 터다. 그런 모자에게 이날의 수상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워낙 주목받거나 나서는 것을 싫어하셔서 오늘 시상식도 불편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아들로서 효도하고 싶어서 어머니를 설득했어요. 제가 상을 타는 것보다, 어머니에게 이런 상을 드릴 수 있는 아들이 된 것이 참 기뻐요. 죄송한 건, 어머니가 오늘만은 제가 옷을 조금 점잖게 입고 나오길 바라셨거든요. 양복은 그나마 얌전한 것을 골랐는데, 양말을 결국 못 찾아서 이러고 왔어요.(웃음) 제게는 평생 친구 같던 어머니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아들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바쁜 일정에도 어머니 일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오는 효자이기도 하다. 윤임자씨는 한국미술협회에 소속된 서양화가로, 재능 기부 등 전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윤씨의 전시에 가면 어머니를 응원하러 온 박진영을 만날 수 있다. 시상식이 진행된 날에도 아직 목이 풀리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그는 어머니를 위해 축하공연을 선보였다. 윤씨를 축하하러 온 수많은 지인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했던 박진영은 뭐든 한 번 잡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어머니 윤임자씨는 묵묵히 아들에게 ‘나는 네편’이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다른 훌륭하신 분들과 여기 함께 있는 것이 쑥스럽고, 제가 있어도 될 자리인가 싶었어요. 그래서 영 불편했는데, 진영이가 ‘함께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진영이 키우면서 속 태우고 잠 못 이룬 날이 많아요. 워낙 말썽을 많이 부려서…. 그런데 지금 보면 세상에 없는 노래도 만들어내고,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굉장히 자랑스럽고 흐뭇합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기특할 뿐이죠.” 윤씨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온 박진영의 아버지 박명노(72세)씨의 얼굴도 연신 함박웃음이다. 혹여 아내만 수상한 것이 못내 서운하지는 않은지, 그의 소감을 물었다. “서운하긴요. 원래 애들은 다 엄마가 키우는 거잖아요. 엄마가 최고죠.(웃음) 전에도 진영이의 무대를 본 적이 있지만, 오늘은 특히 더 감회가 새로운 것 같아요. 아들 칭찬을 굳이 하자면 바르고 착하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속을 썩일 때도 근본적으로 빗나간 짓을 한 적은 없어요. 어버이날 선물은 이걸로 충분합니다. 용돈요? 평소에 쓰고 남을 정도로 줍니다. 다 못 쓸 정도예요. 요즘은 이런 게 효도라면서요?(웃음)” 감성 충만한 음악가, 날카로운 기획자, 파격적이고 직설적인 언행으로 연예계 ‘괴짜’로 통하는 박진영의 평소 모습과는 분명 다른 ‘아들’ 박진영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든다.
선택의 자유, 책임과 규칙 강조한 자녀교육
어머니 윤임자씨가 말하는 박진영의 유년 시절은 한마디로 ‘조금 다른 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박진영은 호기심도 많고,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아서 한때 ‘사고뭉치’이기도 했다. 처음 음악을 접하고 춤을 추겠다며 매일 TV를 보며 춤만 출 때도,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는 것이 윤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또래 아이들과 조금 달랐어요. 장난도 심하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늘 정신이 없었거든요.(웃음) 공부도 곧잘 했어요. 그중에서 춤추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잘했어요. 재능이 보이더라고요. 초등학교 시절 잠깐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주에 생일인 친구들을 축하하기 위해 춤을 추는 파티가 있었어요. 그 지역에 흑인이 많이 거주했는데, 그런 춤 대회에 나가면 흑인들을 제치고 꼭 1등을 했거든요. 그래도 엄마 마음은 공부를 잘하니까,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었죠. 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실 음악 한다고 하고 춤을 출 때도 잠깐 하다가 말 것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말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미국에서의 경험은 박진영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결정적 순간’이 됐다. 마이클 잭슨 등의 흑인 음악을 접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박진영은 전보다 더 깊이 음악과 춤에 빠져들었다. 윤씨도 이런 아들을 말릴 수 없어 오히려 옆에서 같이 구경해주는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박진영은 오히려 그런 어머니의 ‘예술적 끼’를 자신이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 어머니랑 TV를 보면서 ‘저 가수 춤은 멋지다’ ‘저건 별로인 것 같다’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제 생각에는, 어머니가 겉으로는 굉장히 차분하고 내성적인 것 같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끼가 많고, 그걸 숨기면서 살아오신 것 같아요.(웃음)” 윤씨의 어머니, 즉 박진영의 외할머니는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은 분이다. 윤씨는 어머니가 재직한 학교에 다니면서 ‘튀지 않는’ 학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집안 분위기도 엄격해 ‘여자는 현모양처가 돼야 한다’는 가풍 속에 자신의 재능이나 욕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다고. 클래식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달리기도 곧잘 했지만 윤씨는 이러한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따분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성인이 돼서야 시작했다. 윤씨 스스로도 “말하자면 난 ‘억눌린 박진영’이었다”고 말할 정도. 이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내 아이는 반드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키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윤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교육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앞에 나서서 아이의 재능을 이끌어준 것은 아니에요. 그냥 묵묵히 아들의 선택을 봐주고, 부모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엄격하게 했죠. ‘무식한 예술가가 돼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게끔 했어요.” 은행에 근무하던 아버지 박명노씨는 바쁜 와중에도 아들과 틈틈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들의 속마음과 고민 등을 들어주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박진영이 중•고등학교 시절, 클럽에 가고 싶다고 하면 직접 데려다주는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춤출 공간이 마땅치 않았어요.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남편은 차라리 직접 안전하게 데리고 다니겠다고 한 것이죠. 진영이가 클럽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약속한 시간에 나오면 같이 집에 데려오곤 했어요. 대신 학생으로서 금주, 금연 약속은 철저히 지키도록 했고요.”
