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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 장거리 답사 스크랩 아리랑(Arirang)/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위곡 선정
안희경 추천 0 조회 126 14.08.08 18: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리랑(Arirang)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위곡 선정






아리랑(Arirang)
                  ------------ 한우경
나를 버리고 가시는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참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참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세상 만사를 헤아리니
물위에 둥둥 뜬 거품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백두산 덜미에 해 저물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이곡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이 노래를 알 것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이곡이 선정됐다.

선정 과정중에서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었고 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곡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줬다'
'듣는 도중 몇번씩 흥이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들 이었으며
한국 유명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전자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유진박 아리랑(Arirang)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
잠시 눈을 감고 감상해 보세요...





아리랑 - 한우경


아리랑(Arirang) (Eastern love song) / Paul Mauriat

 

한국 3대 아리랑의 유래

    지금의 정선 남면 거칠현동(居七賢洞)은
    멸망한 고려의 충절을 지키려는 일곱명의 선비가
    평생 산나물을 뜯어먹으며 은거했다는 곳이다.
    이들이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며 비통한 심정을 담아 지었던 시를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소리가락에 실어 전해진 것이 정선아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얘기는 중국 춘추시대의 ‘일곱 현인’ 사연과 흡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아우라지강 건너편에 살던 남녀의 애달픈 사랑얘기가 더 그럴 듯하다.
    여랑의 처녀와 송천 총각이 불어난 강물 때문에 만날 수 없었던 사연이 담긴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이다.
    “아우라지 뱃사공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따 떨어지겠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사시사철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이 노랫말에는 동박열매를 따다가 머릿기름을 내어
    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여랑처녀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문경새재가 웬 고갠가/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는 노랫말을 가진
    진도아리랑에도 전설이 있다.
    박수무당을 타고났지만,
    무당이 되기 싫었던 한 총각은 이미 정혼까지 한 여자를 버리고 경상도로 도망쳤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총각이 다시 정혼한 여자의 집을 찾았더니,
    그녀는 문턱에서 늙은 채로 총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을 저버린 남자를 원망하는 노래가 진도아리랑이 됐다고 전해진다.

    밀양아리랑의 전설은
    관노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라는 밀양부사의 딸에 대한 얘기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부사가 부임할 때마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정작 신임부사들은 사연을 듣기도 전에 놀라 죽고 만다.
    그러다가 담이 큰 부사가 부임해 이 사연을 듣게 되면서,
    아랑이 나비가 되어
    자신을 죽인 관노의 어깨에 앉아 비로소 원한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각의 전설이 있는 정선·진도·밀양아리랑을 ‘3대 전통아리랑’이라고 한다.
    이들 아리랑은 창작과 윤색을 거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다른 아리랑과 달리
    지역민요의 음률과 자생적인 가사를 지니고 있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 구전민요.

    개요
    어느 시대에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지금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해외에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기원
    <아리랑>의 기원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여음인 '아리랑'의 어원에서 그 바탕을 찾고 있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이다.
    이런 이유로 어원설은
    대체로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에 정착된
    〈아리랑〉과 유사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아리랑'이라는 말을 실사(實詞)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① 아리랑(我離娘):'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② 아이농설(我耳聾說):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③ 아랑전설(阿娘傳說):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④ 알영설(閼英說):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구음(口音)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유래했다고 봄이 바람직하다.

    역사적 상징
    아리랑은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때의 주로 두레노래로 불렸으며,
    따라서 구술과 암기에 의한 전승 또는 자연적 습득이라는 민속성 이외에
    지역동동체 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비록 그 노랫말이 개인적인 넋두리의 비중이 컸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근세의 민족사가 반영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농부든 어부든 광부든 각기 그들 생활 속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다는 점에서
    직업공동체·사회공동체의 이른바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가 되었고,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원군에 의한 경복궁 중건때의 민중의 고통이나
    관리의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 전해지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하의 민족적 수난에 대한 저항의식이
    나운규 제작의 영화〈아리랑〉을 탄생케 했음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영화〈아리랑〉의 등장은 아리랑이 지니는 역사적 상징이
    민간전승으로부터 다른 차원의 문화영역으로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랑은 단순히 단일한 장르의 민요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지닌 음악사·문학사·예술사의 거봉으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아리랑의 파급
    한국의 3대 전통민요 아리랑은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을 말한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 동서를 따라 설정된
    메나리토리권의 민요로 민요적 전통성과 지역성이 강하다.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의 육자배기토리권에 속하지만
    다른 육자배기토리 민요와 약간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진도와 호남지역, 충청남도 일대,
    경상남도 서부지역, 제주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밀양아리랑〉은 영남지역에서 전하지만
    영남지역의 정자토리 민요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편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통속민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아리랑〉은
    대중가요·영화·무용·문학 등의 전 예술분야에 파급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대중가요로는 1931년 〈낙랑아리랑〉을 비롯하여 많은 곡이 만들어졌고
    신민요에는 〈경기아리랑〉이 효시가 되어 많은 곡들이 불렸다.

    3대 전통 아리랑을 제외한 여러 아리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춘천아리랑〉(한말에 춘천에서 의병투쟁을 벌일 때 부른 노래)·
    〈본조아리랑〉(대원군과 민비의 권력 싸움을 민중들이 성토한 노래)·
    〈광복군아리랑〉(만주 광복군의 독립의지를 담고 있는 노래)·
    〈치르치크 아리랑〉
    (조국을 빼앗기고 소련으로 떠난 알타아타시의 한인들이 부른 노래) 등이 있다.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아리랑 삼천리〉·〈영암아리랑〉 등이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금은 아리랑이 민족화합의 노래로서 널리 불리고 있다.

심천 아리랑 ▼

淸雅   安 承 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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