부모는 ‘자연’처럼 늘 ‘자식 편’이 돼줘야 한다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길 때는 눈물을 속 뺄 만큼 혼내기도 했다고. 또 많은 자유를 준 대신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가르칠 때는 그 어떤 부모보다 엄격했다.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유분방함과 자신감은 아마 이때부터 박진영의 몸에 밴 듯하다. 여기에, 선택에 따른 책임과 규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니 박진영은 건강한 틀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연예계의 이단아, 창의적인 예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최근 그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자신의 ‘강박증적인 완벽주의’에 대해 고백했다.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대로 생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는데, 아마 어릴 때부터 규칙과 약속을 지키는 것을 몸소 체득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년기의 박진영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책벌레’로도 유명했다. 게다가 승부욕도 강해, 뭐든 한 번 잡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고. 좋아하는 과목이 있으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펴놓고 끝까지 파고들어 읽을 정도로 호기심과 집념이 강했다고 한다. 어머니 윤씨는 이런 아들을 보며 ‘내가 통제하기 벅찬 아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 성향을 보면서 아무리 제가 부모로서 바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된다, 안 된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진영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인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윤씨는 아들의 교우관계에 각별히 관심을 가졌다. 하루는 아들의 하굣길을 지켜보다가 이상한 광경을 봤다. 박진영이 집 앞까지 동행한 친구들 중 몇몇을 돌려보내더라는 것이다. “넌 우리 집에서 못 놀아” 하며 편을 가르는 것 같아, 윤씨는 그날 아들을 불러놓고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라고 크게 꾸짖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들이 집에 데려오는 친구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환영하고 극진히 대해줬다는 것. 이렇다 보니 학창 시절 박진영의 집은 친구들 사이에서 ‘아지트’로 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박진영은 대명고등학교 학생회장에 뽑히기도 했다. 윤씨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아들이 행여 공부에 소홀할까 봐 혼자 공부하는 자습시간에는 아이 방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하면서 함께 있어줬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아들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 보통 부모들은 “친구들과 그만 놀고 공부해”라고 감시 아닌 감시를 하며 아이 혼자 방에 있게 한다. 하지만 윤씨는 오히려 아들이 혼자 있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옆에 있어준 것이다. 아들 교육에 대한 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특별히 사교육을 시킬 일도 없었다. 네 살 때 한글을 떼고, 동네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려 유치원도 따로 보내지 않았다고. 윤씨는 특히 예술가를 꿈꾸는 자녀를 키우려면 열린 사고와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는 종교나 성(性)적 가치관 등 많은 면에서 진영이와 다릅니다. 하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이 벌어지면 이성적인 틀 안에서 아들의 의견을 듣고 수용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들이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도 모든 걸 본인 결정에 맡겼고요. 혹독한 결과나, 대가도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는 점을 늘 주지시켰어요.” 그리고 결과와 상관없이 윤씨는 늘 아들에게 ‘난 늘 네 편’이라는 안도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실 부모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식이 크게 엇나가지 않도록 뒤에서 울타리를 쳐주고,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 그리고 종종 힘들어하면 위로해주는 것. 윤씨가 ‘자녀의 가장 큰 스승은 자연’이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 늘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타고난 재주꾼’이라 여겨온 아티스트 박진영을 있게 한 가장 큰 산은 다름 아닌 어머니 윤임자씨였다. 교육열에 몸이 단 요즘 시대에 윤씨의 특별한 교육철학은 그래서 더 크게 마음에 와 닿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